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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종 후보, 에릭 오 감독이 증명하려는 것

픽사 출신,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 ‘사기캐’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예정이다.

BYESQUIRE2021.03.28
 
 

에릭 오의 증명

 
한국에서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이제는 이런 ‘언택트’에 참 많이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지금 미국에서는 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거든요. 이런 인터뷰도 그렇고, 업무도 그렇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비대면으로도 가능한가 봐요.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디지털 세상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재택 시스템이 다른 장르에 비해 빨리, 잘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넷플릭스 작품 〈ONI〉도 전부 재택으로 제작 중인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웃음)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우선 축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에릭 오 감독의 〈오페라〉가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쇼트 부문 후보 최종 심사에 올랐잖아요. 정말 축하드려요.(*인터뷰 이후 〈오페라〉는 아카데미 최종 후보로 호명됐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직 마지막 한 발자국이 더 남아 있지만,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아직도 실감은 안 나네요.(웃음)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닌가요?(웃음)
겸손하기보다는… 만약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직접 후보가 됐다는 것을 느꼈을 텐데 말이죠.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인터뷰가 전부 제 방에서 이뤄지고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더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직접 뵙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네요. 〈오페라〉는 어떤 작품인가요?
표현 방식과 주제 의식, 두 가지로 나눠서 말씀드릴게요. 〈오페라〉는 전시 형식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작품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인 단편영화와는 좀 다른 게, 전시 공간에 프로젝션 매핑으로 쏴 몇 번을 돌려보며 감상하는 방식으로 기획됐거든요. 극장에 앉아서 관람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부분이 있죠. 그리고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우리,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거예요. 수많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다루면서, 비교적 적나라하게 삶과 사회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서 픽사와 디즈니가 〈오페라〉의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점이 아카데미와 픽사, 디즈니의 마음을 끌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내용 자체가 적나라한 부분이 있거든요. 보통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일이 더 많잖아요. 가족애나 희망, 사랑, 꿈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오페라〉는 훨씬 사회적인 내용이라, 그 점을 흥미롭게 봐주신 것 같아요. 또 한 가지는 표현 방식이죠. 〈오페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과 룰을 완전히 깨려고 시도하는 작품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대중 애니메이션의 선봉에 있는 픽사와 디즈니, 그리고 평단의 인정을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 〈오페라〉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물론 만나보실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에요. 그런데 정확한 날짜는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코로나19로 인해 아쉬움이 많네요. 그럼 〈오페라〉 말고 에릭 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에릭 오를 다룬 옛날 기사를 봤는데,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가득하더라고요.
(웃음) 너무 옛날이야기 같은데요. ‘엄친아’라는 표현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데.
요즘 표현으로는 ‘사기캐’ 정도 되려나요. 서울대학교와 UCLA 출신이고,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픽사에서 일한 이력이 붙여준 별명이겠죠.
일단 칭찬이니까, 감사하게 받아들이긴 했는데 글쎄요. 저는 그 말이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한국이 아닌 곳에서 혼자 영역을 확장해나가면서 도전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요. 또 비슷하게 경쟁하는 사람들 틈에서는 제가 ‘엄친아’도, ‘사기캐’도 아니었거든요. 너무 대단한 분들이 항상 제 주변에 계셨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런 수식어가 붙었는지는 알고 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제 이력만 보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제 입장은 조금 달랐던 게, 그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가는 동안 저는 늘 싸우면서 지냈어요. 우선 서울대 미대는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홀로 독학을 해야 했고, UCLA에서는 영화를 전공했기에 또 애니메이션을 혼자 작업해야 했어요.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순간 제가 ‘동양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거든요. 픽사에서는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 환경 안에서 계속 적응하고 노력해왔죠.
미국에서 나고 자란 것과는 별개로, 동양인으로서 살아남는 건 어려운 일이었던가 봐요.
그렇죠.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중학생 때 잠시 다시 미국에서 살았어요.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웠고, 미국 문화도 직접 접했던 거죠. 하지만 동양인으로서의 입지는 비단 언어의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그 덕분에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과는 달리 굉장히 도전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오페라〉 스틸컷.

〈오페라〉 스틸컷.

