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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너머의 엄태구는 어떻게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part. 2
카메라가 담아낸 엄태구는 좀 다른 사람이다. 이 조심성 많고 순박한 남자와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는 멋쩍게 웃다가도, 특유의 거칠고 나직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것도 제 안에 숨겨진 일부이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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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너머의 엄태구
」영화 <낙원의 밤>에서 ‘태구’로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같은 태구라도 엄태구 씨와는 꽤 다르겠죠? 일단은 장르가 누아르니까.
박태구는 정통 누아르의 주인공에 가까운 인물인 것 같아요. 험난한 삶을 살았고,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제 더 험난해지는. 그런 정통 누아르 느낌에 전여빈 배우가 맡은 ‘재은’이라는 캐릭터가 신선한 느낌을 더해 잘 어우러지는 것 같고요.

블랙 재킷, 프린팅 셔츠, 블랙 팬츠 모두 벨루티. 스니커즈 뉴발란스.
정통 누아르의 주인공 느낌.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태구가 살아온 지난날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얼굴에서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거칠고, 지쳤고, 화가 나 있고, 그 모든 게요. 그래서 메이크업도 안 하고 선크림이나 립밤도 안 바르고 찍었어요. 체중도 9kg 정도 늘렸고요.
태구 씨의 멜로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 충족이 좀 되려나요?
글쎄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실 멜로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몇 년째 듣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금껏 했던 작품에도 다 멜로가 있었어요. <판소리 복서> <안시성> <구해줘2> <시시콜콜한 이야기> <차이나타운>….
그러네요. <어른도감>에는 베드신까지 있었고.(웃음)
맞아요. 생각해보면 멜로가 없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별로 멜로라고 생각을 안 하셨나 봐요.(웃음)
좀 더 애수가 흘러넘치는 정통 멜로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건 없죠.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원하고 있고, 태구 씨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다 보면 작품이 들어오겠죠.
지금껏 계속 그렇게 인터뷰했어요.(웃음) 하지만 없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도 좀 ‘센’ 캐릭터를 맡았네요. 태구 씨가 ‘반전 매력’으로 회자되는 게, 영화 <밀정>이나 드라마 <구해줘2>로 접한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거든요. 정말 지독한 악당과 안티히어로 연기를 했으니까.
네. 그런데 제가 다행히 생각보다 캐릭터를 다양하게 하고 있어서요. 앞으로 그런 캐릭터들을 많은 분이 보실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태구 씨의 소시민 연기를 아주 좋아해요. 그냥 특정 표현으로 설명하기 힘든,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요. <잉투기>의 태식이도 그렇고 <어른도감>의 황재민도 그렇고.
감사합니다.

블랙 레더 재킷 누마레. 블랙 데님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 블랙 로퍼 디올 맨.
그렇게 캐릭터가 입체적이다 보니까 상투적인 장면에서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 같고요. 왜 <어른도감>에서 재민이가 결국 도망가서 횟집에서 일할 때 그런 장면이 있었잖아요. 혼자 손바닥에 ‘참을 인’을 새겨서 삼키고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재민이 뭐 먹냐?” 물어보고, 재민이가 돌아보면서 “외로움이요” 하는 장면. 자칫 너무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정인데 마냥 애잔하고 좋았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배우가 했어도 잘 전달됐을 것 같아요. 저도 그 대사 좋았어요. 대본 볼 때부터 뭔가 짠하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고요.
황재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겁을 먹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김인선 감독님이 형이랑 같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데, <어른도감>이 장편 데뷔작이었어요. 감독님께 정말 중요한 작품이잖아요. 혹여나 제가 누를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겁이 난 거죠. 그 역할을 좀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래서 그런 마음이다,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는데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전 이상하게 배우님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저한테도 도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영화를 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출연 작품을 결정할 때 어떤 걸 더 많이 고려해요? 캐릭터와 작품성 중에?
저는 일단 작품입니다. 딱 그것만 보고 가진 않겠지만 작품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판소리 복서> 같은 경우에는 정말 희한한 영화잖아요. 주연인 태구 씨가 그 영화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했을지도 궁금했어요.
