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봉준호와 <기생충>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

세계인이 왜 <기생충>에 열광하는가.

BYESQUIRE2020.02.22
 
 

기생충 월드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이 원고의 난이도도 엄청나게 올라가버렸다. 영화 속에서 쫓겨난 가정부가 박 사장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장르가 변해버린 것처럼.
내가 처음 받은 원고 주제는 ‘외국 사람들이 본 〈기생충〉’이었다. 그때만 해도 외국에 있는 지인들의 ‘내가 본 〈기생충〉은 이렇더라’는 감상을 모으는 원고였다. 주변에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 친구도 많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미와 미국에 갈 일도 생겼다. 그 친구들의 말을 듣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게 1월 중순이다.
한 달여가 지나는 동안 한국을 넘어 영화 역사에서 손꼽힐 일이 일어났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전국에서 가장 취재를 잘한다는 일간지 기자님들이 붙어서 이 영화에 대한 온갖 취재를 했다. 지금도 봉준호 감독의 대학 시절 단골 만화책 가게 사장님 인터뷰를 포함해 엄청나게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 안팎의 갖가지 미담을 알 수 있는 마당에 〈에스콰이어〉 독자께 어떤 걸 보여드려야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내가 이 원고를 맡고 처음 가졌던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기생충〉의 성과와 의미를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왜 하필 〈기생충〉이 이런 영광을 얻었을까? 〈기생충〉은 물론 뛰어난 영화다. 그런데 한국과 아시아 영화는 수년 전부터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성과를 냈다. 박찬욱과 이창동도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은 201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런데 왜 〈기생충〉만 이렇게 많은 상을 받고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더 잘됐을까? 〈기생충〉은 다른 영화와 무엇이 다를까?
 
 

# 1

 
UK ©La Boca

UK ©La Boca

“장르 영화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날씨가 한창 춥던 2020년 1월, 〈기생충〉이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Screen Actors Guild Awards, SAG)에서 앙상블 상을 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뉴욕에서 홍수경이 말했다. 홍수경은 재미 영화 저널리스트다. 한국에서 영화 잡지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비롯해 아시아 영화는 월드 무비로 분류됐어요. 반면 〈기생충〉은 미국 시장에서 호러 장르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기내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런 식으로 나뉜다. 할리우드 최신/ 액션/ 드라마/ 어린이/ 월드. 아무래도 ‘월드’는 잘 안 누르게 된다. 홍수경의 지적은 그런 부분을 짚고 있다.

장르 영화로 받아들인 계기는? 일단은 〈기생충〉이 장르 영화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장르적이라는 평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아카데미 시상식 기간에 캘리포니아에 있었던 어느 관계자의 말이다. 〈기생충〉의 오락 영화로서의 가장 큰 장점 역시 장르 문법에 있다. 〈기생충〉은 각종 장르 영화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동시에 장르 영화를 변주하는 것도 엄청나게 잘한다. 이건 누가 뭐래도 봉준호와 스태프들의 명인에 가까운 기술적 성취임이 확실하다. “쫓겨난 가정부가 돌아와 박 사장 집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영화가 스릴러에서 호러로 바뀌잖아요. 미국에서도 그 장면을 언급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오스카로 향하는 긴 길이 있어요.” 1월에 만난 홍수경의 말이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오스카 캠페인’ 혹은 ‘오스카 레이스’였다. “대서양은 생각보다 넓어요.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도 미국 시장에 바로 진입하지는 못해요. 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소식에 별로 큰 관심이 없어요.” 실질적으로 북미에서 인지도가 생기려면 북미권 영화제에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생충〉 기념 포스터는 원본 포스터 위로 이 영화가 받은 수많은 상의 목록이 겹쳐져 있다. 몇 달 전부터 〈기생충〉 역시 오스카로 향하는 긴 길을 가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 면에서 홍수경과 대화를 나눴던 1월의 SAG 수상은 정말 의미가 있었다. “SAG의 투표인단은 아카데미상 투표인단과 꽤 겹쳐요. SAG에서 상을 받은 게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RUSSIA

RUSSIA

〈기생충〉은 대서양을 건너 북미로 넘어왔을 때부터 일정 정도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2019년 9월 미국 텔류라이드 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상 3위에 해당하는 ‘세컨드 러너-업’을 수상하고, 텔류라이드 영화제에서는 마지막 상영 때 사람들이 몰려서 수백 명이 표를 구하지 못해 영화를 못 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오스카상 수상 직전까지 〈기생충〉에 호의적이었던 〈LA 타임스〉는 이때의 봉 감독 코멘트를 보도했다. 
 
