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돔 페리뇽이 말하는 시간의 하모니

40년간 매봉산에 숨어 있던 석유 탱크 안에서, 돔 페리뇽이 출시한 세 개의 퀴베를 테이스팅하며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5.27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정면은 당연히 불광천을 바라보고 있는 서쪽 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향하거나 월드컵로를 지나며 이 서쪽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뒤통수 쪽인 동쪽 면 건너편에 거대한 석유비축기지가 있다. 아무런 장식 없이 브루탈리즘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1976~78년 사이에 지어진 이후 오랜 정화 기간과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2017년 ‘문화비축기지’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돔 페리뇽은 지난 4월 14일과 15일 양일 동안 셰프와 소믈리에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인사, 셀러브리티, 그리고 기자들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유난히 더웠던 이른 봄날, 다섯 개의 탱크 중 휘발유 비축을 담당하던 탱크를 개조한 T1 파빌리온으로 들어서자 마치 샴페인 셀러에라도 들어선 듯 차가운 기운이 목 뒤를 스친다. “이 공간을 봐요.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 지금 밖은 거의 30℃에 육박하는데, 이 안은 15℃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마치 포도 생장기 샹파뉴의 낮과 밤을 오가는 것만 같아요. 이 낙차가 완벽해요.” 이날의 호스트,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이 말했다.

돔 페리뇽은 해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와인을 넘어선 감각적 경험과 창작의 과정을 선보인다. 매해 변주하는 이 행사의 올해 주제는 ‘Harmony’. 돔 페리뇽이 이야기하는 ‘Harmony’는 대지, 사람, 그리고 기후처럼 서로 다른 요소들이 긴장과 균형 속에서 하나의 창조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번 ‘Harmony Experience’는 공간, 퍼포먼스, 그리고 미식을 통해 구현됐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들이 선보인 ‘백조의 호수’ 1막 아다지오 기반의 듀오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긴장과 균형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신체의 움직임으로 풀어내며, 이날 돔 페리뇽이 이야기한 ‘Harmony’를 감각적으로 드러냈다.

돔 페리뇽은 테이스팅이 진행되는 만찬을 한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와 제철 식재료로 컨템퍼러리 한식이라는 어려운 매듭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레스토랑 솔밤의 엄태준 셰프의 ‘포 핸즈’로 준비했다. 이들은 첫 코스부터 자신들의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던 디시들의 화려한 변주로 서로와의 조화를 꾀했다. 단새우를 딜, 차이브, 샬롯과 함께 섬세하게 버무리고 다우리쿠스 캐비아를 위에 올려 바다의 풍미를 겹겹이 쌓은 뒤 그 주위로 아주 얇게 슬라이스한 아스파라거스를 두른 엄태준 셰프의 찬합과 프랑스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로 차게 우려낸 수프와 감자칩, 그리고 성게알을 올린 강민구 셰프의 미니 볼이 함께 식탁에 놓였다. 두부장으로 코팅해 감칠맛을 확 끌어올린 아스파라거스 핑거푸드까지 함께해 ‘아스파라거스 트리오’라 이름 붙은 이 코스에는 올해 처음 공개되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이 페어링됐다. 하나의 돔 페리뇽 퀴베를 두 가지 음식과 페어링하며 서로 다른 조화를 느껴보는 것이 경험의 핵심.

이른 봄의 서리, 타는 듯한 여름, 8월 말의 비까지 겹치며 극한의 재해를 겪은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샤르도네의 수확은 크게 무리가 없었지만, 연약하고 섬세한 피노 누아들은 이 극한의 기상이변을 견뎌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돔 페리뇽이 현대 하우스의 모습을 갖춘 이래 극히 적은 수확량의 포도만이 돔 페리뇽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넘겨 블렌딩에 사용됐다. 그러나 그 한 병에 담긴 퀴베는 강렬했다. “저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이 바로크 음악 같다고 느껴요.” 뱅상 샤프롱이 말했다. “힘든 환경을 이겨낸 포도들인 만큼 수확량은 적었지만 그 안에 품은 향과 맛은 굉장히 풍부하고 강렬해요. 소량만 사용했을 때의 농축미가 와인에 수직적인 느낌과 무게감을 부여했지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는 신선로에서 영감을 받아 소고기 육수에 산과 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담아 낸 ‘솔밤 & 밍글스 팟’, 해산물을 켜켜이 쌓은 슈페츨레에 막걸리 비스크 소스와 콜리플라워 렐리시를 채우고 합자장 소스를 발라 구워낸 블루 로브스터와 함께 서브됐다. 오랜 시간 숙성한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는 날카로운 구조감에 다양한 텍스처를 더했다. "처음보다 더 포용력 있고, 넓고, 감칠맛이 뛰어나지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보다 더 진한, 거의 금빛을 띠기 직전의 레몬빛을 띤 아름다운 액체가 잔에 담겼다. 두 셰프가 공을 들인 밍글스 팟과 로브스터는 육지와 바다의 감칠맛을 각자의 방식으로 끌어올린 요리. 접시에 담긴 감칠맛이 잔에 담긴 감칠맛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으로 끌어올렸다.

