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 미술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은 솔루션을 만들어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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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미술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은 솔루션을 만들어요"

<스위트홈>의 미술감독 이목원은 이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실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앞에 다른 숙제가 놓였다.

ESQUIRE BY ESQUIRE 2021.01.28
 
 

“미술감독은 솔루션을 만들어요”

 
〈스위트홈〉을 봤어요. 미술팀이 살린 디테일이 엄청났어요. 대단하던데요.
이응복 감독님이랑은 처음 맞춰본 거였어요. 감독님들마다 일하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거든요. 이 감독님은 현장에서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통틀어 열정이 가장 넘치는 분이죠. 궁금한 점이 많고,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고 계속 뛰어다녀야 하는 사람. 게다가 재밌고 엄청난 탐미주의자죠.
그러고 보니 〈도깨비〉나 〈미스터 선샤인〉도 영상이 꽤나 탐미적이죠.
감독님이 비주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니까요. 뭐랄까 같은 세트라도 〈도깨비〉를 생각하면 야릇한 느낌이 있죠.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아파트의 외관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에서 차용했다. 코트, 팬츠, 안경 모두 인터뷰이 소장품. BDU 재킷 22만9000원, 셔츠 9만9000원 모두 마티스 더 큐레이터.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아파트의 외관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에서 차용했다. 코트, 팬츠, 안경 모두 인터뷰이 소장품. BDU 재킷 22만9000원, 셔츠 9만9000원 모두 마티스 더 큐레이터.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미술 중 역시나 가장 큰 건 ‘아파트’죠?
맞아요. 그 특정한 아파트가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아파트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큰 문제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미술감독을 하다 보니 완전히 상상을 하면 핍진성(실제처럼 보이는 성질)이 떨어져요. 현실에 있는 요소들을 섞어야 가상인 듯하면서도 핍진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스위트홈〉의 아파트 역시 극에 필요한 조건에 맞춰 세 개 아파트의 여러 요소들을 섞었어요. 설정상 일제강점기 정도로 정말 오래된 아파트여야 했고, 주상복합이어야 했어요. 그런 아파트가 지금은 충정아파트밖에 없죠.
맞아요. 충정로에 있는 초록색 아파트.
그 아파트의 외관에서 색감을 차용하고 외부 형태는 남산 아래 있는 회현 제2시민아파트를 참고했어요. 한강이 보이는 강변북로 인근에 있어야 해서 입지는 실제로 강변북로 인근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참고했고요. 대구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주상복합의 요소를 참조했어요.
보면서는 진짜 아파트 하나를 통으로 빌렸는 줄 알았어요.
모든 조건이 다 맞는 완벽한 아파트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불가능해요. 가능하다고 해도 주민들에게 폐가 너무 심하고, 기물 파손 위험도 있고요. 다만, 아파트 세트장을 지을 때 실제 느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했죠. 예를 들면 바닥은 실제 마감재를 썼어요. 진짜 돌을 바닥에 깔았죠. 아무리 나무로 세트를 잘 만들어도 본 재료의 감각을 따라갈 수 없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미술감독이라고 하면 뭔가를 그리거나 손으로 만드는 걸 생각할 텐데, 오히려 실제로 하는 일은 건축가에 가깝네요.
그런 면도 있죠. 사실 미술감독은 ‘아트 디렉터’의 측면보다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번역이 더 정확해요.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뽑아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솔루션’을 주는 사람이죠.
 
