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어쨌길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 서른,슬픔,30,나이,30대

526호실 5번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의 서른은 어떠했나. 원인 모를 복통으로 응급수술을 한 지 약 28시간이 지난 때, 오랜만의 휴일에 손 닿는 곳에 주전부리와 에어컨 리모컨과 휴대폰 충전기를 두고 이병헌 감독의 신작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4화까지 정주행한 지 약 36시간이 지난 때였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여자 친구 셋이 웃다 울다 넘어졌다 일어섰다 다시 구르곤 하는 이야기를 보며 같이 배를 잡고 웃고 울었을 뿐인데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서른셋의 체력이란. 88세인 우리 할머니가 들으면 못 들은 척할 소리나 서른 줄에 들어서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술집 문 닫을 때까지 술을 마시기는커녕 자정까지만 버텨도 정신력의 승리다. 아무 일도 없는 휴일이 지겨웠던 20대를 지나 제발 아무 일도 없는 휴일이 오기를 바란다. 소화는 왜 이리 안 되는지. 영양제를 쟁여놓고 사는 선배를 보며 혀를 차는 대신 묻는다. 무슨 약이야? 좋아? 이상하다. 누가 선을 그은 것도 아닌데 20대와 30대, 스물셋과 서른셋의 몸은 다르다. 체력은 곧 마음의 건강에 달린 건 아닐까,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노동력에 반비례한 결과는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드라마 속 서른 살 주인공이 서른이 되면 꽃길만 걷기를 바랐지만 알고 보면 꽃은 비포장도로에서 피는구나 푸념하는 것처럼. ‘열심히 해라’라는 말에 ‘그래, 제발 열심히만 하면 안 될까. 죽기 전까지 말고’ 하고 속으로만 되뇌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 비포장도로를 여전히 죽기 전까지 열심히 걷지만. 서른. 아무것도 아니나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나이. 아무것도 모르거나 무엇이든 알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현실은 드라마 같기도, 드라마와 완전히 다르기도 하나 간혹 서른이라는 나이에 거는 기대는 꽤 드라마틱해서, 다른 이들의 서른은 어떠한지 물었다. 서른을 앞둔 어느 이는 막연하게 안정된 행복을 꿈꾸고, 서른을 지나온 이는 분명하게 달라진 점을 읊었다. ‘당신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신의 서른이 시작되었다는 이도 있다. 최소 아홉 번의 굴곡을 지나 다시 제로가 되면 우리는 괜찮아질까? 서른 되면 진짜 괜찮아져요?     1993년생, 27세. 지리학과 학생. 서른이 되면 지금보다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 30대에게 묻고 싶은 말 ’서른은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본 나이라고들 여기잖아요. 여전히 무언가 특별하고 전에 없던 경험을 기대하며 살고 있나요?“ 서른에게 묻습니다 서른이란 나이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다. 서른에 대한 숱한 책은 서른을 보통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서른은 아직 한참 어린 나이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것. 둘째, 서른은 어느 경계와 갈랫길에 서 있는 나이라는 것. 셋째, 서른이면 최소 1억원은 모아야 하는 나이라는 것.서른이란 나이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다. 서른에 대한 숱한 책은 서른을 보통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서른은 아직 한참 어린 나이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것. 둘째, 서른은 어느 경계와 갈랫길에 서 있는 나이라는 것. 셋째, 서른이면 최소 1억원은 모아야 하는 나이라는 것. 삼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 1년간 휴학까지 한 스물일곱 살의 나는 지금 취직은 고사하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다. 다른 대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하며 학교에 다니는, 특별하게 불행할 것도 없는 학생이다. 이제는 익숙한 대학 생활이야 무던히 넘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학교 바깥 사회에서 생각하는 27세 한국 남자의 평균적인 모습과 스스로 비교할 때면 식은땀이 난다. 서른이 되면 무언가 좋아질 것이라 믿고 마냥 부러워하는 모습은 30대가 보기엔 참으로 웃기긴 할 터다. 그래도 부럽다. 일정한 벌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여유가. 서른이 되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리라 믿는 것이 철없는 20대 후반의 마음이다. 지금 나는 취직을 생각하며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동시에 단기 알바를 동냥하듯 구하며 살고 있어 당연히 챙겨야 하는 일조차 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종종 있다. 