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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노리라는 와인 제국을 서울에서 여행했다

서울에서 안티노리의 주요 와인들인 티냐넬로와 솔라이아 그리고 스택스립을 시음하는 행사가 열렸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5.20

안티노리라는 제국

티냐넬로(Tignanello)라고 하면 대부분은 '수퍼 투스칸'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1971년 피에로 안티노리가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는다는, 당시 이탈리아 와인 메이킹에서는 이단에 가까운 실험을 감행하며 탄생한 바로 그 와인. 보르도의 문법을 토스카나의 언어로 번역한 그 한 병은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를 둘로 나눴다. 이전과 이후로. 이른바 '수퍼 투스칸'이라는 장르는 피에로 안티노리의 그 실험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냐넬로의 와인 창고 모습.

티냐넬로의 와인 창고 모습.

솔라이아(Solaia)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종을 이루고 산지오베제가 그 뒤를 받치는, 티냐넬로의 쌍둥이이자 라이벌. 같은 포도밭에서 다른 철학으로 만들어지는 두 와인. 한 가문이 품고 있는 긴장의 반대 축이자 다양성의 증거다. 스택스 립이라고 하면? 스택스 립 와인셀라(Stag's Leap Wine Cellars)는 1976년 '파리의 심판' 당시 프랑스 와인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호명된 나파밸리의 전설. 미국 와인이 세계 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 그 역사적인 와이너리다. 그리고 서로 다른 대륙, 다른 품종, 다른 역사를 지닌 이 와인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 아래 있다.

그 이름은 안티노리(Antinori)다. 118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처음 와인을 빚기 시작해, 1385년 피렌체 와인 길드에 공식 등록된 이후 단 한 번도 가업이 끊기지 않고 현재까지 26대를 이어온 가문. 기네스북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양조 가문으로 공식 인증한 명가다. 르네상스가 꽃피던 시절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빚어온 가문이, 오늘날엔 이탈리아를 넘어 나파밸리와 칠레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하나의 거대한 와인 제국을 통치하고 있다.

안티노리의 저력은 단순한 역사의 무게에 있지 않다. 현재 피에로 안티노리의 세 딸이 경영에 참여하며 이어가고 있는 '열정(Passion), 인내(Patience), 끈기(Perseverance)'라는 가문 철학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동시에 껴안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전통 품종 산지오베제를 지키면서도 카베르네 소비뇽과의 블렌딩을 과감히 시도했고, 토스카나의 성에서 와인을 만들면서도 나파 밸리의 화산 토양 위에 새 깃발을 꽂았다. 2021년엔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 지역의 화이트 와인 명가 예르만(Jermann)의 경영권을 확보했고, 2023년엔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단독 소유주로 올라섰다. 670년 가업의 유산을 세계 최상급의 떼루아들을 찾아 확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제국의 와인들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반포 세빛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무드서울(Mood Seoul)에 안티노리의 와인 70여 종이 한자리에 모였다. 종합주류기업 아영FBC가 주최한 '저니 투 안티노리(Journey To Antinori)' 미디어 시음회—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 행사는 안티노리라는 와인 제국의 전체 지형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안티노리 아시아태평양 수출 담당 매니저 귀도 바누치(Guido Vannucchi)가 직접 서울을 찾았다. 그는 안티노리의 와인 철학과 주요 라인업을 직접 소개했다. 작년 시음회에서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울림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지역과 품종에서 온 와인들을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즐거움, 열정, 우아함—그 세 가지가 안티노리가 추구하는 가치라는 그의 설명의 가치는 이날 줄지어 선 70여 병의 와인들 앞에서 비로소 실감했다.

시음 라인업은 안티노리의 이탈리아 전선과 해외 전선을 동시에 아울렀다. 토스카나의 수퍼 투스칸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를 중심으로, 움브리아의 체르바로(Cervaro), 프리울리의 예르만(Jermann)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품종으로 와인을 양조하는 와인 대국 이탈리아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여기에 2025년부터 아영FBC가 단독 수입 유통하기 시작한 나파밸리의 스택스 립 와인셀라와 칠레 마이포 밸리의 하라스 데 피르케(Haras De Pirque)까지 더해지며, 안티노리가 구축한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밑그림을 따라 그려볼 수 있었다. 26대에 이어진 와인 경영의 유산은 안티노리만이 가진 독보적인 가치이자 품질의 보증수표다.

이날의 테이스팅 노트

와인은 결국 잔 속에서 말한다. 안티노리 포트폴리오의 핵심을 이루는 세 와이너리가 가진 각자의 언어.

이날 서브된 주요 와인들.

이날 서브된 주요 와인들.

Tignanello 2022

Toscana IGT · 산지오베제 78%, 카베르네 소비뇽 18%, 카베르네 프랑 4%

모든 수퍼 투스칸의 아버지.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입장과 동시에 이 와인이 서브되는 곳 앞에서 서성거렸다. 컬러는 짙은 루비. 스월링 후 올라오는 첫 향은 잘 익은 블랙체리와 자두, 그 사이를 말린 제비꽃이 비집고 든다. 석류, 바이올렛, 발사믹, 아주 약간의 바닐라, 삼나무, 깊은 숲의 안개 같은 향. 팔레트에서는 촘촘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타닌이 다이나믹한 인상을 주며, 긴 피니시로 마무리된다.

Solaia 2020

Toscana IGT · 카베르네 소비뇽 75%, 카베르네 프랑 15%, 산지오베제 10%

티냐넬로와 같은 포도밭에서 나오는 '꺄쇼' 중심의 수퍼 투스칸. 카베르네 소비뇽이 전면에 나서며 만들어내는 카시스와 블랙커런트의 집중된 과실향, 그 위로 민트, 라벤더 등의 풀꽃 향기가 더해지고, 코코아 파우더, 정향, 육두구 등의 향신료 향이 이어지는 엄청나게 복합적인 레이어가 쌓인다. 밀도가 무척 높고 잘다듬어진 탄닌이 길게 이어진다.

행사 당일 스태그스 립 스테이션의 모습.

행사 당일 스태그스 립 스테이션의 모습.

Stag's Leap Wine Cellars

1976년 파리의 심판. 이 와인이 프랑스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을 때, 세계 와인의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Artemis 2021 — 나파 밸리 전역의 포도원을 블렌딩한 엔트리 플래그십. 보이즌베리, 자두, 커런트, 초콜릿, 베이킹 스파이스의 아로마가 풍성하며 풀 바디에 플러시한 타닌이 인상적. 지금 바로 즐기기 좋고 언제나 마실 수 있고 직관적으로 맛있는 '야미' 스타일의 절정.

FAY 2020 —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최초의 카베르네 포도원에서 탄생한 단일 빈야드 와인. 향수 같은 향과 완벽한 균형감이 돋보이며, 라즈베리·블랙베리·민트 풍미가 생동감 있는 산도와 절제된 타닌 위에서 우아하게 펼쳐진다. 2020 빈티지는 나파 밸리의 산불 후유증에 대한 우려를 싹 날리는 빈티지. 생산량을 최고급 포도로 한정한 덕인지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이 포도원의 전형적인 품격을 드러낸다.

Cask 23 2021 — FAY와 SLV(스택스 립 빈야드, 최상급 밭)두 포도원의 최고 블록만 선별한 플래그십. FAY의 퍼퓸 노트와 SLV의 다크 프루트·구조감이 결합되어, 블랙 커런트·블루베리 콩포트·블랙 체리·담배·스파이스 아로마에 이어 다크 초콜릿·아니스의 긴 피니시로 마무리된다.

Credit

  • PHOTO 아영F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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