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사진을 고르는 일은 위스키 블렌딩 작업과 비슷하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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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 "사진을 고르는 일은 위스키 블렌딩 작업과 비슷하죠"

시간이 나긋하게 흐르는 도심의 늦은 오후. 여유를 찾은 류준열을 만났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1.12.20
 

BLENDED with NIGHT

 
〈인간실격〉 10화에서 자르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장발이었잖아요. 장발 기간이 꽤나 길어서인지 짧은 머리가 새로워요. 긴 헤어스타일의 분위기가 참 좋긴 했지만요.
다들 긴 머리카락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시청자 분들이 조금 어색해하시는가 싶었는데, 나중에 머리카락 자르는 장면에서 긴 머리카락을 아까워하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기른 머리였어요?
2년 이상 3년 가까이 길렀죠.
 
어쩐지, 미국 가서부터 계속 기르셨던 거군요. 그 당시 미국 생활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두잉’을 보면, 1화 때에 비해 마지막화 때 머리카락이 한참 길더라고요.
맞아요. 그때 미국에서 약 6개월 있었는데, 사진들을 보면 점점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있어요.
 
최동훈 감독의 화제작 〈외계+인〉에도 장발로 나오잖아요. 그 영화야 말로 최고의 화제작이죠. 너무 궁금해요.
다들 궁금해하시는 만큼 저도 출연한 배우들도 너무 궁금해서 감독님을 조르고 있어요. 감독님은 열렬히 편집 중이시고요.
 
1년 넘게 엄청난 회차의 촬영을 소화한 걸로 봤어요.
맞아요. 거의 쉬지 않고 촬영이 있었죠. 저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힌트를 더 드리고 싶은데, 모르고 봐야 더 재밌는 영화니까 제작진 쪽에서도 이렇게 조심을 하고 있는 거겠죠? 배우들조차도 궁금해하고 있으 니까요.
 
정말 한국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두 개 작품 중 하나랍니다.
나머지 하나는 뭔가요?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요?
 
맞아요.(웃음) 그 영화도 정말 오래 기다렸거든요. 주변에 준열 씨 최근작인 〈인간 실격〉을 강력하게 추천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소설가, 아내는 기자더군요. 그렇게들 울면서 봤다고 해요.
소설가와 기자 부부라니 통하는 면이 있네요. 저도 〈인간 실격〉 대본을 보면서 이건 드라마 대본이 아니라 문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부부도 그런 점에서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어땠어요?
좋은 장면이 될 거라는 사실은 찍으면서도 알아요. 그림 자체가 워낙 좋으니까 느껴지죠. 김지혜 작가님이 쓰는 글이 워낙 섬세하기도 했고요. 정말 대사 한줄 한줄에 영혼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대사들이라 연기할 때 전혀 부담이 없었어요. 그 캐릭터가 내뱉는 말처럼 느껴지니까요. 제 주변을 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리듬이 참 특이했죠. 대사 하나를 듣고 꽤 오래생각하게 만드는 리듬이었잖아요.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주변 이야기죠.
 
예전에는 드라마는 콘셉트 싸움이라는 얘기를 종종했는데, 이 드라마는 콘셉트랄 게 없죠.
굳이 콘셉트를 잡자면, 결국에는 그냥 우리 주변의 진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이 드라마의 대본을 받을 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어요. 강재(류준열 분)와 엄마(미선, 강지은 분)의 관계, 또 그둘 사이의 특정한 에피소드를 보고 실제 저희 엄마에게 “엄마, 이거 엄마랑 내 얘기야”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엄마와 나 사이의 특정한 감정에서 비롯한 비슷한 에피소드가 대본에 그대로 있었거든요. 작가님은 아무것도 모르셨어요. 만난 적도 몇 번 없었고, 제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요.
 
어떤 감정, 어떤 에피소드인가요?
콕 짚어서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우리 엄마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요.(웃음) 사실 엄마도 기억 못 하는 에피소드였나 봐요. “엄마 이거 우리 얘기야”라고 말했는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물론 미선이 강재에게 돈 달라고 한 장면은 아닙니다.(웃음)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수백 번도 더 들었던 노래의 가사를 눈여겨 다시 봤어요. 제프 버클리버전의 ‘할렐루야’가 마치 제언처럼 등장하잖아요.
맞아요. 그 노래에 담긴 성경 속의 이야기들, 또 고전 작품들이나 음악에서 받은 영감들이 작품에 잘 녹아있다고 할까요? 다윗과 밧세바,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 등이 나오죠. 전 성경에 나오는 그 이야기들이 인간의 근원에 있는 어떤 감정들을 그린 것이기에 작가님께서 가져다 쓰신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맞아요. 영웅으로 칭송받는 다윗이지만,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고, 신의 능력을 가진 삼손이지만, 데릴라에 취해 머리카락이 잘리는 고통의 시간을 거치죠.
이게 조금 예민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불륜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영화가 아녜요. 우리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던져 놓고 우리가 그 이야기 안에 들어섰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어떤 사람을 욕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죠.
 
