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한국당 전당대회 대표 누가 될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27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에 망령이 득실거린다. 또다시 소환된 박근혜, 그리고 5·18 망언이다. | 박근혜,대통령,정치,문재인,홍준표

# 박근혜와 전당대회박근혜가 소환됐다.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다. 박근혜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당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뭉치고, 박근혜를 중심으로 갈라진다.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다.지난 1월 29일. 전직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교안이 카메라 앞에 섰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공안 검사 출신답게 그의 출사표는 이념 공세로 시작됐다.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말하고, “19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특별한 근거를 찾기는 어려운 말들이다.황교안은 박근혜의 부활을 외쳐온 태극기 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태극기 세력이라고 하는 분들도 그동안 정말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신 귀한 분들”이라며 “이분들과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대화하고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근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출마 배경에 박근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그런데 당내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교안, 전당대회 출마 검토’ 얘기가 나오자 공개 비판이 오히려 친박 핵심에서 먼저 나왔다. 친박계 간판 격인 홍문종 의원은 1월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분(황 전 총리)이 자신은 탄핵 때 뭘 했고, 탄핵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스탠스를 알려줘야 한다”라며 “오히려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보다도 (황 전 총리가) 대통령에게 더 모질게 했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고 압박했다.황교안이 출사표를 쓰자 그동안 박근혜를 유일하게 접견해온 유영하 변호사까지 가세했다. 2월 7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황교안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황 전 총리가 친박(친박근혜파)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자기를 법무부 장관과 총리로 발탁한 분이 수감 중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수인 번호(503)조차 몰랐다? 거기에 모든 게 함축돼 있다고 본다.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수감 직후부터 허리 통증을 이유로 책상과 의자 반입을 요구했지만 황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시기에는 반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책상과 의자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에야 반입됐다고 주장했다.박근혜를 뒷배경으로 나온 황교안이 친박계가 여전히 다수인 당내 1위 후보를 달리는 와중에 나온 유영하의 한마디는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홍준표 전 대표 등 그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주 좋은 공격 포인트가 됐다. 즉각 황교안 앞에 새로운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 ‘배박 황교안’. 배박은 ‘배신한 친박’을 줄인 말이다.그러자 이틀 뒤 황교안은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자리에서 적극 반박에 나섰다. “저는 대통령께서 그 어려움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자’고 했다”며 “실제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일 때 1차 수사를 마치고 더 조사하겠다고 수사 기한 연장을 요청해왔다. 그때 ‘제가 볼 때는 수사가 다 끝났다. 이 정도에서 끝내자’라고 기한 연장을 불허했다. 그렇게 했는데 지금 얘기하는 그런 문제(책상, 의자 반입)보다 훨씬 큰일을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오해를 풀겠다며 한 이 ‘자백’은 더 큰 파장을 낳았다. 한마디로 박근혜 특검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자기 고백을 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핵심 친박의 공격과 유영하의 폭로로 오히려 골수 친박 이미지를 벗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황교안은 그 타이밍을 놓치는 동시에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정무적 감각이 부족함을 스스로 증명한 것은 덤이었다.삼파전으로 굳어진 전당대회를 앞두고 태극기 부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김진태 의원과 황교안이 친박계로 분류된다면 그 대척점에는 ‘비박’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있다.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며 탈당한 후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그가 박근혜를 다시 포용하는 건 자기부정과 같은 일이다. ‘박근혜 극복’을 외친 이유다.