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서울의 카페 인터뷰: 4. 플릿 커피

어떤 게 좋은 커피고, 어떤 곳이 좋은 카페일까? 플릿 커피의 이창훈 대표를 만나 물어봤다.

BY오정훈2020.07.17
플릿 커피 이창훈 대표

플릿 커피 이창훈 대표

자신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선보이는 카페, 취향을 탐험하는 진지한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커피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게 좋은 커피고, 어떤 곳이 좋은 카페일까? 서울의 개성 있는 카페에 물어봤다. 네 번째는 연희동에 위치한 플릿 커피다. 플릿 커피의 이창훈 대표는, 로스팅에 중점을 두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려도 향과 맛이 풍부한 커피를 꿈꾼다.



연희동 플릿 커피연희동 플릿 커피
연희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카페를 연 이유가 있나?
우연히 연희동 길을 걷다가 동네가 좋아서 바로 공간을 알아봤다. 이 자리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30분 만에 계약했다. 여기 앞에 앉아 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아침이면 새소리도 잘 들린다. 원래는 철물점이었다고 하더라. 내가 커피를 볶는 양을 고려해봤을 때 여기처럼 한적한 위치라면 리듬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래 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 여기에 카페를 연다고 했을 때 동네 분들이 망하는 자리라고 할 정도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연희동 플릿 커피연희동 플릿 커피연희동 플릿 커피연희동 플릿 커피
인테리어가 동네 카페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잡지, 만화책, 요리책, 미술책 등 본인 물건을 둔 이유가 있나?
지난해 여름에 오픈했는데 겨울이 되니 공간이 좀 싸늘해 보였다. 테이블과 피아노 의자 등 손때 묻은 가구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릴리브 커피의 주남대 대표님도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더 편안해할 거라고 조언해줬다. 유리잔도 주남대 대표님이 준 릴리브 잔을 사용한다. 할머니가 쓰던 꽃무늬 잔도 있다.  
 
연희동 플릿 커피

연희동 플릿 커피

어떤 카페를 생각하며 공간을 구상했나?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는 카페가 좋다. 가게가 작다고 해서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머무르면서 하루 종일 노트북을 봐도 상관없다. 그게 카페라고 생각한다. 기다란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으니까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같이 온 어른이 책을 읽더라. 원래는, 사람들이 같이 앉는 모습을 상상하고 가운데에 평상 같은 네모난 의자를 놓았다. 의도와 달리 손님들이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혼자 온 분이 3명의 일행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각각의 테이블과 의자가 별도의 공간인 것처럼 방해받지 않도록 구획을 나눴다. 주말이면 카페 앞 평상에 누워 있는 분도 있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클래식을 트는 이유가 있나?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다. 헬카페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취향이 생겼다. 헬카페에서는 모든 직원이 음악을 틀어야 한다. 음악을 잘 몰라서 처음엔 스트레스였는데, 하다 보니 취향이 생기고 좋아하는 음반을 하나씩 사 모으게 됐다.  
 
연희동 플릿 커피

연희동 플릿 커피

커피는 언제부터 좋아했나?
고등학교 때부터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긴 했다. 친구들이 잘 가는 PC방 같은 곳을 별로 안 좋아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중, 고등학교 때 작설차도 내려 마시고 인사동의 한약 냄새도 좋아했다. 물론 커피 만드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은 못 했다.  
 
