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인생 리셋, 강원도 프로젝트

그냥 서울을 뜨자.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의 쾌적한 아파트로 가자.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

BYESQUIRE2021.08.05
 
 

인생 리셋, 강원도 프로젝트

 
서울 집값이 높이 날아올랐다. 우리 집만 빼고.
뉴스에선 모든 집의 가격이 함께 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건 아파트에 한해서다. 바로 옆의 구축 아파트 가격이 두 배로 뛰는 동안 신축인 우리 빌라는 10~20%만 올랐다. 과거의 어리석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빌라를 사던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꼭 아파트에 살 필요가 있을까? 관리비만 해도 서너 배는 비싼데. 신축 빌라는 만듦새도 괜찮으니 방 세 개짜리 17평이면 혼자 살기엔 충분하지. 검소하게 몇 년 지내고 좋은 아파트로 옮기자. 허튼 소리. 몇 년 후 돌아온 건 후회였다. ‘그래도 난 집이 있으니까’라며 안도하고 일상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만사가 환멸스러운 와중 빌라촌의 삭막한 분위기는 내 마음을 점점 병들게 했다. 고만고만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풀 한 포기 찾기 힘들며 주민들도 서로 교류하지 않는 활력 없는 동네. 계속 머무르면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서울을 뜨자.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의 쾌적한 아파트로 가자.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 계산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서울에 살려는 첫째 이유는 역시 ‘직장’이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나는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작가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그에 특화된 포지션을 맡아 모든 일을 집에서 소화해왔다. 내 직무는 콘텐츠 기획, 관련 스크립트 집필, 외부 아티스트 섭외 및 디렉팅이다. 굳이 회사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고 때로는 그런 환경이 일을 방해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때만 출근하거나 관련자를 만나 논의하고 평소엔 집에서 일한다. 팬데믹이 닥치기 훨씬 전부터 재택근무를 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에 살지 않아도 괜찮다. 이따금 서울 오가는 것만 용이하면 어디든 OK.
 
여러 후보지 중 춘천이 가장 끌렸다. 내가 바라는 건 자연과 문명의 접점이었다. 삭막한 빌라촌을 벗어나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곳을 원할 뿐 시골의 삶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답은 춘천이었다. 자연의 상징 강원도의 입구로서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이고 서울과는 전철, ITX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인생 리셋, 강원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춘천 집값은 서울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핵심지에 자리한 신축 아파트 한둘을 제외하면 뭐든 골라잡을 수 있었다. 강을 통째로 조망하는 30평대 아파트도 서울의 내 빌라보다 훨씬 쌌다. 잠시 고민하다가 춘천에서도 특히 호젓한 곳, 즉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자리한 곳의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그리고 서울의 내 빌라를 팔았다. 무주택자 신분으로 잠시 살며 이후를 기약하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반년이 흘렀다.
 
춘천 아파트로 옮긴 이후 내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체감한 건 낮은 밀도가 주는 쾌적함이었다. 건물 간의 널찍한 간격, 잘 꾸며진 정원과 공원은 내 숨통을 트여줬고, 10층의 거실과 방에서 훤히 내다보이는 산과 논밭은 병든 마음을 달래줬다. 집 근처 강과 호수의 산책로를 거닐 때면 그제야 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날씨가 좋은 날이면 꽤 고민했다. 오늘은 어디를 걷지? 집 밖에 나오길 꺼리던 나로선 제법 큰 변화다. 공간의 밀도는 낮아졌지만 반대로 사람의 밀도는 높아졌다. 빌라촌과 달리 대단지 아파트엔 커뮤니티가 있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논의하며 동호회, 행사 등을 통해 교류했다. 입주자의 70~80%가 젊은 부부다 보니 아이들 웃음소리도 가득했다. 아이들이 어우러지고 부모끼리 교분을 쌓는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서울 빌라촌엔 아이가 드물 뿐 아니라 혹 마주쳐도 경계의 눈초리를 받곤 했는데 여기선 인사를 건네왔다. 아파트가 삭막하다고? 빌라촌을 전전하고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거워진 나는 결국 차까지 사서 활동 반경을 넓히기에 이르렀다. 더 많은 걸 보고 겪기를 바라면서. 그게 작가로서의 나에게 훨씬 좋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운전을 시작하며 비로소 만난 삶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도시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 춘천은 중심부에 자리한 도시 지역과 주변부에 자리한 시골 지역으로 나뉘고, 알다시피 시골 지역 주민은 대부분 노인이다. 여기선 아무리 돌아다녀도 고급 차, 신형 차를 보기 어렵다. 녹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차량이 태반이다. 하지만 그조차 형편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 듯하다. 하루에 몇 대만 다니는 버스를 통해 도시 지역을 오가는 이가 허다한 걸 보면.
 
도시 중심지의 버스 정류장엔 그런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폭염에도 혹한에도 한결같다. “버스 언제 와?”라는 대화를 들을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들의 일상에 스마트폰이 없다는 의미니까. 시간표와 예정 시간을 확인하고 움직이는 젊은 세대와는 천지 차이다. 시외버스를 탈 때도 늘 후순위다. 젊은 세대가 예매하고 남은 자리를 현장에서 구입하며 매진이면 다음 차를 탄다. 그물망처럼 촘촘한 교통망의 서울에선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 삶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길에 쏟아 붓는 진짜 교통 약자.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리어카를 끌고 느릿느릿 차도를 걷는 노인을 종종 만난다. 처음엔 ‘안전한 인도 놔두고 왜!’라며 분개했으나 이내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리어카도 엄연한 차마여서 인도, 횡단보도는 이용할 수 없고 차도로 함께 다녀야 한단다. ‘알아서 피해 다녀. 사고 나면 너희 책임!’이라는 건데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아하다. 낮에는 일찍 발견해 피하거나 멈춰 서기 용이하지만 밤엔 어떨까? 시골의 밤은 어둡고 리어카엔 라이트가 없다. 가끔은 중앙선을 넘어 천천히 무단횡단하는 아찔한 모습도 본다. 그 노인들은 옆을 보지 않는다. 우리를 믿는 건지 삶에 미련이 없는 건지 앞만 보고 걷는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미처 몰랐던 삶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이런 경험을 더 쌓아가고 싶어서 회사 일에도 변화를 가했다. 일의 양을 줄였고 신분 또한 내 요청에 따라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변환됐다. 3개월 단위로 연장하는 게 서로 좋다고 판단해서다. 나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 용이하고, 회사는 이렇게 일하는 내가 유용하지 않다면 편히 정리할 수 있다. 할 일은 하면서도 우호적인 이별을 준비하는 심리랄까?
 
물론 이런 삶엔 도박 같은 측면이 있다. 안정적인 소득, 탄탄한 네트워크에서 한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관건은 이런 변화를 통해서 내가 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쥘 수 있느냐는 점이 되겠다. 결국 작가 본연의 영역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소리. 해서 요즘 입버릇처럼 되뇌며 사람들에게 설파하는 말이 하나 있다. 비웃거나 손가락질해도 아랑곳 않는다. 스스로의 미래를 기원하는 주문이자 ‘인생 리셋, 강원도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50개국에 1억 권을 팔고야 말겠어!”
 

 
Who's the writer?
홍형진은 작가이자 직장인이다. 소설가로 등단했으나 다른 분야 글에 치중해왔다. 변화를 꾀하고 싶어 서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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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홍형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