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르셀로나가 만든 캄프 누의 기적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FC 바르셀로나는 축구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역전승을 이뤘다. 스포츠가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증명한 100분이었다. | 스포츠,축구,FC 바로셀로나,UEFA,챔피언스리그

2월 16일 FC 바르셀로나 팬들은 절망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망(PSG)에게 당한 패배 때문이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이 너무 나빴다. 아무리 프랑스에서 치르는 원정 경기라 해도 FC바르셀로나의 평소 실력을 생각하면 마른하늘의 날벼락 수준이었다.PSG의 공격진은 FC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농락했다.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 마리아, 독일의 율리안 드락슬러, 우루과이의 에딘손 카바니는 바르셀로나의 사이드 공간을 파괴해 기회를 만들어냈다.공격진도 답답했다. MSN이라는 약칭으로 유명한 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즈, 네이마르라는 최고의 스리 톱이 경기 내내 PSG수비진에 묶여 있었다.1차전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축구 전문가들은 거의 FC 바르셀로나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경기 시간 90분이 넘어갈 즈음 캐스터는 이렇게 외쳤다.“챔피언스리그의 새 역사가 쓰이고 있습니다!” 최종 스코어 0:4. FC 바르셀로나 0, PSG 4.FC 바르셀로나에게 이 결과는 챔피언스리그의 마침표와 같았다.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는 16강부터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린다. 각자의 홈구장에서 두 차례 맞붙고 종합 성적으로 차상위 토너먼트에 올라간다. 동점일 때는 원정 경기에서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이 이긴다. 파리에서 한 골도 못 넣은 FC 바르셀로나가 8강에 진출하려면 홈 경기가 열리는 2차전에서 무조건 5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다.그런 적은 없었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1차전에서 4:0으로 진 팀이 2차전에서 승부를 뒤집은 적은 0회. 1955년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 후 1차전이 4:0으로 끝난 경기는 총 57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표본에서 모두 1차전 승자가 차상위 토너먼트로 올라갔다.한두 판으로 결과가 나오는 녹아웃 경기에서 확률 같은 건 참고 사항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확률이 100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가능성이 낮다’와 ‘불가능하다’가 다른 것과 같다.FC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2차전은 공격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결정이었다. 5점 차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얌전한 작전을 들고 나올 순 없다.엔리케는 신기한 전술을 골랐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1차전과 2차전 사이에 열리는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3-4-3 포메이션을 시험했다. 공격적인 ‘변형 스리백’으로 2차전에 임하겠다는 계획이었다.사실 3-4-3 포메이션 자체는 특이한 구석이 없다.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나 토트넘도 곧잘 쓴다(토트넘이 이 포메이션을 선택하면서 손흥민의 출장 기회가 줄고 있다). 하지만 엔리케의 3-4-3은 달랐다.그는 선수들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경기장에 포진시키는 ‘구식’ 3-4-3을 이용했다. 윙백은 따로 없다. 미드필드까지 공격수를 집중 배치한다. 실점을 최소화하기보단 득점을 최대화하려는 공격 중심 진용이다. 육참골단(肉斬骨斷). 괄육취골(刮肉取骨). 살벌하게 표현하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작전이다.다이아몬드형 3-4-3은 옛날 전술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의 드림팀을 이끌 때, 루이스 판 할이 아약스 감독 시절 리그 무패 우승을 이끌 때 즐겨 썼다. 그만큼 효과가 입증됐다.하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1990년대. 2017년인 지금 다이아몬드형 3-4-3을 프로 무대에서 찾긴 쉽지 않다. 장단점이 너무 뚜렷해서다. 조화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축구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그런데 뜻밖에 실험 결과가 좋았다. 스포르팅 히혼에게 6:0으로, 셀타비고를 5:0으로 이겼다.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 필요한 바로 그 5점 차이를 실현시켰다.엔리케 감독은 자신감을 얻었다.“우리가 원하는 스코어는 6:1”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전술이 전술인지라 무실점은 바라지도 않겠다는 것. 대신 한 골을 더 넣어 기어이 0:4를 뒤집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잃을 것이 없다. 상대가 4골을 넣었다면 우리는 6골을 넣을 수 있다.”엔리케의 말은 힘찼다. 그럼에도 그 시점에서 그 말대로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 자신도 안 믿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3월 9일 새벽에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는 늘 그랬듯 팬으로 가득 찼다.그리고 기적이 시작됐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PSG 진영에서 벌어진 혼전이 전주곡이었다.페널티 지역 안으로 한 번 들어갔다 빠져나온 공이 FC 바르셀로나 미드필더 하피냐 알칸타라의 발에 멈췄다. 하피냐는 특유의 왼발 킥으로 망설임 없이 골을 향해 낮고 빠르게 크로스. 거의 직선으로 강하게 날아간 공은 PSG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주위 선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헤딩을 하려 뛰어올랐다.공은 누구의 머리에도 닿지 않고 인구밀도가 높은 골 에어리어의 좁은 공간으로 떨어졌다. 그 뒤 바닥에 튕기고 아주 자그마한 커브를 그리더니 골을 등진 수아레스 쪽으로 향했다.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머리로 받아 뒤로 넘겼다.공은 다시 공중으로 솟구쳐 골 안으로 비틀거리며 날아 들어갔다. 