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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행복감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는 감동적이다

랄프 로렌의 윔블던 캠페인 모델로 선 손흥민과 새롭게 찾은 ‘행복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BYESQUIRE2021.06.28
 
랄프 로렌이 윔블던 컬렉션 모델로 손흥민 선수를 선정해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시기에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요. 영국에서 느끼는 윔블던은 다른 곳에서 느끼는 것과는 좀 다르죠?
사실 엄청나게 큰 이벤트잖아요.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영국에선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가 깊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축구겠지만, 그에 못지않아요. 게다가 윔블던은 축구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기에 열리기 때문에, 그 열기가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이 경기를 기다리는 게 느껴지거든요.
국민 축제 같은 분위기군요.
그렇죠.
 
윔블던에서 테니스 경기를 본 적은 있나요?
실제로 보러 간 적은 없어요. 이맘때쯤 축구 선수들은 다음 시즌 준비를 시작하거든요. 하지만 TV를 통해 혹은 웹에 올라온 하이라이트 영상을 통해 확인한 적은 있어요. 스케줄만 맞으면 직접 가서 보고 싶기도 해요.
테니스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일단 선수들이 정말 멋있어요. 결승전 같은 경우에는 너덧 시간 동안 경기를 하잖아요. 그 더운 날씨에 코트 위에서 혼자 경기를 한다는 점이 멋져요. 팀 경기인 축구와는 다르죠.
윔블던 시즌은 땡볕으로 유명하죠. 만약 보러 간다면 어떤 복장을 챙겨 입을까요?
영국의 햇볕은 뜨거울 땐 정말 뜨겁죠. 국민들이 햇볕을 정말 좋아하는 나라기도 하고요. 경기를 관람하러 가게 된다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또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는 의상을 선택할 것 같아요.
 
랄프 로렌은 윔블던에서 엄파이어, 볼걸, 볼보이 등 시합 관계자들의 공식 의상을 담당하게 된 첫 외부 브랜드이자 유일한 브랜드죠. 매해 이번 시즌의 의상 디자인을 공개하며 ‘캠페인 모델’을 선정하는데, 이번엔 손흥민 선수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놀랐어요.
저 역시 윔블던도 좋아하지만, 랄프 로렌도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브랜드라 이런 기회 자체가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번 일이 제가 테니스라는 스포츠, 윔블던이라는 대회에 더 큰 호기심을 갖게 해준 계기이기도 해요.
이번 랄프 로렌의 캠페인 모델에는 세계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영국의 럭비 선수 마로 이토제, 영국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등이 이름을 함께 올렸어요. 예전 같으면 ‘와 손흥민이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이제는 오히려 그쪽에서 ‘우아, 손흥민이랑 내가 함께하다니’라며 기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이, 전혀 그렇지 않을걸요. 워낙 영국에서 최정상에 계시는 분들이라, 저는 거기에 비하면 그냥 꼬마예요. 그런 선수 또는 아티스트들과 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역시나…겸손하십니다.
아녜요. 이건 정말 진심이에요.(웃음)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PFA 선정 ‘올해의 팀’에 뽑혔어요. 정말 짜릿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너무나도 영광스러웠어요. 일단은 같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저를 뽑아줬다는 점에서 그랬고, 또 한국 사람으로서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랬어요.
아시아 최초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최초’라는 표현을 더 좋아해요. 한국 사람으로서 정말 자랑스러웠고, 이번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처음을 갱신하는 또 다른 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올해의 팀’은 벌써 과거형이잖아요. 전 시즌을 기준으로 뽑는 거니까요. 기분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앞으로 제가 더 잘해야 할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려고요.
 
지난해 팬데믹으로 우울했던 시기를 많은 한국의 축구 팬들이 손흥민 경기를 기다리는 낙으로 견뎌냈어요. 저도 그랬고요. 참 고마워요.
아녜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없는 경기장, 직접적인 함성이 없는 경기장에서 시합을 치르는 건 저도 처음이었어요.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한국 팬들이 나를 응원하기 위해 자신의 일처럼 잠을 포기하며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런 응원이 제게 엄청 큰 힘이 되어서 저 역시 우울함에 빠질 수 있는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요.
지난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정말 솔직히 지난 시즌의 거의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다 머릿속에서 지나가네요. 한 순간도 빠짐없이 다 기억에 남아요. 좋았을 때와 또 안 좋았을 때도요. 사실 정말 어려운 시즌을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항상 오답 노트에서 배울 게 더 많다고들 하잖아요. 그 모든 순간 중에 제가 못한 경기들이 더 기억에 남네요. 딱 한 경기를 꼽아서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지만요.
손흥민 선수가 지난 시즌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듯 손흥민에게 큰 기쁨을 준 사람도 있을까요?
여기서 제가 테니스 선수 이름을 얘기하면 제일 좋겠죠?(웃음) 그런데 정말 솔직하게 말할게요. 지난해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모든 인류가 엄청 힘들게 보냈잖아요. 그러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게 바로 여가, 즐기는 활동들이었거든요. 스포츠도 그렇죠. 그럼에도 그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축구를 비롯한 다른 모든 스포츠를 응원해주는 팬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함을 느꼈어요. 승리의 기쁨이나 패배의 슬픔, 이런 모든 감정이 사실상 팬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 거죠.
넓게 말하면 팬데믹을 이겨낸 전 인류, 조금 좁게 말하면 스포츠, 특히 축구 팬들의 존재를 느낀 사실이 행복했다는 거군요?
네, 맞아요.
 
