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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의 클럽하우스 대신 10대의 세계 제페토에 잠입했다

막상 경험해보니 클럽하우스와 제페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BY김현유2021.02.24
ZEPETO

ZEPETO

연일 클럽하우스가 난리다. 난리 난 장마당이라면 당장 뛰어들어보는 것이 에디터의 천성. 당장 가입하고 귀팅 몇 번을 거쳐 급기야 스피커로 나서보기까지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중독성이 심했다.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부터 직장생활의 애환, 미디어의 미래까지. 세상의 모든 주제를 떠들고 있어 어느 방이든 들어가 시간을 죽였다.
 
중독은 중독으로 끊는다. 클럽하우스를 끊으려 ‘제페토(ZEPETO)’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말로만 듣던 그 ‘젠지 세대’가 사랑한다는 SNS였다. 내가 제페토에 대해 아는 건 아바타를 기반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해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아바타라고는 ‘아바타스타 슈’밖에 모르는 90년대 출생 30대에겐 생소했다. 젠지 세대의 클럽하우스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접속했다.
ZEPETO

ZEPETO

가입 후 어플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셀카를 찍거나 사진을 제공해야 했다. 주말이라 세수조차 안 한 상태였지만 쿨하게 셀카를 찍었다. 이게 마법이다. 놀랍게도 제법 나와 닮은 얼굴이 아바타로 만들어진다. 대충 아바타의 윤곽이 잡히자 상세설정 페이지로 넘어갔다. 가입 축하금으로 받은 8500 코인 한도 안에서 아이템을 구매해 내 아바타를 꾸밀 수 있었다. 실제 ‘현질’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구찌 등 브랜드 의류도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물론 현질할 생각은 없었고, 4000 코인 수준에서 아바타 단장을 마쳤다. 그렇게 내 아바타는 제페토의 세계로 발을 내딛었다.
 
결국 제페토의 본질은 게임이었다. 학창시절 컴퓨터 수업 중 몰래 깔아서 했던 ‘바람의 나라’가 생각났다. 토끼나 다람쥐를 잡으면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맵에는 애니팡 같은 게임이 있어 게임을 수행하면 코인을 받을 수 있었다. 유저들은 서로를 모르지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다. 현질한 아이템을 잔뜩 두른 아바타는 주목을 받았다. 단순한 모양이던 게임 캐릭터가 정교한 아바타로 변했고, 접속할 수 있는 ‘맵’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바람의 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딱히 ‘요즘 것들’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라떼도 다 했던 거였다.
급식을 먹는 제페토 친구들/제페토 인스타그램

급식을 먹는 제페토 친구들/제페토 인스타그램

문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나이가 많은 게 티가 났던 걸까. 실물이 아닌 아바타인데 왜 나이 많은 게 티가 났을까? 제페토의 세계에서 자신의 쌩얼과 비슷하게 생긴 아바타를 가진 유저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인기가 많은 외모는 따로 있었다. 정말이지 ‘Snow White’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새하얀 피부에 툭 치면 넘어질 것 같은 마른 몸, 그리고 축 처진 눈과 그 눈을 뒤덮은 진한 아이라인, 눈 밑부터 뺨까지 칠해진 버건디빛 블러셔, “듀”라고 소리 내고 있는 듯 두툼한 입술이 남녀불문 미인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아, 이것이 2000년대생들의 미의 기준인 걸까. 자연스러운 미모(?)에 나름 자신이 있던 이모는 좌절했다. 아무리 봐도 저 아바타들은 예쁘지 않고 괴상했지만, 어린 친구들이 보기엔 내 아바타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제페토에 잠입한 남동생(27) 역시 실물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 아바타를 만들었다. 그런데 남동생은 인기가 많았다. 제페토에 여성 유저가 더 많아서일까? 남자 아바타는 어쨌든 비교적 더 큰 환영을 받는 듯했다. 수많은 여자 아바타들은 “오빠, 오빠” “아저씨, 아저씨” 하며 남동생을 에워쌌다. “오빠인지 아저씨인지 어떻게 알아?” 남동생이 묻자 여자애들은 “아저씨니까 그런 옷 입지”라고 반문했다. 남동생의 아바타를 본 편집장님이 ‘톰브라운 스타일’이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패션 감각이 부족한 건 아니었을 텐데, 제페토 세계에선 아저씨 옷이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한 여자 아바타가 남동생에게 구애했다. 접속 12분여 만이었다. 잠시 후 남동생은 또 다른 여자애에게 초대를 받아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은결혼식장이었다………. “오빠랑 결혼하려고 방 팠어!” 메이플스토리에서 연애하고 결혼식 올리던 게 떠올랐다. 남동생과 결혼을 감행(?)한 아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14살이었다.
남동생의 아바타를 둘러싼 ZEPETO 친구들.

