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커피 대신 향이 좋은 블렌딩 티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쌀쌀한 날씨에는 커피 대신 차 한 잔의 여유를.



커피와 달리 차의 카페인은 시간을 빠르게 감지 않는다. 오히려 0.8배속 정도의 속도로 재생된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한 손님이 영업 시작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메뉴판을 유심히 보더니 꽤 여러 가지 음식과 함께 시그너처 블렌딩 티를 함께 주문했다.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모습을 보니 미식을 즐기는 이가 분명했다. 심지어 차까지 주문했으니. 식사를 마치고 남은 티를 즐기던 그가 카운터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계산을 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약간 머뭇거리면서 꺼내는 말이 메뉴판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마신 블렌딩 티에 사용한 차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 가게의 시그너처 블렌딩 티는 두 종류의 블렌딩 티를 섞어서 사용한다. 하나는 로마에서 사 온 꽃잎차로 바닐라와 민트 향이 풍부하다. 다른 하나는 홍차 좀 마셔본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마리아주 프레르의 웨딩 임페리얼이다. TWG나 포트넘앤메이슨, 스미스처럼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는 않지만 해외 직구로 많이들 구입하는, 1854년에 설립되어 상당히 인지도 높은 차 브랜드다. 파리와 런던, 베를린, 도쿄에 매장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좋아하는 홍차다. 남들은 더치 커피를 마시러 가는 압구정 로데오의 마크레인에 마리아주 프레르의 웨딩 임페리얼을 마시러 종종 갔다. 웨딩 임페리얼의 검은 원통형 틴 케이스에는 초콜릿과 캐러멜 향이 난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틴의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진한 캐러멜 향은 혀가 아니라 코로 느끼는 달달함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준다. 이 달달함은 그 자체로 디저트가 되기도 하고, 피낭시에나 마들렌처럼 별로 달지 않은 구움과자와 잘 어울린다.
이 두 가지 차를 섞어 함께 우려내면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난다. 캐러멜의 달달한 향과 민트의 시원함, 은근히 전해지는 바닐라 향과 넘실거리는 꽃향기가 잔 주위로 가득 퍼진다. 그 기운과 향기, 시원함은 차를 마시고 난 뒤에도 입안에 여운이 가득 남을 정도다. 웨딩 임페리얼이 낭만적인 결혼식과 비견된다면 꽃잎차를 섞은 웨딩 임페리얼은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에 가깝다. 이 시그너처 블렌딩 티는 원래 집에서 디저트를 먹을 때 아내가 자주 내주던 레시피다. 내게는 마실 때마다 신혼의 달콤함이 먼저 떠오르는데 시중에 판매하는 차를 섞어서 새로운 차를 만든다는 발상이 정말 신선했다. 이 차를 음료 메뉴에 넣을 때도 손님들이 그런 점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마리아주 프레르와 스미스의 여러 가지 블렌딩 티와 허브티, 대만에서 사 온 우롱차 등 꽤 다양한 차 메뉴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커피 대신 차를 즐기는데 커피의 카페인이 주는 몰입감은 개인적인 일상의 속도와 맞지 않아서다. 그런 성향도 차 메뉴가 많은 데 한몫했다.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차를 즐기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향과 맛에 대해 민감하지 않아서일까. 분명 차 시장이 성장세라는 기사를 심심찮게 봤는데 홍보성 바람몰이에 불과했던 걸까. 한 티 소믈리에를 만나면서 그런 궁금증이 해소됐다. “수요는 늘었어요. 문제는 늘어난 수요가 수치로 설명하기 애매할 정도로 낮다는 거죠. 사람들이 몇 년째 티가 블루오션이라고 떠들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예요. 생산자도 판매자도 모두 블루오션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죠. 찻집은 폐업도 많아요. 수입량이 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늘어난 물량은 모두 중국 보이차예요.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난 게 아니라 금이나 미술 작품처럼 재테크 수단으로 대량 수입한 거죠.”
지난해 말 열린 카페 쇼에도 차 브랜드가 상당히 많이 소개됐고 관심도 높았지만 차가 카페의 메인 음료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전통적인 차가 현대적 스타일로 바뀌면서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추세는 맞다. 2012년 홍대에 처음 문을 연 공차가 500여 개의 매장을 둔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것이나 2013년 스타벅스가 티바나를 인수한 뒤 2016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도, 지난해에 SPC가 티트라라는 차 브랜드를 론칭한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에서 인기라는 콤부차도 지난해 국내에 자주 소개됐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이들은 생각보다 늘어나지 않았다. 카페의 사이드 메뉴에서 메인 메뉴로 올라섰지만 매출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티 소믈리에가 말했다. “차는 아직도 변화 중이죠. 바리스타와 셰프, 파티시에, 바텐더가 차를 단일 식재료로 보기 시작했거든요. 싱글티를 뜨거운 물에 내리는 게 아니라 식재료로서의 차를 어떻게 이용해볼까 고민하는 과정이죠. 형태가 바뀌면 고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말차처럼요.” 티 블렌딩도 그중 하나다. 우리 가게의 시그너처 블렌딩 티처럼 차와 차를 적당한 비율로 섞을 수도 있고, 차에 향신료나 과일, 허브를 섞을 수도 있다. 티 칵테일도 있다. 하루 이상 냉침한 차를 베이스로 사용한 칵테일은 일반적인 칵테일과 달리 풍부한 향을 낸다. 차가운 물에 차를 우려내면 차 특유의 쓴맛과 떫은맛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진하게 우려낸 차는 우유를 섞어 밀크티를 만들 수도 있다. 우유 대신 과일 청을 넣으면 향이 풍부하면서 달콤한 과일 음료로 변신한다. 향이 좋은 차라면 잘게 갈아서 쿠키나 케이크 반죽에 넣어 구울 수도 있다. 노아 베이커리나 아티제의 얼그레이 케이크가 대표적이다. “차는 인공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의 재료로 만들어서 소금이나 설탕처럼 단편적인 맛이 나는 게 아니라 복잡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죠. 사람이 맛이나 향에서 느낄 수 있는 여운을 조금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식재료로 시선을 바꾸면 쓰임이 다양해져요.”
차는 장점이 많다. 커피와 달리 차의 카페인은 시간을 빠르게 감지 않는다. 오히려 0.8배속 정도의 속도로 재생된다. 그래서 카페인에 예민한 이들에게 대안이 된다. 차는 진정 효과도 있다. 상대하기 어려운 이들을 만날 때는 커피보다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낼지도 모른다.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 같은 차도 있고, 홍차 같은 발효차는 숙취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차는 여운이 길다. 일상에 은은한 향을 씌워준다. 자, 그럼 당신은 이제 차를 마실까? 솔직히 말하면 차의 앞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쌀쌀한 날씨에는 커피 대신 차 한 잔의 여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