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LIFE

철도, 그리고 철덕의 마음

철도와 마음.

BYESQUIRE2021.09.08
 
 

철도의 마음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은 각기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철도의 경우에는 유별나게 ‘덕후’들이 존재한다. 철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곳곳에서 철도를 사랑하는 덕후들을 접할 수 있다. 지난 6월, 이런 ‘철덕(철도 덕후)’을 위한 게임이 출시됐다. 이름하여 ‘흠심 메트로’라는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그래픽이 눈에 띈다. 정식 출시는 올해 12월로 예정되었지만,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 힘든 철덕들을 위해 ‘맛보기’로 출시됐다. 테스트 이벤트 같은 격이라고 보면 될까. 이른바 ‘철덕’의 한 사람으로서 이 게임이 출시됐을 때 그 어떤 것보다 기대가 된 건 열차의 전면부 풍경을 직접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철도는 무인 전철을 제외하면 모든 열차의 전면부가 막혀 있다. 승객 입장에서는 열차의 진행 방향을 보고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또 옆으로만 보는 풍경과는 어떤 점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전철을 운행하는 기관사는 어떤 풍경을 보고 있을지, 철덕이 아니더라도 궁금증을 가져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마치 기관사가 된 것처럼 전면부 풍경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새로 리뉴얼된 노량진역 인근의 노량진수산시장이나 한강철교 북단에 살짝 보이는 새남터 순교지 같은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지하 구간의 시설 하나까지 세심하게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래픽이 뛰어나 실제 기관차를 운행하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진다. 시간대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점은 숨겨진 백미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만하면 웬만한 철덕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정신없이 게임의 디테일에 빠져 있다 보니 문득 이런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어쩌다 철도의 매력에 빠졌을까? 지방에서 자란 나에게 기차는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새마을호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서울을 향해 가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여정은 지겹기도 했지만, 기차 특유의 엔진 소리와 덜컹거림, 그리고 곡선 구간의 쇳소리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객실에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철도에는 여러 가지 매력이 있다. 우선 레일만 있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약을 받지 않고 일정하게 달린다는 장점이 있겠다. 더불어 도로에서는 만끽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풍경이 함께한다. 많은 시민들의 일상이 된 지하철의 매력은 어떨까. 똑같이 레일 위를 달리지만 기차를 타는 것과 지하철을 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승객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지하철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열차가 같은 경로로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승객 수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다른 교통수단에서는 이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굳이 철덕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철도를 편안하게 느끼는 건 이런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철도에 빠지게 된 건 2010년에 떠난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경험한 일본 철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경험한 철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고속으로 달리는 신칸센에서부터 마을 곳곳을 누비는 저속 완행열차, 산을 오르는 산악열차까지… 철도만으로도 전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과연 ‘철도의 왕국’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그해 여행 이후 나는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시간을 내 일본을 찾았다. 철도 때문이었다. 다닐 때마다 꼭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역이나 선로 인근에서 열차를 구경하는 모습이다. 철도를 통해 세대 간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형성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철도를 사회 기능으로 존재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로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속으로 달리를 신칸센과 시골 마을 곳곳을 누비는 저속 완행열차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 차가 있고, 문화는 그 세월의 차이를 지켜온 마음 안에 존재한다. 철도를 문화로 받아들이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도 철도에 대한 애착이 강해 보였다. 철도만 전문적으로 파는 유튜버 ‘슈트 트레인’의 경우 구독자 수가 75만 명에 이른다. 서점에는 철도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지역 주민들은 철도 특유의 소음을 일상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한국에도 철덕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 전반은 철도를 교통수단으로 본다. 철도로 인해 일어나는 지역 간 단절, 철로 주변 아파트의 소음은 그래서 사회문제가 된다. 일각에선 철도의 지하화가 계속 언급되고, 노후 철도의 직선화가 추진된다. 얼마 전 새로 운행을 시작한 KTX-이음 열차는 안팎으로 새어나가는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열차 바퀴가 내는 소음이 객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해 달리기 시작해도 시동을 끈 차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엔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또 열차 바깥은 방음벽으로 싸여 있어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도 그 굉음이 철도 주변 지역에 닿지 않는다. 기능과 수단으로 봤을 때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열차 안에서 철도를 느끼지 못한다. 방음벽으로 막힌 차창 밖 풍경은 철도라는 문화의 풍경이 아니다.
 
여러 차이가 두 나라 간에 철도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토가 남북으로 길어 거점도시 사이를 왕래하는 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일본에서 철도는 1일 생활권인 한국의 철도보다 중요했을 터. 한 일본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일본에선 자가용이 있어도 차를 직접 몰고 도시 간 이동을 하는 경우가 잘 없다고 하니 맞는 말일 것이다. 철도의 다양성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철도의 세대 간 연결고리가 너무 쉽게 사라진다는 점은 아쉽다. 불과 몇십 년 사이 비둘기, 통일, 무궁화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거의 사라졌으며, 그 시대를 아우르던 작명의 개념마저 버린 지 오래다. 고속철도 KTX와 ITX가 들어선 길에 마치 훼방꾼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효율성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열차가 너무도 쉽고 빠르게 추억의 열차로 사라지는 건 한 사람의 ‘철덕’에겐 꽤나 아쉬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흠심 메트로’를 켰다. 게임도 하다 보니 자꾸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 1호선 지하 구간은 내진 공사 및 개량 공사로 승강장 외벽이 바뀌었는데, 게임에는 그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12월에 나올 정식 버전에는 반영되길 바라본다. 철도도 게임도 날로 새로워진다. 꾸준히 새로운 노선도를 덧대고 있는 지하철, 신형 열차 도입, 기존 노선 개량까지 생각해보면 그 팽창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저걸 매번 따라잡으려면 게임 제작자도 참 바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운행을 멈췄다.
 

 
Who's the writer?
박준한은 철도를 사랑하는 직장인이다. 〈일본 철도 - 이야기를 담다 1·2권〉을 썼다. 현재 철도경제신문에서 〈生生환승/탐방〉 코너를 연재 중이다.

Keyword

Credit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박준한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