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 잘 들썩이고 있나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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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 잘 들썩이고 있나요?

아트 페어의 들뜬 기류 속에서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과 가십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 페어가 열리는 홀이나 갤러리를 둥둥 떠다니는 나날들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ESQUIRE BY ESQUIRE 2021.07.06
 
 

한국 현대미술, 잘 들썩이고 있나요?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팬데믹으로 ‘아트 바젤’은 물론 여타 페어들이 줄줄이 취소된 상황에, ‘아트 부산’이 홀연히 개막했다. 비록 당시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 개막했지만, 이를 기점으로 국내 미술계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아트 페어의 들뜬 기류 속에서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과 가십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 페어가 열리는 홀이나 갤러리를 둥둥 떠다니는 나날들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활기를 이어받은 건 두 차례의 연기 끝에 지난 4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단 39일 동안 열린 광주 비엔날레다. 나는 비엔날레 마지막 주 목요일에야 부랴부랴 광주를 찾았고, 나처럼 광주로 달려온 아는 얼굴들과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만났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장소 중 하나인 구 국군 광주병원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비엔날레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장소 특정적 작품을 보는 일이다. 구 국군 광주병원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하고자 한 비엔날레의 창설 배경을 되새기며, 장소에 축적된 시간과 이야기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설치됐다. 일시적으로 전시 공간의 임무를 부여받았던 병원은 폐막 후에는 광주 시민들을 위한 트라우마센터로 활용될 준비에 들어갔다.
 
“큐레이터 팀에 친구가 있는데, 광주병원의 작품 설치는 지난번 비엔날레에 이어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일정 맞추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독립 큐레이터 H가 말했다.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하는 따스한 햇살에도 병원 내부는 을씨년스러웠다. 이 병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에 연행돼 심문을 받던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한 약 300여 명의 시민들이 치료받았던 곳이다. 종이 약도를 들고 보물찾기를 하듯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도 잠시, 시오타 치하루 특유의 편집증적이고도 신성한 설치 작품과 폭력과 고통의 역사를 낱낱이 목격한 증언자인 수십 개의 거울을 떼어와 한데 달아놓은 마이크 넬슨의 작품 등은 이곳에 봉인된 처절한 기억과 공명하며 무거운 추처럼 감정을 끌어내렸다. 그러다 비엔날레 최고의 ‘셀피 스폿’이었던 환하게 빛나는 데이지 꽃밭(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을 만나고서 일순 고양감에 휩싸였다. 광주 비엔날레가 아니라면 한꺼번에 이렇게 큰 감흥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한 주 뒤 같은 요일에는 ‘아트 부산’ VIP 오프닝에 맞춰 더 남쪽으로 이동했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인사를 나눌 정도로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몇 년 전, ‘아트 바젤’ 홍콩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이런 얘길 했던 게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 다 홍콩에 와 있는 것 같아!” 아트 부산 측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벡스코에서 열린 제10회 아트 부산은 나흘 동안 총 8만여 명 정도가 다녀갔고 총 판매액 350억을 기록했다. 국내 미술 시장 최다 판매액이다. “2007년에도 이런 활기를 경험한 적이 있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요.” 아트 컬렉터 Y가 말했다. 그는 북적대는 부스를 바라보며 새로운 사람들이 미술 시장에 급격히 유입되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모두가 아트를 부르짖게 된 것 같아요.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손발이 묶인 가운데 키아프(KIAF, 한국국제아트페어)나 아트 부산처럼 한국 페어가 유독 선전을 하고, 부동산 규제와 각종 투자 유행이 맞물려 재테크의 대상으로 부상하기도 했으니까요.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같은 빅 이슈도 나오고요.” 한 달여 전 국내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나눠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 점에는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 고흐·고갱·샤갈·피카소 등 서양 근대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 작품들, 이중섭의 〈황소〉를 비롯해 김환기·박수근·장욱진 등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 등이 포함돼 있다. 미술계는 물론 전 사회적으로 화제를 모은 이 ‘세기의 기증품’들은, 6월에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특별 전시를 연다고 발표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각 미술관들에 걸리며 하반기를 미술계를 화려하게 수놓을 예정이다.
 
