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라거의 완성형, '한맥'의 탄생 스토리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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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라거의 완성형, '한맥'의 탄생 스토리

한반도 지역을 상징하는 라거 맥주엔 어떤 맛을 담아야 하는가? 이 어려운 질문에 ‘한맥’이란 이름의 답을 낸 한맥의 아버지, 오비맥주 광주공장 양우천 공장장을 만났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1.26
 
 
Q.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발효조에 있는 맥주들이 잘 익어가고 있는지 직접 한 잔씩 마셔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날그날의 맥주 맛이 다른가요?
일반 소비자가 느낄 정도로 차이가 나면 큰일이죠.(웃음) 맛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면 공정에 큰 변수가 생긴 셈이니 전부 다 스톱시키고 그 배치를 버려야 할 수도 있고요. 저뿐 아니라 각 과정의 책임자들이 관능 검사를 하는 건 ‘오늘도 우리 효모들이 건강한지, 열심히 발효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죠. 특히 여러 수치들을 살피면서 기준치에서 소수점 한참 아래 몇 자리라도 벗어나면 맛을 보면서 확인합니다.
 
전발효 단계의 맥주를 영(young) 비어, 후발효를 거친 맥주를 그린 비어, 여과 등의 모든 과정을 거친 병입 직전 최종 단계의 맥주를 브라이트(bright) 비어라 한다. 사진은 브라이트 비어 탱크(BBT)에서 맥주의 색과 맛과 향을 검사 중인 양우천 공장장의 모습.

전발효 단계의 맥주를 영(young) 비어, 후발효를 거친 맥주를 그린 비어, 여과 등의 모든 과정을 거친 병입 직전 최종 단계의 맥주를 브라이트(bright) 비어라 한다. 사진은 브라이트 비어 탱크(BBT)에서 맥주의 색과 맛과 향을 검사 중인 양우천 공장장의 모습.

Q. 견학을 하면서 발효조에 있는 효모들을 보고 왔어요. 효모에도 나이가 있다는 설명에 좀 놀랐습니다.
있지요.(웃음) 효모도 생명체니까요. 이 효모들도 다 특허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유럽, 특히 벨기에 쪽에서 ‘슬렌트’라 불리는 작은 튜브 형태로 공장에 들어와요. 처음 튜브에 담겨 공장에 온 효모를 영 살로 칩니다. 이 효모를 배양한 후 맥주 발효조에 넣으면 그 안에서 이 효모들이 증식하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며 맛있는 라거 맥주를 만들죠. 그런데 증식을 마친 후 이 효모를 폐기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발효를 마친 효모는 다시 수확해서 또 발효에 사용하는데, 이때 한 살이 됐다고 표현해요.
 
Q. 정년도 있다면서요.
맞아요. 효모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나이가 너무 많은 효모는 쓰지 않아요. 과학적 통계로 검증된 나이까지의 효모만 사용합니다. 효모의 나이가 너무 많거나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으면 플레이버가 약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까 말했듯이 전문가만 알 정도의 아주 미세한 관능 차이가 생기면 가장 먼저 효모를 확인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맥주 회사들이 열 살에서 열한 살이 넘어가는 장년의 효모들도 쓰곤 했어요.
 
Q. 나이 든 효모의 노동을 착취한 셈이군요.(웃음)
(웃음)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요즘은 효모의 품종별로 정년이 정해져 있어요. 한맥 같은 경우에도 과거 효모 정년의 약 60% 이상 단축된 기간만 일을 시킵니다.
 
Q. 한맥이 ‘대한민국 대표 라거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공장장님을 한맥을 만든 한맥의 아버지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지요?
참여하고 주도하긴 했지만 제가 혼자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요. 한맥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으니까요. 오비맥주 광주공장의 경우 한맥이 탄생하기 좋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여러 다른 설비가 갖추어져 있거든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라거를 만들자’라고 했을 때 광주공장에서 논의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비맥주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라거를 만들자고 한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유명한 맥주 중엔 그 지역의 색을 담는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라거의 일종인 필스너입니다. 체코 플젠 지역에서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라거 맥주의 중요한 한 스타일을 차지하고 있죠.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라는 말에는 ‘한국 라거의 스타일을 확립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셈이죠.
 