왼쪽부터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 돔 페리뇽 빈티지 2017,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10.

왼쪽부터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 돔 페리뇽 빈티지 2017,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10.

마지막으로 서브된 와인은 무려 16년의 숙성을 거쳐 이번에 출시된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10. 보통의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의 숙성 기간인 9~11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진화한 이 퀴베는 연어의 속살처럼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빛났다. 밍글스의 스타일대로 꼬치에 끼워 김에 싸서 낸 치킨과 메추라기는 부드럽고 폭발적인 감칠맛을 선사했고, 솔밤의 시그너처인 봄 주꾸미 등겨장 국수는 고소한 향미가 봄의 향기를 더했다. 이 복합적인 디시들은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10이 가진 우아한 철분과 흙의 뉘앙스,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여운과 오래 어우러졌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솔로 테이스팅이었다. 돔 페리뇽은 매해 그 도시의 일면을 체험하고 경외감을 느낄 만한 장소에서 조심스럽게 선정한 음악과 함께 그해에 출시된 퀴베를 테이스팅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올해 한국에서의 솔로 테이스팅이 열린 문화비축기지의 T2는 콘크리트로 된 옛 석유비축 탱크의 윗면을 잘라내고, 원형 벽면의 일부를 살려 공연장으로 만든 공간이다. 해가 진 봄날, 가차 없이 직설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의 차가움과 이를 둘러싼 매봉산 자락의 자연은 알 수 없는 숭고미를 뽐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처음 맛본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은 뱅상 샤프롱의 표현처럼 바로크적으로 웅장했다. →



A Conversation with - Vincent Chaperon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과 나눈 그날의 대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은 당신에게 특별한 와인이죠.

맞아요. 2017년은 제 전임자 리샤르 조프루아의 마지막 빈티지였어요. 2011년, 2014년, 2016년에 빈티지를 선언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2017년 수확하기 불과 2주 전에 초산균 오염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쳤지요. 저 역시 와인을 만든 25년 중에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샤르도네는 완벽했지만 피노 누아가 문제였죠. 전임자의 마지막 빈티지를 위해 우리는 모두 함께 “이 해의 빈티지를 위해 싸우자”는 결의로 덤벼들었죠.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와인을 만드는 인간의 행위도 자연이지요. 테니스 파이널에서 1cm 차이로 승부가 갈리잖아요? 그 1cm가 인간의 의지고, 2017년이라는 힘든 상황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을 만들어낸 것이 우리 하우스의 의지죠.

오늘 우리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 그리고 로제 빈티지 2010을 테이스팅했지요. 이 세 가지 퀴베를 음악에 비유한다면요?

돔 페리뇽 빈티지 2017은 바로크 음악이에요. 과일이 아주 잘 익어 색깔도, 향도 어두운 편이에요. 시트러스보다는 살구, 더 어두운 과실류에 가깝고, 타닌과 페놀에서 오는 묵직한 수직의 감각이 살아 있어요. 산미와 구조감과 쓴맛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발적이고 멋진 와인이에요.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돔 페리뇽과 확연히 달라요. 돔 페리뇽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는 모차르트라고 할까요? 더 클래시컬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높은 음역대를 채우며 흐르고 있지요. 원래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은 팽팽하고 날카롭고 신선함으로 가득 찬 와인이었는데, 플레니튜드 2는 근 10년간의 추가 숙성을 통해 텍스처와 우마미, 포용력을 갖췄어요. 섬세하고 취약했던 부분을 효모가 조화롭게 완성해준 거죠. 이번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10은 적당한 비유를 찾기가 어렵네요. 로제는 보통 로큰롤에 비유하는데, 이 빈티지는 훨씬 섬세해요. 사람의 매력으로 따지면 프랑스식 댄디가 떠올라요. 우리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우아함에 도달한 느낌이에요.

같은 연도의 빈티지를 돔 페리뇽 빈티지, 플레니튜드 2, 플레니튜드 3까지 나란히 시음한다는 건 어떤 경험인가요?

같은 와인들이 숙성하면서 어떻게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지를 경험한다는 건 자못 숭고한 경험이에요. 저는 어떤 아티스트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봤어요.

작년 레벨라시옹 때 틸다 스윈튼이 그 테이스팅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했었죠.

맞아요. 정확하게 그렇게 얘기했지요. 그건 그 경험이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걸 온몸으로 이해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에요. 빈티지는 데고르주망 이후 순수한 산화 과정만을 거치는 반면, 플레니튜드 2와 플레니튜드 3는 효모와 미생물과 접촉하며 숙성하지요. 숙성(maturation)과 산화(aging), 시간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의 철학적 비교인 셈이죠. 결과적으로 빈티지보다는 플레니튜드 2가 항상 더 생동감 있고, 에너지가 넘치고, 선명하고, 밝아요.

Credit

  • PHOTO Harold de Puymorin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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