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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주류 초대석 비밀 파티 셋리스트로 알아보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 세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디스코 그루브와 B급 유머의 정수는 독보적이다. 정교한 연주력과 키치한 퍼포먼스로 인디 신을 사로잡은 이들의 대표 셋리스트를 통해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조명한다.

프로필 by 정서현 2026.05.13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의심스러워: 정교한 디스코 리듬과 아라비안 펑키 소울 세계관으로 술탄의 초기 정체성을 확립한 대표곡.
  • 사라지는 꿈: 유쾌한 콘셉트 뒤에 숨겨진 리더 나잠 수의 진솔한 고뇌와 서정적인 공감을 담아낸 트랙.
  • Shining Road: 시티팝을 술탄만의 훵키한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대중적 사랑을 받는 감각적인 드라이브 송.
  • 탱탱볼: 하찮은 소재를 세련된 브라스 편곡과 중독성 있는 그루브로 승화시킨 생활밀착형 디스코 싱글.
  • 요술왕자: 지구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엉뚱한 설정과 JJ. 핫산의 재치 있는 나레이션이 돋보이는 라이브 인기곡.

2000년대 후반 홍대 신에서 립싱크 댄스 그룹으로 등장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앨범 활동을 거듭하며 독특한 콘셉트와 그에 뒤지지 않는 음악성, 역동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디스코와 훵크, B급 유머와 정교한 연주를 섞은 이들은 어느새 ‘B급인 척하는 S급 밴드’라는 수식어로 불렸다.

지난 주말 열린 ‘B주류 초대석 비밀 파티’는 그런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귀환을 다시 한번 기대하게 만든 자리였다. 드러머 김간지와의 의리로 성사된 약 7년 만의 무대는 ‘의심스러워’, ‘요술 왕자’ 등 그들의 히트곡으로 꽉꽉 채워졌고, 김민경 편집자가 ‘Shining Road’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그날의 셋리스트를 따라 술탄 오브 더 디스코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되돌아보자.



1. 의심스러워 – 한국 인디씬에서 가장 수상한 디스코

1996년 유명기획사 ‘분가분가’가 차세대 아이돌 그룹을 위해 개최한 오디션에서 2500:1의 경쟁률을 뚫고 나잠 수, 덕우엉, 김호성 3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기획사의 의도대로 사회와 격리된 채 혹독한 댄스 및 노래 연습에 몰두했으나, 1997년 IMF 외환 위기에 휘말려 기획사는 망하고 대표는 해외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후 8년 동안 도망 간 대표를 쫓아 세계 각지를 배회하던 그들은 중동의 사막에서 왕년의 디스코 제왕인 무하마드를 만나 잊혀진 전설의 음악 아라비안 펑키 소울을 전수 받고 각각 ‘압둘라 나잠’, ‘무스타파 더거’, ‘J.J 핫산’으로 개명, ‘술탄 오브 더 디스코’를 탄생시켰다. – 정규 1집 <The Golden Age> 앨범 설명 中

2010년대 초, 당시 홍대 인디 신에서는 록 밴드 중심의 사운드가 주류였지만,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정교한 디스코 리듬과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의심스러워’는 그중에서도 술탄 특유의 키치함과 연주력을 동시에 증명한 곡으로 자주 언급된다. 프런트맨 나잠 수가 작사∙작곡했으며, 라이브 공연에서는 멤버들의 과장된 표정 연기와 안무까지 더해져 대표적인 라이브 인기곡으로 자리 잡았다.

‘의심스러워’는 2013년 발표된 정규 1집 <The Golden Age>의 타이틀 곡으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초기 정체성인 ‘아라비안 펑키 소울’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 중 하나다. 디스코와 훵크 리듬 위에 “모든 게 의심스럽다”라는 편집증적인 가사를 얹으며, 일상 속 불안과 피해의식을 특유의 B급 유머로 풀어냈다. 반복되는 베이스 리프와 브라스 편곡, 멤버들의 군무 중심 라이브 퍼포먼스는 이후 술탄 공연의 핵심 문법이 되었다.



2. 사라지는 꿈 – 유쾌함 뒤에 숨겨져 있던 술탄의 서정성

정규 1집 발매 후 한국은 물론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등 10개국에서 100회가 넘는 공연을 진행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6~70년대 황금시대 디스코의 정수를 보여줬던 1집에서 진일보하여 고전의 빈티지와 첨단의 트렌드, 디스코/훵크/소울부터 R&B/일렉트로닉/록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 그리고 폭발적인 에너지와 깊숙한 서정성을 골고루 담아낸 정규 2집 <Aliens>를 발매했다.

‘사라지는 꿈’은 리더 나잠 수가 작곡∙작사를 맡았다. 기존의 독특한 콘셉트는 잠시 접어두고, 음악인으로서 가졌던 방황과 고뇌의 시기 동안의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나잠 수의 진솔한 가사는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술탄에게는 없었던 새로운 공감의 정서를 자아냈다.



