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버리기의 쾌락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전공했다. 지원 학과를 결정한 뒤 가족에게 알렸을 때 누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럼 졸업하고 인디아나 존스가 되는 건가?” 인디아나 존스가 지리학이 아닌 고고학 박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티가 나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그렇게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고 길눈이 어두운 지리학도가 된 나는, 결국 졸업 후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건 고고학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올해 여름까지는. 최근 들어 나는 어쩐지 대학 진학과 함께 포기했던 인디아나 존스풍의 삶에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온갖 잡동사니가 유적처럼 쌓여 있는 집에서 수시로 무언가를 발굴하면서 지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수납할 가구는 거의 다 사라졌고, 내용물은 죄다 방바닥에 쏟아져 나와 있는 상태다. 사정은 이렇다. 몇 개월 전 이사가 결정된 이후로 내 오래된 살림은 전면적인 구조 조정을 치르는 중이다.
사는 곳을 옮기는 일은 가진 것을 돌아볼 좋은 기회다. 문득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지금이라면 사지 않았을 물건이 꽤 많았다. 수납 박스를 이렇게 많이 구입한 건 쓰레기를 잘 숨겨두기 위해서였을까? 싸구려 협탁은 왜 방마다 하나씩 있는 걸까? 우리 집의 향초와 서울역 광장의 비둘기 중 수가 더 많은 건 어느 쪽일까? 이번에 새삼스럽게 깨달은 한 가지. 아무래도 나는 사는 쪽보다는 버리는 쪽에 조금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바쁘거나 피곤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수년째 미뤄왔던 작업인데, 일단 결심을 하고 나니 순식간에 가속이 붙었다. 심지어는 즐겁기까지 했다. 방 한구석을 육중하게 채우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나면 큰 숙제를 해치운 것처럼 후련했다. 급기야는 이사를 꽤 앞둔 시점인데도 낡은 옷장과 서랍장까지 흥에 겨워 처분하고 말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두툼한 스웨터 하나 찾는 게 발굴에 가까운 작업이 된 건 그런 이유였다.
전례 없이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버리게 되면서 조금 더 잘 버리는 방법까지 고민하게 됐다. 더 이상 상품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항목들은 어쩔 수 없이 폐기 처분을 한다. 이 경우에는 대형 폐기물 신고 처리를 하거나 폐가전 무상 방문 수거 서비스인 폐스, 혹은 폐기물 수거 디지털 플랫폼인 빼기 등을 이용했다. 편리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과금이 없는 가전 이외의 제품을 다량 처리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게다가 가뜩이나 소화불량 상태인 지구에 또 얼마간의 부담을 더하게 됐다는 죄책감이 세금처럼 붙기도 한다. 그래서 상태가 양호한 아이템은 각종 기부 단체나 중고 거래 플랫폼용으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등은 이용자 수도 많고 사용 연령층도 넓어서 가격만 적당하다면 구매자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몇 년 동안 방치됐던 커튼 봉을 무료 나눔에 등록했더니 1분 내에 두 건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23초 컷으로 커튼 봉을 쟁취한 분은 혼자 SUV를 몰고 찾아온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문자의 화법, 닉네임의 취향 같은 단서로 거래 상대의 프로필을 미리 추측해보는 건 혼자만의 사소한 놀이가 됐다. 틴더 한 번 이용해본 적이 없는 내가 당근마켓의 메시지 알람에 이렇게까지 설렐 줄은 미처 몰랐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찬양을 처음 접했을 때 저렇게 금욕적인 생활 방식은 나와 상관없는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수십 년간을 의지가 무르고 유혹에 약한 데다 은근히 충동적인 인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뭔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작년부터 부쩍 화제였던 곤도 마리에의 책이나 넷플릭스 시리즈를 호기심에 훑어본 적은 있다. 그의 저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보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정리 컨설턴트는 개인 장서를 늘 서른 권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서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빛나는 인생을 기꺼이 포기했다.
이랬던 내가 이사를 기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그 결과 미니멀 라이프의 은총을 받아 일상을 단정하게 정리할 줄 아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충동적이고 당장의 쾌락에 약한 인간이다. 다만 버리는 즐거움의 중독성을 문득 알게 된 것뿐이다. ‘비우는 삶’이란 ‘금욕적인 수양’과 동의어라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또 다른 욕망일 수 있겠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사들이는 데서 더 이상 충분한 자극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버리는 데서 돌파구를 찾게 된 건 아닐까? 솔직히 엄격한 곤마리 정리법을 미션처럼 수행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은 다소 피학적인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이자 감독인 클라이브 바커가 자신의 소설인 <피의 책>을 직접 각색해 연출한 영화 <헬레이저>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퍼즐이 등장한다. 극한의 육체적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진 남자가 퍼즐을 완성했을 때, 사도마조히즘 동호회 정모를 마치고 온 듯한 스타일링의 수도사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새로운 희생자를 고문실로 끌고 가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극한의 쾌락은 극한의 고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둘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가까울 수 있고, 비움이 반드시 검약과 절제를 뜻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헬레이저>가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주인공은 능지처참을 당하는 와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엄지손가락을 주워 당근마켓에 퍼즐 정보를 업로드할지도 모른다. ‘모로코산 리미티드 에디션 퍼즐 박스입니다. 빈티지한 골드 컬러가 매력적이고, 사용감 및 약간의 생활 기스 있습니다. 구입하시면 새 친구들도 소개해 드릴게요. 택배는 곤란하고 직거래 원해요. 위치 정보: 지옥.’ 아무래도 이사를 하고 나면 옷장은 새로 장만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예산에 취향을 간신히 욱여넣어야 하는 쇼핑이, 실패한 선택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일만큼 즐거울까 싶은 생각은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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