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리는 모두 날아가는 돌멩이일 뿐이다
마운자로와 위고비 등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약물들이 중독에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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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비만 치료제로 알려진 오젬픽·위고비 등, GLP-1 계열 약을 둘러싸고 묘한 연구들이 쌓이고 있다. 지난 3월 워싱턴대(WashU) 연구진은 당뇨를 앓는 미국 재향군인 60만 6434명의 의료기록을 바탕으로 이 약을 먹은 사람들에게서 술·담배·대마·코카인·아편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중독이 새로 생길 위험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중독의 위험만 낮아진 게 아니다. 이미 중독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선 더 극적이었다. 약물 관련 과다복용이 40%, 응급실 방문이 30% 줄었고,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절반으로, 심지어 자살 생각과 자살 시도까지 4분의 1이 줄었다.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도 마찬가지다. 텍사스대 엘파소 약학대학 연구진이 제2형 당뇨나 비만 환자 14만2000여 건(이 중 약 2만 명이 GLP-1 처방)의 의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GLP-1 복용자의 알코올 사용 장애 위험은 74%, 오피오이드 중독은 69%, 니코틴 중독은 68%, 코카인 중독은 75% 낮았다. 연구진들은 이 약이 식욕뿐 아니라 보상·갈망에 관여하는 도파민 신호와 뇌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물론 이는 관찰 연구일 뿐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눈 임상 연구가 아니다. 즉 경향은 보이지만, 인과가 증명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소름이 끼쳤다. 친한 누나가 위고비를 맞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우리가 함께 속한 모임의 술자리에 나오라는 문자에 누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 이런 적 처음인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나는 그 말에서 심해에서 숨 쉬기를 그만두는 (술)고래의 심상을 떠올렸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한 주에 해장을 여섯 번 하고 주말이면 이틀 동안 잠자는 시간 빼고 온전히 술에 집중하던 누나가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니. 그때 우리는 그게 위고비의 부작용이거나, 술도 음식이기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위고비가 누나의 보상 회로 혹은 보상 예측 회로를 지그시 눌러 밟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GLP-1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이미 호르몬의 기전 혹은 화학으로 설명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매혹되는 감정은 사실 측좌핵과 전전두엽에 도파민이라는 보상·기대의 신호가 흐르는 것이고,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은 애착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결합이다. 더 불편한 영역도 있다. 바소프레신 수용체 유전자(AVPR1A)의 특정 변이 형태에 따라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성향이 갈리며, 도파민 D4 수용체 유전자(DRD4)의 변이는 성적 문란함이나 불륜과 통계적으로 얽힌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바람피운 그 개새끼는 사실 도파민 D4 수용체 유전자나,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좀 이상한 사람일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래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갈망도, 사랑도, 배신도 화학이라면 도대체 나의 '의지'란 무엇인가. 스탠퍼드의 신경내분비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저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Determined)에서 단호하게 답한다. 자유의지는 환상이며, 우리의 모든 선택은 유전과 환경, 생물학적 과거가 이어진 사슬의 결과일 뿐이라고. 스피노자는 슐러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날아가는 돌멩이에 의식이 있다면 자기가 날기를 '선택했다'고 믿을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는 어쩌면 딱 그 돌멩이 같은 착각일지 모른다. 그러니 이 야심한 밤에 마감을 마치고 내가 와인바로 날아가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술 마시는 돌멩이일 뿐이니까.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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