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와 카밀라 카베요에 대한 유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그림자

테일러 스위프트 <Lover>

테일러 스위프트

미국처럼 큰 음반 시장에서는 어떤 스타가 앨범을 낸다고 하면 그 시기를 피해 발매한다는 농담이 그다지 통하지 않았지만, 테일러 스위프트가 18곡이 담긴 새 앨범 를 스트리밍으로 투하해버렸을 때는 얘기가 달랐다. 앞서 공개한 싱글 ‘Me!’와 ‘You Need to Calm Down’의 빌보드 차트가 파괴적인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 방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앨범 전체가 공개된 그 주에 18곡 전곡이 빌보드 차트 100위에 진입한 것이다. 원래 미국 언론은 온갖 창의적인 부문의 기록을 들먹여 기사 주인공의 위대함을 묘사하길 좋아해서, ‘팝 역사상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올라간 곡을 가장 많이 보유한 뮤지션 부문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공동 10위’ 기록부터 시작해 ‘발매 첫 주에 50만 장 이상 판매한 앨범을 6개 보유한 최초의 여성 뮤지션’, ‘발매한 싱글 곡이 핫 100 차트에서 6곡 연속으로 1위 한 최초의 여성 뮤지션’, ‘발매 첫 주에 두 번째로 많은 스트리밍 수를 기록한 여성 뮤지션’ 같은 온갖 집계가 실시간으로 난무했다.
언론이 신난 이유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무려 7집 가수로, 2000년대 초반에 데뷔한 이래 대중적인 팝 뮤직을 꾸준히 해온 데다, 나이·지역·취향을 불문하고 그녀를 모르는 미국인은 아무도 없고(BTS가 아무리 인기라도 BLT와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마당에), 이런 인기 탓인지 뮤지션 본인 탓인지 ‘어그로’의 중심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직접 쓰는 모든 곡에 언제나 명백하게 연상되는 실존 인물이 있다는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디스 곡을 만들고 뮤직비디오에 해당 이슈를 거론한다. 백댄서를 뺏기며 발발한 수년간의 디스전 끝에 최근 극적으로 화해한 케이티 페리, 섹스에 관한 가사 이후 킴 카다시안의 폭로까지 이어지며 악연으로 남은 카니예 웨스트, 이 외에도 조롱 섞인 가사에 강제 소환된 수많은 애인과, 중학생도 안 할 법한 파벌과 편가르기에 휩싸인 셀러브리티들…. 참고로 이번 앨범 가사엔 여성 편력의 대명사로 일면식도 없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언급된다.
하는 짓만 보면 이런 비치(bitch)가 없는데, 이 모든 게 솔직하고 대담한 테일러 스위프트만의 매력으로 둔갑한다. 금발에 창백한 피부, 부러질 듯한 몸매, 청량한 목소리, 밝은 컬러의 스타일링과 메이크업…. 테일러 스위프트가 유지하는 외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 더해 그녀는 자신의 확고한 음악적 뿌리로 백인의 개척 역사가 담긴 미국적 문화 유산의 상징 ‘컨트리 뮤직’을 꼽고, 천문학적인 금액을(특히 미국인들의 ‘감동 버튼’인 자연재해로 인한 커뮤니티 재건에 주로) 쾌척한다. 아무리 잡음이 많아도 그녀는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연예인 1위, 그만큼 지지와 사랑을 받는 현재형 ‘아메리칸 스윗하트’이다.
한국 음반 시장만큼 어린 세대에 소비가 집중되어 있지는 않아도 미국에서도 10대의 트렌드는 무척 중요하다.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 세대가 미국 개척 역사를 담은 컨트리 뽕에 취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듣는다. 특히 이민자라는 미국 사회의 거대한 축,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히스패닉은 어린 세대에겐 차별 대상이나 신비로운 이방인이 아니다. 자신 주위에 몇 명쯤은 있는, 당연한 인종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새 시대에 새 ‘요정’이 나타났다. 쿠바계 어머니와 멕시코계 아버지를 두고 ‘하바나’와 ‘세뇨리타’라는 작정한 제목의 노래로 차트 1위를 차지한 가수 카밀라 카베요다.
카밀라 카베요가 ‘뉴 아메리칸 스윗하트’로 등극하게 된 스토리는 꽤 극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에 나간 그녀는 잠재력 있는 슈퍼스타라기보단 고등학교 프롬 퀸 같은 이미지로 탈락했다가 심사위원이 억지로 묶어준 보컬 그룹 피프스 하모니로 기사회생해 데뷔했다. 목소리에 맞지 않는 R&B를 몇 년간 부르다 뛰쳐나와 자기 본연의 히스패닉 감성이 담긴 곡을 발표했고 그 곡이 차트를 역주행해 결국 솔로 가수로 성공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남쪽이라서 히스패닉 인구 밀도가 높은 플로리다(카밀라 카베요가 자란 곳)와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특히나 그녀의 표밭이다. 실제로 그녀의 두 번째 히트곡이자 열애설만 만 번쯤 난 샘 멘데스와의 두 번째 컬래버레이션 곡 ‘세뇨리타’는,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게 6월인데 아직도 카페나 사무실은 물론 헬스장, 마트, 세차장에서까지, 해도 너무할 정도로 울려 퍼진다.
대중이 카밀라 카베요를 좋아하는 이유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일종의 코카서스 인종의 상징으로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카밀라 카베요는 사교적이면서도 새침한 데가 있는 미모의 라틴계 소녀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레이밍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성찰 없는 대중도 지탄받아야 할 일이 맞다. 그러나 테일러 스위프트와 카밀라 카베요는 그들의 음악적 성과에 대해 논하기만 해도 매우 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빛나는 작업을 선보이는 뮤지션이기에, 자신들의 비주얼을 미묘하게 상품화하는 시선을 거부하기는커녕 더욱 적극적인 전략으로 삼았다는 부분이 참으로 유감이다. ‘아메리칸 스윗하트’답기 위해 있는 힘껏 예쁘게 꾸미기로 마음먹었다면야 충실한 직업윤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탈을 쓰고 시대를 역행하는 자들에게 고의성 떡밥을 던지고 자본을 회수하는 건 반칙이다. 그들이 동화 속 요정이 아닌 그저 현실에 사는 사람이라고 깨달으며 환상이 깨지는 날, 클리셰 판타지도 끝나는 법이니까.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