보수적이라는 서울대 미대에서도 서양화를 전공했잖아요. 그야말로 ‘순수미술’인데,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일단 저의 어린 시절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저는 ‘디즈니에 가고 말 거야’라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 서양화과에 간 것이기도 해요. 어린 시절의 저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할 수 있는 학과가 있는 줄 몰랐어요. 서양화과라니까 단순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던 거죠.(웃음) 한편으로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좀 더 탄탄하게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예술 전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봐요.
어떤 점에서요?
어떤 비주얼 아트든 간에, 그게 디자인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심지어 영화든 간에, 그 기본에는 순수미술이 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을 품은 건 대학교 3학년 2학기 무렵이었어요. 스토리텔링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예술이라는 건 어차피 스토리텔링이잖아요. 한 폭의 회화가 됐든, 시가 됐든, 결국에는 이야기를 전하는 게 목적인 거고요. 어떻게 화폭을 통해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 그렇게 사랑했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어요. 그러고 보니 애니메이션만큼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특화된 매체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애니메이션을 독학했어요. 졸업 작품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요. 그걸 세상에 내놓으면서 더 깊게 깨달은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고, ‘난 이 일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이후 미국에서는 UCLA에 들어가 영화를 공부하게 됐어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를요?
그 당시 저는 애니메이션이 순수미술과 영화 문법의 중간에 놓여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범위가 굉장히 넓기도 하죠. 같은 애니메이션이라도 영화 문법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은 픽사나 디즈니의 작품처럼 될 것이고, 순수미술에 가까우면 실험적인 비디오 아트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꽤 재미있었거든요. 순수미술은 이미 공부해봤으니까, 이제 영화 문법을 공부하고 나면 스스로 애니메이션을 정의하고 만들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선택했죠.
UCLA에서 공부를 마친 뒤에는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픽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UCLA를 마치고 픽사에 들어간 경력 때문에 더더욱 ‘사기캐’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픽사도 회사잖아요. 스토리만 만드는 팀, 디자인만 하는 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팀 등 부서가 다양하게 나눠져 있거든요. 상식적으로는 일하고 싶은 부서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제출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UCLA에서 공부하던 당시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제 개인 작품 활동에만 매진했거든요.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제 작품 모음집을 픽사에 제출했어요. 픽사 입장에서는 ‘얘 뭐야’ 싶었을 거예요.(웃음) 〈토이 스토리〉 속 우디나 버즈 같은 캐릭터들의 애니메이팅을 연습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만든 작품만 떡하니.(웃음) 그런데 픽사도 참 열린 회사인 게, 제 작품 모음집에 뭔가가 있어 보이니까 인턴으로 뽑아준 거예요. 이 친구가 실력이 있고 작품관이 있어 보이니, 픽사의 방식에 잘 적응해서 따라와주면 그때 정식으로 고용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완전 ‘벽을 넘은 천재’ 같은 느낌인데요?
아니에요, 아닙니다.(웃음)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인턴이 딱 10명이었는데, 저를 제외한 9명은 곧바로 애니메이팅 작업에 투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레디메이드’ 된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웃음) 그 당시 굉장히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들어보면 스토리텔링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픽사의 스토리팀이 아니라 애니메이션팀에 들어간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사실 굉장히 긴 이야기인데, 저는 특정한 부서에 지원한 건 아니었어요. 픽사에서 인턴을 뽑는다니까 해봐야지, 그런데 애니메이팅을 연습한 적은 없으니 그냥 내가 만든 작품들을 보내야겠다, 그런 의식의 흐름으로 낸 거거든요.(웃음) 마음 한편으로는 스토리팀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를 고용하겠다고 한 게 애니메이션팀이었던 거죠. 저는 당시 어린 학생이었으니까, 픽사가 나를 고용해준다니 무조건 ‘오케이’를 한 거고요. 언젠가 스토리팀으로 옮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스토리팀으로 옮기지는 못했던가 보네요.
열린 회사인 픽사지만 회사는 회사인 게, 부서 이동이 어렵더라고요. 픽사잖아요. 완전히 전문 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팀으로 넘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정식 고용이 된 후에는 굳이 스토리팀으로 옮기겠다며 노력을 쏟진 않았어요. 그 시간에 개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픽사에서 애니메이션을 한 것이 아쉽다거나 한 적은 전혀 없어요. 가서 아주 재미있게 작업을 했고, 애니메이팅도 정말 좋아하고요.
픽사 내부에서는 애니메이터가 개인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제한은 없었나 봐요.
워낙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잖아요.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엄친아’ ‘사기캐’가 절대 아니었고요.(웃음) 픽사는 이런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말 잘 아는 회사였어요. 그들은 절대 강압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거든요.(웃음)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와 숨 쉴 구멍을 주면 훨씬 더 능률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사람들인데, 픽사에는 그런 환경이 너무나 잘 조성돼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틈틈이 개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죠.
픽사에서의 작업과 개인 작품 활동이 동시에 진행될 때가 있었을 텐데,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픽사에서 나온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제 작품이 아니죠. 그건 감독님과 작가님이 따로 계시니까요. 픽사에서 나오는 작품은 워낙 초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 번 제작하는 데 4~5년이 걸려요. 들어가는 인력도 600명 정도 되고요. 그중 한 명의 연기자로서, 애니메이터로서 최선을 다해 감독님과 작가님의 스토리를 표현한 거죠. 반대로 제 작품은 규모가 비할 데 없이 작죠. 하지만 여기서는 제가 왕인 거예요. 모든 걸 기획하고, 연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 선택으로 움직이니까요. 픽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농담을 했어요. 픽사는 엄청나게 큰 크루즈고, 우리는 한 명이 어떻게든 몰아가는 조그만 돛단배.(웃음) 근데 크루즈가 움직이려면 정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잖아요. 돛단배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 수 있지만요. 한편으로 돛단배는 몰아치는 파도에 그냥 엎어져버릴 수 있고, 크루즈는 안정적이죠. 그렇게 장단점과 특성이 달랐던 것 같아요.
 
