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과학자의 시간, 부모의 시간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다음 날 진행할 실험 계획을 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아이 옆에서 자느라, 침대에서 못 자 뻐근한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한다.

BYESQUIRE2021.05.11
 
 

과학자의 시간, 부모의 시간

 
어제는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렸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다음 날 진행할 실험 계획을 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아이 옆에서 자느라, 침대에서 못 자 뻐근한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한다. 당일 실험 계획을 못 짰으니, 안 그래도 바쁜 마음이 더 바쁘다. 아이는 아빠와 어린이집 등교 준비를 다 마치고 날 기다리고 있다. 그래, 출근을 해보자. 아이의 손을 잡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한 뒤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원래는 어린이집 안에 들어가 아이를 맡기고 나왔지만, 코로나19 이후 바뀌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기다리다, 선생님이 나오시면 아이만 들여보내는 식이다. 내가 근무하는 연구소의 부설 어린이집이라 이 과정에서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동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내 뒤에서는 친한 남자 동료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이들의 눈치가 살짝 보일 무렵 선생님이 나왔다. 아이는 씩씩하게 들어가서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어린이집 3년 차, 영아반부터 프리스쿨반까지 모든 반을 섭렵한 아이는 어느새 어린이집의 터줏대감이 됐다.
 
한국에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실험실 근처에 있는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다. 나중에야 대학원생 자녀는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아 거의 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원생 자녀도 그런데 계약직인 박사후연구원이었다면, 아마 입소 신청서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때마침 제안받은 영국의 박사후연구원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와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가끔 상상해본다.
 
지금이야 아이가 많이 커서 아침마다 씩씩하게 어린이집 안으로 혼자 들어가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달래서 들여보내고 출근하고 나면 하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진이 쏙 빠져버렸다. 모두가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혼자 넋 놓고 휴게실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안 그래도 낯선 외국 생활에 아이를 울려가며 이렇게까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자주 고민하던 때였다.
 
“아이는 잘 들어갔어?” 날 다시 현실로 불러오는 소리다. 당시 내가 한 경험을 이미 한 동료들은 그 표정 다 알고 있다는 듯 위로를 건넸다. 그 시기가 제일 힘든 시기라고, 그래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니까 잘 견디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지쳐가던 순간에 앞서간 동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큰 위안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뒤에 오는 동료에게 “오늘 아기는 어땠어?” 하고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주에 심은 애기장대는 어느새 잘 자라서 큰 화분에 옮겨줄 때가 되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씨를 화분에 흩뿌려주면, 며칠 새 새싹이 돋아나며 그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다. 이렇게 작은 생명이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늘 신기하다. 내 아이도 그랬다. 만삭이 될 즈음까지도 실험복을 입으면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아이는 모든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놀라운 작은 생명 둘은 어느새 나의 일상을 모두 차지해버렸다.
 
가느다란 핀셋으로 엉킨 잎들을 정리하고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흙에서 건져 올린다. 하나하나 화분에 조심스레 옮겨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자 식물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그렇게 심어둔 식물로 실험을 한다. 실험실 생활만 얼추 10년 차, 중간중간 있는 회의, 점심시간 등을 비워두고 하루에 할 수 있는 실험 양을 정하는 요령이 생겼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알아가는 지난한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들과의 약속 시간에 많이도 늦었다. 그 덕에 이제는 절대로 늦을 수 없는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길렀다. 하지만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다. 실험 결과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시간을 일과 중에 배치할 요령은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밤늦은 시간, 아이를 재우고 다시 컴퓨터를 켜야 하는 이유다.
 
실험을 하고, 회의를 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가정을 꾸린 동료들도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회의 시간은 학교 등교 시간, 그리고 퇴근 시간을 피해서 정해진다. 연구소의 규칙이다. 하지만 실험은 어쩔 수 없다. 실험이 끝나는 시간이 퇴근 시간인 동료들과 달리, 나의 퇴근 시간은 칼같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는 실험실에 남은 동료들에게 실험 마무리를 부탁한다.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어느 동료는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언젠가는 나도 아이를 키울지도 모르니까, 그때는 나도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저녁 시간과 그 이후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오붓함과 피곤함이 공존한다. 아이는 조잘조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거실을 장난감으로 빈틈없이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놀면서 거실의 무질서도를 낮추려고 애쓰지만, 대부분 우리 부부의 완패로 끝난다. 하지만 집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려 애쓰다 지칠 바에는, 그 체력을 아껴 다른 데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아이를 재우면서 잠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서재로 들어왔다. 낮에 미처 하지 못한 실험 결과를 분석한다. 실험 결과를 곧바로 확인했을 때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각해볼 점이 더 많다. 다음 실험을 계획하는 데 추가로 고려할 사항도 생겼다. 결과를 정리하고 다음 실험을 계획하며 마음이 설렌다. 이 기분을 한밤중에 혼자 느끼자니 아쉽다. 이어서 낮에 미처 못 보낸 이메일에 답장을 시작한다. 밤 11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 모든 메일을 예약 전송으로 보내놓고, 컴퓨터를 닫는다. 이제야 일과가 끝났다.
 
잠들기 전, 아이의 3년 전 사진을 들여다본다. 볼살이 이렇게 통통했구나, 팔다리가 이렇게 짧았구나, 새삼스레 되돌아본다. 애기장대는 며칠만 지나도 쑥쑥 크는데, 우리 아이는 언제 기저귀를 떼나, 언제쯤 밥을 혼자 먹을까, 언제쯤 말을 할까, 조급해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러고는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바심 내며 흘려보낸 시간을 아쉬워한다. 그래도 주말 공원 산책과 나들이, 함께하는 요리 시간,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찰나의 시간들이 모여 행복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과학도, 아이와의 행복도 놓치고 싶지 않다. 고단함을 일상으로 삼아 과학자로서의 시간과 부모로서의 시간을, 속도가 다른 그 두 시간을 동시에 살아간다. 함께하는 반려자와 이 시간을 함께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오래전에 깨달았다. 더불어 과학자의 시간과 부모로서의 시간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안다. 그런 면에서 함께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반려자가 있고, 육아가 삶의 일부로 여겨지는 곳에서 일하는 나의 행운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꿈꾼다. 과학자의 시간과 부모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행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더 많은 이들과 이 행복, 이 고단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Who's the writer?
안희경은 식물학자로, 2018년 연세대학교에서 시스템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편과 아이와 영국에 거주 중이며, 식물의 병저항성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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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안희경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