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태풍 때문에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길래 지구를 어마어마하게 원망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비가 참 적당히 와서 사진도 잘 나왔고, 이걸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나 했어요.
하하. 모두의 기운이죠. 단편영화 같은 건 예산이나 일정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날씨가 예상과 달라도 그냥 촬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때도 보면 의외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은 또 이게 막 ‘결과물이 좋았다’ 하면서 기뻐하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요즘 장마랑 태풍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이 워낙 많으니까.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비가 적당히 오니까 괜찮은데, 또 좋다고 하기에는 비가 요즘 워낙 누군가에게는 힘든 이야기일 수 있으니까요.
재킷 뮌. 베스트, 팬츠, 슈즈 모두 프라다.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
아, 무슨 얘기요? 인터뷰를 되게 현장성 있게 하시는구나.(웃음)
아니, 제가 이렇게 질문지도 만들어 오고 시뮬레이션도 하긴 했는데요. 막상 그렇게 하려니까 지금 분위기가 좋아서요. 짜놓은 대로 하는 게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네, 저는 좋습니다. 현장성 있게 얘기 나누는 것 좋아요.
좋아해요. 좋아하는 만큼 포즈를 잘 못 취해서 문제죠. 오늘처럼 이렇게 야간에 야외에서 찍는 건 또 처음인데, 사진으로는.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제가 대학교 연극영화과 커리큘럼은 잘 모르긴 한데, 포즈 같은 것도 배우지 않나요?
글쎄요. 그런가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어떤 정서를 배우는 것 같은데… 이게, 사진에 찍히는 거랑 영상에 찍히는 거는 뭔가 좀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참여한 화보들은 다행히 좀 빌려올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교환 씨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걸 알고 좀 놀랐어요. 연기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게. 무의식중에 정석과는 좀 다른 연기를 하는 배우로, 좀 야인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예를 들면 그런 경우 있잖아요. 굉장히 특색 있게, 매력 있게 노래를 잘하는 것 같은데 뭐, 끝 음 처리가 어떻다느니, 소화할 수 있는 노래 스타일이 한정적이라느니 하면서 평가절하하는 경우. 교환 씨는 일단 목소리부터 탁 튀기도 하니까요.
다행히 저에게 연기를 알려주신 선생님들이 그러진 않으셨어요.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나 배우의 성질을 크게 존중해주셔서 그런 것들에 대해 크게 생각 안 해봤어요.
영화과를 나와서, 결정적으로 영화 제작 실습이나 여러 영화에 대한 메커니즘을 함께 공부한 게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프리프로덕션부터 후반 작업까지 그 시간을 다 함께 보낼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영화를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어, 영화가 꼭 감독이나 배우만의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사실 그런 것도 꼭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카메라만 있다면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면서도 겪을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굳이 이걸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그렇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지양하고 싶고. 어… 제가 말을 두서없이 하는데, 혹시 보충이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웃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구교환 배우 특유의 연기에 대해서 연상호 감독은 이렇게 표현했더라고요. ‘상업 영화 출신과도 다르고 연극무대 출신과도 다른 새로운 유형의 배우.’
그게 저한테는 굉장한 칭찬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배우로서 기분 좋은 얘기잖아요.
재킷, 셔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니트 톱 토즈. 팬츠 아더에러.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도〉의 서 대위 역할은 꼭 구교환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도 했고요.
이게, 연상호 감독님이 워낙 마케팅을 잘하시다 보니까. 호아킨 피닉스 뭐 이런 얘기하셨을 때도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연상호 감독은 〈반도〉 제작 보고회에서 구교환의 첫 촬영을 돌이켜 ‘호아킨 피닉스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문장이나 단어를 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연상호 감독님한테 많이 배웠는데,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지만 배급할 때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웃음) 영화를 소개하는 태도도 너무 좋으시고.
그런데 저도 교환 씨가 연기한 몇몇 캐릭터는 교환 씨가 아니었다면 성립이 안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4학년 보경이〉의 덕우도 그렇고… 왜 빌 머레이처럼,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기반 자체가 그 배우가 가진 독특한 톤인 경우가 있잖아요.
캐릭터가 상식선의 범주를 넘는 행동을 하는데도 그 배우가 하기 때문에 말이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배우의 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배우 자체가 내러티브가 되는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꼭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가 그런 작품을 되게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요. 반면에 조금 더 도화지처럼 들어가야 하는 작품도 있는 거고. 다 다른 것 같아요.
교환 씨는 특히 작중에서 ‘교환’ 역으로 나온 작품이 많잖아요. 워낙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고.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저게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캐릭터고, 어디까지가 인간 구교환일까 하고 궁금해질 때가 있었어요.
저라는 사람이 대사를 내뱉고 제 호흡으로 움직이다 보면 당연히 어떤 역할을 해도 저의 재질로 표현되는 부분이 있겠죠. 그건 당연한 것 같아요.
’짬뽕 먹을 때 단무지를 맨손으로 그냥 집어먹는 건 기철일까, 구교환일까?’(〈서울생활〉) ‘실제 구교환도 혼자 파스타를 열심히 만들어놓고 그걸 그냥 프라이팬째로 들고 국수처럼 젓가락으로 먹을까?’(〈웰컴 투 마이 홈〉) 뭐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어어. 그러네요. 아, 그런 부분… 맞네요. 제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장면에서는 제가 그냥 생각없이 하는 걸 좋아해서, 그냥 제가 가진 쪼(버릇)가 나오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그게 감독의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질 텐데, 어떤 감독님은 그렇게 작업하는 걸 재미있어하고요, 또 어떤 감독님이랑 할 때는 다 약속하고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요.
교환 씨는 연출도 하잖아요. 배우로 참여하는 작품에서는 아무래도 의식적으로 좀 조심을 할까요? 감독이나 스태프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서?
아뇨, 그렇진 않아요. 다가가는 태도 자체가 다른 일이기 때문에. 연기를 할 때는 제가 작가나 감독님이 만들어낸 세계관 속에 배우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반대로 연출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고. 각본, 감독, 연출자, 배우, 편집자, 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를 하는데요. 저도 그런 일들을 딱히 구분 짓지는 않지만 그냥 각자의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포지션이 다르니까.
네. 근데 혹시 지금 인터뷰가 잘되고 있나요? 혹시 제가…
독립영화계의 총아, 〈반도〉의 서 대위, 구교환을 만나다 part.2 더 보러가기〉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