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잔의 와인으로 이루어진 A와 B 두 개의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한 코스를 테이스팅하는 가격은 구성에 따라 다르다. 사진은 와인과 카드의 짝이 매칭되지 않게 촬영했다. 어떤 잔에서 어떤 카드의 이미지가 느껴지는지를 맞히는 것 역시 재미이기 때문이다.
와인소셜에 들어서 코스를 선택하면 당신 앞에 아무런 설명 없이 다섯 잔의 와인이 놓인다. 와인 이름은 마지막까지 비밀. 그 상황이 살짝 당황스러울 수도, 흥미로울 수도 있다. ‘반드시 품종 정도는 맞히고 말겠어’라는 도전 의식이 샘솟는다. 한편 이런 걱정도 든다. 라벨에 적힌 정보가 없다면 나는 과연 와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 와인이 가장 흔한 와인이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와인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이런 콘셉트를 구상한 거예요.” 와인소셜을 운영하는 와인 수입사 바틀샤크의 대표 데이비드 김의 말이다.
당신의 어떤 지식도 이곳에선 취향을 간섭하지 않는다. 호불호를 가르는 정보는 오로지 자신이 느끼는 감각뿐. 아! 하나가 더 있다. 와인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카드가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스터리다. 어떤 이미지가 어떤 와인에 어울리는지 직접 매칭해본 후에야 정답을 알려준다. 코스 B의 카드에는 다양한 컬러의 물감이 흘러내리는 롤링스톤스 로고 스타일의 입술, 빈티지 자동차,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등이 그려져 있다. “와인을 생산한 지역, 농장, 메이커, 와인 가격 등 수많은 정보가 사실 편견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이 적어둔 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느끼지도 못한 관능을 느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비싼 와인에 더 후한 평가를 주기도 하고요.” 데이비드 김은 캘리포니아의 주요 와인 산지인 소노마 카운티에서 자랐다. 지금은 다양한 와인에 익숙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진짜 취향을 찾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 역시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매스 브랜드의 와인을 먼저 접하기 시작했죠.” 그의 취향은 달콤하고 볼드하고 오키하고 간혹 바닐라 향이 강하게 나는 클래식컬한 캘리포니아 와인이었으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좀더 캘리포니아 북쪽, 오리건 쪽 취향에 가 닿았다.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등 산미가 도드라지고 섬세한 품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점점 서늘한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의 취향이 결과적으로는 나와 꽤 다르지만, 그 과정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 재밌어 우린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점수로 수준을 따지고 각자의 취향을 평가하는 것보단,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서로 공유하는 일이 더 즐거운 와인 문화는 아닐까? 이날 나는 다섯 잔의 와인 중 단 한 종의 포도 품종을 맞혔다. 도전은 실패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신선한 열대 과일을 버터에 글레이징한 듯 리치한, 그러나 느끼하지 않아 마음에 쏙 드는 와인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코스로 맛본 모든 와인은 업장에서 바로 구매가 가능하다. 요즘처럼 좋은 와인 사기 힘든 세상에선 무척 합리적인 쇼핑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