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신체 박제된 욕망, 패션의 물신성을 드러낸 예술가 바네사 비크로프트에 대하여
현대 미술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는 지난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의 신체를 마치 사물처럼 배치하는 방식으로 사회가 인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왔습니다. 그의 작업은 언뜻 화려한 패션화보나 백화점 윈도우 속 마네킹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와 패션 산업이 신체를 어떻게 물건처럼 취급하고 우상화하는지에 대한 서늘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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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25년 넘게 여성의 신체를 일정한 대형으로 배치하는 'VB' 시리즈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이 사물처럼 소비되는 현상을 탐구해 왔습니다.
- 모델들에게 무표정과 부동자세를 강요함으로써 패션 산업이 인간의 개성을 지우고 시각적인 상품(물신)으로 박제하는 방식을 냉철하게 비판하죠.
- 구찌의 톰 포드와 협업하며 신체에 로고를 새기거나,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Yeezy) 시즌 런웨이를 거대한 군대 대열처럼 연출하며 패션과 계급, 소외의 문제를 구체화했습니다.
-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패션 하우스와 직접 협업하는 방식을 통해,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VB 시리즈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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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를 통한 퍼포먼스 / 이미지 출처: Vanessa Beecroft
25년 넘게 이어지는 VB 시리즈 / 이미지 출처: Vanessa Beecroft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업은 1993년 밀라노 루치아노 잉가-핀 갤러리에서 선보인 첫 퍼포먼스 ‘VB01’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모든 작품에 고유한 일련번호 VB가 매겨지는 연대기적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의 퍼포먼스에서는 수십 명의 모델이 일정한 대형을 유지한 채 서 있거나 앉아 있죠. 이들은 하나같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얼굴로 관객과 눈을 맞추지 않은 채 허공을 응시하거나 무심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어떤 때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또 어떤 때는 명품 브랜드의 하이힐이나 유니폼을 완벽하게 갖춰 입고 등장하는 모델들은 살아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하나의 전시된 물질로 보이게 됩니다.
패션 산업을 향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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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산업과 여성 그리고 패션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 이미지 출처: Vanessa Beecroft
이러한 연출은 패션 산업이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패션은 옷이라는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매력적인 도구로 포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이나 개성은 사라지고 오직 시각적인 자극과 소유욕을 부추기는 물신만이 남게 됩니다. 비크로프트는 모델들에게 움직임이나 대화, 감정 표현을 일절 금지하는 엄격한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박제된 존재처럼 만드는데, 관객들은 처음에는 이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델들이 겪는 육체적 피로와 경직된 고통을 지켜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패션이 선사하는 화려한 환상을 깨뜨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패션 하우스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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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ezy 시즌 1 프레젠테이션 / 이미지 출처: Yeezy, Vanessa Beecroft
yeezy 시즌 2 프레젠테이션 / 이미지 출처: Yeezy, Vanessa Beecroft
실제로 비크로프트는 여러 글로벌 패션 하우스와의 구체적인 협업을 통해 이러한 예술적 철학을 현실 세계에 투사해 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던 디자이너 톰 포드와의 협업에서는 모델들의 체모를 구찌의 'G' 로고 모양으로 정교하게 다듬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여성이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표식이자 소유물로 전락하는 현상을 시각적으로 폭로했습니다. 또한 발렌티노와의 작업에서는 이탈리아 전통의 르네상스 회화 구도를 빌려와 패션이 어떻게 고전 예술의 권위를 빌려 스스로를 신성화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했었죠. 또한 비크로프트는 칸예 웨스트와의 협업으로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비크로프트는 이지(Yeezy)의 런웨이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 무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특히 2015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열린 ‘Yeezy Season 1’을 시작으로, 2016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진 ‘Yeezy Season 3’에서는 수천 명의 모델을 마치 난민 수용소의 군중이나 군대 대열처럼 배치하는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의복이 계급을 나누고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거대한 스케일로 시각화한 사건이었습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식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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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공개된 VB 68 시리즈 작업 / 이미지 출처: Vanessa Beecroft
물론 거대 자본인 패션 브랜드와 손을 잡는 그의 행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비크로프트는 오히려 그 욕망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가 시스템이 인간을 상품화하는 메커니즘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차갑고 정적인 이미지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화려한 광고 이면의 공허함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아무런 말 없이 서 있는 그의 모델들은 역설적으로 소비사회에서 패션이라는 명목하에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이 결국은 껍데가 아래 피부를 가진 연약한 존재,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Credit
- EDITOR 한유주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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