지난번에 tvN의 다큐멘터리 〈손세이셔널〉에서 ‘프로패셔널 경기에선 내가 하는 플레이에 내가 책임을 지면 그만이지만, 국가대표 경기는 국가를 대표해 뛴다는 점에서 부담이 없을 수 없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 부담감에 좀 익숙해졌나요?
(웃음) 제가 사실 시합을 뛰면서 부담감을 안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 대표팀 경기를 뛸 때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때의 부담감은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부담감이 있어야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대표팀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내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뛸 수 있다’라는 사실에 약간 설레는 느낌도 분명히 있거든요.
계속 물어본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답변이 돌아오네요.(웃음) 지난 시즌 초기에는 국내에서는 ‘우리 흥민이가 너무 공수를 오가며 혹사당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지난 시즌 전술적 변화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보나요?
사실 어느 감독님이 오시든 전술적 변화는 조금씩 생기는 게 당연한 거죠. 축구는 테니스와는 달라요. 아무리 공격수라도 공이 우리 편에 없을 때는 전부 다 수비인 거예요. 팀 스포츠잖아요. 또 반대로 공이 우리 팀에 있으면 골키퍼를 포함한 전원이 다 같이 공격에 임하는 거죠. 공수를 오가는 건 축구에선 당연한 겁니다. 저를 많이 좋아해주시는 마음 때문에 걱정하는 눈으로 봐주신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쩔 수 없는 한국 ‘축저씨’들 다수의 마음인 것 같긴 해요.(웃음) 토트넘보다 손흥민을 사랑하죠.(웃음)
(웃음) 너무 감사해요.
 
아참, 얼마 전엔 팀 동료인 가레스 베일이 그 인터뷰 같은 데서 갑자기 손흥민 선수 칭찬을 엄청 늘어놓는 바람에 뉴스가 쏟아졌어요. ‘손흥민은 최고의 나이스 가이’, ‘항상 행복한 사람’이라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팀 동료들이 모두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게 사로잡았나요?
좋아하게 사로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그렇지 못 할 거 같아요.
역시나 또 저를 부끄럽게….(웃음)
저는 정말 선수들과 이렇게 생활하는 게 너무 좋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너무 좋다 보니까 행복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베일 같은 선수는 제가 어릴 때 바라보면서, 꿈을 키운 선수거든요. 친구들하고도 사이좋게 지내다 보니 과찬을 좀 해준 것 같아요.
팀 메이트들끼리 작은 단위로 모이는 단톡방이 있어요?
있어요.
흥민 선수는 몇 개나 들어가 있어요?
저는 두 개밖에 없어요. 전체 스케줄이나 재밌는 장면, 재밌는 사진들, 농담이 올라오는 팀 전체 단톡방이 있고, 또 하나는 가레스 베일, 조 로든, 밴 데이비스가 있는 작은 방이에요.
아, 그 방이 ‘웨일스 코리아 마피아’군요?
맞아요. 저희 팀에 마피아가 두 그룹이 있거든요. 한쪽은 (위고 요리스, 무사 시소코, 탕기 은돔벨레) 등이 속한 프랑스 마피아고 또 다른 하나는 저희 웨일스 마피아예요. 저는 어쩌다 보니 친한 친구들이 다 웨일스 쪽이라 이쪽에 끼게 되었네요. 맨날 크루처럼 지내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제 웨일즈-코리아 마피아라고 해요.(웃음)
 
근데 프랑스 마피아들이랑도 사이는 좋아 보이던데요.
맞아요. 사이 좋아요. 저희는 서로를 존중하거든요. 마피아끼리 그렇게 막 싸우지도 않고, 사실 되게 사이가 좋은 마피아라고 보시면 됩니다.(웃음)
마지막 질문인데요. 2021-2022 시즌과 월드컵 본선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 시점에 손흥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지금의 행복함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아까 말한 축구를 사랑하고 경기를 사랑하는 그 행복감 말인가요?
저도 관중이 없는 경기에서 뛰어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경기장에 팬들이 와주고, 그 수많은 팬이 우리를 응원해주는 일,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를 깨닫게 되더라고요. 축구를 하면서 그런 소중함을, 또다시 관중들이 돌아왔을 때의 행복감을 잃지 않고 싶어요.
그게 어쩌면 윔블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포츠맨십의 기본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어요.
올 시즌만이 아니라 앞으로 제가 평생 은퇴할 때까지 그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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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랄프 로렌 제공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