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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지현은 그 어떤 악역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는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박지현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녀는 사는 게 워낙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조차도 흥미로운 자극이라고.

BY오성윤2021.09.24
 
 

박지현도 당신을 본다

 
소속사 스태프들이 자랑을 하더라고요. 어떤 매니저는 함께 현장에 다녀오면 ‘힐링했다’고 할 정도라고. 그래서 막연히 에너지 넘치는 사람을 상상했나 봐요.
그래요? 맛있는 걸 많이 사줘서 그런가? 제가 불편한 걸 싫어해서, 사람들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거군요. 막 무리를 해서 업시킨다기보다.
저한테 그런 능력이 없어요.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낼 능력이.
촬영 중에 춤도 췄잖아요. 그때도 놀랐어요. 그 차분한 무드에서 전조 단계 없이 바로 춤이 나오더라고요. 풀린 자루에서 뱀이 나오는 것처럼 스르륵 하고.  
(웃음) 제가 몸치라서요.
 
블랙 미니드레스 자크뮈스 by 10 꼬르소 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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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의 말씀이죠? 제가 농담 섞어 말했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느낌 있게 굉장히 잘 추던데요.
아니에요. 제가 다양한 걸 배우려고 하는 편이라서, 춤을 배운 적도 있어요. 최근에 발레도 하고 있고. 그런데 재능이 너무 없더라고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무대에 올라가서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발산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거든요. 그런데 평생 그럴 일이 있을까 싶어요. 능력치가 안 돼서.
소속사 스태프들이 지현 씨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홍보팀 팀장님도 그러고, 매니저들도 그러고, 소속사에서 만든 콘텐츠에도 묻어나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제 장점이기도 한데, 저 자신한테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직설적으로 잘 못하거든요. 원하는 게 있어도 참는 부분이 많죠.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강박 같은 걸까요?
그냥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면 제가 불편해져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아유 그냥 넘어가지 뭐’, 그런 마인드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큰 장점이기도 하죠.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도 다들 지현 씨를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요? 누가요?
어…
저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하시는 것 같은데?(웃음)
아니에요. 그 대목에서 반문을 받을 줄은 몰라서 당황해서요.(웃음) 왜 지현 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배우들이 많았잖아요. 신세경 씨나 박은빈 씨도 그렇고.
같은 회사 식구라서 그렇게 말해주셨던 것 아닐까요.
진심으로 예뻐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영상의 댓글 부분에서.
저도 언니들이 정말 좋아요. 사실 제가 다른 배우들한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피곤하실 텐데 괜히 내가 말 걸어서 더 피곤하게 하는 것 아닐까 싶고. 그런데 두 분은 오히려 먼저 다가와주셨고, 또 많이 챙겨줬어요.
롤 모델이라고 하셨던 천우희 씨랑은 영화 〈앵커〉를 같이 촬영했잖아요. 친해졌어요?
음… 그렇게 친해지진 못한 것 같아요. 촬영이 겹치는 날이 많지 않았고,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못 되고요. 제가 또 〈앵커〉에서 굉장히 예민한 성격의 캐릭터이기도 했고.
이렇게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예민한 캐릭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우 그쵸. 많이 했죠. 맞아요.
아무래도 잘 소화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 거겠죠.
전작을 참고해 캐스팅을 하시다 보니, 제가 해온 게 대부분 그런 캐릭터니까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성격이랑 다르게 좀 차갑게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되게 냉미녀 스타일이다’ 이렇게. 미녀라고 제 입으로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웃음)
(웃음) 사람들이 말한 걸 옮긴 거니까요.
그죠. ‘냉녀’라고 고쳐 말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냥 ‘냉’이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아무튼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말 걸기 어렵고 되게 도도할 것 같은 이미지라고요. 실제 제 성격이랑은 반대되는 느낌이지만 캐스팅에서는 외모적으로 풍기는 이미지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많이 맡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이제 공개되는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서새이도 원작 웹툰에서 워낙 미움을 많이 산 캐릭터잖아요.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사실 새이는 미울 만한 캐릭터죠. 이야기가 유미 입장에서 진행되고,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미에게 감정이입을 한 채로 스토리를 바라보잖아요. 그래서 새이라는 캐릭터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저는 이해가 됐어요. 제가 새이를 연기해서인지는 몰라도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기 감정을 모르고 있다가 이성 친구에게 연인이 생기니까 질투를 하고, 숨기려고 하지만 자꾸 표출이 되고. 사실 그런 경우 많지 않나 하고요.
맞아요. 뒤늦게야 자기 감정을 알아챈 거죠. 사실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후회하며 살잖아요. 새이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서, 자기 감정을 인정하지 못해서 뒤늦게야 사랑을 깨달은 거고요.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캐릭터인 것 같아요.
원작에서도 새이의 사정, 새이의 내면이 묘사됐지만 결국 끝까지 욕을 먹으면서 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이 실제 배우들의 연기, 박지현 배우의 연기로 옮겨지면 어떻게 감정 이입의 여지가 생길지 궁금했고요.
그런데 사실 정당성이 있다고 해도 새이는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 캐릭터가 맡은 임무이지 않을까요? 어찌 됐건 갈등을 조성하고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오히려 새이 같은 캐릭터가 욕을 먹지 않으면 그게 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린트 스웨터, 블랙 레더 스커트, 벨트 모두 알렉산더 맥퀸.

