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얼마나 노력해봤니?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섹스 한번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애잔한 노력에 대해. | 섹스,칼럼

권헌준 씨의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섹스를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질 때가 있다. 그는 언젠가 섹스 때문에 밤을 통째로 새웠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남역 밤과음악사이에서 만났어. 처음 본 게 밤 11시쯤이었을 거야. 거기서 보고 말 걸고, 그러다 나가서 소주 한잔 마시자고 했지. 감자탕집에서 1인 1병씩 소주 마시고 나니까 해가 뜨더라고. 내가 데려다준다고 했어. 대리운전 불러서 그 여자 집 앞까지 갔지. 그때가 아침 8시였나.” 토요일 골퍼라면 이미 고속도로에 있을 때였지만 권헌준 씨는 아직 원하는 것을 전혀 얻지 못한 시간이었다.“집에 들어가서 한잔 더 했어.” 체력인지 정신력인지 몰라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를 그 힘이 대단한 건 확실했다. “그러고 둘이 침대에 올라가니까 아침 10시쯤 됐던 것 같아. 침대까지 가서 또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한 게 11시쯤?” 엄청난 집념과 체력이다. 권헌준 씨의 간 성분을 채취해 신약 성분으로 써도 될 것 같다. 헌준-골드 같은 이름으로. “그때쯤 되면 물러설 수 없겠다 싶었겠죠.” 김인건 씨와 심유석 씨와 고기를 구우면서 이런 말을 나눴다. 김인건 씨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그는 권헌준 씨의 마음속에 머물렀던 듯한 통찰을 들려줬다.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겠죠. 그러다 보니 시간이든 체력이든 너무 많이 썼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할 수는 없잖아’ 싶은 생각이 들었겠죠. 피곤하니까 빨리 해버리고 자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긴 토요일 새벽 신사역 사거리에 가면 그런 젊은이들을 65명쯤 볼 수 있다. “섹스를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은 경험이 저도 있었습니다. 칸트로요.” ‘섹스와 칸트’, 대학생이 만든 독립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이다. 김인건 씨가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먹으며 말을 이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철학 수업에 재미를 느껴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만났던 어느 여성분은 자신의 지식을 알려주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녀의 대화를 거들면서 호감을 사려 노력했습니다. 칸트 이야기를 한 시간쯤 했어요. 철학사의 흐름이 헤겔까지 갔을 때쯤 느낌이 오더군요.” 인문학 교육이 쓸데없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교훈도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얌전해 보이는 심유석 씨도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 실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심유석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송이버섯을 자를 뿐이었다. 여자는 어떨까? “여자는 사실 ‘섹스하려고 이렇게까지 해봤다’ 싶은 일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장충동에서 만난 임지은 씨가 겨울 평양냉면을 먹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고향이 멀어서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대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 보면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도 있고 집에 잠깐 들어오려는 남자들이 있어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정말 성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여러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권헌준 씨와는 사정이 다르다. “누가 그래!”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고 김예리 씨는 남다른 사람이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여자도 섹스를 하려고 여러 노력을 한다고요. 나 역시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지.” 김예리 씨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이제는 눈을 감아도 생각날 것 같은 (한 번에 치아가 16개는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 김예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끄러운 말을 하기 전에 김예리 씨는 늘 그렇게 의기양양한 김예리 미소를 짓곤 한다.“어떤 걸 말해줘야 할까” 김예리 씨는 귀한 술을 많이 쟁여둔 바텐더처럼 기억의 벽장을 살폈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도 모텔에 자주 갔어요. 토요일 밤에 하고 싶은데 참을 수가 없으면 일요일 아침에 가는 거예요. 마침 올림픽대로는 일요일 아침에 별로 안 막히니까.” 그렇게 좋아하면 늘 가던 데가 있을까? 김예리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일요일 아침은 오히려 모텔 잡기가 쉽지 않아요. 투숙객들이 아직 체크아웃을 안 했거든. 그러니까 특정한 모텔에 가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역삼동’까지만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서 문 연 곳을 찾는 거예요. 예리가 알려주는 생활의 지혜라고.” “올림픽대로 구간 정도면 괜찮네요. 저는 오이도에서 미아까지도 가 봤어요. 새벽 2시에.” 윤재환 씨의 경험을 들으면 ‘남자란 뭘까’ 싶어지지만 “택시비를 그녀가 주겠다고 해서요”라는 말이 이어지면 ‘섹스란 뭘까’ 싶어진다.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가운데 놓고 서로의 본심은 영원히 보여주지 않으면서 계속 빙빙 돌기만 하는 건 아닐까? 쫓고 쫓기고 물고 물리고 넣고 빼고 때로는 속고 속이는 그 순간만의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건 한때의 일이다. 칸트와 헤겔을 거쳐 침대로 간 김인건 씨는 물론 섹스를 하기 위해 용산 구민이 된 권헌준 씨까지 그런 생활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다들 각자의 연애를 잘 해나가고 있다. “제게는 귀두 사용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곡물 선물 거래 트레이더 김성원 씨는 투자 원칙만큼이나 귀두 사용의 원칙도 확고했다. “우선 내 상태와 내 의사를 확고하게 밝힙니다. 연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섹스는 하고 싶다고. 펀드 같은 상품에 가입할 때 투자 손실 조항에 대해 고지해주는 것과 똑같은 개념이에요. 저는 출퇴근이 규칙적인 직장에 다니고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통금도 적당히 지켜요. 오히려 여자가 밤에 나오라고 하면 그게 더 싫죠. ‘지금 새벽 3시야. 너는 출근 안 하니?’ 같은 말을 한 적도 있고요.” 깨끗한 원칙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원칙대로 해서는 잘 안되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사람은 원칙을 어긴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섹스를 하겠다고 새벽 2시에 오이도에서 미아 삼거리까지 가는 택시를 타거나, 권헌준 씨처럼 12시간에 가까운 체력전을 벌이거나, 김인건 씨처럼 마음에도 없는 칸트와 헤겔 이야기를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김성원 씨는 원칙을 지켜가면서도 원 없이 섹스를 했다고 했다. 그 비결은 뭐였을까? “매력이죠.” 뭐 이렇게 뻔뻔한 대답이 있나 싶었는데 다음 말이 무척 멋졌다. “그 순간에는 그 사람뿐이라 생각했어요. 늘 정성을 다해 응했습니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고요.” 김성원 씨의 말에 코웃음을 치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여자와 잘 수 있다고? 하지만 나만 해도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자는 많이 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레이 달리오의 도 아니고, 귀두 사용 매뉴얼이라는 조어는 여전히 충격적이다. “‘귀사매’라고 줄여 부르고 싶네요. ‘붕맨꿀’처럼 유행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초연한 원칙주의자 김성원 씨도 유행어 욕심만은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