JAPAN

JAPAN

“마지막 한 시간 동안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비명 소리, 숨이 막혀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관객들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텔류라이드 영화제 관객의 특징인지 미국 관객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 말을 했을 때 텔류라이드 영화제의 경쟁작들은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와 제임스 맨골드의 〈포드 V 페라리〉 등이었다. 〈LA 타임스〉 기사가 보도된 때는 북미 시간 기준 2019년 9월 3일. 다만 이때만 해도 〈기생충〉이 지금만큼의 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텔류라이드 영화제는 일반 관객보다는 영화 관계자와 애호가 행사에 가깝다. 봉 감독의 코멘트가 있는 〈LA 타임스〉 기사 제목에도 ‘패러사이트(Parasite)’는 나와 있지 않았다.
평단의 반응만큼은 확실했다. 〈기생충〉에 높은 평가를 준 미국 영화평론가 역시 이미 있었다. 영화비평가이자 영화·수상 토론 웹사이트인 ‘어워즈 데일리’ 창립자 샤샤 스톤은 이미 “〈기생충〉은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고 “텔류라이드 영화제에 온 사람들이 〈기생충〉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고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생충〉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생충〉은 북미 시장에 다가가고 있었다.
〈기생충〉은 북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독일 사람들이 〈기생충〉 마지막 부분에서 웃는다고 했죠? 저, 그 웃음소리를 실제로 들었습니다. 영화 분위기와 달리 갑자기 맥주와 소시지 이야기를 하니까 웃겼던 것 같아요.” 베를린에 거주하는 아티스트가 들려준 〈기생충〉 체험담이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도 제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기생충〉 ‘크레이지’라고.” 그중에서도 일본 영화인들이 〈기생충〉을 칭찬한 걸 보면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다.
 
“정확한 프레임, 리듬, 대사, 경악의 스토리텔링!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계산되어 있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훌륭한 융합! 보고 나면, 당신에게 기생하는 대걸작이다!”
 
이건 신예 감독 가타야마 신조의 평이다.
 
“보기 전에 사람들에게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 건 촌스럽다. ‘봐라!’라고 할 수밖에 없고 ‘재미있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평.
 
“영화가 끝나고 내 마음이 중얼거렸다. ‘아, 정말 같은 직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감동을 넘어 무릎에 힘이 풀렸다. 이건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저술이며, 조각이며, 그림이며, 건축이기도 하다. 항상 언더그라운드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의 미켈란젤로가 됐다. 그 이상의 감독은 그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가족도 못 할 수준의 극찬을 남긴 이 사람은 일본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받은 사카모토 준지다. 모두 이미 2019년 10월 일본 영화 매체 〈나탈리〉에 실린 기사다. 〈기생충〉과 봉준호에 대한 높은 평가 역시 반짝 붐이 아니었다.
 
 