그 작품은 사실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재미있으니까, 대본이 좋으니까 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나 대사들도 매력적이었고, 단편도 진짜 매력적이었어요(<판소리 복서>는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롤:참회록>을 바탕으로 만든 장편영화다). 그래서 감독님 믿고 하기로 한 거죠. 작품이 참 따뜻했어요.
단편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권투 장면들이 실감 났다는 점인 것 같아요.
단편에서는 그냥 유머러스하게 처리하는 게 맞았는데, 장편으로 가니까 어느 정도 리얼 베이스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훈련을 진짜 열심히 했죠. 3개월 정도, 정말 선수처럼.
‘실제 권투 선수가 영화를 봐도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라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훈련한 게 이야기 자체에 끼친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단편과 달리 관객들로 하여금 ‘판소리 복싱을 시작하는 순간 이겨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잖아요.
그건 감독님의 능력이죠. 그리고 결국은 이기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본을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의 <판소리 복서>가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맞아요. 이겼으면 오히려 그 영화가 가진 묘한 분위기가 깨졌을 것 같아요. 병구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태구 씨의 실제 말투나 손동작 같은 걸 좀 확장시켰다고 했어요. 성격 면에서도 본인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요?
그런데 저는 모든 캐릭터가 다 저의 어느 한 부분이지 않나 싶어요. 어쨌든 제가 한 거니까 제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묻어 나왔겠죠. 그중 하나가 <판소리 복서>고, 또 하나가 <잉투기>고, <낙원의 밤>이에요. 다 제 안에 있는 모습들인 것 같아요.
당연한 말씀인데 새삼스럽기도 해요. 태구 씨의 경우에는 아예 사람이 180도 바뀌어버리니까. 캐릭터 빌딩은 주로 어떤 식으로 해요?
답은 없어요.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죠.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답이 없으니까요.
<밀정>의 하시모토를 연기하면서는 매의 이미지를 많이 떠올렸다고 했어요. <차이나타운>의 우곤을 연기하면서는 늑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했고요.
네. 그때는 딱 동물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렇게 했는데요. 요즘에는 그런 식으로 해본 적은 없어요. 딱히 떠오른 게 없어서. 캐릭터 빌딩을 하는 저만의 루틴이 있긴 한데, 아무튼 그때그때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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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런 건 꼽을 수 있을까요? 본인 출연작 중에 안타까운 작품? 좋은 작품이라서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작품?
<가려진 시간>이랑 <판소리 복서>요. <가려진 시간>은 사실 관객이 너무 안 들어서 안타까운 마음이고요. <판소리 복서>는 제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서….
<가려진 시간>은 형인 엄태화 감독과 함께한 두 번째 장편영화였죠. 감독 엄태화의 장점을 꼽는다면 어떤 점을 높이 사요?
평정심? 음… 한결같은 모습이 감독으로서 좋은 것 같아요. 배우들이랑 소통도 잘하는 것 같고. 그리고 또 편집으로 작품을 한 단계 낫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그런 거는 괜찮은 것 같아요.
장점이 많네요. 개인적으로는 <잉투기>나 단편들에서 특유의 유머 감각에 감탄했었는데. 각본에 끌렸던 적은 없어요?
물론 대본도 재미있죠. 그런데 형 작품 할 때는 그냥 ‘형 거’니까 했던 것 같아요. 대본은 저도 항상 좋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부분을 믿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형 거’라는 건 어떤 종류의 마음일까요?
말 그대로 형 거. 이걸 어떻게 풀어서…(웃음) 그냥 형 거니까 서로 좀 의지하고 도와준다? 그리고 서로 좀 배워간다?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스스로, 배우 엄태구에게서는 어떤 점을 높이 사요?
열심히 하는 거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물론 다들 다른 기준으로 열심히 준비하시겠죠? 저도 그중 하나로서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고… 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태구 씨가 스스로의 성격을 말할 때 ‘낯가린다’는 표현을 많이 썼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하고 보니까 낯을 가리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늘 눈을 마주치고 말씀하시니까. 그냥 조심스러운 게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심스러운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눈은 이제, 인터뷰하시는 데 다른 곳 보고 있으면 안 되니까요.
*엄태구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4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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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ASHION EDITOR 신은지
- FEATURES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윤지용
- HAIR & MAKEUP 이담은
- ASSISTANT 이하민/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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