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Part2. 이도현이 <더글로리> 주여정에게 70점을 주는 이유

이도현은 <더글로리>의 주여정이 100점 만점에 70점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가혹하리만큼 낮은 점수를 주는 그의 마음엔, 10점 만점에 10점이 어울린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3.04.19
사파리 재킷,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레이스업 부츠 모두 디올 맨.

사파리 재킷,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레이스업 부츠 모두 디올 맨.

대부분의 사람이 이도현을 처음 본 건 아마도 <호텔 델루나>의 고청명일 텐데, 작품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신기해요. 제가 원래는 청명 역할이 아니었거든요.
맞아요. 연우였죠.
그렇죠. 태선이 형이 했던 연우가 제 역할이었는데, 제게 주어졌죠. 맡은 바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서 그저 신기할 따름이에요. 사실 그 작품이 없었다면 저라는 사람을 대중에게 언제 어떻게 알릴 수 있었을지 좀 막막한 마음까지 들거든요.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마중물 같은 작품이었군요. 한편 <스위트홈>은 더 폭발적이었죠. <호텔 델루나>가 탄생작이라면 <스위트홈>은 출세작이라고나 할까요?
하하. 저 출세했나요? 그보다는 제겐 <스위트홈>도 탄생작 같은 느낌이 있어요. 넷플릭스라는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제 모습이 전송되며 다시 탄생한 느낌이 있죠.
글로벌 탄생작이군요. 중요한 작품 하나를 더 꼽자면 역시 <더글로리>인 것 같아요. 이도현이라는 배우를 어떤 반열 위에 올린 작품이죠.
인터뷰에서는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요, 전 <더글로리>를 모니터링하고 꽤 힘들었어요. 작품 자체는 완성도가 높고 거의 완벽했는데, 거기 나오는 주여정의 연기만 보면 난해하고, 어렵고, 아쉽더라고요. 다른 작품을 볼 때도 ‘저 때는 연기를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긴 해요. 그런데 최소한 그건 마침표는 찍힌 거거든요. 여정이를 보면서는 아쉽긴 한데 저 때 내가 어떻게 연기를 했어야 할지, 계속 물음표가 뜨더라고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 같긴 한데, 어떻게 했어야 할까? 모니터링을 다 하고 주변에 너무 속상해하며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들 너무 좋았대요. 전 뭐가 좋았는지 모르겠는데, 작가님도 다른 감독님들도 계속 ‘여정아, 너 너무 잘했고, 너무 좋았다’고 해주시는데, 전 계속 아쉬웠어요.
사견을 말하자면, 그 역할 자체가 정말 어려운 역이었어요. 여정이가 동은에게 왜 끌리는지, 여정이는 왜 분노가 가득한지,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해야 하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그저 열어 놓을 수밖에 없었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100을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냈어야지’라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들어요.
 
아스트랄 프린트 블루종, 팬츠, 롱 킬트, B31 데저트 러너 부츠 모두 디올 맨.

아스트랄 프린트 블루종, 팬츠, 롱 킬트, B31 데저트 러너 부츠 모두 디올 맨.

여정이는 몇 점인데요?
70점? 잘 주면 80점이요.
그러지 마세요. 주여정 캐릭터는 세상에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캐릭터라 떠 보이는 걸 수도 있어요. 욕망보다 더 큰 가치, 혹은 아끼는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주변에서 해주신 말씀 덕분에 지금은 다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잘 털어냈어요.
만약에 <더글로리>에서 다른 역할을 해본다면 누가 제일 탐나요?
전재준이나 손명오의 캐릭터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욕망하는 걸 좇는 1차원적인 단순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전 계속 누군가를 멀리서 지키거나 지켜보거나 그리워하거나 나 자신보다 아끼거든요.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역할 말고 나를 위해서 움직이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게요. 청명이도 만월이의 칼을 잡고 자기 배를 찔렀고, 여정이도 동은이의 복수를 위해 칼춤을 췄죠.
생각해보면 <스위트홈>의 은혁이도 다 내보내고 혼자 죽잖아요. 다 그렇게 희생하고 애틋하게 남을 아끼는 역할만 했더라고요. 내 딸이니까, 내 딸을 너무 사랑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오겠다는 전재준 같은 그런 단순한 역할, 화도 내고 욕도 하고 담배도 피우는 손명오처럼 욕망이 드러나는 역할을 해보고 싶은 거죠.
 
자카르 슬리브리스 니트, 모크넥 톱 모두 디올 맨.

자카르 슬리브리스 니트, 모크넥 톱 모두 디올 맨.