커피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  
원래 요리를 했다. 7~8년 정도 했는데, 요리하는 사람들이 멋있고 그들이 요리하는 걸 보는 게 좋았지 내가 요리하는 걸 즐기진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헤어 디자이너인 누나와 ‘브루노’라는 이름의 가게를 같이 열게 됐다. 머리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기니까 그때 손님들에게 요리와 커피를 만들어주자는 게 우리의 콘셉트였다. 손님은 많았는데 비용, 수익 개념이 없던 때라서 적자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심지어 새벽에는 친구 2명과 상수역 근처로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커피를 팔았다.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커피를 팔았다. 중간에 로스팅 하던 친구가 빠지면서 내가 로스팅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피에 빠지게 된 건가?
로스팅을 시작하긴 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요리를 할 때는 그런 오기가 없었는데 로스팅을 잘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새 로스팅 하느라 가게 안에서 텐트 치고 잔 적도 많았다. 3~4시간 로스팅 하면 100g 겨우 얻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브루노 건너편 막걸리집 단골이었던 헬카페 임성은, 권요섭 대표님의 소개로 릴리브에 이력서를 넣고 릴리브의 로스터와 바리스타가 됐다. 릴리브는 내게 커피의 시작과도 같은 곳이다. 주남대 대표님은 릴리브라는 브랜드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면서 내가 원하는 색으로 로스팅을 할 수 있게 처음부터 20kg짜리 로링 로스터기를 맡겨주셨다.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엄청난 운과 경험이었다. 쉬는 날에도 나와 로스팅 할 정도로 로스팅이 너무 좋았다. 내 손에서 뭔가가 이뤄진다는 게 너무 좋았다. 원두라는 재료 하나만 가지고 모든 향미를 표현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로스팅을 망치면 잠을 못 잤다. 어떻게 해야 무슨 향과 맛이 나는지 궁금한 게 많았고 하나씩 알아가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 후에 헬카페에서 일하면서 또 큰 영향을 받았다. 거기선 로스팅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일명 통돌이라 불리는, 유니온 반열풍 수동 로스터기로 커피 볶는 걸 재정비하는 시간이 됐다.  
 
연희동 플릿 커피연희동 플릿 커피
지금도 유니온 수동 로스터기를 사용하는데, 그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로스터기라고 생각한다. 수치화되어 있지 않아 다루기가 어렵지만 오히려 로스팅의 원리에 접근하기엔 제일 좋은 도구다. 하다 보면 그 안에서 나름의 체계가 생기고 얻는 게 많다. 헬카페 권요섭 대표님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로스터기다.  
 
로스팅 기준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볶을까’가 기준이다. 마실 때 입 안에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깨끗한 커피가 목표다. 어떻게 내려도 쓴맛이나 잡맛이 안 나게 로스팅 하는 게 목표다. 스스로 추출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에스프레소 1잔을 팔기 위해 10잔을 버려야 했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모든 걸 다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만큼 어렵고, 나 스스로 완벽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맛에 결점이 없도록 로스팅에 집중했다. 지금은 로스팅 한 콩 자체를 믿고 그냥 내린다. 커피를 할수록 드는 생각은, 오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리는 사람에 따라, 날씨나 기후에 따라 커피 맛이 변하는 게 싫어서 콩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의 잡내만 나도 다 버렸다. 콩은 타협을 안 했다.  
 
쓴맛도 커피의 한 부분은 아닌가? 좋은 커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쓴맛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안 좋은 쓴맛이 있고 좋은 쓴맛이 있을 뿐이다. ‘쓴맛이 강하다, 산미가 강하다’ 같은 평가를 떠나서 서슴없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이 카페에 가면 ‘커피가 맛있다, 맛없다’를 먼저 판단하는 게 싫었다. 커피에서 어떤 맛과 향이 나는지 즐겨야 하는데, 그걸 느끼기도 전에 ‘떫다, 쓰다, 시다’ 등에 먼저 반응하는 게 싫었다. 최대한 깨끗한 커피를 만들어서 다크 한 걸 선택하든 라이트 한 걸 선택하든 사람들이 커피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으면 한다. 잡맛이 없으면 커피의 향미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런 커피라면 사람들과 대화하든 일을 하든 커피 마시는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거다. 3~4잔 마셔도 속앓이를 안 하는 커피를 추구한다. 커피를 마시고 체한 듯한 느낌이 들거나 배가 아픈 건 카페인 때문이 아니라 커피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더치커피, 드립, 아이스티로 메뉴 구성을 한 이유가 있나?  
원두를 여러 개 중 고를 수 있어서 같은 드립과 라테라도 여러 종류가 가능하다. 써놓은 메뉴는 단순하지만 손님들이 원하는 취향의 커피는 다 만들어드린다. 오늘은 좀 다크 한 걸 마시고 싶다, 오늘은 달게 마시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만들어 드린다. 카페 오레도 만든다. 내가 만들 수 있다면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본인의 취향을 자유롭게 얘기해도 된다. 릴리브에서 일할 때도 그렇게 했다.
 