아트 부산이 끝나자마자 ‘아트 바젤’, ‘피악(FIAC,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과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영국의 ‘프리즈(Frieze)’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발표가 나왔다. 2022년 9월 2일 열릴 프리즈 서울은 한국화랑협회에서 2002년 개막해 20회를 맞이하는 키아프 아트 서울과 공동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프리즈와 키아프, 너무 다른 성격의 페어가 어떤 하모니를 이뤄낼지 기대만큼의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아트 부산에서 만난 갤러리스트 A가 한 말이다. 그는 곧 열릴 신생 아트 페어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프리뷰(The Preview) 한남이라고, 아트 페어에 참가한 이력이 없는 작가들이 젊은 전시 공간에서 가장 최신의 작업을 소개할 예정이에요. 그야말로 ‘신진(emergent)’ 아트 페어죠.” 신한카드에서 ‘아트’라는 사내 벤처를 출범하고 첫 사업으로 개최하는 ‘더 프리뷰 한남’은 참가비가 없고, 작품이 판매될 경우 일부를 후불로 지불할 수 있게 해 아트 페어의 진입 문턱을 낮췄다.
 
지난 6월 10일, 페어가 열리는 한남동 블루스퀘어 NEMO 홀을 찾았다. 해상 운송용 컨테이너 박스 10여 개를 결합해 만든 NEMO 홀 입구에는 P21의 이병찬 작가가 비닐봉지를 가지고 창조한 기념비적인 조각이 천장에 매달려 시선을 모았고, 신진 미술을 소개해온 을지로와 서촌 등의 전시 공간들이 캐주얼하게 부스를 꾸리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공간이었기에 반가웠다. 관람객의 연령대도 낮았다. ‘고상’보다는 ‘힙’에 가까운 MZ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듯 보였다.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이내 붐비기 시작했다. ‘공간형’의 유예림 작가, ‘드로잉룸’의 임선구 작가를 눈에 담고 페어장을 빠져나와 길 건너편 르베이지 빌딩으로 향했다.
 
르베이지 빌딩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리고 이 건물에 페이스 갤러리가 새 터를 잡았다. 페이스 갤러리는 얼마 전 ‘아트 데스티네이션’으로서 ‘서울의 국제적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려 하는 시점’이라며 이 건물의 2, 3층으로 확장 이전했다. 메가 갤러리라는 명성에 걸맞게 3m에 달하는 천장 높이와 240여 평에 달하는 드넓은 공간에서 모든 작품이 여유로운 자리를 보장받는다. 현재 전시장에는 흑인 추상 미술가 샘 길리엄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프레드 윌슨과 애덤 펜들턴 등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했던 만큼, 앞으로의 프로그램 또한 기대가 됐다. 페이스가 미국을 대표하는 갤러리라면 가을에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유럽을 대표하는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의 서울 갤러리가 개관한다.
 
이렇게 뜨거운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 하고 미술계 소식이 날아온다. 지난해 ‘아트 부산’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술계의 활기가 정점을 향해 가는 듯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다. 한남대교 너머 도산대로에는 이 호황에 기꺼이 근사한 랜드마크가 되어줄 전시 공간이 올해 말 개관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바젤의 샤울라거(Schaulager) 뮤지엄 등으로 미술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던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한국 최초 프로젝트인 삼탄&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이다. 개인적으로는 우아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미술관에서 올 12월에 열릴 제21회 송은미술대상을 목하 기대 중이다.
 

 
Who's the writer?
안동선은 〈코스모폴리탄〉, 〈바자〉등에서 15년간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현재는 주로 미술과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단행본을 비롯한 인쇄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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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Illustrator 이은호
    WRITER 안동선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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