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EPETO
중독은 중독으로 끊는다. 클럽하우스를 끊으려 ‘제페토(ZEPETO)’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말로만 듣던 그 ‘젠지 세대’가 사랑한다는 SNS였다. 내가 제페토에 대해 아는 건 아바타를 기반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해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아바타라고는 ‘아바타스타 슈’밖에 모르는 90년대 출생 30대에겐 생소했다. 젠지 세대의 클럽하우스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접속했다.

ZEPETO
결국 제페토의 본질은 게임이었다. 학창시절 컴퓨터 수업 중 몰래 깔아서 했던 ‘바람의 나라’가 생각났다. 토끼나 다람쥐를 잡으면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맵에는 애니팡 같은 게임이 있어 게임을 수행하면 코인을 받을 수 있었다. 유저들은 서로를 모르지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다. 현질한 아이템을 잔뜩 두른 아바타는 주목을 받았다. 단순한 모양이던 게임 캐릭터가 정교한 아바타로 변했고, 접속할 수 있는 ‘맵’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바람의 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딱히 ‘요즘 것들’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라떼도 다 했던 거였다.

급식을 먹는 제페토 친구들/제페토 인스타그램
나와 함께 제페토에 잠입한 남동생(27) 역시 실물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 아바타를 만들었다. 그런데 남동생은 인기가 많았다. 제페토에 여성 유저가 더 많아서일까? 남자 아바타는 어쨌든 비교적 더 큰 환영을 받는 듯했다. 수많은 여자 아바타들은 “오빠, 오빠” “아저씨, 아저씨” 하며 남동생을 에워쌌다. “오빠인지 아저씨인지 어떻게 알아?” 남동생이 묻자 여자애들은 “아저씨니까 그런 옷 입지”라고 반문했다. 남동생의 아바타를 본 편집장님이 ‘톰브라운 스타일’이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패션 감각이 부족한 건 아니었을 텐데, 제페토 세계에선 아저씨 옷이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한 여자 아바타가 남동생에게 구애했다. 접속 12분여 만이었다. 잠시 후 남동생은 또 다른 여자애에게 초대를 받아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은결혼식장이었다………. “오빠랑 결혼하려고 방 팠어!” 메이플스토리에서 연애하고 결혼식 올리던 게 떠올랐다. 남동생과 결혼을 감행(?)한 아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14살이었다.

남동생의 아바타를 둘러싼 ZEPETO 친구들.

제페토와 구찌의 협업
여기 있는 10대들도 나이가 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바람의 나라에서 이상한 닉네임 달고 토끼 사냥하고 도토리 줍다 “님저랑사길래여” 같은 말을 듣던 내가 지금은 클럽하우스에서 실명으로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현실이 싫은 아이들이 제페토에 과몰입해 현실의 삶보다 제페토에서의 삶을 더 우선시할 수도 있고, 나쁜 목적을 가진 어른이 멀끔한 아바타를 한 채 아이들에게 접근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런 문제는 바람의 나라 시절에도, 메이플스토리 시절에도 제기됐던 것 같긴 하다. 기성세대들이 늘 하는 걱정인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클럽하우스와 제페토는 똑같이 SNS라는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전혀 다른 플랫폼이었고, 세대 간 SNS 활용법에 차이가 있으니 서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 와중에 클럽하우스를 끊기 위해 제페토에 접속한 주제에 또 꼰대처럼 ‘분석질’을 해 버린 거 실화냐. 아무래도 나는 클럽하우스형 인간인 모양이었다.
PS. 제페토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취재 겸 물었다. “얘들아, 너네 클럽하우스 알아?” 애들이 대답했다. “들어는 봤어.” 근데 어떤 애가 이렇게 말했다. “어. 우리 엄마 하던데 ㅋㅋ”
그렇다. 그들에게 클럽하우스는 엄마가 하는 어플이었다. 우리 사이 거리는 그 정도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