위력은 없었지만 공의 코스와 포물선의 궤적이 절묘했다. 수비수가 황급히 발을 대어 골 밖으로 차냈지만 공은 이미 골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2분 30초 만에 일어난 축구 특유의 해프닝이었다.캄프 누는 그야말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 시작부터 골이 터졌다. 절대적 열세를 뒤집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슬금슬금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조물주의 시나리오는 싱겁지 않았다. 행운의 첫 골 후로 40분 동안 골이 없었다.가슴 졸이는 공방전만 있었다. 공은 다시 PSG골 앞까지 이르렀다.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이니에스타가 골 왼쪽으로 치달아 공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찬스는 찬스로 끝날 것 같았다. 멋진 힐 패스를 보냈지만 골 앞에는 이미 흰옷을 입은 PSG의 수비수가 가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PSG의 수비수 레뱅 퀴르자와가 패스를 걷어냈다.그런데 그의 발에 맞은 공이 PSG의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꼼짝없는 자책골. PSG에겐 불운, FC 바르셀로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제 2:0. 속 시원한 골은 하나도 없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어쨌든 두 골을 쫓아갔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됐다.셋째 골도 멋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딘지 찜찜했다. 후반 3분, FC 바르셀로나의 네이마르가 페널티 지역 왼쪽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네이마르를 놓친 PSG 수비수 토마스 뫼니에는 고꾸라지면서 그만 어깨와 머리로 네이마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말았다. 페널티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 반칙이었다.주심은 우물쭈물했다.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 때문에 잠시 우유부단의 늪에서 헤매는 듯했다. 주심과 선심이 한자리에 모였다. 결론은 역시 페널티킥.메시의 왼발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황금 같은 페널티킥 기회, 메시는 왼쪽 구석을 골랐다. 트랍 골키퍼가 따라 뛰었지만 공이 너무 빨랐다.이 골로 메시는 챔피언스리그 페널티킥 최다 득점 타이 기록(11골)을 세웠다. 동점 기록 보유자는 동시대의 위대한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더불어 이 골은 메시의 챔피언스리그 통산 94호 골이었다. 100골 경쟁에서 호날두의 95골에도 한발 더 근접했다.경기 절반 만에 3골을 따라갔다. ‘역전은 기정사실’이라는 분위기가 캄프 누를 채우고 있었다.하지만 PSG에는 카바니가 있었다. 그는 캄프 누의 들뜬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후반 16분 하프라인 근처에서의 프리킥. 길게 날아온 공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받은 퀴르자와가 헤더로 방향을 틀었다. 빈 공간으로 들어온 카바니가 찰나의 순간에 스텝을 맞추고 주로 쓰는 오른발로 발리슛.FC 바르셀로나의 억지 춘향 격의 골과는 달랐다. 실로 단호하고 아름다웠다. 16강전의 승패마저 그렇게 결판나는 듯했다. PSG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며 FC바르셀로나 팬들을 절망케 했다.그때부터 엔리케의 승부수가 빛을 발했다. 넘어간 흐름을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썼다. 후반 20분에 이니에스타를 빼고 터키의 아르다 투란을 넣었다. 천만뜻밖이었다.이니에스타는 두말할 것도 없는 바르셀로나 경기력의 구심점이었고 투란은 최근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후반 31분엔 하피냐를 빼고 스페인의 세르지 로베르토를 넣었다. 그것도 의외였다. 하피냐는 3-4-3 다이아몬드 전술의 핵심인데 로베르토는 최근 지지부진했다.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9분 뒤에는 포르투갈의 안드레 고메스가 들어갔다. 좀처럼 팀에 녹아들지 못하던 이적 선수였다. PSG와의 1차전 직후에 열린 프리메라리가 레가네스전에서는 조촐한 플레이로 교체될 때 홈 팬에게 야유를 얻고 평점도 1점밖에 못 받은 선수였다. 핵심 전력을 빼고 부진한 선수들을 투입한 역발상의 초강수. 그 모험이 기적을 낳았다.후반 42분. 네이마르는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완벽한 프리킥 골을 넣었다. 강하고 아름다운 곡선의 오른발 인프런트 킥. 골키퍼 케빈 트랍이 뛰지도 못했다.그에 이어 44분. 마르퀴뇨스와 몸싸움을 하던 수아레스가 목을 잡고 넘어졌다. 판정 시비가 있었지만 명백히 마르퀴뇨스가 왼팔로 수아레스의 목을 밀쳤다.후반전 45분. 네이마르의 페널티킥. 이번에는 오른쪽을 노렸다. 오른발 인프런트 킥. 그리고 후반전 추가 시간 4분에 끝내 터진 로베르토의 골. 경기 막판 1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세 골이 불꽃처럼 터졌다.1차전 0:4, 2차전 6:1. 종합 성적 6:5. 엔리케 감독이 장담한 숫자. 누구도 예상 못 한 기적 같은 역전.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명문 클럽이 놀라운 역전승을 일궈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경기는, 그 100분은 내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용기를 줬다.경기가 끝난 뒤의 인터뷰에서 엔리케는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랬기에 이겼다”고 했다. 보통 때라면 ‘공자님 말씀’이라 치부할 말이다. 그러나 역전극이 펼쳐진 그때만은 그 뻔한 말이 철인의 격언으로 탈바꿈했다.실은 경기 내내 그랬다. 네이마르의 집념 어린 발놀림은 귓전에 울리는 우렁찬 응원가였다. 엔리케의 악착같은 승부수는 눈앞에 펼쳐지는 한 권의 낡은 경전이었다. 내가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할 수 있다”고 일갈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나는 그 움직임에 고무되고 그 투지에 용기백배했다. 새삼 깨달았다. 우리들 가슴속에 믿음이 존재한다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그날 그 새벽, 모니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확인한 것이 고작 철 지난 광고 문구라는 게 한편으로 청승맞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낼 용기뿐이 아니던가.” 어느 뉴스 앵커가 들려준, 역전승 못지않게 감동적인 말이다.FC 바르셀로나는 축구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역전승을 이뤘다. 스포츠가 얼마나 감동적인가를 증명한 10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