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도덕주의의 정체는 공포다
최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의회가 버티컬 드링킹을 제한하자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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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음주’(vertical drinking)라는 표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와인 테이스팅을 떠올렸다. 같은 와인을 빈티지별로 쭉 세워놓고 마시는 걸 ‘버티컬 테이스팅’이라고 하니까. 예를 들면 도멘 드 라 로마네콩티의 라 타슈를 1990년대부터 현재 러닝 빈티지인 2023년까지 듬성듬성 10병쯤 쫙 깔아두고 마셔본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웨스트민스터시가 ‘버티컬 드링킹’을 제한하려 한다는 영문 기사를 처음 봤을 때, “그렇지, 남들은 평생 한 병 마셔보기도 힘든 고급 와인을 버티컬로 드링킹하는 건 여러모로 범죄지”라며 “그런데 제한까지 하는 건 좀 선 넘은 것 아닌가?”라고 지레짐작했다.
그게 아니었다. 수직 음주란 스탠딩 드링킹을 말하는 거였다. 서서 마시는 사람들. 런던의 펍 앞에 서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사람들을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시의회가 새 주류 면허 정책 초안에 서서 마시는 형태의 영업을 억제하겠다고 써 넣었다는 얘기다.
웨스트민스터가 어디인가. 웨스트민스터는 런던 외곽에 있는 조용한 동네가 아니다. 소호, 코번트 가든, 메이페어, 세인트 제임스가 전부 여기다. 피카딜리 서커스, 차이나타운, 버윅 스트리트, 새빌 로, 도버 스트리트도 전부 여기다. 런던 중의 런던이다. 당연하게도 이 지역에는 영국에서 술 파는 가게가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에서 서서 마시는 면허를 제한하겠다고? 나는 한국인이지만, 영국인들에게 꼭 한 마디 하고 싶다. 영국인을 정의하는 가장 멋진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펍’이다. 펍(pub)은 ‘public house’를 줄인 말로, 남의 사적인 거실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공용 거실이라는 뜻. 그 뿌리는 앵글로색슨의 에일하우스, 그러니까 펍은 당신들 문화의 뿌리 그 자체다. 예부터 영국의 펍들은 맥주가 익으면 문 앞에 나뭇가지를 매달아 술 마시러 오라고 동네방네 알렸고, 사람들은 에일을 마시겠다고 모여들어 온갖 앞담화, 뒷담화를 나눴다. 자리가 부족하니 서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당연하다. 중세 시절부터 전통적인 영국 마을은 두 개의 심장으로 뛰었다. 교회, 그리고 펍이다.
목요일 저녁 여섯 시,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파인트를 들고 인도에 서 있다. 술잔을 들고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옆 사람과 아스널 얘기를 하고, 어느새 친구가 되어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음 잔을 사준다. 앉아서 마시면 일행끼리만 떠들게 되지만, 서면 낯선 사람과 섞인다. 자리가 고정되지 않으니 대화도 관계도 고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더 웃긴 건 이 풍경 자체가 규제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2007년 실내 금연법이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흡연 규제로 사람을 인도로 내몰더니, 이제는 인도가 시끄러우니 다 앉아서 마시란다.
런던 시장에 영국 총리까지 들고 일어나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전면 금지가 아니라 앉아서 마시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이라며 “아직 초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에 실망했다. 나는 정말 웨스트민스터 시의회에 크게 실망했다.
이젠 정말 도덕 최우선주의가 지겹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음주운전을 예방하겠다며 주류 경고 문구와 경고 그림을 술병 앞면에 붙이도록 하는 기준을 내놓았다. 와인 라벨에, 맥주병 앞에 경고 문구를 붙이겠다는 얘기다. 술병 전면에 경고 문구를 붙이는 것과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 중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 더 확실한 방법은 후자일 게 뻔하지만, 도덕의 칼을 든 사람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칼을 휘두를 때 느끼는 쾌감이기 때문이다. 미국 금주법 시대를 통과한 논평가 H. L. 멩켄의 이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를 오늘 다시 생각해본다. “청교도주의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떨칠 수 없는 공포다.”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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