# 2

 
UK ©Andrew Bannister

UK ©Andrew Bannister

최고의 마케팅은 제품이라고 해도 마케터의 역할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 네온은 실제로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온 설립자 겸 CEO 톰 퀸은 봉준호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2019년 11월 〈버라이어티〉 기사에 따르면 톰 퀸은 2006년 칸에서 〈괴물〉을 본 이후 바로 배급권을 구입했다. 그 이후 톰 퀸과 봉준호는 5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다. 〈버라이어티〉 인터뷰를 보면 톰 퀸이 봉준호를 얼마나 좋아하며, 동시에 이 감독의 세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괴물〉은) 봉준호 영화이고 봉준호 장르다. 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이름이 적힌 건 뭐든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다. 백지수표를 줄게.” 이런 말을 보면 한국 관객보다 봉 감독을 더 깊이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톰 퀸의 네온은 봉준호의 작품 세계뿐 아니라 오스카 레이스 시스템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증거가 네온이 진행한 영화인 〈아이, 토냐〉다. 이 영화 역시 분류상 인디 영화임에도 네온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 덕분에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했다. 〈아이, 토냐〉는 제90회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받고 여우주연상과 편집상 후보에 올랐다.
네온의 배급 타깃을 보면 〈기생충〉을 성공시킬 만한 회사였다는 느낌이 온다. 영화·드라마 메타데이터 매체 〈테일러콘텐츠〉에서 밝힌 네온의 타깃은 이런 사람들이다. 45세 이하. 폭력에 반감이 없으며 외국어와 논픽션에 반감이 없는 관객. 네온의 전략은 서울대 문서위조학과가 있다면 합격할 만한 기정의 포토샵 실력만큼이나 정확했다. 미국에서 〈기생충〉은 25~35세의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네온이 짠 레이스에 봉준호 감독과 스태프들도 열심히 참여했다. 봉준호 감독은 본격적인 아카데미 레이스가 시작된 9월부터 계속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러 행사에 참여한 걸로 알려져 있다. 어딘가에서 했던 “봉고차를 타고 도는 유랑 극단처럼 움직였다”라는 봉준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연합뉴스〉는 봉 감독이 500개 이상의 외신과 인터뷰하고 관객과의 대화 무대에도 100차례 이상 섰다고 보도했다. 
 
America ©unknown

America ©unknown

“봉 감독님 미국 오셔서 작은 행사에도 많이 나왔어요.” 뉴욕 현지의 홍수경도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감독님이 말씀을 워낙 잘하세요. 좀 ‘사이다’ 기운이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은 계급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아요. 그래서 계급 대신 에둘러 인종을 말하죠. 그런데 봉 감독님은 〈기생충〉이 계급 영화냐는 질문이 들어오면 그냥 말해버리는 거예요. “미국에도 계급 영화 있잖아요? 〈겟 아웃〉 같은?” 이렇게. 미국 사람들이 못 하는 이야기를 봉 감독님이 해주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었어요.”
“미국 사람들은 웃기는 걸 진짜 중요하게 여겨요.” LA에 사는 컨설턴트 마이키 고는 봉준호의 개인 역량 역시 〈기생충〉 성공의 큰 요소라고 간주했다. “봉준호 감독이 토크쇼 같은 데서 말을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호아킨 피닉스처럼 시무룩한 사람보다는 봉준호의 유쾌함이 훨씬 돋보였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웃기고 유쾌한 거야말로 아메리카니즘인데 말입니다. 미국의 주류 백인이 웃음과 유머를 잃었는데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인이 미국의 정신을 가져온 거예요. 일반 관객에게는 봉준호 감독의 유쾌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을 겁니다. 미국 사람들은 〈기생충〉을 ‘한국 영화’라기보다 ‘봉준호 영화’로 보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봉준호의 〈기생충〉이 큰 상을 받을 확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TAIWAN