3. Shining Road – 서울의 밤을 달리는 시티 디스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와 역동적인 퍼포먼스는 그들의 최대 강점이자 팬들이 그들을 좋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술탄이 가지고 있는 이지한 면모들을 놓치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정규 2집까지 발매하며 탄탄한 팬층을 쌓은 밴드는 다음 스텝을 고민하게 되었고, 술탄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스타일의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

‘Shining Road’는 그렇게 2019년 발매된 미니앨범 <Easy Listening For Love>의 타이틀 곡.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시티팝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스에 술탄만의 훵키한 밴드 사운드가 더해졌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곡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이 곡은 사랑하는 이와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딱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곡이며,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드라이브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은 프런트맨 나잠 수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활동과 별개로 이어온 그의 솔로 프로젝트의 색채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나잠 수는 2010년대 중반부터 ‘나잠 수와 빅웨이브즈’, 솔로 정규 <Till The Sun Goes Up> 등을 통해 보다 팝적이고 신스 중심적인 사운드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Shining Road’는 그런 나잠 수의 개인적인 음악 취향과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특유의 훵키한 연주가 가장 자연스럽게 만난 곡이다.



4. 탱탱볼 – 가장 하찮은 소재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디스코

‘탱탱볼’은 2014년 발매된 싱글로, “탱탱볼, 탱탱볼, 탱탱, 탱-탱탱볼” 반복되는 가사와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으로 리듬감을 한껏 끌어올린 훵크/디스코곡이다. 작사∙작곡∙믹싱∙마스터링 모두 나잠 수가 진행했으며,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제작했던 나잠 수의 생활밀착형 B급 감성이 잘 드러난다.

제목과 달리 리듬과 브라스 편곡은 굉장히 세련되었으며, 기묘한 뮤직비디오로 화제 되기도 하였다. 정규 1집 <The Golden Age>로 음악성을 증명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간결한 그르부를 통해 관객들을 저절로 들썩이게 만든다’는 디스코라는 장르의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팬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그리고 춤추기 쉬운 노래”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작업했던 곡이다.



5. 캐러밴 – 술탄의 세계관이 가장 강렬해지는 순간

정규 1집 <The Golden Age>의 또 다른 타이틀 곡인 ‘캐러밴(Caravan)’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구축해 온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중동풍 멜로디와 디스코 리듬, 브라스 편곡이 결합된 이 곡은 제목 그대로 뜨거운 사막을 행진하는 유랑 집단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밴드명인 ‘술탄’에서 연상되는 오리엔탈 무드와 훵키한 밴드 사운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결합한 곡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밴드에서는 볼 수 없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만의 비밀 병기, ‘댄서 JJ. 핫산’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JJ. 핫산은 탬버린과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멤버로, 과장된 표정 연기와 현란한 춤으로 술탄 특유의 B급 쇼맨십을 완성해 왔다. ‘캐러밴’은 그의 탬버린 퍼포먼스가 가장 극대화되는 곡 중 하나로 꼽히며, 실제 공연에서는 멤버들의 군무와 관객 떼창이 더해져 하나의 뮤지컬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6. 요술왕자 –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디스코로 악의 무리와 싸우는 디스코의 왕자

‘요술왕자’는 정규 1집 <The Golden Age>의 첫 번째 트랙이자, 초기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정체성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긴 대표곡이다. 디스코와 훵크를 기반으로 한 경쾌한 리듬 위에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을 덧입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아라비안 펑키 소울’ 세계관을 담아냈다.

곡의 백미는 중간에 등장하는 JJ. 핫산의 나레이션이다. “미안해, 사실 나는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디스코로 악의 무리와 싸우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야. 그래서 널 사랑할 수 없어 미안해.”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특유의 B급 유머를 담은 대사로, 그의 과장된 연극 톤이 재치를 더해준다.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달리 음악 자체는 굉장히 정교하다. 브라스와 퍼커션, 리드미컬한 베이스가 촘촘하게 얽혀 있으며, 나잠 수와 JJ. 핫산이 랩과 보컬을 주고받으며 곡을 흥미진진하게 끌어 나간다. 여기에 역동적인 안무까지 더해지며, ‘요술왕자’는 단순한 수록곡을 넘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팀의 캐릭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라이브 트랙으로 자리 잡았다.



숱한 밤을 지나 술탄은 정말 돌아올까. 활동이 뜸해진 이후에도 팬들은 꾸준히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복귀를 기다려왔다. 그리고 지난 주말, 허간민의 부름에 응답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오랜만의 무대 위에서 여전히 자신들만의 리듬과 세계관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추후 활동을 이어갈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이날의 셋리스트는 팬들에게 다시 한번 기대할 여지를 남겼다.

한편 오늘(13일) 토스 머니그라피 인스타그램에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멤버들의 댓글 읽기 콘텐츠가 공개되며 반가운 근황들이 전해졌다. 김간지는 “인기투표로 리더가 정해지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리더”라며 “섭외 문의는 저에게 해달라”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농담을 남겼다. 이어 멤버들은 각자의 근황도 소개했다. 기타의 홍기는 녹음실을 운영 중이며, 댄서 JJ. 핫산은 성형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의 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밝혔다. 프런트맨 나잠 수는 그림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베이시스트 지윤해는 밴드 ‘봉제인간’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아 활동 중이다.


Credit

  • WRITER 문가현
  • PHOTO 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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