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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로테이션 소개팅에서 이성 친구를 만드는 법

10분에 1명씩,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을 한거번에 만날 수 있는 로테이션 소개팅은 효율과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한국에 가장 적합한 만남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6.05.25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덜컥 로테이션 소개팅 날짜가 됐는데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막막했다. 일반적인 소개팅이라면 미리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로테이션 소개팅은 차원이 다르다. 그나마 도움이 됐던 건 로테이션 소개팅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라고 해봐야 ‘30대 중반/IT계열/159cm/씩씩하고 귀여움’ 같은 단편적인 내용이지만, 최소한 어느 연령대의 여성이 나오는지는 알 수 있다.

고민 끝에 고른 옷은 짙은 컬러의 데님 셋업이었다. 안에는 옥스퍼드 화이트 셔츠를 받쳐 입었고 신발은 아끼는 갈색 레드윙 부츠를 골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던 건 블랙 니트 타이의 유무였다. 선을 보는 것도 아닌데 타이를 매는 게 너무 격식을 차린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결국 손에 타이를 쥔 채 집을 나섰다. 평년 기온을 웃도는 따뜻한 날씨에 집을 나서자마자 ‘괜히 재킷을 입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후였다.

“옷이 잘 어울려요. 넥타이도 그렇고요.” 로테이션 소개팅 중 마주한 어느 여성에게 들은 말이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억지로 내게 건넨 칭찬일 수도 있지만, 그 말 한 마디만으로 큰 위안이 됐다. 칭찬을 받았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진짜 92년생 맞으세요? 엄청 동안이시네요!”라고 말했다. 말하자마자 조금 후회했다. 괜히 외모를 평가한 것처럼 느껴져서 불쾌하진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상대방은 크게 웃으며 “그런 말 자주 듣긴 해요”라고 말했다.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서 로테이션 소개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보자. 장소는 합정역 근처의 어느 카페, 시간은 토요일 오후 2시였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번호를 부여받는다. 내가 받은 번호는 3번이었다. 준비된 번호는 10번까지 있었다. 3번 테이블에 앉으면 프로필 카드가 놓여 있는데 이름, 나이, 직업, 사는 곳 같은 간단한 정보뿐만 아니라 이상형, 자신의 매력, 원하는 데이트 스타일, 주량, 흡연 여부 등 자세한 성향까지 꼼꼼히 체크할 수 있도록 문항이 마련되어 있다. 뒤늦게 알았지만, 프로필 카드를 성심성의껏 작성하는 게 꽤 중요하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같은 사람과 10분밖에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매력 어필을 하고 싶다면 대화보단 프로필 카드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게 유리하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팁을 주자면 메모를 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대화를 나눈 후 옆 테이블로 옮기기 전 작은 쪽지를 교환한다. 이때 상대방이 마음에 들었으면 쪽지에 자신의 연락처를 남긴다. 단, 받은 쪽지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완전히 끝난 후에 열어볼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특징을 제대로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쪽지에 적힌 번호가 누구의 번호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건 경험담에서 나오는 이야기니 부디 새겨듣길 바란다.

“다른 분들은 자신의 매력을 쓰는 칸에 ‘자가 보유’나 ‘전문직 종사’ 같은 걸 적었던데 유독 아무것도 안 적어서 되레 눈길이 갔어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요.”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차마 그녀에게 자가도 없고 전문직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저는 제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신 찾아봐주실래요?”라는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이 끝나면 여성이 먼저 자리를 뜬다. 남성은 여성이 떠난 후 5~10분이 지나야 퇴실할 수 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난 소개팅 장소를 나서자마자 봉투를 뒤집어 쪽지를 확인했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5였다. 이날 만난 8명의 여성 중 3명에게 연락처를 받은 것이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야 그 정도면 선방한 거야. 난 처음 나갔을 때 한 표도 못 받았어.” 한 달 만에 다섯 번이나 로테이션 소개팅에 참석한 친구의 말이다. 그는 로테이션 소개팅을 ‘가성비 부킹’이라고 설명한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하룻밤에 수십 만원을 쓰고도 이성을 몇 명 만나지 못할 때가 있어. 늦은 시간에 술도 마셔야 하니까 체력적으로도 부담스럽고. 근데 로테이션 소개팅은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깔끔하게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도 만날 수 있으니 가성비가 좋은 셈이지.” 굳이 부킹까지 가지 않더라도 로테이션 소개팅이 여러모로 효율적인 건 맞다. ‘온라인을 믿을 수 없어.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만약 1 대 1 소개팅으로 8명을 만나려 했다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로테이션 소개팅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1990년대부터 유사한 형태의 만남이 존재했다. 영미권에선 ‘스피드 데이팅’, 일본에선 ‘고콘’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대학 졸업 후 10년 이상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최호연 씨는 “최근 한국에서 로테이션 소개팅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어요. 일본에선 고콘이라고 하면 약간 올드한 느낌이 나거든요. 결혼이 급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것 같기도 해요”라며 “대신 같은 관심사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어주는 변형된 형태의 고콘은 여전히 수요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몸이 좋은 사람들, 소득이 높은 사람들,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아 로테이션 소개팅을 진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5월 2일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에는 영국의 젊은 세대가 앱 기반의 매칭 프로그램에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스피드 데이팅 같은 오프라인 매칭 이벤트로 회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Credit

  • PHOTO 페어링 스튜디오/솔로 하우스/제주 아홉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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