서른이 되면 밥을 줄여가면서까지 기념일 따위를 챙기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길 바란다. 남들 다 힘들다 해도 나만큼은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는 생각으로 산다. 우리 집의 가훈 비슷하게 있는 유일한 철학이 ‘막연히 잘 풀릴 거라 생각하지 마라’인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서른에 대한 허튼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쉽다. 20대 초반에는 프리재즈를 듣고 부조리극을 읽는 행위로 나를 표현하려 했다. 피치포크 베스트 앨범을 줄줄이 외우고 들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아니’라는 말에 취해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조금은 대단히 여겼던 것도 같다. 후에 힙스터라는 말이 세간에 널리 알려졌을 때 나는 이런 광대짓을 접는 걸 넘어 힙스터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척 연기하곤 했다. 무언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척, 원래부터 알고 있는 척, 그런 척과 그런 취향을 통해 나를 평가받으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RPG 게임에서 캐시로 나를 꾸미는 것처럼, 아트 블래키의 음악을 듣는다고 표현함으로써 그와 같은 지위를 가지려 했다. 30대는 그런 편법이 통하지 않는 강호의 세계, 나의 허튼 수는 단숨에 까발려지는 곳이라는 판타지가 있다. 취향보다 능력으로 판단된다는 상상은 평생 편법으로 살아온 내게는 무서운 일이다. 전보다 정정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의 틀은 나이를 먹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이제부터 평생 나를 옥죌 밥벌이의 굴레에 오르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가운데서 소회를 잘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른이면 어른이 아닐까. 그때쯤이면 확실히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개인마다 어른이란 의미가 많이 다를 것이다. 내게 어른이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처럼 거창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옷을 깔끔히 입는다는 행위에는 빨래와 다림질이 선행되어야 하고, 식사에는 장보기와 설거지가 빠질 수 없다. 이런 별일 아닌 일들을 서른에는 체득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별일 아닌 일을 별일 아닌 것처럼 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정기적인 벌이가 필수다. 돈이 없는데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이 둘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서른이 되면 쉬워질까. 지금보다 여유로운 서른을 기대한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학번과 학점 외에는 구속하는 것이 희미해 느슨하게 살면서도, 이따금 스스로 스물일곱의 기준을 들이대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조급해한다. 하지만 젠체하려고 읽었던 부조리극들을 통해 내가 평생 누군가를 ‘관음’하고 부러워하며 살 수밖에 없음을 감지했다. 나와 당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위안도 얻었다. 인간은 내게는 없는 것, 타인에게는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서른의 나는 서른까지 남은 시간만큼 성숙해져 있기를.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1982년생, 만 37세. 서른이 되기 전에 꿈꾼 모습은 세상의 온갖 속박,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등반가. 지금은 <러너스월드> 한국판 편집장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서른을 앞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 ’송충이가 솔잎을 먹으면서 성장하듯이 사람은 온갖 슬픔을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슬픔들이 삶을 사는 데 큰 영감을 줄 때도 있고요.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꼭꼭 씹은 다음 삼켜서 소화가 금방 되도록 하는 거예요!“ 서른일곱, 81가지 슬픔  자, 힘든 20대를 보내고 곧 30대를 맞이할 그대들이여, 30대가 되면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기대를 깨부숴주겠다. 그대들을 위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온갖 슬픔을 집대성했다. 