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안판석 감독' 드라마 4
한국 드라마 연출사에 한 획을 그은 안판석 감독이 지난 12일 별세했습니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아낸 그의 깊이 있는 대표작 4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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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뛰어난 작품을 남긴 연출 감독 안판석 /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한국 드라마의 거장 안판석 감독이 뇌출혈 투병 끝에 별세했습니다. 드라마 <하얀거탑>,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명작들을 연출한 거장이기에, 수많은 이들이 깊은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10월 추영우와 김소현 주연의 신작 <연애박사> 공개를 앞두고 있던 터라 더욱 깊은 아쉬움을 남겼죠. 사회의 부조리를 섬세한 연출로 풀어낸 그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연출가로 평가받았습니다. 시청자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건네받는데요. 그는 "삶은 고통스러운 과정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은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연출력 외에도 '인권이 있는 촬영 현장'을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모든 장면의 구도를 치밀하게 사전에 구상해 꼭 필요한 촬영만 진행함으로써 스태프들의 노고를 덜어주었습니다. 일상처럼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나오길 바란다는 그의 현장은 수많은 배우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배우들을 기용해 기회의 장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고인을 기리며, 그의 깊이가 돋보인 주요 작품들을 되짚어봤습니다.
<하얀거탑>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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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방영한 드라마 <하얀거탑> / 이미지 출처: MBC
일본 소설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20.8%를 기록하며 메디컬 드라마의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대학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 내 권력 암투와 인간의 야망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냈죠. 기존의 선하고 전형적인 주인공 틀을 깨고,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입체적 인물을 내세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안 감독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연출상을 받기도 했죠. 차가운 하얀 복도와 어두운 회의실 등 날카로운 미장센으로 거대 권력 시스템의 위압감을 표현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안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하얀거탑>은 메디컬 드라마가 아닌 병원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라며, "극적인 상황에 몰린 인물들을 통해 관객 스스로를돌아보게 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밀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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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영한 <밀회> / 이미지 출처: 티빙
20살이 넘는 나이 차의 파격적인 사랑을 다루지만, 단순한 멜로를 넘어 예술계의 은밀한 비리와 세속적 욕망에 매몰된 위선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대사보다 피아노 연주 그 자체로 두 인물의 교감을 표현하며, 격정적인 스킨십 없이도 폭발적인 관능미를 이끌어내는 탁월한 연출력을 증명했습니다. 성공이라는 허상을 향해 달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죠. 마흔이 되어서야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사회적 공범 관계를 깨달은 오혜원(김희애)에게 이선재(유아인)라는 계기가 찾아오듯, 작품은 현실에 체념하고 사는 무서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구원할 희망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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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방영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 이미지 출처: JTBC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던 연상연하 남녀 서준희(정해인)와 윤진아(손예진)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단순한 설렘에 그치지 않고 30대 여성 직장인이 겪는 조직 내 성희롱, 가부장적 가치관, 데이트 폭력 등 서늘한 사회적 현실을 정면으로 조명했죠. 안 감독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자아를 되찾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는 과정을 그려냈다고 해요. 수동적이었던 주인공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깨닫고 틀을 깨고 나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주체적인 삶의 희망을 전합니다.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관점이 추가될 때 인물의 깊이는 상상 이상으로 깊어진다"던 그는 사랑을 통해 인간을, 그리고 인간을 통해 사회를 말하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죠.
<졸업>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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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방영된 드라마 <졸업> / 이미지 출처: 티빙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스타 강사 서혜진(정려원)과 신입 강사로 나타난 제자 이준호(위하준)의 로맨스를 그렸습니다. 문학이 실종된 사회를 투영하고 세속적 욕망을 비춘 이 작품은, 정해진 틀 없이 1부를 완성한 뒤 다음 회차를 구상하는 문학적 맥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교재 연구와 기출문제 분석 등 강사들의 실제 노동 현장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극강의 리얼리즘을 보여주었죠. 안 감독은 로맨스조차 사회적 구조와 계급적 불안 위에서 발생함을 몰입감 있게 녹여냈습니다. 정려원은 "대사나 상황 자체보다 그 이후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는 연출 덕분에 배우로서 크게 성장했다"며 이 작품을 인생작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Credit
- Editor 이원경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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