남동생의 아바타를 둘러싼 ZEPETO 친구들.

소싯적 바람의 나라와 메이플스토리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점차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는 절대 실제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똑같이 생긴 아바타들끼리 서로 “너무 예쁘세요”라고 칭찬을 하는 게 아닌가. 아바타들은 하나같이 구찌 백을 들고 있었다. 현질을 2500원 정도 하면 구찌 백을 하나 살 수 있었다. 아니, 아바타한테 돈 들여서 구찌 백 들게 하면 현타가 올 것 같은데?! 그 모든 게 이제는 기성세대에 편입해버린 내 입장에서는 괴상한 풍경이었다… 라고 생각하던 중 나의 10대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중학교 때 일이다. 유행하던 레스포삭 크로스백(…)을 사고 싶어 용돈을 열심히 모았다. 그때레스포삭은 10만원도 안 했는데, 지금의 구찌는 100만원은 당연히 훌쩍 넘는다. 욕망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니, 싸이버 세상에서라도 갖고 싶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페토와 구찌의 협업

제페토와 구찌의 협업

제페토를 서너 시간 정도 하면서, 3040이 클럽하우스를 하고 10대는 제페토를 하는 이유를 새삼 생각했다. 클럽하우스에 접속하는 주체는 현실의 나다. 스피커가 되면 직업과 관심 분야에 대해 말한다. 장황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가짜는 없다. 철두철미한 현실의 공간이다. 하지만 제페토에서는 내가 나일 필요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를 닮은 아바타를 만드는 대신 태연이나 아이유처럼 예쁜 연예인의 사진을 써도 됐다. 온갖 이상한 이름을 써도 상관없었다. 제페토에서는 스마트폰 바깥세상 속 내가 누군지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10대와, 야트막한 지식을 두고 클럽하우스에서 떠들 수 있는 3040은 그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같은 이유에서 10대들은 제페토를 선호하고, 3040은 제페토를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여기 있는 10대들도 나이가 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바람의 나라에서 이상한 닉네임 달고 토끼 사냥하고 도토리 줍다 “님저랑사길래여” 같은 말을 듣던 내가 지금은 클럽하우스에서 실명으로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현실이 싫은 아이들이 제페토에 과몰입해 현실의 삶보다 제페토에서의 삶을 더 우선시할 수도 있고, 나쁜 목적을 가진 어른이 멀끔한 아바타를 한 채 아이들에게 접근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런 문제는 바람의 나라 시절에도, 메이플스토리 시절에도 제기됐던 것 같긴 하다. 기성세대들이 늘 하는 걱정인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클럽하우스와 제페토는 똑같이 SNS라는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전혀 다른 플랫폼이었고, 세대 간 SNS 활용법에 차이가 있으니 서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 와중에 클럽하우스를 끊기 위해 제페토에 접속한 주제에 또 꼰대처럼 ‘분석질’을 해 버린 거 실화냐. 아무래도 나는 클럽하우스형 인간인 모양이었다.
 
PS. 제페토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취재 겸 물었다. “얘들아, 너네 클럽하우스 알아?” 애들이 대답했다. “들어는 봤어.” 근데 어떤 애가 이렇게 말했다. “어. 우리 엄마 하던데 ㅋㅋ”
 
그렇다. 그들에게 클럽하우스는 엄마가 하는 어플이었다. 우리 사이 거리는 그 정도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