이번 작품에선 검사죠. <나쁜 엄마>의 최강호(이도현 분)는 엄마의 욕망에 따라 검사가 되고 검사로 살다가 일곱 살의 지능으로 돌아가는 역할로 알고 있어요. 판타지인가요?
그런 느낌은 아녜요. 현실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예요. 서른여섯 살의 주인공 강호가 모종의 사고로 기억을 잃는 이야기예요. 나쁜 엄마 진영순(라미란 분)과 그 상황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죠. 그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친했던 이미주(안은진 분), 방삼식(유인수)과 꼬였던 감정들이 풀리기도 하고요. 대본도 재밌게 봤고, 촬영도 재밌게 해서 어떻게 나올지 저희 배우들도 궁금해요. 촬영장 분위기가 무척 좋았거든요. 베테랑 선배님들이 많이 나오셔서 계속 웃음 바다였고, 그냥… 행복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 힐링된 것 같아요.
그런 촬영은 작품에도 그 분위기가 드러나죠. 시너지가 궁금하네요.
라미란 선배님께는 아직도 엄마라고 불러요. 초반에 제가 “선배 제가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여쭸더니 “내가 왜 엄마야 누나지”라고 하셨는데, 그냥 계속 엄마라고 불렀고, 지금도 엄마라고 불러요. 은진이 누나랑 인수는 고교 동창으로 나오는데, 저희끼리 친해지려고 시도를 많이 했어요. 저 역시 두 작품을 같이할 때라 오프라인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촬영장에선 항상 친구처럼 친근하게 지냈고요.
로맨스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있을 수도 있을걸요? 미주 누나만 보면 자꾸 강호의 마음이 이상해지거든요. 두 사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요. 곧 첫 방송이 시작되는 <나쁜 엄마>를 통해 확인하시면 좋겠어요.
 
플리츠 케이프 코트,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이어링 모두 디올 맨.

플리츠 케이프 코트,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이어링 모두 디올 맨.

플리츠 케이프 코트,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레이스업 부츠 모두 디올 맨.

플리츠 케이프 코트,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레이스업 부츠 모두 디올 맨.

배우가 대본을 빨리 읽으면 흥행한다는 얘기도 있지요. 어땠어요?
정말 재밌게 봤어요. 공간과 인물에 따라 명확하게 플롯이 나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재밌어요. 예를 들면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삼식이의 이야기가 엮여 있어요. 이 이야기가 궁금한데, 저 이야기도 궁금하고, 여기선 웃겼는데, 저기선 슬프고 애틋하고 아련하죠.
마을 얘기가 나오니까 <동백꽃 필 무렵>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조우리’라는 가상 마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어려진 강호가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같아요. 검사 시절에 보여준 차가운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들, 고등학생 때 모습과도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의 강호 모습들이 새롭게 보일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강호가 어려졌을 때를 연기하는 모습이 훨씬 더 매력 있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연기를 할 때가 더 재밌었고요.
<나쁜 엄마>는 촬영을 다 마쳤더군요. 완전 사전 제작은 꽤 드문 케이스인데요.
흔치 않은 케이스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쉬면서 공개될 작품을 기다려본 적이 처음이에요. 사전 제작을 한 적은 있지만,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곤 했거든요.
 
집업 재킷, 후드 질렛, 슬리브리스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모두 디올 맨.

집업 재킷, 후드 질렛, 슬리브리스 모크넥 톱, 팬츠, 롱 킬트, 벨트 모두 디올 맨.

지금의 이도현은 어떤 스테이지에 있는 것 같아요?
미래를 위해 잠시 휴식이 필요한 상태랄까요.
충전?
맞아요. 충전이라고 봐야죠. 충전을 할 때는 아예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자꾸 보면 빨리 충전이 안 되잖아요. 꽂아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줘야 다시 100%로 제 기능을 발휘하겠죠. 발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나면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듯이요. 또 그것과는 달리 배우로서 <더글로리>를 끝내고 느낀 게 있어요. 작품에 잘 묻는, 튀지 않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 작품에서 내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도 작품을 오롯이 끌고 나가는 데 힘을 쏟는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더글로리>에서 그렇게 연기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100점이네요.
송혜교 선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저 역시 그런 목표를 오히려 위안으로 삼는 거죠. 그래 난 100점이야. 혼자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며 제 스스로 저를 좀 다독이려고요.

Credit

  • FASHION EDITOR 윤웅희
  • FEATURES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희준
  • STYLIST 정혜진
  • HAIR 박세희
  • MAKEUP 전민지
  • SET STYLIST 이나경
  • ASSISTANT 김성재/송채연
  • ART DESIGNER 김대섭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