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피식대학>이 살린 한국 콩트 코미디의 계보

콩트 코미디는 죽지 않았다.

BYESQUIRE2021.05.31
 
 

콩트 코미디는 죽지 않았다

 
코미디는 죽었다. 적어도 지상파 코미디는 죽었다. 장례식은 2020년 5월 14일이었다. KBS의 장수 프로그램이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폐지됐다. 아니, ‘잠정휴식'을 선언했다. 잠정휴식이란 죽어가는 프로그램의 산소호흡기를 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뇌사 상태다. 개콘은 그나마 2020년까지 버티긴 했다. MBC 〈코미디의 길〉은 2014년에 막을 내렸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은 2017년 폐지됐다. 지상파 3사의 코미디 시대는 확실히 끝이 났다. 누구나 예상했던 종말이었다. 거의 20여 년 동안 개콘과 웃찾사 같은 지상파 프로그램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기서 나온 유행어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낸 유행어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으신가?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코미디의 죽음은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코미디의 주류였던 ‘콩트 코미디'의 죽음이다. 한국 코미디의 역사는 〈웃으면 복이 와요〉로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이 코미디 프로는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같은 전설적인 극단 출신 코미디언들이 새롭게 발명된 TV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그 시절의 코미디에는 확실한 대본이 있었다. 코미디언들은 하나의 프로그램 속에 몇 개의 소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소극에 인상적인 캐릭터들과 상황과 대사를 집어넣었다. 모든 것이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정성 들여 만들어진 대본에 입각해 사려 깊게 연기됐다.
 
콩트 코미디의 전성기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기와 함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버라이어티 쇼' 콘셉트가 한국에 들어오자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도 원래는 콩트 코미디를 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예능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대본을 짜지 않는다. 아니, 대본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본에 기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었다. 수많은 출연자들을 앞에 두고 그들로부터 웃음을 뽑아내는 즉흥적인 진행 실력은 섬세하게 계획된 연기력보다 더 모던한 무언가로 받아들여졌다. 콩트 코미디의 전성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역사책 속의 한 챕터로 남는 듯했다.
 
예상은 엇나갔다. 코미디는 죽지 않았다. 아니, 한국적 콩트 코미디는 죽지 않았다. 증거는 유튜브를 불태우고 있는 ‘피식대학'이다. 피식대학은 KBS와 SBS 공채 개그맨들이 결성한 채널이다.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05학번이즈백〉, 〈한사랑산악회〉와 〈B대면데이트〉다. 이 코너들의 재미난 점은 그것이 오로지 유튜브라는 생태계에서만 가능한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이 코너는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TV 생태계 속에서는 구현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캐릭터를 설정하고 의상과 배경을 선택하는 것은 오래된 개콘의 코너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일단 코너의 길이가 공중파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보다 훨씬 길다. 방송사의 꼰대스러운 제약도 전혀 없다. 코미디언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그냥 날것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던져서 실험할 수 있다. 성공한 아이디어들은 장기 코너가 되고, 마치 마블의 유니버스처럼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피식대학이 만든 최고의 코너라고 할 수 있는 〈한사랑산악회〉를 예로 들어보자. 이건 그야말로 전통적인 개콘식 콩트 코미디다. 피식대학 멤버들은 ‘열정’을 외치는 경상도 사나이, 입이 걸고 성격이 불같은 부회장님, 재미 교포 출신 LP바 사장, 체력이 문제여서 항상 산행에서 뒤처지는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다. 이들의 무기는 디테일이다. 피식대학은 현존하는 ‘중년 남성'들의 디테일을 거의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할 만한 자세로 베껴낸다. “음파파파파파!” 하며 귀 뒤편을 열정적으로 씻어내고, 북한산을 오르며 간첩 김신조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는 디테일들은 굉장할 정도다. 게다가 그들은 놀라운 관찰력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를 같은 무대에서 반복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에 스토리텔링을 담아내고 하나의 코너에만 머무르지 않는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여성 코미디 예술가 중 한 명인 강유미가 있다. 사실 피식대학의 시작은 많은 면에서 강유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강유미는 개콘이 낳은 아이콘이다. 그가 개콘에서 만든 코너들은 〈웃으면 복이 와요〉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정통 콩트 코미디들이다. 〈Go! Go! 예술속으로〉와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한번 생각해보시라. 그것들은 캐릭터와 분장과 대사들을 세밀하게 모두 갖춘 다음 매회 반복될 때마다 세계관을 조금씩 변주하거나 넓혀나간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코미디 예술이다. 콩트 코미디의 시대가 예능의 시대로 넘어가자 강유미는 조금 길을 잃었다. 동료인 안영미가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애드리브를 무기로 예능의 세계에 완벽하게 안착한 것과는 달랐다. 강유미는 전통적인 콩트 코미디언이다. 그의 무기는 애드리브가 아니라 계획된 개그다.
 
어떤 코미디언들은 예능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tvN의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인 황제성이 예능에 나올 때마다 얼마나 재미없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예능에서는 웃기지 않다는 것을 한동안 예능에서의 개그 포인트로 잡았다. 강유미도 예능에만 나오면 숨이 죽는다. 통제된 상황에서의 계획된 코미디가 장점인 코미디언들에게 예능은 상대방의 멘트를 잡아먹고 내가 살겠다는 욕망으로 이글이글한 정글이다. 전통적인 콩트 코미디로 시작한 이수근과 정형돈이 각자 〈1박 2일〉과 〈무한도전〉에 적응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한번 생각해보시라. 예능의 즐거움은 보다 현실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출연자들과의 궁합, 개인의 애드리브 실력이 중요해진다.
 
강유미는 유튜브를 선택했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을 유튜브에서는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ASMR 1인극'이다. 강유미는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직업군의 캐릭터를 놀라운 디테일에 입각해 세심하게 만들어진 대본으로 연기한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것이 아니라 가장 전통적인 콩트 코미디로 유튜브에서 다시 승부를 건 것이다. ‘피식대학'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콘텐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간 코미디의 주류였던 콩트 코미디의 문법에 명확하게 귀속되어 있다. 달라진 것은 플랫폼이다. 유튜브라는 날것 그대로의 인터랙티브한 플랫폼을 만나자 콩트 코미디는 다시 날개를 얻었다. 그저 리액션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예능의 꽃이 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좋은 콩트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정한 코미디의 재능이 필요하다. 리액션이 아니라 스스로 액션을 만들 수 있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인 유튜브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처럼 보이던 콩트 코미디와 코미디 예술가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숭구리당당 숭당당'의 아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