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거리 두기 형태로 돌아온 클래식 공연장

객석에서 바라본 객석 풍경.

BYESQUIRE2020.08.07
 

객석에서 바라본 객석 풍경 

 
늘 북적이던 예술의전당 음악당이 한산했다. 출입문은 몇 곳만 열렸고 그조차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잰 다음 신상 정보를 제출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서울시향 공연이 진행 중임에도 음악당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객석에는 카메라 몇 대와 관계자 몇 명이 전부였다. 나 역시 그날 공연의 리뷰 기사를 맡은 관계자로 자리했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모차르트 교향곡 39번은 출중했다. 관객을 모아놓고 현장에서 들려주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쉬울 만큼.
위 내용은 5월 29일의 일이다. 지금은 관객이 한 자리씩 떨어져 앉는 ‘거리 두기’ 형태로 공연장이 다시 돌아간다. 마스크 때문에 답답한 감은 있지만 현장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해하는 요즘이다. 일부 공연은 거리 두기를 시행하지 않고 꽉꽉 채운다. 관객이 많이 들고 상업성이 중시되는 뮤지컬이 특히 그렇다. ‘마스크를 쓰면 안전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려의 시선이 있으나 다행히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요즘 생각하는 게 많아진다. 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겼던 객석 풍경과 여러 경험이 새삼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그래서 객석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좌석 등급을 기반으로 풀어볼까 한다. 보통의 관객 한 명으로서 과거를 되짚으며.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주위에서 걱정할 만큼 심각하게 좋아했다. 로커가 되겠다며 기타만 긁어댔고 돈이 생기면 몽땅 음반 구입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공연 관람은 거의 하지 못했다. 내 고향 울산은 신흥 공업 도시여서 그런 인프라가 없었다. 큰 공연장은 고사하고 소극장조차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여전히 공연장을 찾지 않았다. 음반을 폭식하듯 소비하면서도 공연장만큼은 거리를 뒀다. 문제는 습관이었다. 공연과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란 탓에 거기가 어떤 곳인지, 거기서 뭘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오직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걸 고스란히 놓친 셈이다.
내 인식이 뒤집힌 건 10년 정도 지나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서울시향의 성장세가 눈부시다는 이야기가 계속 전해졌다. 2005년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정명훈 체제가 자리 잡으며 국내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고 아시아에서도 정상권으로 통한다고 했다. 귀가 솔깃했고 궁금증이 일었다. 슬그머니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티켓 가격이 얼마인지 살펴봤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C석 1만원. 한국 최고 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 그것도 세계적인 거장인 정명훈이 지휘하는 공연을 만원짜리 한 장으로 볼 수 있다고?
클래식이 제일 싸다. 지금은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이 간단한 진리를 나는 서른이 다 돼서야 알게 됐다. 대중음악과 달리 클래식, 발레, 오페라 등에는 세금이 제법 지원된다. 그래서 국내 지자체가 운영하는 예술 단체의 공연은 민간에서 기획한 공연보다 티켓 가격이 한결 저렴하다. 문화 복지의 일환인 것이다. 나는 그토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이걸 몰랐다. 오히려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비쌀 것이라는 편견만 가지고 있었다. 현실은 반대였다. 서울시향은 2020년 지금도 좌석의 상당 부분을 C석으로 책정해 만원만 받는다.
그때부터 난 서울시향 정기 공연의 C석 관객으로 출석하기 시작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준으로 C석 위치는 3층과 합창석. 3층은 소리 배합은 좋지만 거리가 멀고, 합창석은 거리는 가깝지만 소리 배합이 아쉽다. 내 선택은 3층. 티켓 오픈 시기에 맞춰 서두르면 3층 앞자리를 구입할 수 있는데 여긴 1~2층의 황금석 못지않은 만족도를 자랑한다. 거리가 다소 멀긴 해도 음향, 시야 모두 괜찮다. 만원짜리 한 장으로 누릴 수 있는 꽤 근사한 사치. 만약 이곳의 음악적 만족도가 낮았다면 난 공연장을 몇 번만 찾고 말았을 것이다. 정명훈을 직접 봤다는 데 의의를 두고. 지금까지 계속 찾는 건 이 자리의 음악적 만족도가 흡족했기 때문이다. 나를 애호가로 만든 건 바로 이 C석이다.
 
