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8. 이명박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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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8. 이명박버시바우 당시 미국 대사가 본국에 박근혜 리포트를 보고한 시점은 2007년이었다.2007년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다.?청와대행이 확실시되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박근혜와 이명박이 치열하게 맞붙은 시기였다.사실 2016년 최순실 정국에서 나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미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 최순실과 정윤회 부부는 최태민까지 이어지는 박근혜 후보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비선 조직으로 활동했지만 사활을 걸고 뒤를 캐는 이명박 캠프의 추적을 전부 따돌리진 못했다.이명박 캠프는 당시 떠돌던 온갖 소문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이었던 장광근 의원은 박 후보한테 이렇게 물었다.“정수장학회, 영남대학, 육영재단 운영 등 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의 중심에 늘 최태민이 있었다. 아직도 최 씨의 딸과 사위인 정윤회가 박 후보를 돕고 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 농단의 개연성은 없겠는가.” 이쯤 되면 질문이 아니라 예언이다.이때 이미 상당한 정보가 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에 흘러 들어갔다. 버시바우 리포트는 거꾸로 이런 소문을 근거로 작성한 동향 보고였다.2007년 11월 정치인 박근혜의 과거가 현재화되는 결정적 사건이 터진다.육영재단 폭력 사태였다.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폭력배가 대거 동원된 사건이었다.사건의 중심엔 표면적으론 막냇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있었다. 박근혜 의원과는 무관해 보였다.기묘한 연결 고리 하나가 남겨졌다.육영재단 폭력 사태에는 한센인 100여 명이 동원됐다.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한센인 임두성이 공천됐다. 공천 과정에서 임두성의 전과도 철저하게 은폐됐다. 임두성 의원은 결국엔 비리 혐의로 의원직을 잃게 된다.이때 육영재단 폭력 사태의 뒤를 캐던 기자들은 정윤회와 최순실이라는 이름과 만나게 된다. 육영재단 폭력 사태는 언론이 박근혜와 정윤회와 최순실의 정보를 축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한테 밀린 건 박근혜식 원칙 리더십이 이명박식 실용 리더십을 뛰어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거나 ‘국민한테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공허한 원칙론을 보수 세력 내부에서도 경계했다는 얘기다.박근혜 후보의 과거사도 패배의 물밑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당원들은 이명박 후보의 BBK 비리보다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가 본선에서 더 치명적이라고 봤다는 얘기다. 박근혜 신화가 허상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실패했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던 시기의 보수는 그나마 건강했다.노무현의 실패를 먹고 자란 박근혜 신화가 이명박의 실패를 먹고 부활한 건 21세기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2008년 5월 광우병 파동과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이명박 정부가 중도에서 극우로 급격하게 퇴행하면서 박근혜한테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 보수의 퇴행은 늘 정치인 박근혜에게는 기회였다. 이때 박근혜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중도 노선을 표방한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천막 당사에 이어 다시 한번 빅 텐트를 쳤다.분명한 건 천막 당사 시절과 달리 이때는 이미 정치인 박근혜의 치명적 약점을 보수 세력 내부에서 전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친박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 의원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최순실을 몰랐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일갈하는 것도 그래서다.사실 친박에서 내몰린 직후 김무성 의원은 기자들한테 여과 없이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에 관한 내밀한 정보를 제공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보수 여당은 박근혜라는 대선 후보를 제대로 검증해내지 못했다.오히려 박근혜 대세론에 기생했다. 2012년 4월에 치른 19대 총선은 사실상 보수의 실패를 선거 여왕의 천막으로 가린 채 한나라당에서 간판만 바꿔 단 새누리당의 수치스러운 승리였다.이때 보수 여당 안에선 박근혜 권력에 대한 견제가 불가능한 구조가 영구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자 의회 권력이 대통령 권력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는 삼권 분립의 왜곡 현상마저 일어났다. 이런 민주주의의 왜곡은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할 때까지 계속됐다. 선거의 여왕 신화가 무너지기 전까진 여권 의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가 우병우를 저격하기 시작한 시점이 여권의 20대 총선 패배와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때까지는 다들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은 그 안에서 활개쳤다. 박근혜 청와대가 와 공방전을 벌인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신화에 기생하던 세력들이 이제 와서 박근혜 청와대를 버리려고 한다는 상황 인식이 있었다. 청와대에서 배신의 정치란 말이 흘러나온 이유다.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