그 모든 커피가 다 플릿 커피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어차피 맥락은 같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잔을 마신다면 무엇을 추천하고 싶나?
드립 커피. 향을 제일 많이 느낄 수 있는, 차(tea)처럼 마실 수 있는 커피다. 드립이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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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  
드립 할 때 뜸 들이기(1차 추출)를 25초 동안 진행한다. 그다음 25초 동안 2차 추출을 진행한다. 그리고 250g이 될 때까지 천천히 물을 부어가며 3차 추출을 진행한다. 대략 2분 30초 정도에 끝이 난다. 1,2차 추출에는 매뉴얼 드립이라는 일본식 방법을 사용하고 3차 추출에는 푸어 오버라는 서양식 방법을 사용한다. 로스팅 할 때는 커피의 다양한 맛을 모두 살리는데 중점을 두지만 추출할 때는 오히려 1~2가지 강점 위주로 깔끔하고 얇게 뽑는다. 그게 맛을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다. 생두를 고를 때도 손님들에게 ‘무화과 주스 같습니다, 복숭아 티 같습니다’라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향미 위주로 선택한다.
 
서울에 좋아하는 카페가 있나?  
사직동에 있는 ‘커피한잔’을 좋아한다. 바리스타가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건 조심스러우면서도 감사한 일 같다. 커피도 맛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대표님이 커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술적으로 느껴진다. 오래된 유치원 같은 공간이다. 엄숙한 분위기가 전혀 없이 유치하고 멋있다. 나무도 삐걱거리고 장작을 사용해 직접 만든 로스터기로 콩을 볶아 시간을 거슬러 간 느낌도 든다. 메뉴 중 민트 모히토 아이스커피가 있는데 직접 키운 민트를 뜯어서 만들어주신다.  
 
잊을 수 없는 커피 한 잔이 있다면?
헬카페에서 권요섭 대표님이 내려주신 다크 로스팅의 드립이 처음 맛본 충격적인 커피였다. 이게 커피구나 싶었고 커피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5년 도쿄 키요스미에 블루 보틀이 처음 생겼을 때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이 원두 3가지를 로스팅 해 일본 한정으로 판매한 적이 있었다. 보케테 지역의 파나마 게이샤 1종, 아이다 바틀레라는 유명 농부의 엘살바도르 카스카라 1종, 케냐 프로세스의 하와이 1종이었다. 지인이 선물해 줘서 당시 일하고 있던 브루노에서 내려 마시는데 황홀할 만큼 그 맛이 짜릿했다. 커피의 산미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패키지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또 한 번은 ‘나무 사이로’에서 산미가 도는 리스트레토(단시간에 뽑아내는 적은 추출 양의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다. 신기하게도 자두 캔디 맛이 났다. 그 충격이 한참 지속됐고 커피에 대해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다.  
 
인스타그램에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플릿이라는 문화와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곳이 되고 싶다’고 썼다. 어떤 커피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나?
특별한 기술과 방법 없이도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고, 집에서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꿈꾼다. 여기서는 정수 필터를 쓰고 좋은 그라인더를 쓰니까 당연히 집에서 내릴 때와 맛과 향이 다르다. 집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이나 일반 생수는 좀 더 무거워서 산미가 잘 안 드러난다. 그런 변수조차 최대한 줄이고 집에서 쓴맛이나 잡맛 없이 편하게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로스팅 한다. 그런 의미로 도매 납품은 거의 안 할 생각이다. 그보다는 손님들이 사 가는 원두 한 패키지 한 패키지에 신경을 쓰고 싶다. 대량화되면 블렌드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고 맛이 단일화될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가장 조심하려고 한다. 추가로 매장을 낸다고 해도 중복되는 맛이 없도록 원두를 다양하게 구비해서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카페를 만들어보고 싶다. 로스팅 하는 제조실을 곧 구비할 예정이고, 온라인에서 원두도 판매하려고 한다.  
 
’플릿(Flit)’이란 이름은 무슨 뜻인가?  
벌레나 나비 같은 작은 생명체가 거처를 조금씩 옮겨가는 걸 말한다. 지금은 이 좁은 길가의 작은 카페지만 언젠가 서울 곳곳으로 거처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큰 움직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줄여나가는 게 목표다. 하다못해 의자, 콘센트의 위치까지도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하고 싶다. 그 생각이 바탕에 있다면 지금 설령 부족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 종일 매장에서 커피 내리고 끝난 후에는 또 밤까지 로스팅 하는 삶, 괜찮나?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다. 로스팅은 일이라고 생각 안 한다. 그냥 즐겁고, 아무리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체력을 유지하면서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Info.
플릿 커피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12
연락처 010-8850-0324
영업시간 월~수, 금~일 11:00~20:00, 목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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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 에디터 / 나지언
- 사진 / 박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