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홍석천이 잠시 이태원을 떠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들

홍석천의 이태원, 원동력, 터닝 포인트.

BYESQUIRE2020.09.24
 
 
 
 
코듀로이 재킷, 데님 셔츠, 벨트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 리바이스.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코듀로이 재킷, 데님 셔츠, 벨트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 리바이스.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홍석천 

1971년 출생. 1995년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데뷔하고 이듬해 MBC 공채 탤런트로 다시 데뷔했다. 2000년 한국 연예인 중 최초로 커밍아웃했고 방송 활동이 중단되자 이태원 등지에서 외식 사업을 시작했다. 2003년 방송에 복귀해 드라마와 예능 등에서 활약 중이다.
 

① 이태원

홍석천 하면 이태원을 빼놓을 수 없죠. 홍석천에게 이태원은 어떤 공간인가요?
성공을 주기도 하고, 재기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했던 곳… 이태원에만 오면 마음이 정말 편해요. 저에게 이제는 고향이나 다름없죠. 고향에서 산 시간보다 이태원에서 산 시간이 더 기니까요. 제 청춘이 전부 이태원에 있어요.
왜 이태원을 첫 터전으로 삼은 건가요?
한국에서 좀 다른 존재들, 저 같은 사람들에게 이태원은 너무나 편안하고 안전지대 같은 공간이에요. 그래서 맨 처음에 가게를 열 때 이태원에서 시작했던 거고요. 이태원은 제가 커밍아웃하고 좌절한 뒤 재기를 꿈꿨던 곳이기도 해요.
이태원에 처음 왔을 땐 어떤 마음이었나요?
뉴욕의 소호라든가 첼시라든가, 홍콩의 란콰이펑이라든가, 세계 곳곳에 그런 게이 프렌들리한 동네가 있어요. 처음 이태원에 왔을 때 그런 동네를 생각했고, 여기가 그런 동네가 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마이첼시 폐업과 함께 잠시 이태원을 떠나게 됐다고요. 상인분들이 ‘고생했다, 당신은 이태원 전설이다’라고 현수막을 걸어주셨더라고요.
저는 마이첼시 폐업 준비하면서도 안 울었거든요. 어차피 잠시 쉬는 거라 생각했고, 분명 돌아올 거니까 울지 않았어요. 그랬는데… 그 현수막 보고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실 처음 왔을 때 나이 드신 동네 분들은 되게 구박하셨어요.(웃음) 연예인에다 게이로 커밍아웃한 사람이 가게를 낸다니까 보는 눈이 좋지 않았죠. 그래도 가게를 몇 개 더 내고, 매일같이 돌아다니면서 소통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턴가 동네 어르신들도 ‘홍 사장’이라고 부르면서 인정해주셨죠. 다 오래전 일이네요.
 

② 팔방미인

지난 25년 동안 직업의 저변을 엄청 넓히셨어요. 데뷔는 개그맨으로 했다가 배우, 작가, 자영업까지 했죠.
제가 어렸을 때 별명이 팔방미인이었어요. 여러 가지를 다 잘하는데 베스트는 아니었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어요. 또 지루한 것도 못 견디고, 은근 일중독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많은 직업 중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뭘까요?
배우요. 커밍아웃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이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 〈완전한 사랑〉이었어요. 그때 제 복귀를 반대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죠. 무서웠어요. 저 못 나오게 하려고 SBS 앞에서 시위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첫 리허설에서 김수현 선생님이 제 연기를 보고 “나쁜 배우가 아니네?” 하시더라고요. 리허설 끝나고 계단에서 펑펑 울었어요. 그때, 참 잘 선택한 직업이고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어요. 배우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저 같은 캐릭터의 배우들은 뭔가 다른 직업을 가져야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온전히 연기에만 집중하지는 못한 부분이 아쉽죠.
직업이 다양하다 보니 아픈 손가락처럼 미련이 남는 직업도 있을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를 정말 사랑했는데, 뮤지컬을 시작하자마자 방송에 데뷔하는 바람에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쳤어요.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 춤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뮤지컬 하는 동생들을 보면 너무 대단해 보이고, 부럽기도 하고… 다른 직업은 모르겠는데 뮤지컬은 아무래도 미련이 많이 남아요.
 
