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건강하고 유쾌하게 잘 걷는 방법, 내 나이 마흔에 시작된 제대로 된 '걸음마'

이대로 걸으면 발목부터 무릎, 고관절까지 다 상한답니다.

BYESQUIRE2020.04.10
 
 

난 참 바보처럼 걸었군요

 
 
“이대로 뛰시면 큰일나겠는데요?” 체지방률 5% 미만일 것이 분명한 담당 직원은 날렵한 인상만큼이나 진단도 거침이 없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쉬는 날이었고, 화가 났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런 적은 없는 것 같다. 조금 씩씩거리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몇 달 전 이사 온 집에서는 한강 둔치가 지척이었다. 뛰어볼까? 온몸이 땀에 젖도록 강변을 달리고 나서 샤워를 하고 나니 좀 후련해진 것도 같았다. 속은 잠잠해졌는데 발바닥이 후끈거렸다. 어라? 커다란 물집이 양발에 몇 개씩 잡혀 있었다.
싼 맛에 ‘직구’한 빈티지 스타일 러닝화가 문제려니 했다. 한참 다니던 복싱 체육관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홈트’랍시고 혼자 스트리밍 강좌를 보며 익힌 케틀벨 스윙이 지겨워질 무렵이었다. 좀 더 뛰어볼까? 발바닥은 금세 나았지만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발을 분석해 적합한 러닝화’를 추천해준다는 전문 쇼핑몰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평일 오전이라 한산한 매장 한쪽에 측정 기구와 트레드밀이 있었다. 발 크기와 무게중심을 측정하고 나서 트레드밀 위에서 걷다가 약간 숨이 찰 정도로 뛰었다. “이대로 뛰시면 큰일나겠는데요?” 체지방률 5% 미만일 것이 분명한 담당 직원은 날렵한 인상만큼이나 진단도 거침이 없었다. “신발 어디가 제일 먼저 닳아요?” “팔자걸음이라 보통 뒷굽 바깥쪽이 닳는데, 가죽 밑창 구두를 신으면 발바닥 앞쪽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기도 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속도를 낮추고 이번엔 스스로 어떻게 걷는지 자각하면서 걸어보세요.”
평소에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나인 줄 알겠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저 생긴 대로 걷는 줄만 알았다. 그렇게 생각 없이 걷고 아주 가끔 뛰었다. 내가 어찌 걷는지를 살피며 걸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걷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보다 더 아연한 건 내 걸음걸이 그 자체였다. 단순한 팔자걸음이 아니었다. 발바닥 바깥쪽부터 지면에 쿵 내려놓은 후 발바닥 앞쪽을 중심으로 살짝 원을 그리듯 발을 돌린 후 떼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근력으로 어찌어찌 지탱해왔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이렇게 걸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허벅지에서 무릎은 바깥쪽을 향하고, 정강이에서 발목까지는 안쪽으로 굽어 있으며, 발은 다시 바깥쪽으로 팔자를 그리는 기묘하지만 왠지 익숙한, 명랑 만화 속 촌로의 걸음걸이. “지금 뛰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대로 걸으면 발목부터 무릎, 고관절까지 다 상할 수 있어요.”
우스꽝스러운 건 괜찮았지만 처량해 보이긴 싫었다. “뒤꿈치가 먼저 닿게 하고, 그대로 일직선으로 부드럽게 지면을 디딘 후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발을 떼보세요. 걸을 때 발 모양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가슴을 15도 정도 위를 바라본다는 느낌으로 활짝 펴고, 어깨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팔을 앞뒤로 흔드세요.” 보통 속도로 조금 걸었지만 진땀이 났다. 발에 맞는 최신식 기능성 러닝화를 샀지만 두어 달은 그냥 걷기만 하라고 했다. “걷는 자세 그대로 뛰는 거니까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나 효율적인 스트레스 해소법 같은 어른의 영역을 고민할 일이 아니라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때, 내 나이 마흔이었다.
틈만 나면 걸었다. 꽤 열심히 걸었다. 걸음을 시작할 땐 가슴을 펴고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지만, 뒤꿈치와 엄지발가락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금세 어깨가 굽었고, 다시 가슴을 펴면 발걸음이 이상해지기 일쑤였다. 한 달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잠깐이라도 제대로 걸으면 엉덩이에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가슴과 어깨, 발꿈치와 엄지발가락을 각각 떠올리는 대신 엉덩이에 집중하니 자세가 잡히는구나! 다음 한 달 후쯤 조금씩 속도를 붙이다 뛰기 시작했다. 땀으로 옷이 흠뻑 젖도록 달려도 발바닥은 멀쩡했다.
뛰는 건 싫었지만 걷는 건 좋아했다. 폭염이나 혹한이 아니라면 30~40분 걷는 건 일도 아니었고 산에도 제법 올랐다. 집 안에 틀어박혀 되새기면 머리를 가득 채우던 고민은 대개 밖으로 나와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별일 아닌 게 되었다. 먹고 자는 것 말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한 일, 그것도 꽤 좋아하는 일을 나는 총체적으로 잘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2년 정도 되었나. 제대로 걷고 틈틈이 달리게 된 후 바뀐 것? 가끔 술에 취해 생각나는 노래가 UK 차트에 오르지조차 못한 스코틀랜드 밴드 틴에이지 팬클럽의 데뷔 싱글이 아니라 오페라 무대 위 성벽 너머로 몸을 던지기 직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처연한 아리아가 된 것 정도의 변화겠지. 가족을 이룬 이후에는 걸어서 가벼워질 정도의 고민은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허벅지가 저릿할 때까지 뛸 때면 아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리가 깨끗하게 비워지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야말로 중년의 즐거움!
가끔 난 ‘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 거지?’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다 한참 뛰고 나면 ‘이제 멀쩡하게 뛰는데 뭐’ 하고 말지만. 근본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쪽이 낫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생각 없이 당연하게 해오던 것부터 점검해야 한다. 귀찮은 일이지만,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도 나아질 부분이 있다는 건 꽤 위안이 된다. 그리고 또 한참 뛰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의 무게가, 적어도 달릴 때 흘린 땀의 무게만큼은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