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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주민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고 있는 이유

왜 신재생에너지는 농촌에서만 뽑나?

BYESQUIRE2021.05.10
 
 

왜 신재생에너지는 농촌에서만 뽑나?

 
온갖 현수막이 내걸린 농촌은 그야말로 풍력, 태양광 난투장과 다름없다. ‘농지 파괴, 산림 훼손이 그린뉴딜이냐!’ ‘풍력, 태양광 발전 시설보다 사람이 먼저다!’ ‘최우량 절대농지에 무분별한 태양광 사업 반대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풍력이니 태양광이니, 언뜻 보기에도 자연을 위한 길 같은데 이를 반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농촌에 내걸린 현수막들은 어찌 보면 ‘님비’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롭고, 조금 더 번거로운 신재생에너지를 마냥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로 비쳐지는 것이다.
 
풍력과 태양광은 가장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다. 지난해 여름,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장마를 통해 느낄 수 있었듯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의 이야기다. 이 때문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에 가깝게 만드는 ‘탄소중립’이나, ‘신재생에너지 전환’ 같은 단어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과제처럼 여겨지며 최근 들어 급부상했다. 정부 역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독려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자는데 농촌 주민들은 왜 반대할까? 문제는 막대한 예산과 지원 정책을 등에 업은 풍력·태양광 발전 시설 절대다수가 농촌에 ‘만’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무작정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농촌에는 그럴 만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의 신재생에너지 반대 투쟁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내막을 살펴보기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그들은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시설보다 사람이 먼저다’ 등의 현수막을 걸고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실컷 해놓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은 신재생에너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반감을 갖고 있지 않다.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 중 한 가지가 바로 농업이고, 농민들은 기후변화가 ‘위기’로 부각되기 전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왔다. 그런 입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위기로 감지하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은 농민들에게도 일부나마 긍정적이다. 이들이 반대하는 건 신재생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일방적이고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방식과 그 파괴성이다.
 
현재 수천, 수만 평의 농지와 농촌 마을 주변 곳곳에는 태양광 패널이 깔리고 있다. 주민들은 중장비가 들어선 후에야 패널이 설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풍력과 태양광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필수 절차가 아니라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게다가 적은 인구가 넓게 흩어져 거주 중인 농촌의 특성상 직접 장비가 설치되는 지역이 아니더라도 행정구역으로 묶인 옆 마을 주민 단 몇 명의 서명으로 법적인 주민 동의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 그만큼 현행 제도에는 구멍이 많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농촌에서 벌어지는 일을 도시로 가져온다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바로 앞 동을 하루아침에 번쩍이는 태양광 패널로 죄다 덮어버리는 셈이다. 하루 종일 번쩍이는 태양광 패널이 우리 집 앞에 설치되는데, 우리 단지가 아닌 옆 단지 주민 서너 세대에게만 동의를 구하면 된다는 뜻이다. 가당키나 한가? 또 다른 예시를 들 수도 있다. 열심히 발품을 팔고 시장 조사를 거친 끝에 문을 열어 10년 넘게 잘 운영한 가게를 임대인이 투기꾼에게 팔아넘기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빼앗겨버리는 것과도 비슷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일들이 실제로 지난 몇 년간 농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져왔다. 농민들이 10여 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농지가 태양광 투기꾼들에게 넘어간 일이 지난 몇 년간 급격히 늘었다. 농민들은 꼬박꼬박 임차료를 냈지만, 이런 성실함은 관행 임차료의 5~6배 정도 금액을 그것도 20년치를 일시불로 지급하겠다는 투기꾼의 말에 물거품이 됐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건을 통해 널리 확인되고 알려졌듯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허술한 관리체계 아래 농지는 일반적인 토지와 다름없이 시세 차익을 노린 채 투기 목적으로 거래돼왔다. 헌법과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는 농민이 아닐 경우 소유조차 할 수 없지만 서류상 농민으로 꾸며내는 일이 실제로는 너무나도 쉽다. 또 농민일 경우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이 생각보다 큰 까닭에 정작 대다수의 농민은 농지를 빌리는 임대차 계약서조차 쓰지 못한 채 아슬아슬 줄타기와 같은 생계형 농사를 지어온 것이다.
 
지금도 현장의 주민들은 태양광업자들을 막아내기 위해 들이닥치는 중장비를 직접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이렇듯 신재생에너지 전환 사업은 그 방식과 절차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기후 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신재생에너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때다. 농촌과 마을 공동체의 생계를 빼앗고 삶터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제도적인 허점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농지와 농촌이 가진 ‘탄소 흡수량’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선행돼야 할 것이다. 농지가 농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 산림에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 대신 나무가 심겨 있을 때 흡수하고 고정할 수 있는 탄소의 양에 대해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놀랍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정식으로 이뤄진 적조차 없다. 농지가 농지로 존재할 때의 탄소 이익과 그 자리에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을 돌릴 때의 이익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자는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풍력과 태양광의 말뚝을 박고 일방적인 방법으로 탄소중립을 이뤄내기보단, 후손에게 진짜 물려줘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다.
 
지난 3월 초, 군의회 앞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주먹 쥔 손을 번쩍 치켜든 구순 촌로의 모습은 그간 풍력·태양광 발전 관련 갈등 현장을 취재하며 온갖 모습을 다 봐온 나로서도 쉽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었다. 차가운 바람에도 노인은 다섯 시간 이상 군의회가 조례 개정을 통해 일방적으로 줄여놓은 풍력발전 이격 거리의 원상 복구를 촉구했다. “한평생 살아왔다! 목숨 걸고 지킬 거다! 주민 의견 무시 마라!” 군의회는 개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 이격 거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다면, 높이 1200m에 날개 지름 155m의 풍력발전기 15대는 마을과 고작 800m 떨어진 곳에 들어서게 된다. 꽃샘추위 속에서 꼿꼿하게 외치던 촌로의 모습을 보며,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추구하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했다.
 



Who's the writer?
장수지는 〈한국농정신문〉 기자다. 신재생에너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촌 현장들을 직접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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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장수지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