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먹고 망가져야 완성되는 예술, 우리는 왜 그것을 더 오래 기억할까

초콜릿은 썩고, 사탕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남는다.

프로필 by 성하영 2026.04.22
Monster,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rea Ferrero

Monster,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rea Ferrero



헨젤과 그레텔 이후, 가장 위험한 디저트들
  • 헨젤과 그레텔의 쿠키 덫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먹는 예술’이다
  • 손을 뻗는 순간 작품은 파괴되고, 먹는 순간 이야기는 완성된다
  • 이 오래된 구조는 갤러리와 테이블 위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 먹기 위해 존재하고 사라지기에 더 강렬한 작품
  • 초콜릿, 젤리, 케이크, 사탕을 매개로 작업했던 네 명의 아티스트


Dieter Roth - 초콜릿

Selbstturm, Dieter Roth, NY TIMES

Selbstturm, Dieter Roth, NY TIMES

1930년생 디터 로트는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로, 판화, 조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했습니다. 특히 초콜릿, 치즈, 소시지 등 음식 재료를 통해 썩어가는 물질과 일상 재료를 활용한 작업들이 잘 알려져 있죠. 그는 완성된 작품보다 ‘과정과 변화’를 강조하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통해 영원성을 무너뜨립니다. 그는 작품 <Literaturwurst(문학 소시지)>를 통해 책과 신문을 잘게 갈아 소시지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찢어 향신료, 젤라틴, 지방 등 전통적인 소시지 제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대형 소시지를 만들고, 겉면에는 해당 책의 표지를 붙여 제목을 표시하는 식이었죠. 이는 텍스트를 ‘읽는 것’에서 ‘먹는 것’으로 전환한 개념적 시도였습니다.

Literaturwurst(문학 소시지), Dieter Roth Website

Literaturwurst(문학 소시지), Dieter Roth Website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대표작이자 달콤한 시리즈 중 하나인 ‘Selbstturm’ 작업 역시 나무 몰드와 설탕, 그리고 초콜릿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자화상을 초콜릿으로 조각한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전통적인 조각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녹고, 무너지고, 곰팡이가 생깁니다. 그는 이런 작업들을 통해 ‘조각은 영원해야 한다’는 공식을 깨뜨립니다. 그의 작업이 거래될 때 구매 되는 것 역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히스토리죠. 우리에게 소비되는 초콜릿이 달콤한 쾌락이라면, 디터 로트에게 초콜릿은 썩고 뭉그러지는 불쾌한 존재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어그러지는 초콜릿처럼, 자아 또한 결국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완성된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초콜릿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Selbstturm, Dieter Roth, artist website

Selbstturm, Dieter Roth, artist website




Andrea Ferrero - 젤리

Pieces-detruites, 2022, Andrea Ferrero

Pieces-detruites, 2022, Andrea Ferrero

1991년 리마 출신의 작가는 멕시코시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도시 공간에 내재된 지배 서사의 지속성을 거부하기 위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교란하는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신화적 기원을 추적하며, 권력의 언어가 서로 다른 지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이식되고 변형되어 왔는지를 탐구하죠. 풍자와 아이러니, 장난기 어린 태도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소문, 그리고 가능한 미래를 허구적 서사로 엮어냅니다. 알루미늄 주조, 금속 작업과 같은 영구적인 재료와 젤라틴, 초콜릿, 왁스와 같은 소멸 가능한 재료를 결합하여 상상력을 몰입형 설치로 구현하고, 퍼포먼스적 놀이이자 먹을 수 있는 연회와 같은 경험을 통해 관객을 일탈과 침범, 감각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식이죠.그녀의 작품 ‘Pièces détruites’는 19세기 유럽 상류층을 위해 활동했던 셰프 마리 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ême)과 위르뱅 뒤부아(Urbain Dubois)의 피에스 몽테에서 영감 받았습니다. “Let them eat Cake”.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를 떠올리면, 작품의 맥락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정교한 디저트 조각을 참조하며, 축하와 미식적 스펙터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권력을 과시하고 위계를 형성했는지를 탐구하죠. 초콜릿과 젤라틴으로 제작된 오브제들은 이동식 카트 위에 전시되고, 관객에게 나누어져 먹히고, 소화되고, 배출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녀에게 쉽게 부서지고 뭉개지는 젤리는 미각의 폭력성과 의례화 된 과잉을 드러내는 동시에, 음식과 서빙의 의례가 어떻게 권력을 연출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재료입니다.




Laila Gohar - 케이크

Bread & Blanket, Laila Gohar website

Bread & Blanket, Laila Gohar website

이집트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88년생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르는 음식을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서사와 공간을 만드는 매체로 사용합니다. 음식과 오브제로 테이블 위를 하나의 장면처럼 연출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관객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음식을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풀고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아이스 브레이킹’의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녀에게 음식은 심리적 장치이자 관계의 도구이며, 작업은 언제나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인지, 먹을 수 있는지, 혹은 연출된 장면인지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그 긴장 상태 자체가 작업의 일부인 것이죠. 그녀는 얇은 난 브레드를 굽고 엮어 이불과 베개를 만들거나, 퐁신한 브리오슈 빵으로 소파를 만드는 등 음식과 디자인,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합니다. 여러 작업 중에도 소더비 미술경매장에서 선보인 ‘케이크 의자’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실제 의자 크기로 제작된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내는 순간, 경매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의자 오브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죠. 앉을 수는 없지만 먹을 수 있게 된 의자는 긴장된 공간의 분위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듭니다. 가장 즐거운 날, 행복한 날 찾게 되는 케이크의 본질처럼 말이에요.

Laila Gohar's cake chair at Sotherby, Laila Gohar Website

Laila Gohar's cake chair at Sotherby, Laila Gohar Website




Felix Gonzalez-Torres - 사탕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Felix Gonzalez-Torres. Rockbund Art Museum, Shanghai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Felix Gonzalez-Torres. Rockbund Art Museum, Shanghai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난 설치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사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작 ‘Untitled’ 시리즈에서는 작품의 제목 대신 부제를 통해 의미를 확장하며, 동일한 구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합니다. 그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로스 레이콕을 잃은 경험과, 작가 본인 또한 환자로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38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아쉽게 요절했던 스토리를 알게되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작업 전반에 깊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에게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였습니다.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는 로스의 생전 몸무게인 약 175 파운드 (79kg)에 해당하는 사탕을 전시장에 쌓아두고, 관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작업입니다. 달콤하지만 그 맛을 위해 입안에 넣으면 서서히 녹아 사라져버리는 사탕이라는 재료로, 로스와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죠. 사탕은 줄어들고, 전시 담당자는 매일마다 사라진 양의 사탕을 다시 채웠습니다. 그는 이 반복을 소멸과 회복, 기억과 애도의 순환 구조라 말했습니다. 달콤하게 녹아 사라지는 사탕을 통해, 작가는 사라지는 존재를 가장 부드럽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누군가 가장 달콤한 사탕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토레스의 사탕이 아닐까요.

Felix Gonzalez-Torres , Photographed by Remy Dean Medium

Felix Gonzalez-Torres , Photographed by Remy Dean Medium




Credit

  • WRITER 류경진 jinjonjam
  • PHOTO 각 이미지 캡션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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