아래 열거한 슬픔의 항목을 읽고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 얼굴의 슬픔 얼굴 광대뼈 부근에 여드름이 커다랗게 자리 잡아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슬픔,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출근할 때의 슬픔, 잘생겼다는 말을 듣는 일이 전보다 뜸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슬픔, 콧털을 정리하는 걸 잊어버리고 출근할 때의 슬픔, 심지어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에도 코털 정리하는 걸 잊은 채 출근했을 때의 슬픔, 눈이 침침해지는 슬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어유 흰머리 봐, 또 늘었어”라고 중얼거릴 때의 슬픔, 심지어 콧구멍에서 흰 콧털이 삐죽 튀어나온 걸 발견할 때의 슬픔, 입에서 아저씨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슬픔, 버킷 해트가 잘 어울리지 않을 때의 슬픔, 미용실보다 블루클럽을 더 선호하게 되는 슬픔, 주름 생길까 봐 되도록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슬픔, 눈썹 문신이나 눈썹 왁싱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을 때의 슬픔, 귀에 꽂은 피어싱을 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슬픔, 로션이나 선크림을 꼭 바르고 외출해야 하는 슬픔, 내가 사실 동안이라서 몇 해 전만 해도 스물여덟 살이라고 하면 믿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이 거짓말이 전혀 먹혀 들지 않는 슬픔. 배의 슬픔 배가 점점 나오는 슬픔, 나온 배가 뭘 해도 들어가지 않는 슬픔, 여전히 20대 때처럼 배가 고픈 슬픔, 얼마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너무 불러서 기분이 나쁜 슬픔, 배에서 ‘왕’ 자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왕’ 자가 어렴풋이 보인다고 착각하는 슬픔, 불룩한 배를 들키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배에 힘을 주고 다니는 슬픔, 하루 종일 배에 힘을 주고서 이렇게 하면 다시 곧 ‘왕’ 자가 나올 거라고 믿는 슬픔, 불룩한 배를 들키지 않으려고 백팩을 앞으로 메는 슬픔, 불룩한 배를 들키지 않으려고 넉넉한 티셔츠를 찾아 옷장을 매일 30분씩 뒤지는 슬픔, 계속 주물럭거리면 뱃살이 빠질 거라고 착각하는 슬픔, 결국 어느 날엔 튀어나온 뱃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슬픔. 회사의 슬픔 회사에 가기 싫은 슬픔, 가기 싫은데 가야 하는 슬픔, 여전히 야근을 하는 슬픔, 언제까지 야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슬픔, 주말에도 일 생각을 하는 슬픔, 가끔 주말에도 끌려 나가 일을 하는 슬픔,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후배들과 가급적 접촉하지 않으려 하는 슬픔, 그로 인해 내가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슬픔, 일은 많은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슬픔,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이 금방 가버리는 슬픔, 한 일도 없는데 퇴근할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젖은 휴지처럼 축 처져 곤죽이 되는 슬픔, 후배들이 나에 대해 욕할까 봐 더욱더 잘해주는 슬픔, 후배들이 나에 대해 욕할까 봐 점심 먹고 커피를 사는 슬픔, 그럼에도 후배들이 내 욕을 하는 슬픔, 그럼에도 밥과 커피를 사줘야 하는 후배가 점점 많아지는 슬픔, 회사에서 잘리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는 슬픔, 밥과 커피를 많이 사줬어도 나를 도와주는 후배는 얼마 없는 슬픔, 내가 맡은 일 중 후배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슬픔, 온갖 중요한 결정을 오롯이 나 혼자 해야 하는 슬픔, 그래서 생기는 결과를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슬픔, 그 중압감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고 싶은데 점쟁이가 사업하면 망한다고 해서 꾹 참고 회사를 다니는 슬픔, 아이디어가 고갈됐다고 느끼는 슬픔, 후배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면서 은근슬쩍 숟가락 얹는 슬픔, 숟가락 얹는 게 들키는 슬픔, 아이디어로 돈 버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슬픔. 집의 슬픔 집을 그저 잠만 자는 용도로 이용하는 데서 오는 슬픔, 어쩌다 회사 일을 쉬는 날인데 집에도 할 일이 쌓인 슬픔, 쌓인 집안일을 하느라 잠시도 쉬지 못한 데서 오는 분한 슬픔,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슬픔, 그러나 가진 돈이 모자란 슬픔, 늦은 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 근처에 불법 주차를 했다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집 주차장에 차를 대야 하는 슬픔, 집을 근사하게 꾸미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슬픔. 결혼의 슬픔 (지금 너무 행복해서 슬플 겨를이 없음! 뭔가 수상쩍다고 하면서 따지고 싶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연락 바람.) 