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안 프로이트가 자기 자신 만을 그리는 이유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루치안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내면이 아닌, 오직 살갗과 눈빛을.


Lucian Freud : 이중의 응시



 〈Reflection (Self-portrait)〉(1985), Oil on canvas, 55.9x55.3cm. Private collection, on loan to the Irish Museum of Modern Art

〈Reflection (Self-portrait)〉(1985), Oil on canvas, 55.9x55.3cm. Private collection, on loan to the Irish Museum of Modern Art


루치안 프로이트는 자아 성찰에 그리 탐닉해온 사람은 아니다. 할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비하면 특히나. 그가 늘 관심을 기울인 건 회화 그 자체, 물감 범벅이 만들어내는 형상과 질감이었다. ‘육체’와 ‘응시’라는 주제가 그의 흥미를 끌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영혼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사냥에 가깝다. 그는 육체의 윤곽과 표면의 무언가를 낚아채 극적인 작품을 만든다. 언뜻 투박하고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한 그림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빛을 예민하게 표현하며 본질을 암시하는 특유의 붓질로 인해 들여다볼수록 세심함, 정확한 판단력이 느껴진다. 자화상 작업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그의 자화상을 보며 느끼는 흥분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깃든 무수한 즉흥성, 날카롭게 통제된 구도, 어느 부분에 집중하든 느낄 수 있는 놀랍도록 세심한 표현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한지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포드(Martin Gayford)의 저서 〈파란 스카프를 맨 남자: 루치안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위해 앉은(Man with Blue Scarf: on Sitting for a Portrait by Lucian Freud)〉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나는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수십, 어쩌면 수백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반대로 꼬지 않고.” 프로이트는 모델이 완벽히 정지된 상태를 유지하길 원한다. 게이포드는 그의 자화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자세는 어느 컴컴한 숲속의 탐험가나 사냥꾼을 연상케 한다. (중략) 그의 태도에는 조심스러움과 뻔뻔함이 섞여 있으며, 동시에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하려는 격렬한 투지로 가득하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의 행위는 일종의 원초적 무아지경이 된다. 스스로를 그리는 행위에 몰입함으로써 단호하게 외부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어느 순간에는 그의 눈이 그림의 응시와 마주칠 터. 그 ‘이중의 응시’가 부끄러움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Painter Working, Reflection〉(1993), Oil on canvas, 1016x768mm. Private Collection

〈Painter Working, Reflection〉(1993), Oil on canvas, 1016x768mm. Private Collection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Painter Working, Reflection)〉(1993)은 그의 자화상 중에서도 가장 가차없고 냉혹하며 무자비하다. 그는 끈이 풀린 한 켤레의 묵직한 일꾼용 장화 외에는 벌거벗은 채다. 왼손에는 팔레트를, 위로 치켜 올린 오른손에는 붓을 쥐고 있다. 갈색, 베이지색, 어두운 녹색, 크림색, 회색, 불그레한 살색, 흰색… 캔버스를 채운 색상은 차분하기 그지없다. 상반신에는 어딘가에서 새어 들어온 빛이 스미기도 했지만 얼굴은 그림자 속에 있는 듯하다. 표정은 불안하고 눈빛은 강렬하다. 시선은 저 너머 바닥의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다. 혹은 그의 상상 속 무언가에.
화가가 그린 스스로의 모습은 무언가에 깊이 몰두한 사람의 양면적 외양을 지녔다. 몸은 늙고 말랐으며 얼굴은 주름졌지만, 그렇듯 억눌린 물질적 실체와 함께 당장이라도 발산될 듯한 신경질적인 에너지도 담고 있다.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근사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데에 관심이 없다. 대신 스스로를 화폭 가운데에 홀로 벌거벗은 채로, 고립되고 늙고 불안한 채로 방치함으로써 엄청난 시각적 흥분을 창조한다.
프로이트의 몇몇 초상화 작품에서 시선은 매우 개인적인 요소이면서도 동시에 관객에게 뭔가 큰 의문을 암시한다. 그는 자신의 초상에서 엄격함과 품위, 작업 중인 위험한 짐승의 감각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 상반된 느낌 사이의 긴장을 인식하고 즐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단순히 한 사람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극히 구체적이고 독특한 성질을 가진 작품이지만, 개별 순간과 장소를 넘어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고독과 운명이 지닌 미묘한 무언가를 전달한다.
어떤 이들은 화가나 사진가가 포착한 얼굴이 정신과 자아의 본질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정보를 보여준다는 해맑은 생각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에 이미 여러 작가가 인간의 외면은 내면을 암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과 결별했다. 파블로 피카소, 장 뒤뷔페, 막스 베크만, 프랜시스 베이컨… 그들은 ‘표면에서 솟아나는 내적 가치’라는 발상을 안이하고 가식적인 무엇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품위와 내적 성찰 대신 전면적 노출, 깊은 충격, 혼잡하게 뒤섞인 색상, 놀라움과 불안함을 담은 얼굴이 작품에 나오게 되었다. 넓은 터치와 번짐을 사용해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이목구비가 뒤틀리고 공포에 질린 얼굴은 보는 이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모델들은 한순간에 멈춰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반한 존재이며 그림 너머에서도 그렇게 보인다. 그들은 마치 삶 그 자체가 암묵적인 감금이라도 된다는 듯 철창 같은 그림 속에 살고 있다. 인간의 얼굴과 몸뚱이가 아름답거나 내면의 빛을 암시한다는 개념은 이제 광고나 포르노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렸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천재성은 인간의 외면에 드러나는 괴로움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따를 가치가 있다는 듯 이를 초상화 기법의 유구한 전통에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피부 톤이 지닌 복잡함과 직접성을 좋아하며, 한편으로 얼굴과 몸뚱이를 어둡고 낯설게, 불편하고 특이하게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Hotel Bedroom〉(1954), Oil on canvas, 91.5x61cm. The Beaverbrook Foundation, Beaverbrook Art Gallery, Fredericton. Gift of the Beaverbrook Foundation, collection of the Beaverbrook Art Gallery

