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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에서 모터를 묻는다

수년 전, 비포장도로 위를 질주하는 ‘랠리’라는 모터스포츠 장르에 도전한 적이 있다.

BY김현유2022.01.07
 
수년 전, 비포장도로 위를 질주하는 ‘랠리’라는 모터스포츠 장르에 도전한 적이 있다. 랠리카 내부에는 드라이버 외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 코드라이버가 같이 탑승하는데, 이 둘은 바로 옆에 앉아 있지만 대화는 인이어(In Ear) 무전기를 통해 나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파워트레인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실내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랠리 스테이지를 한 번 내달리면 산골자락을 다 들썩이게 할 배기음과 진동, 그리고 먼지구름이 일어나 랠리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다. 순수 전기차 포뮬러 E 레이스를 관전하기 위해 로마 시내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경주차가 코앞으로 지나갔지만, 굉음은 없었다. 오히려 잠결에 들리는 귓가의 모기 소리처럼 느껴졌다. 트랙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 전기모터가 엔진을 밀어낸 그 자리에는 낯선 고요함이 가득했다. 빠르고 조용해서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사냥감을 향해 조용히 접근하는 맹수가 떠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터스포츠에 전기모터가 들어오고 있다. 포뮬러 1이나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나가는 최상위 경주차들은 이미 회생 제동 에너지로 충전하고 전기모터가 가속을 돕는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도입한 지 오래다. 이로 인해 더 작은 엔진으로 큰 합산 출력을 발휘할 수 있고, 동일한 무게의 연료로 더 멀리 달릴 수 있게 된다. F1은 중간 급유 없이 결승을 완료할 수 있어 경기 진행 호흡이 빨라졌다. 24시간을 달리는 르망 프로토타입 레이스카는 전기모터 덕분에 가공할 가속력을 달성하면서 배출가스도 줄였다. 내연기관 엔진이 아예 없는 순수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 역시 이미 8번째 시즌을 운영 중이며, 올해 서울 잠실경기장을 무대로 한국 라운드가 펼쳐질 계획이다. 사막이나 극지방 등 오프로드에서 사륜구동 전기차로 펼쳐지는 ‘익스트림 E’ 레이스도 새롭게 국제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전동화 파워트레인으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가까이 레이서 주변에 다가와 있다.
 
전기 파워트레인은 내연기관 엔진과 뭐가 다를까? 엔진과 전기 파워트레인의 가장 큰 차이는 반응성이다. 엔진은 가속페달부터 타이어까지 힘이 전달되는 파워트레인 안에서 유체역학과 화학 반응, 벡터의 변화, 토크의 증폭과 배분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전기 레이스카는 가속페달을 밟으면 인간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 속도보다 빠른 전기신호가 거의 빛의 속도로 전달되어 모터를 돌리기 시작한다. ‘즉시’라고 할 만한 이런 빠른 반응성은 운전자에게 정교하고도 날카로운 반응을 요구한다.
 
처음 전기 경주차를 탔던 건 유럽의 한 카트 트랙에서였다. 가속페달 반응의 직결감이 너무 강해서 오른발이 모터에, 아니 구동륜에 접속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요란한 엔진이 존재했다면 출력의 강도를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텐데…’ 제한된 감각으로 더 강력한 힘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은 드라이버에게 새로운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심심할 줄 알았던 전기차 레이스 시대가 긍정적일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전기 레이스카는 반응만 빠른 게 아니다. 필요한 만큼 모터를 추가해 출력을 높이기도 쉽다. 모터의 부피와 무게는 작은 4기통 내연기관 엔진의 반도 안 된다. 몇 달 전,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800마력짜리 전기 스포츠카 개발 모델을 시승했다. 800마력이라는 수치는 내연기관 엔진에선 8기통에 거대한 트윈 터보를 붙여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 차는 전기모터 4개를 후륜축 주변으로 납작하게 배치해 콤팩트한 구동계를 구현했다.
 
두 개의 엔진이 달린 자동차는 만들기 어렵지만, 두 개 또는 네 개의 모터가 달린 전기차는 구성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경주차는 양산차 섀시를 기반으로 하는 투어링카와 완전히 경주 전용 설계인 포뮬러(혹은 프로토타입)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특히 공기 투영 면적을 줄이기 위해 부피가 작은 차체를 갖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전기모터는 설계를 용이하게 해준다.
 
문제는 배터리팩이다. 모터를 늘려 출력은 쉽게 올릴 수 있으나, 이를 감당할 전력 비축량을 확보하는 게 문제다. 결국 배터리팩의 크기와 무게, 냉각 성능이 구동 성능과 직결된다. 양산차와 달리 매 초 과격한 가감속과 선회를 통해 강한 G포스를 받는 경주차에게 늘어난 무게는 치명적이다. 현존하는 경주차가 여전히 대부분 하이브리드 형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고 가벼운 배터리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순수 배터리 전기차인 포뮬러 E 또한 출력 욕심을 버리고 저마력 모터와 가벼운 차체로 승부를 걸었다. 한 번 완충으로 40분 남짓의 결승전을 아슬아슬하게 돌 수 있다. 전력 사용이 과다하면 완주를 못 하는 셈인데, 이런 완주 페이스 관리 또한 전기 레이스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테크닉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전기차 레이스가 신기술의 테스트 베드로서 순기능도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내연기관 양산차는 연구 개발 시설 내에서 레이스 트랙과 유사한 형태의 시험과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는 뜻이다. 사실 요즘 자동차 브랜드의 모터스포츠 투자는 기술 연마의 목적보다 홍보 마케팅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다시 모터스포츠 경험이 시판 차량 제작 노하우로 연결되고 있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은 같은 전력량으로 더 균일한 파워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과, 변속기를 통한 가속력과 항속거리의 증대를 연구 중이다. 대량의 전기를 방출할 때 배터리 온도 관리 기술도 양산차 제작에 필수인 숙제다. 스포츠의 선한 경쟁이 기술을 자극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전기차 출시가 많아지면서 나 역시 트랙에서 전기차를 리뷰하는 일이 잦아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미래의 경기장은 전기차로 가득해질까? 전동화의 도입이 빠른 곳도 레이스 트랙이지만 엔진이 가장 오래 생존할 곳도 바로 이곳이라는 역설적 결론에 도달한다.
 
양산차는 엄격하고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피할 수 없다. 많은 브랜드가 신형 엔진 개발을 백지화하고 전동 파워트레인 개발로 예산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엔진이 달린 신차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에도, 인간이 내연기관차를 도로에서 운전하는 게 불법인 시대가 되어도, 레이스카는 여전히 자극적이고 마니아적인 엔진을 달고 있을 테다. 전기 레이스카보다 느릴지라도 오감을 자극하는 오락적인 요소의 기계로서 엔진은 꾸준한 수요층을 거느릴 것이다. 엔진 찬양론자의 공허한 주장 같은가? 운송 수단으로 말을 타는 사람은 없지만, 마구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Who's the writer?
강병휘는 대원외고와 연세대 영문과에 진학,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덜컥 레이스에 출전 후 우승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수입 자동차 브랜드에서 상품 기획과 트레이닝을 담당하다가 국제 레이스 출전을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후 챔피언 드라이버,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매체에서 신차 리뷰와 성능 비교 테스트 콘텐츠 등에 출연하고 있다. 최근엔 유튜브 채널 〈스테이션B〉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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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강병휘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