그 외의 슬픔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슬픔, 부모님께 용돈을 많이 못 드리는 슬픔, 명절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슬픔, 놀 시간이 없는 슬픔, 쉴 시간이 없는 슬픔, 많이 쉬었어도 충분하지 않은 슬픔, 막상 많이 쉬면 더 불안한 슬픔, 평일에 매일같이 술 약속이 잡히는 슬픔,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 많아지는 슬픔, 큰 소리로 웃은 날이 도대체 언제인지 까마득한 슬픔, 그렇다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슬픔, 동네에 친한 친구가 없는 슬픔, 옷을 신경 써서 입고 다녀야 하는 슬픔, 20대 때만큼 여전히 불안한 슬픔, 도시를 떠나고 싶은 슬픔, 그러나 도시를 떠나서 도대체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고민이 큰 슬픔, 저 사람이 유명한 걸 그룹 멤버라는데 나는 누구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슬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도 별 감흥이 없는 슬픔, 알바를 해도 용돈이 매번 모자라는 슬픔 등등등. 이 슬픔들은 진짜다. 실제로 나는 나의 30대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서 그동안 슬픔의 개수가 기쁨의 개수보다 훨씬 많음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 슬픔들은 분명히 ‘잽’과 같은 것이며, 이따금 찾아오는 기쁨의 ‘어퍼컷’ 한 방으로 전부 상쇄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든지 여기 슬픔의 항목이 많다는 사실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싶다.       1986년생, 34세. <씨네21> 기자. 기자를 꿈꾸었고 서른을 기점으로 기자가 되었다. 안정적인 일상을 뒤엎을 수 있었던 계기는 서른을 앞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같다. ’당신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의 30대는 여기에서 시작됐어요.“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들이 나에 대해 끄집어내는 기억이 대체로 ‘공부 잘하던 애’인 걸 보면, 참 특색 없는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12년 개근하며 엉덩이 붙이고 공부한 덕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이 학교에서도 ‘과 톱’이었다. 원 없이 놀았던 1학년 가을을 제외하고는 주로 도서관에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한 번도 과제를 미룬 적이 없다면 어떤 학생이었는지 감이 좀 오시려나. 그러나 학부 3학년 때 양자물리학을 접한 후 내가 이공계 공부를 계속하면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양자물리학을 어떻게 했지?),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경제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망상을 하며 5학년 1학기부터 복수 전공도 시작했다. 재미없게 사는 나는 취미마저 만인의 그것이라는 ‘영화 보기’였는데, 영화를 보다 만난 학교 친구들은 다행히 다이내믹해서 내 인생에도 재미란 것이 생겼다. 모여서 고전도 이상한 영화도 보고 걸작이라 칭송받는 모 영화는 사실 쓰레기라며 신나게 욕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땐 철이 없어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시네필’ 자아가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영화 ‘만들기’와 ‘보기’를 구분하지 못해 무턱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지원하기도 했다. 합격했으나 등록은 포기했는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무작정 달려들면 왠지 굶어 죽을 것 같았다. 대신 비슷한 직업군 중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드라마 PD에 눈을 돌렸다. 기자 일에 관심을 가진 건 기자와 PD 지망생이 모인 스터디 그룹에 들어간 후였다. 기자 시험용 논문과 작문을 더 잘 쓰고 스스로도 즐긴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해 ‘영화를 좋아한다고 꼭 연출자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의 불씨를 피웠다. 학교에서 이동진 기자의 수업 ‘종교와 문화’를 들은 후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던 무렵 A 신문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 언론사는 수습 전환 기회를 주겠다며 인턴에게 ‘사쓰 마와리(수습기자들이 사건 정보를 얻기 위해 경찰서를 정기적으로 도는 일)’를 돌렸다. 고등학생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취재하다가, 죽은 친구 때문에 엉엉 우는 학생에게 ‘혹시 가해자가 폭력적인 게임을 좋아했느냐’는 정해진 질문을 던져야 할 때는 나 자신이 인간 말종 같았다. 대의고 뭐고 멘탈이 약해서 신문기자는 못 하겠다며 갈팡질팡할 무렵, 정신을 차려보니 입사한 곳이 대기업인 B사였다. 복수 전공으로 경제학을 공부한 이력을 살려 경영 지원 직군으로 입사한 나는 출근 첫날부터 내가 기업 문화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일한 낙은 직장 근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보기. 