완성된 KTX의 객실. 액션 장면을 찍기 위해 객실의 의자 사이 간격을 실제보다 조금 넓혔다. 넓히면서도 진짜 KTX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완성된 KTX의 객실. 액션 장면을 찍기 위해 객실의 의자 사이 간격을 실제보다 조금 넓혔다. 넓히면서도 진짜 KTX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전작을 예로 들자면 뭐가 있나요?
〈부산행〉이 솔루션이 필요한 작품이었죠. 〈부산행〉을 찍으려면 일단 기차가 필요하잖아요. 그중에서도 KTX가 필요했죠. 근데 KTX는 섭외할 수가 없어요. 한국에 있는 모든 노선이 다 운행 중이라 일단 노는 차가 없고, 설사 빌린다고 해도 빌리는 기간 동안 모든 좌석의 운행료를 지불해야 했고요. 안전 문제도 있었죠. KTX는 전기로 움직이잖아요. 전차 위에 고압선이 흐르는데, 사람이 근처에만 가도 빨려 들어갈 정도로 위험한 전기가 흘러요. 그럼 어떻게 KTX에서 벌어지는 일을 찍을 것인가. 그걸 고민하는 것도 미술감독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KTX를 세트로 만든 거군요.
그렇죠. 거기 나오는 기차가 총 16량인데, 한 3량 정도 만들어서 계속 리폼하며 사용했어요. 일반실을 특실로 바꾼다든지 하서면요.
의사결정권자로서의 빠른 판단력, 예산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항상 생각하는 프랙티컬한 직장인의 마인드가 전부 필요하겠어요.
그렇죠. 영화는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하루하루가 돈이거든요. 2, 3개월 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서 최대한 짧은 기간 내에 찍어야 해요. 괜히 어디서 아파트를 빌려보겠다고 노력하다가 엎어지면, 특히 촬영 직전에 변수가 생기면 정말 큰일 나는 거죠.
KTX 세트 역시 진짜 같았어요.
만드는 과정이 정말 복잡했어요. KTX 도면이 대외비거든요. 테제베에서 들여온 도면이라 계약 관계가 복잡해서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어요. 실제 KTX를 타고 서울-부산 구간을 수십 번 왕복하며 하나하나씩 자로 쟀어요. 화장실의 문손잡이 하나까지요.
 
〈부산행〉의 배경인 KTX의 세트를 짓는 과정. 이 감독은 이 세트 제작을 위해 수십 번 서울과 부산을 KTX를 타고 왕복했다.

