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영은 믿는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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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은 믿는다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공'의 세계에서 살아온 정인영의 믿음.

ESQUIRE BY ESQUIRE 2017.01.18

남색 벨벳 드레스 두나미스. 블라우스 마시모두띠. 구두 지니킴. 액세서리 넘버링. 두려움 없는 정인영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6년 11월호 남색 벨벳 드레스 두나미스. 블라우스 마시모두띠. 구두 지니킴. 액세서리 넘버링.

정인영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키가 꽤 컸는데 인사를 너무 깊이 해서 사람이 잠깐 접혔다 펴지는 것 같았다.

흔히 스포츠 아나운서는 ‘여신’이라는 부담스러운 별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정인영은 도도한 여신이라기보다 예의 바른 사회인에 더 가까워 보였다.

정인영은 ‘스포츠 여신’이 된 게 의도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정인영 말고도 스포츠 아나운서계에는 ‘언론 고시’라 부르는 지상파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 많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사회생활이 딱히 쉬웠던 것 같지도 않았다. 23살이던 2007년부터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 시작해 2011년 10월 17일에 첫 출근을 했다.

“이때는 프리랜서인데 바우처로 일하는 개념이었어요.”

바우처?

“건당 돈을 받는 거죠. 인터뷰를 나가면 얼마, <알럽 베이스볼> 한 회 진행하면 얼마. 사실 지급 방식이 그랬을 뿐 거의 직원처럼 다녔어요. 그러다 2012년 12월 11일 자로 전속 계약했고요.”

평이한 말투의 회상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첫 출근 날짜와 전속 계약일을 정확히 기억했다. 잊을 수 없는 날이라는 것처럼.

슬리브리스 아르케. 와이드 바지, 구두 모두 카티아조. 귀걸이 넘버링.두려움 없는 정인영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6년 11월호 슬리브리스 아르케. 와이드 바지, 구두 모두 카티아조. 귀걸이 넘버링.

나는 스포츠 아나운서의 사회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성비 불균형 세계의 여성은 소수자로 이런저런 괴로운 일을 겪는다(정도는 다르지만 여초 집단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스포츠 아나운서는 남자들의 짓궂은 시선과 장난을 계속 받아야 한다. 정인영도 4년 전에 인터뷰 진행 중 물세례를 받는 등의 일을 겪었다.

정인영은 타고난 그릇이 컸다. 물세례 이야기를 꺼내자 “그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라며 말을 아꼈다. 나도 몇 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꺼내려 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정인영은 담담했다.

“힘들다는 생각을 길게 하지 않아요. 어차피 방송 일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요, 이 일을 해서 좋은 부분이 훨씬 더 크니까요.

이 일의 좋은 점은 정말 수도 없이 많아요.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아침 일찍부터 일 안 해도 되는 게 좋고요, 사람들이 여가로 즐기는 걸 업으로 삼는다는 것도 좋고요, 남들은 돈 내고 보는 걸 돈 받고 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좋고요.

그리고 제가 방송 일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도 좋게 봐주시는 분이 많으니까 그것도 감사해요.”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직업에서도 장점을 찾아낼 것 같았다. 정인영에게는 희망의 징조를 어떻게든 찾아내는 개츠비 같은 면모가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 꼽는 자신의 암흑기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4년이다.

“이때 언론사가 사람을 많이 안 뽑아서 힘들었어요. 계속 준비하면서 내 시간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너무 허무했어요.”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이것저것 배웠어요.”

정인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허무한 공백을 행동으로 채우는 사람.

131민소매 원피스 카티아조. 술 장식 샌들 세라.두려움 없는 정인영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6년 11월호 131민소매 원피스 카티아조. 술 장식 샌들 세라.

“한식 조리사 자격증 따려고 한식 조리 배우고, 바리스타랑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고, 스쿠버다이빙도 배우고. 제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까 자격증을 딴 거예요. 딱히 못하는 것도 없었지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특출나게 잘하는 걸 쓸 게 없었으니까요. 자격증란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자격증을 땄어요.”

나는 여기까지 듣고 혼잣말처럼 “되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라고 말했다. 정인영은 한결같이 운이 좋다고만 했다.

내 맘 같지 않은 게 남의 마음이다. TV 속 이미지로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송인은 더할 것이다. 검색창에 ‘정인영’을 치면 자동으로 ‘골반’이나 ‘몸매’ 같은 말이 완성된다. 사실 지금 이 페이지인 <에스콰이어> ‘우먼 위 러브’도 정인영의 몸매나 골반을 부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정인영 본인은 프로 골반 노출가가 아니다. 전문성을 갖추고 계속 발전하는, 숙련된 기술을 쌓고 좋은 평판을 받는 프로 방송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보는 게 내 골반일 때의 스트레스는 없을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정인영은 역시 극복했다.

두려움 없는 정인영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6년 11월호 원피스 아르케. 브레이슬릿, 링 모두 코스. 귀걸이 넘버링.

“어렸을 때는 두려웠어요. ‘사람들이 이것(내 몸매)만 보고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어떡하지’ 싶어서 겁이 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연예인이나 방송 나오는 모델처럼 몸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몸을) 봐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죠. 제 몸으로 절 기억하셨던 분들이 제 방송을 볼 때 제가 부끄러운 사람만 아니면 돼요.

봤을 때 ‘어, 정인영 방송도 괜찮게 하네’라고 한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그게 스트레스가 되거나 너무 싫거나 연관 검색어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거나 이런 건 전혀 없어요. 어릴 때 두려워했던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정인영은 몸매를 딱히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 샌드위치를 두 개 먹었다. 탄수화물을 걱정해서인지 크루아상 샌드위치의 빵은 반쯤 떼어냈다. 프로다운 균형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믿게 됐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스스로를 믿어서 이제는 남의 왜곡된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마친 날 밤 사무실로 사진이 들어왔다. 당당해서 매력적인 여자가 공 사이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참 정인영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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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박 찬용,사진|신 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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