WATCH&JEWELRY

로랑 페리에부터 파르미지아니, 모리츠 그로스만까지. 드러내지 않아 더 고급스러운 드레스 워치 4

로고나 화려한 광고를 앞세우기보다 설계와 마감의 완성도로 가치를 증명하는, ‘아는 사람만 아는’ 4개의 드레스 시계를 소개할게요.

프로필 by 이하민 2026.04.20
겸손함의 미학
  • 로랑 페리에 클래식 오리진 베이지 : 브랜드 창립 15주년 기념작. 우아한 페블 케이스와 미니멀한 다이얼, 섬세하게 피니싱된 핸드와인딩 칼리버의 완벽한 조화
  • 파르미지아니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 듀얼 타임 핸즈를 라트라팡테 메커니즘으로 숨긴, 실용성과 절제미를 결합한 혁신적인 GMT 워치
  • 모리츠 그로스만 햄매틱 : 19세기 회중시계의 진자식 해머 와인딩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고전미와 기술력의 결정체
  • H. 모저 앤 씨 엔데버 투르비용 콘셉트 반타블랙 : 빛을 흡수하는 반타블랙 다이얼 위로 로고와 인덱스를 지우고 핸즈와 투르비용만을 둔 극단적 미니멀리즘

하이엔드 시계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구나 알아보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나 화려한 컬러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정교한 디테일로 승부하는 시계도 있죠. 이른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가 시계 업계에도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브랜드의 명성보다는 무브먼트의 독창적인 구조나 압도적인 피니싱, 그리고 절제된 디자인 자체에 집중하는 애호가들이 늘고 있어요. 다이얼에 요소를 덜어내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얇은 케이스 안에 숨기거나, 심지어 브랜드 로고조차 지워버리며 시계의 본질에 다가선 타임피스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드러내지 않기에 오히려 그 가치가 더 돋보이는 4개의 드레스 워치를 소개할게요.




로랑 페리에 - 클래식 오리진 베이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18K 5N 레드 골드 페블 케이스와 베이지 오팔린 다이얼, 아세가이 핸즈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18K 5N 레드 골드 페블 케이스와 베이지 오팔린 다이얼, 아세가이 핸즈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미러 폴리싱 처리한 스크류 헤드와 샌드블라스트 마감 브릿지의 뚜렷한 대비가 돋보이는 칼리버 LF116.01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미러 폴리싱 처리한 스크류 헤드와 샌드블라스트 마감 브릿지의 뚜렷한 대비가 돋보이는 칼리버 LF116.01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물방울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우아한 러그 라인은 손목 위에 얹어졌을 때 그 진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물방울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우아한 러그 라인은 손목 위에 얹어졌을 때 그 진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 이미지 출처: 로랑 페리에

로랑 페리에는 화려함보다는 유려한 실루엣과 집요할 정도로 완벽한 마감에 집중하는 독립 시계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창립 15주년을 맞아 선보인 클래식 오리진 베이지는 그들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타임온리 워치죠. 강물의 흐름에 마모된 조약돌처럼 매끄러운 곡선이 특징인 40mm 케이스는 18K 5N 레드 골드 소재로 제작되어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윤기를 발산해요. 다이얼은 차분한 베이지 오팔린 톤으로 마감했으며, 얇은 브라운 크로스헤어와 로랑 페리에의 시그니처인 아세가이 형태의 레드 골드 핸즈가 어우러져 완벽한 균형미를 선사합니다. 조작의 즐거움을 더하는 둥근 볼 형태의 크라운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죠. 사파이어 케이스백을 통해 드러나는 인하우스 핸드와인딩 칼리버 LF116.01은 이 시계의 백미라 할 수 있어요. 샌드블라스트 처리된 브릿지와 미러 폴리싱 마감한 스크류 헤드의 대비, 80시간의 넉넉한 파워 리저브를 제공하는 이 무브먼트는 스위스 전통 워치메이킹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파르미지아니 -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스플릿 세컨즈


스틸 케이스에 플래티넘 950 베젤을 결합해 절제된 우아함을 발산하는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스틸 케이스에 플래티넘 950 베젤을 결합해 절제된 우아함을 발산하는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평소에는 겹쳐져 있다가 필요할 때만 푸셔를 눌러 로컬 타임과 홈 타임을 보여주는 라트라팡테 메커니즘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평소에는 겹쳐져 있다가 필요할 때만 푸셔를 눌러 로컬 타임과 홈 타임을 보여주는 라트라팡테 메커니즘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복잡한 기능을 품고도 얇은 두께를 유지하는 칼리버 PF051. 정교한 피니싱과 22K 로즈 골드 마이크로 로터가 시선을 끈다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복잡한 기능을 품고도 얇은 두께를 유지하는 칼리버 PF051. 정교한 피니싱과 22K 로즈 골드 마이크로 로터가 시선을 끈다 / 이미지 출처: 파르미지아니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에서나 볼 수 있던 라트라팡테(Rattrapante) 메커니즘을 GMT에 접목한 파르미지아니의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는 듀얼 타임 워치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합니다. 평소에는 두 개의 시침이 완벽하게 포개져 있어 단순한 투 핸즈 시계처럼 보이죠. 하지만 여행지에서 8시 방향의 푸셔를 누르면 로듐 도금된 로컬 타임 시침이 한 시간씩 앞으로 전진하고, 그 아래 숨어있던 로즈 골드 소재의 홈 타임 시침이 나타나며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알려줍니다. 귀국 후 3시 방향 크라운에 통합된 푸셔를 누르면 다시 원래대로 두 바늘이 포개져요. 필요할 때만 기능을 꺼내 쓴다는 발상이 무척 영리하죠. 지름 40mm, 두께 10.7mm의 스틸 케이스에 플래티넘 950 베젤을 올렸고, 브랜드 특유의 미세한 그랑 도르주(Grain d'Orge) 기요셰 패턴을 다이얼에 새겨 넣었습니다. 22K 로즈 골드 마이크로 로터를 장착한 칼리버 PF051을 탑재해, 복잡한 기능을 품고도 브랜드 특유의 얇고 유려한 실루엣을 완벽하게 유지합니다.