Q.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했을지 상상이 안 되네요.
한국 스타일의 라거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이냐를 두고 많은 논의를 거쳤죠. 처음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아를 원료로 하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논의의 테이블에서 끊임없이 제안된 원료는 바로 쌀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쌀이라는 원료를 한국 라거의 특징으로 잡자고 결론지은 거죠. 그 뒤에는 맥아와 쌀의 비율, 홉의 종류 등 자세한 레시피를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느라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죠. 이 과정을 하나의 시제품만을 두고 진행한 게 아니라 여러 시제품을 두고 소비자들의 관능 평가를 거쳐 저희 제품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Q. 원리로 따지면, 맥아든 밀이든 쌀이든 전분 상태로 당화를 거치잖아요. 그런데 쌀이 들어가면 그 결과물이 다르다는 점이 재밌어요. 한맥의 경우엔 국내에서 생산한 다른 맥주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과 ‘화이트 비어’ 계열에서 느껴지는 꽃의 아로마가 있었어요.
맞아요. 결국 맥주를 만들려면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 당의 원료를 보리로 할 것이냐, 밀로 할 것이냐, 옥수수로 할 것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똑같습니다. 다당류인 전분을 효소로 잘라 단당류로 만들죠. 그러나 맥아와 쌀 그리고 밀 등의 분자 구조의 특징이 조금씩 다 달라요. 특히 쌀의 경우 최종 제품의 관능 차이가 큽니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게 쌀로 만든 맥주의 특징 중 하나죠. 맥주의 맛과 향을 검사하다 보면 특정한 플레이버가 톡톡 튀는 경우가 있습니다. 쌀을 원료로 한 맥주는 이 튀어나오는 플레이버를 감싸 안아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 되겠네요. 전체적으로 청량감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고 차분한 관능이 드러납니다.
 
Q. 화학이 아니라 결국 생화학의 영역이라 생기는 그 의외성이 재밌네요.
맞아요. 그래서 맥주는 공정에서 작은 변수가 생기면 그때그때 그 변수에 대처하며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살아 있는 것을 다루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죠.
 
Q. 다른 국산 맥주들보다 홉 향이 좀 더 강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홉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해요. 쓴맛을 내기 위해서, 또 하나는 아로마를 내기 위해서죠. 사츠(Saaz), 모자이크, 펄레 등 홉의 종류만 100여 가지로 수천 가지 맥주가 되고, 그중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사용하는 것만 해도 21가지입니다. 한맥은 쓴맛을 내는 홉은 기본적인 맛을 내는 평균 정도로만 사용하고, 풍부한 플레이버를 내기 위한 아로마 홉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아까 기자님이 느낀 ‘꽃향’ 역시 쌀이라는 주원료와 아로마 홉을 통해 강조된 것이죠.
 
Q. 한맥이 한식과 잘 어울리는 것은 비단 쌀로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이런 복잡한 맛의 디자인을 거쳤기에 가능한 거였군요.
라거 맥주의 특징 중 하나가 기름기가 좀 있는 음식, 또 맛과 향이 강한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사실이거든요. 에일 맥주는 마시고 난 후에 입안에 강한 맛과 향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음식과 페어링을 하면 강한 맥주의 맛이 남은 채로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다 보니 강한 맛끼리 부딪치게 됩니다. 한맥의 청량함이 씻고 지나간 입안에는 맛과 향이 짧게 남아요. 삼겹살처럼 기름진 음식, 갈비찜처럼 맛이 강한 음식, 주꾸미처럼 매운 음식에 무척 잘 어울리게 디자인된 맥주입니다. 물론 치킨 또한 빼놓을 수 없죠. 또 한맥은 국내 시장의 다른 맥주들에 비해 좀 더 중후한 매력, 차별화된 매력을 담으려 노력했어요. 맛의 수치로 봤을 때도 드러납니다. 같은 제품군의 맥주들보다 비터니스는 조금 더 높고 당도는 살짝 낮으면서도 아로마가 풍부하죠.
 
Q. 국내 주류업계의 동향과는 맞아떨어지는 타이밍 같기도 합니다. 인디아 페일 에일(IPA) 등이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고,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크게 성장했지만, 많이 마시는 사람들 중에는 라거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요.
라거의 무기가 밸런스라면, 크래프트 맥주는 개성이 특징이죠. 후자는 와인처럼 한두 병을 식사와 함께 마시기에 적당해 어쩌면 와인의 음용 방식과 더 비슷할 거로 봅니다. 실제로 벨기에의 트라피스트 에일 같은 경우는 거의 와인에 가까운 플레이버를 내기도 하고요. 반면, 한맥은 식사는 물론 즐거운 시간에 건배를 하며 2000cc를 마셔도 물리지 않는 술의 카테고리에 있지요.
 
Q. 한맥은 어떻게 마셔야 가장 맛있나요?
잔에 따르자마자 맥주에 살얼음이 뜨는 지나치게 낮은 온도에선 모든 풍미를 다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일반 업장에서 사용하는 쇼케이스 냉장고는 보통 6~7℃ 정도의 온도에 맞춰져 있는데, 그 정도 온도가 적당합니다. 특히 날숨에서 나오는 향을 한번 느껴보세요. 너무 급하게 확 들이켜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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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조혜진
    HAIR & MAKEUP 이소연
    ASSISTANT 송채연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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