〈오페라〉 포스터.

〈오페라〉 포스터.

픽사에 머물면서 개인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왜 픽사를 떠났나요?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픽사는 많은 사람의 꿈일 정도로 정말 대단한 곳이잖아요. 반대로 한편으로는 굉장히 쉬웠어요. 영화로 예를 들자면, 저는 배우가 아닌 감독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픽사에서는 배우였던 거거든요. 그것도 무척 안정된 삶이 보장된 배우. 하지만 제 꿈은 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었으니까, 이쪽에 더 값진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사실은, 실패해도 그냥 다시 픽사에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내 생애 최고의 실패가 픽사로 복귀하는 거라면, 이건 잃을 게 없는 거니까요.(웃음)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고 도전했고,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도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군요. 픽사와는 다른 에릭 오의 스타일은 뭘까요.
이제 10년 차 정도 됐거든요. 이렇게 ‘짬밥’이 쌓이고, 제 포지션이 어느 정도 잡힌 상황에서 돌아보니 제가 아주 초창기 때부터 도전했던 것들이 점점 인정받고, 증명되고 있는 것 같아요. 에릭 오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라고 할까요. 예전부터도 표현 방식에 있어 답습된 어떤 룰을 따라가는 걸 지양했거든요.
규격화된 룰에 반기를 드는, 그런 반항적인 것을 추구하신 건가요?
아뇨. 그 반대였던 것 같아요. 해야 하는 걸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그걸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추상화의 예를 들어볼게요. 캔버스 위에 찍찍 물감을 그었다고 추상화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제대로 된 깊이 있는 추상화는, 그린 사람이 매체나 기법이나 방식을 완벽히 마스터한 뒤 그걸 해체하고 초월했을 때 나오죠. 저는 그런 규격화된 룰을 넘어서기 위해 그 안에서 해야 하는 공부를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실험적인 표현 방식이나 내용에 대한 도전들을 계속 해나가다 보니, 사람들이 봐주기 시작하더라고요. 맨 처음에 얘기했던 〈오페라〉도 틀을 많이 깬 작품이에요. 〈오페라〉를 완성한 게 1년쯤 전인데, 그걸 끝내자마자 제가 바로 들어간 게 VR이었어요. 〈나무〉라는 작품인데, 그건 올해 초 선댄스 영화제 공식 상영작으로 선정됐어요. 지금은 넷플릭스 시리즈의 감독을 맡고 있는데, 그건 완전 전통 내러티브 기반의 작품이 될 예정이거든요. 〈오페라〉 같은 전시형이든, 〈나무〉 같은 VR이든, 그리고 전통 내러티브든, 그 모든 걸 아우르면서 계속 도전해나가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할 거고요.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 위주로 돌아가는 면이 있어요.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전무하다시피 하죠.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상황은 아니죠. 물론 〈뽀롱뽀롱 뽀로로〉처럼 좋은 작품들도 있어요.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없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저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한국에도 존경할 만큼 멋진 동료 감독님, 작가님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해외에도 정말 열심히 하는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많고요. 이런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시다 보면 작게나마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세대적인 변화도 일어나고 있어요. K팝부터 시작해서, 한국 웹툰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으니까요.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물려 한국 애니메이션도 ‘버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아직까지 특출난 개인이 ‘하드 캐리’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열심히 하다 보면 변화하는 부분이 드러나겠죠.
에릭 오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미국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서 더욱 빛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은 애초부터 다문화, 다인종, 다언어의 나라잖아요. 한국에서는 가끔 ‘미국 국적자’라고 규정지어질 때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게 없거든요. 저는 그냥 ‘한국 사람’ ‘코리안 아티스트’인 거예요. 국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오리진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꾸준히 활동하고,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10년 차 짬 얘기를 하셨는데, 애니메이터로 살아온 시간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일까요.
지금이지 않을까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건 잘된 것, 좋은 결과물이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실패가 있고, 깎여나간 자존감도 있죠. 그 모든 것을 딛고,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증명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기뻐요.
다음 스텝은 어디로 나아갈 예정인가요?
일단 작품적으로는 〈오페라〉가 잘됐으면 좋겠어요.(웃음) 〈오페라〉를 통해 전시 예술 부문에서 인정을 받고 싶거든요. 조금 낯간지럽지만 루브르 박물관이나 MoMA 같은, 아트신에서 인정받는 기관에서 〈오페라〉가 상영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예술적으로 표현될 수 있구나’ ‘이런 확장성이 가능하구나’라고 느끼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오페라〉의 첫 취지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스파크를 더 많은 분께 드리고 싶어요. 계속 도전해나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