사실 류준열이라는 배우를 이 드라마 전에도 참 좋아했어요. 특히 〈뺑반〉에서 서민재가 처음 등장하는 신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한준희 감독님의 색깔이 굉장히 강하게 담겨 있는 작품이죠. 저 역시 그 장면을 꽤나 즐겁게 찍은 것 같아요. 마치 만화처럼, 애니메이션같이 독특하게 연기했는데, 참 재밌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전도연 씨가 옥상에서 나쁜 생각하는 걸 막는 장면이 좋았어요.
거긴 공간이 참 중요했어요. 사실 거기가 기차가 다녀서 사운드를 따기 좋은 곳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용산역이 보이는 그곳이 정말 너무 멋있어요. 그 옥상에 올라가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한강 다리가 10개씩 보이는 초고층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가봐도 그런 특별한 감정은 안 들거든요.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서울을 찾은 사람들을 싣고 온갖 기차들이 용산역을 지나죠. 마치 인생의 환승센터처럼,뭔가의 거대한 교차로를 보는 것 같은 감정이 들어 뭔가의 거대한 교차로를 보는 것 같은 감정이 들어요.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서일까요? 10여 년 전에 가끔 지방에서 ktx를 타고 본가인 수원으로 가다가 깜빡 졸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졸면, 영등포나 용산등의 역에서 내리게 되거든요. 용산에서 내리게 됐을 때 어둑한 사위에 싸여 있는 용산역만의 그런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매료되곤 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용산이 화려한 동네가 아니라서 더 그랬을 것 같아요.
 
한번 찍어야겠네요.
뭘요? 사진이요?
 
맞아요. 사진이요.
너무 좋죠. 용산역이나 영등포 등 기차역 주변의 분위기가 참 좋잖아요.
 
유럽의 기차역도 멋지지만, 동아시아의 기차역이 가진 고유의 느낌도 있으니까요.
그렇죠. 일본 작가들이 아마 많이 찍었을 거예요. 일본 기차역이 독특하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며) 만들어지는 특유의 느낌들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 국내 기차역을 찍은 사진 연작은 못 본 것 같아요. 어떤 사진 작가들은 ‘그 나라의 분위기를 느끼려면 전철역이나 기차역에 가봐라’라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북한에서 찍은 지하철 사진을 보면 북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또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에 가보면, 그 나라의 미감을 알 수도 있죠. 거대한 공공 디자인 전시장이니까요. 예를 들면 런던의 지하철은 디자인의 도시답게 아릅답지요.
킹스크로스역은 막상 가보면 거의 영화죠 뭐. 워털루역 같은 데서는 실제로 영화도 많이 찍잖아요.
 
우리가 익숙해서 그렇지, 한국에도 많겠죠?
그럼요. 저는 충무로역도 좋아하고, 신도림도 좋아하고 또… 금정역도 재밌어요.
 
아, 금정! 유명하죠.
거기는 뭐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하잖아요. 수도권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죠. 수원이며 안산에 사는 사람들이 금정역을 거치는데 저도 수원 사람이다 보니 익숙해요.
 
기대되네요.
사진이요?(웃음)
 
마침 오늘 콘셉트가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도시 남성이었잖아요. 열심히 뭔가를 만든 남자가 집에 들어와 잠시 쉬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독서를 하면서 위스키 베이스의 저도주 더블유 바이 윈저와 함께하는 장면들이죠. 그런데, 아까 화보 찍을 때 준열 씨가 더블유의 향을 맡으면서 진심으로 놀라는 장면을 제가 정확히 봤습니다.
아, 보셨군요. 맞아요. 향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 향만으로도 오래 손에 들고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향에 좀 예민하거든요. 마셔서 혀로 느끼는 것도 좋지만, 향에서부터 벌써 풍미가 느껴졌다고 할까요?
 
여행을 자주 다니시니까 여러 술을 마셔봤을 것 같아요.
제가 특히 여행에서 술을 자주 마셔요. 위스킹 하이볼을 워낙 좋아해서 하이볼을 내는 가게에 가면 일단 하이볼부터 시키죠.
 