모리츠 그로스만 - 햄매틱


19세기 회중시계의 미학을 계승한 클래식한 자태. 얇고 긴 로마 숫자 인덱스와 0.1mm 두께의 핸즈가 돋보인다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19세기 회중시계의 미학을 계승한 클래식한 자태. 얇고 긴 로마 숫자 인덱스와 0.1mm 두께의 핸즈가 돋보인다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전통적인 마찰식 은도금 기법으로 완성한 다이얼은 특유의 깊이감과 은은한 질감으로 시계의 고전미를 극대화한다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전통적인 마찰식 은도금 기법으로 완성한 다이얼은 특유의 깊이감과 은은한 질감으로 시계의 고전미를 극대화한다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360도 회전 로터 대신, 진자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동력을 엮어내는 햄매틱 고유의 해머 와인딩 시스템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360도 회전 로터 대신, 진자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동력을 엮어내는 햄매틱 고유의 해머 와인딩 시스템 / 이미지 출처: 모리츠 그로스만

모리츠 그로스만의 햄매틱은 오토매틱 와인딩 시스템의 역사를 19세기 방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입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360도 회전 로터 대신, 진자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해머 형태의 추를 사용해 메인스프링을 감는 방식이죠. 케이스백을 통해 칼리버 106.0을 들여다보면 타원형 헤드의 진자형 해머가 미세한 움직임에도 기어 트레인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우아한 작동 과정을 감상할 수 있어요. 후면의 메커니즘은 파격적이지만, 앞모습은 한없이 클래식합니다. 솔리드 실버 소재 위로 전통적인 마찰식 은도금(Silver-plated by friction) 기법을 섬세하게 적용한 다이얼은 특유의 깊이 있는 질감으로 우아함을 자아내죠. 그 위로 얇고 긴 로마 숫자 인덱스와 끝부분 두께가 0.1mm에 불과할 정도로 정교하게 깎아낸 수공 핸즈를 더해 고전미의 정점을 완성했습니다. 글라슈테 워치메이킹의 전통을 이어받은 코스메틱 마감과 코팅 처리되지 않은 저먼 실버 플레이트의 질감이 시계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려 줘요.




H. 모저 앤 씨 - 엔데버 투르비용 콘셉트 반타블랙


로고와 인덱스를 모두 덜어낸 반타블랙 다이얼 위로 1분 플라잉 투르비용과 핸즈만이 존재감을 발산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 / 이미지 출처: H. 모저 앤 씨

로고와 인덱스를 모두 덜어낸 반타블랙 다이얼 위로 1분 플라잉 투르비용과 핸즈만이 존재감을 발산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 / 이미지 출처: H. 모저 앤 씨

자체 개발한 더블 헤어스프링 시스템을 탑재해 팽창과 수축 시 무게 중심의 이동을 상쇄하는 오토매틱 칼리버 HMC 804 / 이미지 출처: H. 모저 앤 씨

자체 개발한 더블 헤어스프링 시스템을 탑재해 팽창과 수축 시 무게 중심의 이동을 상쇄하는 오토매틱 칼리버 HMC 804 / 이미지 출처: H. 모저 앤 씨

시계 다이얼에서 인덱스와 로고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브랜드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H. 모저 앤 씨는 '콘셉트' 다이얼을 통해 오직 소재와 메커니즘 자체로 승부수를 던지죠. 지름 40mm의 레드 골드 케이스 안에 담긴 반타블랙(Vantablack®) 다이얼은 이 시계의 핵심입니다. 반타블랙은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탄소 나노튜브 소재를 사용해 마치 깊은 우주 공간이나 블랙홀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철저하게 통제된 어둠 속에서 오직 6시 방향의 1분 플라잉 투르비용과 레드 골드 소재의 핸즈만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내부에 탑재된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HMC 804는 브랜드가 자체 개발한 더블 헤어스프링 시스템을 갖춰, 두 개의 스프링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무게 중심의 이동에 따른 오차를 효과적으로 상쇄시키죠. 덜어냄으로써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대적이고 철학적인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Credit

  • EDITOR 손형명
  • PHOTO 각 캡션 이미지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