지난 2월 7일 가장 늦게 출마를 선언한 오세훈은 “지난 2006년 커터 칼 테러를 당하면서도 저를 지원 유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이야 저 오세훈인들 그 어떤 분보다 덜 하겠는가”라며 친박계 표심에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곧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국민들과 당원들의 바람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게 사실”이라며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을 더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오세훈은 스스로를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라고 표현하면서 친박 후보들에 비해 확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박근혜당’이 아닌 중도층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개혁 보수 정당이 돼야 하고 본인이 그 적임자라는 논리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조원진 대한애국당 후보가 4만여 표를 받은 반면 유승민·안철수 후보가 각각 220여 만, 700여 만 표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면서 “김진태, 황교안은 대한애국당 통합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번에 당권을 잡는 사람은 내년 4월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016년 총선 당시의 ‘친박 공천, 비박 학살’이 재연될지, 아니면 새로운 당으로 탈바꿈할지는 결국 새로운 리더의 손에 달려 있다. 분명한 점은 ‘박근혜에 대한 충성’이든 ‘박근혜 극복’이든 이번 전당대회 역시 박근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 홍준표, 전당대회에서 이탈하다그는 역시 영리했다. 박근혜를 뒤에 엎고 상승세를 타던 당에 무임승차한 황교안의 행보를 참을 수 없었던 홍준표는 1월 30일 출마를 선언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로 당대표에서 물러났던 ‘전 대표’가 다시 출마하는 촌극에 많은 사람이 할 말을 잃었지만 동시에 다시 ‘박근혜당’으로 회귀하는 모습에 혀를 찼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홍준표였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전당대회의 흥행을 바라는 이들에게 홍준표만 한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버릴 수 없는 조연이다.하지만 그의 선언은 약 10일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김진태를 제외하고 홍준표, 오세훈 등 다른 후보자들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2월 27~28일)과 날짜가 겹치는 전당대회 연기를 주장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당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당은 일정대로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 틈을 타 홍준표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리하게!어차피 어려운 싸움이었다. 두 번 연달아 당대표에 도전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같은 검사 출신이자 황교안이라는 ‘정치 초년생’에게 패배하는 상황은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침 날짜가 겹친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명분으로 전당대회 연기 요구 및 보이콧 선언과 불출마로 이어지는 수순은 괜찮은 그림이었다. 그는 또 기회를 노릴 것이다. # ‘5·18 망언’은 덤이다“‘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변질된 게 아니라 정치적·이념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국회의원 이종명)“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 (국회의원 김순례)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대국민 공청회 자리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서 김진태는 동영상을 통해 축사를 했고, 이종명·김순례는 직접 단상에 올라 이런 괴물 같은 말을 쏟아냈다.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이들이 2019년 현재 자유한국당의 본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뿌리는 숨길 수 없다는 점은 재확인했다.자유한국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이 나온다.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초대 총재로 한 민주정의당은 1981년, 그러니까 광주 시민을 학살한 다음 해에 창당됐다. 이후 여소야대 국면 타계를 위해 1990년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통일민주당, 김종필로 대표되는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만든 당이 민주자유당이다. 이후 민주자유당 김영삼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계속된 계파 간 세력 다툼과 1995년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등 정치적 사건 등을 거치며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또다시 바뀌었고 박근혜 탄핵 소추 이후 현재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광주 시민 학살을 뿌리로 시작된 정당이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당시 스러져간 망자를, 그리고 여전히 그 끔찍한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며 살아가는 광주 시민을 또다시 모욕하고 있다. 40여 년이 흐른 2019년 현재, 그저 겉모양만 다른 수많은 전두환이 여전히 자유한국당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전당대회를 앞두고 튀어나온 이 5·18 망언은 상승세를 타던 당 지지율을 다시 대폭 떨어뜨리는 악재가 됐고 동시에 리더십 부족과 인식의 한계를 노출시켰다.망언의 파장을 잠재워도 모자랄 급박한 상황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면서 오히려 논란을 더 부추겼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망언을 한 3인방에 대한 제명 여론을 인민재판에 비유해 논란에 휩싸였다.지도부의 갈팡질팡 대처에 여전히 사과도 반성도 없는 망언 3인방 사태는 일단 ‘이종명 제명, 김진태·김순례 징계 유예’로 대충 마무리됐다. 한 줌밖에 안 되는 태극기 세력을 의식한 제1 야당의 해법이다.박근혜 망령은 되살아났고 5·18은 다시 모욕당했다. 자유한국당의 처음과 끝이다.괴로운 건 국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