〈부산행〉의 배경인 KTX의 세트를 짓는 과정. 이 감독은 이 세트 제작을 위해 수십 번 서울과 부산을 KTX를 타고 왕복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짬밥’이 정말 중요할 수 있겠어요.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누적된 경험이니까요.
맞아요. 의사 결정에서도 그렇지만, 세트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으려면 경험이 필요해요. 이미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 중인 〈비상선언〉에서는 비행기가 등장해요. 이런 비행기 세트는 일반적인 세트와는 소재부터 만드는 방식까지 다 달라요. 소재가 다르니 예산도 상이하겠죠. 노하우와 경험이 같은 걸 만들어도 더 적은 예산으로 만드는 인프라가 되는 거죠. 이런 걸 하려면 일단 겁이 많아야 해요.
오히려 겁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가끔은 좀 무모한 면도 있어야 하지만, 계속 겁을 내며 수시로 프로젝트가 움직이는 과정을 체크해야 해요. 예민하게요.
판단력도 워낙 중요하니까 술 마시면 안 되겠어요.(웃음)
작업할 땐 매일 마시는데요? 예술적 판단을 할 때는 술 마시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웃음)
근데 기차 만들고, 아파트 만들더니 이번에는 비행기를 만들었네요.
맞아요. 풀 사이즈(3열 이상인 광동체 여객기) 세트를 만들었어요. 심지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세트가 360도 회전하고 흔들리도록 짐벌(Gimbal)이라는 기계장치 위에 올렸죠. 아직 개봉 전이라 자세한 얘기는 못 할 것 같아요.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짓 지옥의 세트. 세트장 바깥의 그린 스크린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짓 지옥의 세트. 세트장 바깥의 그린 스크린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비상선언〉은 작품이 엄청 잘 나왔다는 소문이 이미 돌아요.
이걸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다 찍고 나면 편집을 한 다음에 헤드 스태프끼리 시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감독이랑 헤드 스태프인 미술감독, 조명감독, 촬영감독 등이 영화 편집본을 처음 보는 자리죠. 그냥 아주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TV 화면으로 사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하는 시청이죠. 대부분은 40대를 훌쩍 넘긴 아저씨들인 경우가 많으니, 이런 헤드 스태프 시사에서는 다들 감정을 좀 숨겨요. 사무적인 분위기 때문에 감정이 잘 올라오지도 않지만, 슬퍼도 참는 거죠. 근데 〈비상선언〉 보고 나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웬 아저씨가 울고 있더라고요. 편집이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사운드나 음악이 제대로 다 깔린 것도 아닌데 말이죠. 여기까진 말할 수 있겠네요.
일단 뭐 배우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박해준이잖아요.
송강호 선배님과는 이번에 들어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연이 닿았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어 영화 〈브로커〉를 맡았죠. 〈카트〉, 〈차이나타운〉, 〈부산행〉, 〈신과 함께-죄와벌〉, 〈염력〉, 〈신과 함께-인과 연〉, 〈생일〉, 〈스위트홈〉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생각해보면, 비주얼 프로덕션이 콘셉추얼하고 비중이 큰 것들이 많아요. 고레에다 감독은 성향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어느 가족〉이나 〈걸어도 걸어도〉에 등장하는 집안을 보면 그 자연스러움이 미술적으로 너무 완벽해요.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에 대작이 있긴 하지만, 이게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큰 도전일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한국에서 한국 스태프와 작품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비주얼도 바뀔 거고, 연기도 바뀌겠죠? 어떻게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단계예요.
아까 핍진에 대해 잠깐 얘기했는데, 일본인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보는 한국의 일상적 모습과 한국인 스태프들이 보는 한국의 모습 간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다르겠죠. 일단 일본은 프리프로덕션 단계도 짧고 촬영 기간도 짧아요. 예산도, 스태프 수도 적고요. 또 실제 공간에서 많이 찍거든요. 또 분명한 문화적 차이가 있을 거예요. 지금 단계에서 제 역할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한 옵션을 찾아서 감독에게 전달하는 거죠.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짓 지옥의 세트장. 색 조명이 입혀졌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짓 지옥의 세트장. 색 조명이 입혀졌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그건 감독의 해석에 동참하는 작업이기도 하네요.
그렇죠. 그의 해석에 어울리는 공간을 제안하려면 감독님이 그 공간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요. 그게 이 작업의 핵심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고레에다 감독과의 작업 외에 커리어에서 변곡점이라 할 만한 장면이 있나요?
두 개가 있어요. 우선은 〈카트〉란 작품이에요. 그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김우형 촬영감독에게 특히 많은 걸 배웠어요. 또 〈부산행〉이 정말 중요한 작품이었죠. 예산이 큰 상업영화를 맡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전작들이 미술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부산행은 설정이 강하다 보니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시각 특수효과나 특수 세트를 많이 만든 경험이 결국 〈신과 함께〉 시리즈와 〈반도〉, 〈염력〉, 〈스위트홈〉, 〈비상선언〉까지 이어진 거죠.
미술감독들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을 텐데, 거의 모든 장르를 다 해본 것 같아요.
맡게 되면 다 하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솔루션이 필요한 어려운 세트들 좀비가 나오거나, 괴물이 나오는 걸 좀 많이 했죠.
(웃음) 좀비와 괴물이 많다면, 아포칼립스 전문인 건가요?
물론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고 현대물도 있기는 하니까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아까 말한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영역이 제 도전 과제인 것 같아요. 특별한 공간을 핍진성 있게 만들어내는 건 이미 많이 해봤어요. 오히려 고레에다의 영화에 나오는 일상의 공간들을 그 영화의 내러티브에 맞는 자연스러운 미장센으로 꾸며내는 거죠. 일종의 고급 과정인 셈이에요. 제가 많이 배울 수 있는 감독님을 만난 것 같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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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S EDITOR 박세회
    FASHION EDITOR 임일웅
    PHOTOGRAPHER 김성룡
    HAIR & MAKEUP 스텔라심
    ASSISTANT 윤승현
    PHOTO 이목원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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