TAIWAN

영화는 좋았고, 봉준호에게는 영화 능력 말고도 미국 시장에서 먹히는 인간적 매력이 있었고, 북미 배급사 역시 노하우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재료가 필요했다. 돈. 예산. 각종 지원. CJ ENM의 공헌과 헌신 역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건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른 대기업이 콘텐츠 산업에 잠시 들어왔다가 모두 손을 뗐을 때도 CJ ENM만은 계속 남아 있었다. 꾸준히 열정적으로 투자했다.
“그룹의 문화 사랑을 모를 수가 없어요.” 익명을 요구한 CJ 계열사 전 직원의 말이 좋은 예가 되겠다. “거기는 좀 북한 같은 느낌이 있어서 아침에 출근하면 조회처럼 30분씩 그룹 소식 영상을 틀어줘요. 그 영상물도 잘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영상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문화 관련 사업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보여요. 저는 CJ ENM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CJ에 다닌다면 그룹 차원의 문화 사업에 대한 사랑을 무조건 알 수 있을 거예요. 피자를 들고 있는 사람이랑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면 피자 냄새가 나잖아요. CJ의 문화 사랑은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피자 냄새 같은 거예요. 모두 그 냄새를 느끼고 있어요. 대기업을 다니다 보면 이 그룹의 실세가 어디인지 깨닫게 되죠. 어디가 가장 돈을 잘 벌고 어디가 가장 힘이 센지. 그런 면에서도 CJ ENM의 위세가 보이고요. CJ ENM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요.” 이렇게 좋은 조건이 모인 덕에 〈기생충〉이 잘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윤리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대기업의 오너라는 특수한 결정권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문화 산업은 산업 특성상 불확실성이 크고 투자액을 회수할 수학적 가능성이 높지 않다. 〈원스〉의 성공과 〈자전차왕 엄복동〉의 실패가 좋은 예다. 신중하게 돈과 자원을 써야 하는 거대 기업이 문화 상품에 투자를 꺼리는 일은 사실 합리적이다. 한때 삼성이 잠깐 영상사업단으로 문화 산업에 진출했다가 사업을 접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가의 대북 사업이나 이건희의 자동차와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처럼 CJ도 문화 산업(과 한식 세계화)에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보인 것이다.
뛰어난 창작자와 광기의 후원자와 유능한 해외 배급사 덕분에 〈기생충〉은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게 됐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기생충〉이 불러일으킨 해외 반응이다.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톰 퀸은 〈기생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영화에 악당도, 무고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물이 순환적인 관계 속에 들어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기생충이다. 당신이 한국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 나는 미국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라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 말처럼 자본주의 아래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기생충〉에 반응했다. 
 
France ©Marie Bergeron

France ©Marie Bergeron

“매우 좋았다. 빈부 격차라는 문제 설정은 지금의 내 나라에서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소재는 물론 무겁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영화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한 작품이다. 소재의 무게와 상관없이 즐기며 볼 수 있었다. 이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냄새’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나도 내 신분이나 지위에 따른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몸으로 이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갑자기 부자 가족이 집에 돌아올 때 짜파구리를 만들면서 전 가정부를 차버리는 장면. 코믹한 리듬 속에서 가정부를 차버리고, 그 장면에서 관객이 웃어버리는데, 결국 가정부는 거기서 떨어져 죽게 되고, 이것이 지하실 속 가정부 남편의 폭주로 이어진다. 이러면 관객은 조금 전 웃어버린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청중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느꼈다.” 
 
America ©Greg Ruth

America ©Greg Ruth

“빈부 격차가 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느꼈다. 많은 영화가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조커〉처럼. 난 〈조커〉는 〈기생충〉에 비하면 더 오락처럼 즐길 수 있었다. 조커는 그냥 상징 같았거든.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에 대한 상징 말이다. 〈기생충〉이 〈조커〉보다 더 불편했다. 오락이라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져서다. 송강호 가족이 이선균 가족의 집으로 갔을 때까지만 해도 정말 재미있게 웃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하실 가족에게는 부자처럼 굴었다. 그건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악 같은 모습이 있겠지.”
 