프린트 스웨터, 블랙 레더 스커트, 벨트 모두 알렉산더 맥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이정경은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도 공감을 많이 받은 캐릭터였잖아요.
욕을 더 많이 먹었을걸요.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긴 할 텐데요.(웃음) 박준영이 자기 커리어를 손해 보면서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사실을 채송아에게 알려주는 게 악행의 하이라이트였잖아요. 그 부분 클립에서도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정경이는 모든 말과 행동이 왜 저렇게 충동적인가’ 하는 거였는데, 그다음으로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이 이랬어요. ‘정경이는 마음이 비어 있어서 자꾸 저렇게 감정적으로 굴고 남들 상처 주면서 사는 게 마음 아프다. 제일 불쌍한 사람. 정작 자기 자신은 없는 사람.’
사실 그 신의 뒷부분이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오밋(누락) 된 걸로 기억해요. 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렇게 송아한테 “준영이 트로이메라이 다시 쳐요” 말하고 가서 골목길에서 혼자 울어요 정경이가. 모진 말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 되게 비참했던 거죠. 그 부분이 편집되면서 사람들이 송아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요. 아무튼 저는 정경이의 그런 감정에 되게 많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악행을 택하고 그런 자신에게 상처받는 감정에.
제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캐릭터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해가 가기도 했고, 되게 안타까웠어요. 어떻게 보면 정경이가 새이랑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새이만큼 자신감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자기 마음을 표현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도 못하고, 도의를 지키지도 못하고 그 사이에서 굉장히 갈등을 많이 하는 친구였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서 마음이 많이 갔어요.
아직도 여운이 남은 것 같네요. 비하인드 영상 보니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지막 촬영 끝났을 때도 펑펑 울더라고요.
저는 그게 사실 이해가 안 됐거든요. 주변에 연기하는 친구들한테 막 ‘아니 막촬 하고 왜 울어? 홀가분하지 않아?’ 이랬는데.(웃음) 그런데 또 그때 상황이 그랬어요. 마지막 촬영이 이제 송아랑 마지막으로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따뜻한 신이었잖아요. 그런 연기를 하면서 가슴이 한껏 축축해져 있었는데 ‘컷’, ‘정경이 끝’, ‘수고하셨습니다’ 이러니까 북받쳐 올랐던 거지, 저는 뭐… 강한 사람이에요.
너무 센 척 같은 표현인데요.(웃음)
(웃음) 농담이고요. 그만큼 정경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멋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배역과 그만큼 교감했다는 게.
그럼요. 그냥 저는 정경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이제 떠나… 이제 더 이상 못 한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고. 그리고 초반 촬영이 엄청 바빴기 때문에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탁 풀렸던 것 같기도 해요.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너무 좋았거든요. 끝난다는 거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도 있었을까요? 지금껏 맡은 역할 중에?
그런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정당성이 없는 캐릭터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게 대본이나 방영되는 드라마, 영화 자체에서 드러나지 못한다고 해도 연기하는 저는 정당성을 찾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다 이해가 됐어요.
그래도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경이의 상실감이라든가, 송사희(〈신입사관 구해령〉)의 욕망, 류혜진(〈은주의 방〉)의 자격지심과 질투….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어떠냐면요, 기자님. 저는 사람들이 다 느낀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질투가 나도 자의식 때문에 모른 척하고, 그럴 뿐인 거죠. 친구를 사랑하게 되어도 외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에. 반면에 제가 했던 캐릭터들은 그걸 표현할 마음을 먹었을 뿐이죠. 모든 걸 거스르고 정말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어떻게 보면 진취적인 인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얘기를 듣다 보니까 아까 말한 ‘정당성’이란 표현의 무게가 좀 다르게 다가오네요. 캐릭터 구축 측면을 넘어서, 그들의 상황과 욕망을 체화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웃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불편한 게 너무 싫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게 싫어서 제가 그냥 손해를 보고 마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잘못된 부분이 많은 캐릭터들이었지만 그 안의 용기에 대해서는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박지현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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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송시영
  • STYLIST 강이슬
  • HAIR 케이트
  • MAKEUP 최수지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