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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너머의 엄태구는 어떻게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part. 1

카메라가 담아낸 엄태구는 좀 다른 사람이다. 이 조심성 많고 순박한 남자와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는 멋쩍게 웃다가도, 특유의 거칠고 나직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것도 제 안에 숨겨진 일부이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 아닐까요?”

BYESQUIRE2021.03.25
 
 

그 너머의 엄태구

 
촬영 어땠어요?
즐겁게 한 것 같아요.
그래 보였어요.
(즐겼던 건) 사실 처음이에요. 원래는 화보 촬영하면 되게 어색하거든요. 어제 다른 화보 촬영을 해봐서 그런가? 시작할 때부터 덜 어색했던 것 같아요.
덜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하시던데요. 이것저것 표현해보고 싶은 것도 많으신 것 같았고, 그게 대체로 감각적이었고.
그건 이제 좀 습득한 거죠. 어제 여빈이(어제 화보 촬영을 함께한 배우 전여빈) 하는 것 보고.
 
화보 촬영을 연기와 연결된 작업으로 생각하는 배우들이 좀 있더라고요. 몰랐던 자기 안의 면모들을 발견하는 실험의 장 같은 느낌으로. 반면에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인데도 유독 화보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고요.
어… 저는 그렇게 깊은 뜻은 없었고요.(웃음) 연기에 비해서는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기는 어쨌든 중압감이 크니까. 화보 찍을 때는 좀 더 즐겁게, 웃으면서, 놀면서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고,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의외로 포즈를 굉장히 잘 취하셔서 놀랐는데, 또 다른 방향으로도 놀랐어요. 그냥 무표정으로 서 있어도 카메라에 잡혔을 때 얼굴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건 좋게 봐주셔서 그렇죠. 제가 직업이 배우라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이렇게 찍으면 아마 각자의 이야기가 다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그런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양조위 닮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오늘에야 알겠더라고요.
어유. 그건 〈판소리 복서〉에서 웃기려고 한 대사였어요. 진지한 대사가 아니었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셨지 않나요?
그게 뭐냐면, 〈차이나 타운〉 제작사 대표님이 촬영 때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데 그 대표님이 〈판소리 복서〉 제작도 하셨기 때문에 갑자기 그게 생각나서 한 거예요. 그것도 제가 그렇게 대사를 정한 게 아니라 테이크 갈 때마다 계속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꿨거든요. 그런데 양조위로 한 테이크가 선택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사실 비교하기 힘들죠.
굉장히 민망해하시지만 어쨌든 저는 기사에 쓰겠습니다. ‘엄태구의 눈은 양조위를 연상하게 한다.’
(녹음기 쪽으로 몸을 숙이며) 제 의견은 아닙니다.
 
블랙 오버사이즈드 재킷 준지. 블랙 프릴 셔츠 73 런던 by 매치스패션. 데님 팬츠 레이 by 매치스패션. 블랙 로퍼 디올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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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화보 촬영 즐겁게 잘하시는 것도 의외였는데, 인터뷰도 그렇게 어려워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예능이나 시사회에서 본 이미지는 굉장히 과묵하고 낯을 가리는 것 같았거든요.
〈바퀴 달린 집〉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선배님들과 함께 촬영하다 보니까 더 그렇게 보였을 것 같아요. 그건 그냥 제 여러 모습 중 일부분이고요. 친구나 가족이랑 있을 때까지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주장하기에는 엄태화 감독(엄태구의 형은 영화감독 엄태화다)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 와서 그랬다고. “태구가 집에서 말을 안 해.”
(웃음) 뭐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옛날 얘기고요. 지금도 말이 많진 않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얘기를 좀 더 하려 하고 그렇게 변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노력을 하는 거군요.
노력이라기보다… 어릴 때는 성격을 바꿔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일에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더 어색해지더라고요. 상대방도 어색해하고, 저도 어색하고. 그래서 그냥 뒀는데 오히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좀 나아졌어요. 말수도 늘고,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도 편하게 나누는 것 같고. 조금씩이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또 다른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동안 일이 안 들어와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신 적이 있다고 했어요. 장애물이란 건 그런 부분일까요?
그것도 그렇고, 일이 들어와도 현장에서 너무 긴장을 하니까요. 계속 그러다 보면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사실 그런 성격의 10대 청년이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신기한 일이죠.
이건 많이 했던 얘기인데, 교회 친구가 있었어요. 정말 잘생긴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가 교회에서 드라마나 수련회 홍보 영상 같은 걸 찍자고, 연기학원을 같이 다니자고 설득했어요. 도서관 계단에 앉아서 거의 40분을 그러더라고요. 저는 또 그걸 되게 진지하게 들었거든요. 그래서 알겠다,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 그렇게 진짜 뭣도 모르고 시작한 거죠.
 
와이드 칼라 재킷, 블랙 이너 톱 모두 김서룡. 데님 팬츠 레이 by 매치스패션.

와이드 칼라 재킷, 블랙 이너 톱 모두 김서룡. 데님 팬츠 레이 by 매치스패션.

그 친구는 태구 씨의 어떤 재능을 본 걸까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친하니까.(웃음) 그렇게 설득해놓고 지는 미술학원 끊었어요. 지금도 의상 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고요.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어도 금방 그만둘 수도 있었잖아요. 그래도 재미있었거나, 어느 순간 자신의 연기에 대해 확신이 생겼던 거겠죠?
그때그때 달랐던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어서 했던… 때가 있었나? 그냥 제가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으니까 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막연히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떨 때는 ‘이 정도면 그래도 좀 잘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돌이켜보면 진짜 웃긴데.
이렇게 설명을 들어도 신기한 것 같아요. 태구 씨가 10대 때면 ‘배우를 하려면 끼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심했던 시대잖아요.
제가 몇 년 전에 우연히 초창기 작품을 다시 본 적이 있어요. 형은 대학 다닐 때였고 저는 재수인가 삼수인가 할 때 찍은 거였는데. 와, 정말 ‘연기치’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형한테 “이때 재능이 없다고 왜 말해주지 않았냐” 그러니까 형이 그러더라고요. “그땐 나도 몰랐지.”(웃음) 뭐 그래도 그 후로 19년 정도가 흘렀으니까요. 많은 일이 있었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고. 지금이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게 맞는 대답인가요? 왜 이런 얘기를 했지? ‘끼 없다’는 표현 때문에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은데, 히터도 나오고 제가 약간 몽롱해지고 있나 봐요.
재미있는 얘기였어요. 앞으로도 생각나는 대로 뭐든 말씀해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태구 씨가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특히 전 그럴 때 좋아 보이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극찬을 받을 때도 ‘아닙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요.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자고 생각한 거예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야지 하고. 오히려 그게… (침묵) 아닙니다. 얘기가 너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해주세요. 저 잘 듣고 있어요.
그게, 음… 어쨌든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게 예의라고 해야 할까요? 제 느낌에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하는 게 상대방이 해주신 말에 더 맞는 답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아요.
뜸 들이는 동안 여러 예측이 떠올랐는데, 다 빗나갔네요. 사소한 대꾸 한 마디도 진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 거였군요.
아니에요. 별 볼 일 없습니다.
아, ‘아니에요’ 나왔다.
그때그때 다릅니다. ‘감사합니다’ 할 때도 있고, ‘아닙니다’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엄태구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4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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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너머의 엄태구는 어떻게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part. 2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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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ASHION EDITOR 신은지
  • FEATURES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윤지용
  • HAIR & MAKEUP 이담은
  • ASSISTANT 이하민/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