그러고 나서 인터넷에 리뷰를 쓰면 사람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끌리는 것이 뭔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기자가 되고 싶은 건 글쓰기의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고 나는 온갖 대중문화 콘텐츠를 사랑하며 관객의 리액션에 관심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선배에게 “넌 장애인 채용으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왜 그래?”라는 폭언을 들었다. 상사의 인권 감수성 부족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다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밀려왔고,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마침 대중문화 웹진 <아이즈> 채용 공고를 봤고, 지원했고, 합격했다. 남들은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며 내가 엄청난 포부를 가진 것으로 짐작했는데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한 거지 깊은 고민은 없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필력을 타고난 선배들을 못 쫓아갈 것 같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갈수록 낮아졌다. 나는 의기소침한 채 30대를 맞았다. ‘그냥 대기업 다녔으면 적당히 일하면서 학교 라인 타고 잘 풀렸겠지’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의사나 판검사, 변호사가 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왜 MEET, DEET나 LEET를 준비할 생각은 안 했지?’라는 푸념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스로 어느 정도 깨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극한 상황에 몰린 난 학벌주의를 버리지 못한 못난 인간일 뿐이었다. 부끄러운 내 민낯을 마주하면서 역으로 그나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 영화계는 내가 아는 업계 중 가장 ‘학벌’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며 대중문화를 분석하며 글밥 먹고 사는 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막말로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 학벌밖에 없다면 그건 쪽팔린 일이지 않은가. 여기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하다 보면 적어도 그런 얄팍한 인간은 안 되지 않겠느냐는, 미묘한 ‘정신 승리’와 ‘오기’가 날 버티게 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일했고, 국내 유일 영화 주간지로 직장을 옮긴 지금도 ‘자료 조사의 신’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알고 보니 나는 돈 욕심도, 직업 안정성에 대한 갈망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매일 점심 먹고 차 마시는 상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30대가 된 후 세상은 정치적 공정성과 그에 대한 반발로 매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요즘의 사회 이슈나 어제 본 TV 방송에 대해 떠드는 평범한 시간은 불편할 일이 없었고, 잔재한 편견까지 깨게 했다. 내가 30대에 속했던 집단들은,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인권 의식이 예민한 그룹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장애인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마주칠 일이 없고, 옳다고 믿는 길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는 동료들은 경각심을 갖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사실은 결혼 안 한다고 눈치 주는 사람이 사무실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한 선택은 ‘참을 수 없는 것’을 따진 결과였다. 내가 가진 욕망을 직시하는 건 지금도 너무 어렵지만, ‘싫은 것’을 소거하다 보면 우회적으로 속내를 확인하게 된다. 난 업무량이 많거나 돈을 좀 덜 버는 것은 어찌어찌 수긍해도 일터에서 온갖 혐오 발언에 노출되는 상황에 치명적이다. 내 안에 잔재한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고 40대 돼서도 수능 점수 자랑하는 ‘쪽팔린’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다. 영화가 일이 된 후 휴가 때 영화는 쳐다도 안 본다며 ‘츤츤’대지만, 난 여전히 영화 없이 못 산다. 재미없고 딱딱한 내 인생을 한껏 엉클어준 존재가 영화였고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까. 성급하고 단순했던 결단은 내 기준에서 전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발판이 됐다. 살이 야금야금 붙고 더 이상 밤을 새울 수 없는 저질 체력이 됐으며 눈가에 주름도 좀 생겼지만 20대보다 30대의 내가 훨씬 좋다. 그리고 사소하게나마 성장할 수 있는 건 이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