최근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바들도 하이볼에 진심을 기울이죠. 잔에 맞게 얼음을 카빙하기도 하고요.
바텐더가 얼음 카빙하는 거 보는 것도 재미더라고요. 잔에 딱 맞게 예쁘게 깎는 걸 보면 꼭 공연 같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위스키 베이스라 ‘우디’한 향이 좋죠. 나무 혹은 이끼, 또는 피트의 향이 섞여 나면서 차분해지잖아요.
제가 그래서 집 바닥재나 가구를 다 우드로 써요. 향수도 우드 베이스만 뿌리고요. 그래서 위스키 베이스의 술에 끌리나 봐요. 더블유에 끌리는 이유가 우디한 향 때문이라고 하니까 제 취향의 맥락이 이해가 되네요.
 
19년 이상의 스카치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더블유 19. 알코올 도수 32.5도의 저도주로 부드러운 목넘김과 차원이 다른 풍미가 특징이다. 450mL.

19년 이상의 스카치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더블유 19. 알코올 도수 32.5도의 저도주로 부드러운 목넘김과 차원이 다른 풍미가 특징이다. 450mL.

오래전에 정정호 작가와 〈트래블러〉 방송 때 만나 사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리고 얼마 전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서 사진전도 열었잖아요.
맞아요. 사실 정 작가님은 순수 예술 사진을 찍는 작가인데, 〈트래블러〉라는 방송에 이벤트성으로 출연해주신 거였죠.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사진 선생님과 제자 같은 관계가 되었죠. 그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정 작가님 본인이 좋은 사진을 찍는 작가기도 하고 또 좋은 스승들을 둔 제자기도 하거든요. 지금은 정말 훌륭한 안목을 갖고 있는 친구이자 형이자 선생님처럼 여기며 지내고 있어요. 전시 준비하는 데 많이 도와주셨죠. 사진의 세계에 좀 더 전문적으로 다가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진만 보면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기는 하잖아요.
스타일은 다른데 취향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사실 취향에 의존해서 작품을 하지만, 정정호 작가는 예술가로서 계속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계속해서 밀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는 다르다는 의미예요. 그러나 사진을 고르는 취향이나 또다른 부분들을 보면 확실히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 다른 부분들을 보면 확실히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블렌디드 위스키와 싱글 몰트 위스키의 차이는 뭔가요?
 
아까 말했던 향수를 조향사가 만들듯이, 더블유의 베이스가 되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마스터 블렌더가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 일정한 퀄리티 이상의 균일한 맛과 향을 조합해내는 과정을 거쳐요. 싱글 몰트 위스키는 한 증류소의 원액만을 사용해 만든 위스키고요. 블렌딩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요. 전시에 걸린 사진이 그리 많지는 않더라고요. 수천 장을 찍었을 텐데 그 많은 작품 중에 전시작을 추리는작업은 어땠나요?
너무 즐겁기도 하고 또 너무 어렵기도 했어요. 정정호 작가도 “사진은 찍는 것보다 고르는 게 더 큰일이다”라는 얘기를 한 적도 있죠. 난 이게 분명히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기엔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전 그 작업이 약간 마스터 블렌더의 작업처럼 느껴져요. 캐스크 안에 있는 위스키를 다 맛보고 섞어서 목표한 향과 맛을 만들어내듯, 수천장의 사진 중에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흥에 맞는 사진을 섞어서 전시를 꾸리는 거니까요.
그러네요. 정확한 것 같아요. 관객들이 입구에 들어갈 때 어떤 사진부터 보느냐, 이 사진을 보고 나서 저 사진을 보느냐, 아니면 저 사진을 보고 나서 이 사진을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감상이 달라지거든요. 그 과정에서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전시에 섞였을 때 는 뭔가 감흥을 깨뜨리기도 하지요. 블렌딩을 할 때 정말 좋은 위스키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를 위해서 빼야 할 때가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더블유는 원액부터 병입까지 100%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절대원칙으로 삼아요. 그게 이 브랜드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죠. 류준열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나요?
전 제가 어떤 가치에 있어서 양보하지 못한다, 라는 사실보다 ‘나는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는 사람이다’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보다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인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럼 최근에 포기하지 않은 거 뭐가 있어요?
아까 그 빨간 재킷이요.(그는 앞선 촬영에서 에디터가 추천한 빨간 재킷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건 옳은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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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희준
    STYLIST 이혜영
    HAIR 이일중
    MAKEUP 강윤진
    FOOD STYLIST 김보선
    LOCATION 브라이튼 한남 갤러리
    ASSISTANT 송채연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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