C석의 메리트는 이뿐만이 아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정숙한 태도로 음악에 몰입하는 수준 높은 관객이다. R석, S석 같은 비싼 좌석은 초대권이 제법 발행된다. 한국은 클래식 수요가 적기 때문에 티켓 판매만으로는 공연을 유치할 수 없다. 기업의 후원을 받고 거기에 티켓을 제법 제공하는 구도가 주류다. 후원과 입도선매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셈. 기획사가 후원 기업에 티켓을 제공하면 기업은 VIP나 직원들에게 티켓을 선물한다. 그렇게 티켓을 선물 받은 이들이 진지한 음악 애호가일 가능성은 낮다. 관람 분위기는 산만하며 때로는 ‘관크’(관객 크리티컬)로 불리는 벨 소리 등도 터진다. 그런 사고는 십중팔구 비싼 자리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C석에는 그런 초대권이 없다. 세상 어느 기업이 VIP에게 C석을 선물하겠나. 여기 자리한 사람은 모두 자기 돈으로 찾은 ‘찐’ 애호가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호주머니는 가벼운 사람들. 이들에게는 공연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숨죽여 음악에 몰입하는 분위기를 함께하다 보면 애틋한 동질감마저 인다.
오래잖아 C석에서 B석으로 발돋움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빠듯하진 않게 되자 B석으로 올라섰다. 서울시향 1년 치 정기 공연 B석을 시즌권으로 끊으면 30~40% 할인율이 적용되어 20만원대. 연말 예매 기간에 구입하고는 ‘내년 1년은 든든하겠군!’ 하며 뿌듯해하곤 했다. B석 위치는 3층 가장 좋은 자리 또는 2층 구석 자리다. 나는 양쪽을 반반 섞어 관람했다. 2층에서는 눈치를 살피다 더 좋은 자리로 메뚜기 뛰기 한 건 비밀로 남겨둔다. 뻔뻔한 행각임을 알면서도 ‘이 자리를 비워두는 건 음악과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B석 이후는 쾌속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치트 키’ 덕분이다. 예술의전당에서 객원 기자 모집 공고가 떴기에 지원했고, 요행히 선발됐다. 특전은 프레스 카드.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모든 공연과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진짜 치트 키였다. 나는 예술의전당에 살다시피 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한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까지 두루 섭렵하며 귀를 다졌다. 감히 쳐다보지 못했던 R석, S석을 누비면서. 관객의 계층과 분위기가 달라서 C석 같은 동질감은 느끼지 못했으나 시야, 음향은 확연히 좋아서 공부가 많이 됐다.
음악 관련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객석예술평론상 최종 후보에 연달아 올랐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음악 관련 글을 써달라는 매체가 하나둘 생겨났다. 음악계 글쟁이로서의 내 포지션은 ‘애호가와 전문가 사이에서 솔직하게 쓰는 사람’ 정도인 듯하다. 음악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전문성 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하지만 업계의 안과 밖을 잇기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음악계 사람이 아니기에 비판도 인맥, 학맥을 벗어나 솔직하게 쓸 수 있다.
현재의 나는 A석 관객이다. 여기에는 꽤 오래 머무를 전망이다. R석은 훌륭하지만 비싸서 부담스럽고 S석은 대체로 돈값을 못 한다. 업계에서는 ‘호구석’으로 통하니 클래식에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길 바란다. 결국 A석 위는 R석인 셈인데 가격 격차가 상당하다. 하지만 A석도 예매를 서두르면 R석 못지않은 황금석이 제법 있어 꽤 만족스럽다. 내 경제력과 만족도를 종합할 때 현재로서는 A석이 최선이다.
 
코로나19가 세계 공연 시장을 초토화했다. 공연장 문을 다시 연 건 한국이 최초이고, 다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추이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왕복 격리 기간 4주를 감내하고라도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도 은근슬쩍 들려온다. 미국, 유럽에 머물러봐야 연주할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어서 안전하게 종식되길 바란다. 마스크 없이 웃으며 음악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한 객석을 다시 보고 싶다.
 
WHO’S THE WRITER?
홍형진은 2010년 〈문학사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소설가이자 현재 경기아트센터 전문가 자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