“잔인한 영화였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거라고 확신한다. 할리우드 바깥에서 이렇게 위대한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 역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일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기생충〉 관람 소감을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을 무작위로 섞었다. 이 답만 봐서는 이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 사람 누군가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기생충〉의 가장 근본적인 성공 비결이 있다. 〈기생충〉에는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요소가 있다. 봉준호가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봤다던 미국 영화처럼. 미국 입장에서 〈기생충〉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온 할리우드식 영화라고 봐도 큰 무리가 아니다.
봉준호는 AFKN을 보며 영화에 빠지고 홍대 앞 만화책 서점에서 유럽과 미국의 만화를 보던 1990년대의 영화광 출신 영화감독이다. 그러던 사람이 점점 성장하며 세계적인 거장 영화감독이 되어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봉준호의 성취, 이미경의 성취, 이미경의 연설처럼 한국 영화계의 성취. 모두 맞는 말이다. 아주 대단한 성과다.
한국의 한국인들보다 〈기생충〉의 성공을 더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국에 사는 한국인과 한국계 외국인, 옛날 말로 하면 동포들이다. 뉴욕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아카데미는 지난 91번의 시상식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어.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비영어권 영화야. 우리는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이 그들의 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아. 한국인들이 무대에 올라 있는 걸 보니까 내 마음도 뜨거워졌어. (그걸 보자) 나는 내 자신이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은 기분까지 들었어. 우리 모두 이긴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 수상 결과 때문에) 꿈을 꿀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모두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우리는 한국인이야. 한국은 우리를 잊었을 수도 있지만. 〈기생충〉이 상을 받았을 때 산드라 오의 반응 봤어? 우리 모두 그런 마음이야.” 이렇게 절절한 마음을 한국에 사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생충〉 주변에 어떤 잡음이 있든 간에 이 영화가 아시아계 서구인들의 자부심에 준 영향만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3 

 
Vietnam

Vietnam

그러니까 우리는 〈기생충〉을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봉준호의 말처럼 〈기생충〉을 보면서 ‘내일 아침까지 술을 마셔야’ 할까? 봉 감독님의 재능에 경배하고 성취를 축하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이건 한국 영화와 봉준호의 성취일지는 몰라도 모든 한국인의 성취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기생충〉이 묘사하는 한국의 빈부 격차는 시종일관 평면적이고 가난의 디테일한 묘사는 아주 조금씩 현실성이 떨어진다. 일각에서는 명문가 자제 봉준호가 재벌 회장 이미경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팔았다는 비난도 있다. 〈기생충〉의 감독과 후원자가 개인적으로 가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가 없다. 그저 그는 한국의 빈부 격차라는 복잡한 상황을 간략화시켰을 뿐이다.
한국의 복잡한 상황을 간단한 그림으로 만드는 것 역시 봉준호의 오랜 패턴이다. 〈살인의 추억〉부터 그랬다. 그는 한국의 전근대적 수사 관행과 잔인한 범죄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대 한국의 주한 미군은 좋든 싫든 현대 한국과 명암을 함께하는 파트너이지만 〈괴물〉 속 주한 미군은 몰래 강물에 독을 뿌리는 파렴치범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난을 겪었거나 지금 가난한 사람이라면 〈기생충〉을 보고 마냥 웃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모든 악행을 가난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모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비겁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을 테니, 그랬다면 이미 세상의 부자들은 모두 부엌칼에 찔려 죽었을 것이다. 가난하니까 부자를 질투하고, 가난하니까 더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다는 이야기 구조는 가난에 대한 기묘한 기만이다.
 
France

France

봉준호는 자신의 대단한 능력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에게는 절정에 이른 앵글 감각과 시퀀스 구성 솜씨가 있다. 최고 수준의 장르 이해도가 있다. 그 장르 이해도에 기반해 자기 리듬으로 장르를 비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거기 더해 적당히 현실을 반영한 디테일 위로 입체적인 듯 평면적인 캐릭터가 열연을 펼친다. ‘먹고살기 힘드니까 비겁해지는’ 캐릭터만이 현실적일까? 이미 현실에 있는 ‘먹고살기 힘들어도 안 비겁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보면 〈기생충〉에 대한 ‘가난 포르노’라는 평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의 일부분을 생략하고 예쁘게 정리해 깔끔한 콘티 노트처럼 보여주는 능력이야말로 봉준호의 원천 기술이다. 〈기생충〉이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은 비결 역시 이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제인 폰다가 2020년 2월 9일 “패러사이트”를 외치는 순간 이 모든 비판은 하나마나한 게 됐다. 〈기생충〉에 깔린 기만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은 ‘열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피 칠갑이 된 박명훈의 대사를 한 번 더 중얼거릴 뿐이다. “리스펙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