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19가 뒤흔든 전 세계 나라별 모습, 밀라노 편

팬데믹 시대에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BYESQUIRE2020.03.29
 

 

From MILAN

 
writer 남준우
2월 26일 밀라노에서 출발해 폴란드에 도착한 항공기 승객들이 폴란드 보건 요원들로부터 체온 검사를 받고 있다.

2월 26일 밀라노에서 출발해 폴란드에 도착한 항공기 승객들이 폴란드 보건 요원들로부터 체온 검사를 받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출근길 아침이다. 여느 때처럼 차고 문을 열고 출발 시간을 보니 9시 10분. 늦어도 9시 정각에는 출발해야 9시 30분까지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서둘러 액셀을 밟는다. 평소대로라면 항상 꽉 막히던 길이 한산하다. 여름이면 유럽의 도시 사람들은 한적한 휴양지를 찾아 거리를 비운다. 지금은 3월인데, 계절이 바뀌고 패션이 움직이는 3월인데, 8월 휴가철처럼 도시가 나른하다. 회사에 도착해 시계를 본다. 9시 27분. 30~40분 걸리던 거리가 1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남았으니 아침을 좀 더 여유롭게 먹는다.
나는 늘 회사 근처 게이 커플이 운영하는 바(일반적인 이탈리아 커피숍)에서 커피와 브리오슈로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 아침 들르는 곳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어색하고 불안한 시선이 느껴진다. 어느덧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이탈리아에 돌기 시작한 지 한 달. 내가 살고 있는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주에서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래서 출근길 도로가 그렇게 한산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휴교령과 재택근무 권고안이 발표되면서 밀라노 사람들에게는 동양인에 대한 거리감은 물론 거부감까지 생겨나는 듯하다.
2월과 3월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모쿠(Mokoo)라는 작은 남성복 브랜드의 패턴 메이커이자 디자인 디벨로퍼를 맡고 있다. 나에게 이 두 달은 새로운 시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원단과 부자재를 선택하는 건 이 기간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보통은 원단 및 부자재 박람회에서 새로운 소재와 아이템을 찾는다. 다행히 얼마 전 밀라노에서 원단 박람회가 열리는 동안에 코로나19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 나는 당시 이 박람회장을 방문해 새로운 소재를 찾았다. 그런데 박람회장에 부스를 차린 몇몇 업체는 중국 바이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를 달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달랐다. 중국 우한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고 중국 내 확진자가 늘어나자 가장 먼저 중국발 항로를 차단하고 철저히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노력한 나라가 이탈리아다.
원단 박람회 이후 열릴 예정이었던 안경 부자재 박람회를 비롯해 여러 박람회가 취소됐다. 심지어 매년 4월 밀라노 전역에서 열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구 박람회인 푸오리 살로네의 일정이 6월로 미루어졌다. 거대 행사가 연달아 취소되고 영업을 중단하는 거래처들이 생겼다. 짧은 기간 동안 올여름 컬렉션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게 예상치 못한 변수이고 리스크다. 이번 시즌이 시작하기 전 우리 회사는 사람을 뽑았다. 새로 온 사람들이 일할 작업 테이블과 기계를 항상 거래하는 업체에 주문했는데 몇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배송을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한국 사람만 일하는 아틀리에라는 걸 알기 때문일 터다.
3월 10일을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1만 명에 육박했고 사망자는 400명을 훌쩍 넘겼다. 며칠 새 하루 동안 새롭게 추가된 확진자 수가 1000명 안팎 수준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탈리아 전역에 이동 제한령을 내렸다. 로이터 통신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혹한 조치’라 평가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직항 노선이 진작에 끊겼음은 덧붙일 필요도 없다. 처음으로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고 새장 속에 갇힌 새의 심정을 느꼈다.
사태의 심각성과 이탈리아 시민들의 태도 사이의 간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밀라노 거리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을 찾기 힘들다. 위기의식이 없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보지 않으려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다. 마스크 쓴 사람은 피하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재채기를 하고 기침을 한다. 매일 고민한다. 나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재채기를 하고 기침을 하는 코로나19 대유행 국가의 거리에서 해선 안 될 법한 고민이다.
이곳에서 9년을 살았다. 이방인으로, 그것도 동양에서 온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처럼 불편한 적이 없었다. 20년 넘게 거주한 한 교민의 말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일이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다. 며칠 전에는 나와 항상 웃으며 인사하던 같은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나를 보더니 급하게 전화를 받는 척하며 사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탈리아 문화에 길들여졌다. 아침 식사로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브리오슈를 먹는 게 그 예다. 그러나 대유행 앞에서 그들 눈에 보이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이번 유행으로 이탈리아에서 영유할 나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철저하게 고립되는 외로운 시간이 계속될 것이다. 조금 더 자유로워질 머지않은 미래를 기대하며 이 어렵고 힘든 시기가 하루빨리 지나가길 기도한다. 감상적이 되고 싶진 않지만 자꾸 〈쇼생크 탈출〉의 대사가 생각난다. “처음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 50년을 감옥에서 보낸 늙은 죄수 브룩스가 탈옥을 거부하자 주인공 레드(모건 프리먼 분)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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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박세회
  • WRITER 남준우
  • PHOTO ⓒ GETTY IMAGES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