〈Hotel Bedroom〉(1954), Oil on canvas, 91.5x61cm. The Beaverbrook Foundation, Beaverbrook Art Gallery, Fredericton. Gift of the Beaverbrook Foundation, collection of the Beaverbrook Art Gallery

〈Man’s Head (Self-portrait III)〉(1963), Oil on canvas, 30.5x25.1cm.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Man’s Head (Self-portrait III)〉(1963), Oil on canvas, 30.5x25.1cm.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프로이트의 자화상이 발전해온 과정도 짚어볼 만하다. 1940년 그는 18살의 나이로 이미 완성도 높은 자화상을 그려냈다. 물론 후기 작품에서 채워지게 될 빈틈도 있었지만. 3년 뒤에 내놓은 〈깃털을 든 남자(Man with a Feather)〉(1943)에서는 좀 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췄다. 한층 과장되고 초현실적이었다. 〈엉겅퀴를 든 남자(Man with a Thistle)〉(1946)〉에서는 다양한 톤의 청색과 흰색이 피부색과 부딪치는 가운데 빛과 그림자에 대한 집착의 징후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과 〈초록색 레몬과 정물(Still Life with Green Lemon)〉(1947)에서 우리는 응시에 대한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두 작품에서 가장 주의를 끄는 것은 수상하면서도 강렬한 눈동자다.
〈호텔 침실(Hotel Bedroom)〉(1954)은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고, 그녀와 파리 스타일의 건물이 보이는 창문 사이에 한 남자가 서 있는 풍경의 그림이다. 그 속의 모든 요소가 놀랍도록 뚜렷하다. 여자의 얼굴과 금발 머리는 빛을 잔뜩 머금고 있다. 베개와 침구까지도. 맞은편의 건물 역시 새벽 볕이라도 받는 듯 밝다. 오직 남자의 형상만 어둡고 그늘져 있다. 마치 다른 회화 작품에서 실수로 들어간 듯이.
프로이트는 구도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대상이 적재적소에 자리를 잡기보다 움직이는 순간을 적시에 포착하길 원한다. 그의 작업 방식이 임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대상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의 어색함을 좋아하며, 동시에 고정된 빛이 제대로 비쳤을 때를 그리고 싶어 한다. 그는 늘 대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그린 호텔 그림 속의 남자와 여자는 소외되고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흔한 방식으로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그 그림 속에 영원히 고정되어 보이지만 동시에 생생히 살아 있다.


〈Startled Man: Self-portrait〉(1948), Pencil on paper, 22.9x14.3cm. Private collection

〈Startled Man: Self-portrait〉(1948), Pencil on paper, 22.9x14.3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c.〉(1956), Oil on canvas, 61x61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c.〉(1956), Oil on canvas, 61x61cm. Private collection

〈Reflection with Two Children (Self-portrait)〉(1965), Oil on canvas, 91x91cm.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Reflection with Two Children (Self-portrait)〉(1965), Oil on canvas, 91x91cm.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마틴 게이포드가 저서에서 밝혔듯 프로이트는 사진을 보고 작업하지 않는다. 사전 드로잉도 하지 않는다. 붓을 들고 얼굴 한가운데로 직행해 바깥쪽으로 나아간다. 그의 몇몇 초상화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1956년부터 1957년까지 남긴 작품들처럼 얼굴의 반쪽만 그려져 있다. 베이컨의 경우는 그가 모로코에 가면서 미완된 것이지만, 프로이트의 경우 얼굴 파편만 남긴 1956년 작품은 1963년의 완성작 두 점 못지않게 그 자체로 넘치는 힘을 갖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남긴 작품들도 다른 면모를 품고 있다. 자화상 파편만 남긴 1965년 작품과, 해당 작품을 발전시킨, 전구가 달린 방 안에 아이들 두 명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동일 연도 작품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후자는 마치 아래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린 듯하다. 특이하고도 불안한 원근법 덕분에 훨씬 극적으로 보인다.

루치안 프로이트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의 자화상은 점점 더 자아분열적 면모를 보인다. 그는 고요함에 관심이 없다. 대신 숨차고 주름진 살갗과 어둡고 근심 어린 표정을 묘사한다. 렘브란트의 후기 자화상처럼 연륜과 생생한 비관으로 가득 찬 얼굴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 때 묻지 않은 비관주의, 극적이면서도 과장된 감각. 이런 것이야말로 그의 그림을 풍부하게 만드는 비밀일 것이다. 물론, 그를 오늘날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옛 조수였던 영국 아티스트 데이비드 도슨의 사진. 〈Working at Night〉(2005), David Dawson/Bridgeman Images

루치안 프로이트의 옛 조수였던 영국 아티스트 데이비드 도슨의 사진. 〈Working at Night〉(2005), David Dawson/Bridgeman Images


루치안 프로이트의 자화상 특별전 〈Lucian Freud: The Self-Portraits〉는 2020년 1월 26일까지 런던 영국왕립미술원에서 열린다.
루치안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내면이 아닌, 오직 살갗과 눈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