 
코듀로이 재킷, 데님 셔츠, 벨트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 리바이스.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코듀로이 재킷, 데님 셔츠, 벨트 모두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 리바이스.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③ 원동력

인스타그램에 25년 전 사진을 올리셨더라고요. 동안이라 그런지 그렇게 옛날 사진 같진 않던데 25세의 홍석천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때 노화가 이미 왔던 거 같은데.(웃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시골 사람 같은 순박함이 아직 있는 좋은 사람이에요.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가진 게 튼튼한 몸뚱이와 약간의 재능, 남들에겐 없는 센스 정도였다는 것. 그거에 더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하던 아이였죠.
25년은 굉장히 긴 시간인데 그 시간을 버텨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마이첼시를 정리한 날 밤, 아는 동생 녀석한테 연락이 왔어요. 형 가게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없어져서 너무 아쉽다,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제가 “나는 다 괜찮아.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실패한 게이가 되고 싶지 않아”라고 했어요. 이태원의 가게를 다 정리한 그날,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실패한 게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그 말…. 전 사람들이 “쟤는 게이라서 실패한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살아남겠다는 절박함이 정말 컸기 때문에 25년 동안 미친 듯이 일만 했던 것 같아요. 소수자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저도 다른 사람들과 대등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그 다짐이 계속 버틸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④ 터닝 포인트

따님이 올해 25살이에요. 25세에 커리어를 시작하셨으니까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마이첼시는 우리 딸이랑 같이 했던 거예요. 그 전에는 다른 가게에서 일 배우게 시켰는데, 처음으로 바닥 청소부터 공사까지 전부 다 맡기고 알아서 해보라고 한 거거든요. 그런데 얼마 하지도 못하고 접어버렸으니… 문 닫을 때 너무 서럽게 울더라고요. 스물다섯인데 뭐 어때, 하고 위로했더니 오히려 딸은 삼촌한테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둘 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죠. 코로나19 때문에 시대가 바뀌기도 했으니까요. 스물다섯 우리 딸도, 쉰인 저도, 터닝 포인트 삼아 같이 다시 해보자고 했죠.
지금 상황 외에 커리어에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라면 어떤 게 있나요?
〈남자 셋 여자 셋〉에 캐스팅됐을 때, 커밍아웃했을 때, 그리고 〈완전한 사랑〉으로 복귀했을 때가 가장 굵직한 사건이죠. 데뷔한 후에는 4~5년에 한 번씩 터닝 포인트가 온 것 같네요.
 
 
홍석천이 자신을 닮은 것 같아 아낀다는 조각상. ‘마이스카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

홍석천이 자신을 닮은 것 같아 아낀다는 조각상. ‘마이스카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

 

⑤ 75세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나요?
방송에 대해서는 항상 해요. 늘 불안한 일이니까요. ‘나의 쓰임이 어디까지일까?’ 같은 생각 때문에 매 순간 긴장하게 되고요. 사실 긴장감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죠. 외식 쪽은 ‘계속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제 그만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제 밑에서 외식업을 배운 동생들이 이젠 저보다 더 잘하고 있어서, 그런 걸 보면 이제는 뒤에서 내가 응원해주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이 워낙 잘하거든요. 그런 걸 볼 때 조금씩 지칠 때가 있어요. 그래도 가끔 25년 전 제가 가졌던 열정 어린 눈빛을 한 아이들을 보면 자극이 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요.
전에 용산구청장에 도전하겠다는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 생각은 여전한가요?
그건… 그때 기자분이 “이태원에서 이 정도 하셨는데 구청장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물어보시길래 대답한 게 기사가 된 건데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공직에서 일하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지 않아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그런 삶은 저랑 안 맞아요. 물론 이태원의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거예요. 청년 사업가나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한다든가, 그런 식의 아이디어는 많죠. 하지만 제가 구청장이라는 어떤 직위와 틀 안에서 움직이기에는 답답함이 클 것 같아요. 지금은 그래요.
나중에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에요?
70쯤 되면, 그때는 생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전혀 거기에 욕심이 없고요, 그때 얘기했던 것도 그냥, 꿈인데 뭐 어때요, 하는 생각? 그런 꿈을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였어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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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이기석
  • STYLIST 신은지
  • HAIR & MAKEUP 이소연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