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당신을 위한 손 끝의 감각까지 설계한 위스키 글라스들
좋은 위스키는 향과 맛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위스키는 글라스가 경험에 큰 부분을 설계해줍니다. 잔을 쥐는 순간 손끝에 닿는 무게와 질감이 경험의 절반을 차지하죠. 곡선과 두께 그리고 표면까지 세심하게 설계된 글라스는 같은 술도 다른 인상으로 바꿉니다. 위스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심자부터 오랜 팬들도 좋아할만한, 손에 잡히는 감각까지 고려한 위스키 글라스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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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캐런(Glencairn)
글렌캐런 글라스는 1980년대 초 레이먼드 데이비슨이 처음 구상했지만 한참을 그의 서랍 속에 머물렀습니다. 2001년 다섯 개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들과 함께 다듬어진 뒤에야 정식으로 출시됐습니다. 짧은 다리와 둥근 몸통은 손바닥 전체로 감싸 쥐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무게는 100그램 정도로 가볍지 않아 흔들어도 안정적입니다. 향을 모으는 튤립형 입구는 익숙하지만 쥐었을 때의 단단한 중심감은 처음 만져봐야 알 수 있습니다. 손바닥 곡선에 맞춘 둥근 배는 잔을 따로 들지 않고 그저 감싸 안게 만듭니다. 다리가 없는 디자인이라 책상이나 캠핑 테이블 위에서도 흔들림이 적습니다. 지금은 매년 수백만 개씩 팔리며 위스키 잔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놀란(Norlan)
놀란은 2015년 디자이너 스룰리 레흐트가 디자인한 후 아일라섬의 마스터 디스틸러 짐 맥큐언과 함께 완성되어 출시된 글라스입니다. 이중벽 구조로 외벽은 얇고 내벽은 각진 면을 가진 특징이 있죠. 두 겹의 유리벽을 따로 불어 맞붙이는 방식으로 무게는 125그램 정도지만 체감은 그보다 가볍게 느껴집니다. 손끝에 닿는 표면은 매끄럽지만 안쪽 단면은 빛을 가르기 때문에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졌습니다. 벽 사이 공기층 덕분에 차가운 음료를 따라도 손바닥까지 한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 편안한 경험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손에 쥐었을 때 무게보다 형태가 먼저 인식되는 드문 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토(Zalto)
남다른 그립감을 자랑하는 잘토 글라스 / 이미지 출처: 잘토
오스트리아의 잘토는 사실 위스키 전용 브랜드가 아닙니다. 6대째 가족이 이어온 와인 글라스 명가로 입으로 직접 불어 만드는 핸드메이드 크리스탈이 본업입니다. 그럼에도 얇기로 정평이 난 디제스티프 잔은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따로 쓰입니다. 두께가 종이처럼 얇아 손에 쥐면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잔을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만들죠. 잘토가 사용하는 크리스탈에는 납이 들어가있지 않아 투명도가 높고 표면은 차갑게 빛납니다. 정작 위스키 전문 리뷰어들 사이에서는 잘토가 단독 싱글몰트 잔을 따로 내놓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자주 나올정도입니다. 산뜻하고 청량한 동시에 섬세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리델(Riedel)
오스트리아 리델은 와인 글라스로 유명하지만 위스키 라인 역시 정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2년 스카치 전문가들이 본사에 모여 열아홉 가지 형태를 두고 실험한 끝에 지금의 엉겅퀴 모양 잔이 탄생했습니다. 싱글몰트를 겨냥하여 디자인된 잔은 입구를 살짝 바깥으로 벌려 위스키가 혀끝에 먼저 닿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베이직한 형태지만 입술이 닿는 림 부분을 극단적으로 얇게 깎아낸 것이 특징. 손가락으로 쓸어보면 두께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글렌캐런이 향을 코 끝으로 모아준다면 리델은 입구를 열어 알코올의 향이 편하게 퍼지도록 한 점이 다릅니다. 균형 잡힌 무게중심 덕분에 한 손으로 들어도 안정적입니다.
위스키는 입으로 마시지만 그 인상은 손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같은 술이라도 잔의 무게와 두께에 따라 매번 다른 첫인상을 남깁니다. 네 가지 글라스 중 손에 가장 끌리는 무게와 질감은 결국 직접 확인해보아야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겠죠. 선택은 취향이고, 그 취향은 손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Credit
- EDITOR 한유주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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