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당신이 그 여행지에 절대로 가지 않을 이유 part.2
당신은 이곳들에 가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때문만은 아니다. 일찍이 그곳에 다녀온 자들은 이름부터 생소한 이곳들을 아무에게나 추천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개인의 여행으로 곱씹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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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Coast, California, USA
따사로운 ‘캘리’를 벗어나 기어이 잃어버린 해안으로 향하는 마음
고현(무용;소 대표)

2018년 여름, 캘리포니아 자동차 여행 취재 때도 그 기이한 확증 편향은 여지없이 되풀이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 북부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 State Park)까지 왕복 1600km를 달리는 국도 여행.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매일 숙소 체크아웃을 반복하고 하루에 300~400km씩 꼬박 이동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취재 도중 가이드북을 들춰보는데, 유독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로스트 코스트(Lost Coast). 그러니까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브랜드 네임으로 알고 있던 그 이름이 실존하는 지명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정작 가이드북에는 그 ‘잃어버린 해안’에 대한 설명이 단 몇 줄로 요약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험준한 해안지대에 약 50km에 이르는 트레일이 있어 몇몇 용감한 백패커가 트레킹을 시도한다’는 정도.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지 못했고, 결국 다녀오기로 했으니, 지역에 대한 이런 표현 때문이었다. ‘The California’s wildest’.
목적지인 매톨 비치(Mattole Beach)는 로스트 코스트의 최북단에 해당했다.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같은 이들이 키만 한 배낭을 어깨에 메고 그야말로 와일드한 트레일을 종단하는 곳.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3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도착한 그곳은 실로 미개척된 해변처럼 보였다. 낡은 트레일러 몇 대가 정박된 캠프사이트가 있었고, 그 너머로 매서운 파도가 몰아치는 태평양이 펼쳐졌다. 햇살이 작열하는 여느 캘리포니아의 해변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는 것이다. 해변에는 군살 없는 매끈한 복근의 서퍼 대신 사연 많아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리트리버와 서성이는 중이었다.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답 대신 역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저 이름 때문이라고 싱겁게 답했고, 그는 옅은 미소를 띠며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근방의 트레일에는 ‘야생동물 출몰 주의’ 안내판과 함께 초목이 거칠게 우거져 있었다.
로스트 코스트의 일면을 스치듯 확인한 우리는 곧장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했고, 아무도 오가지 않는 황량한 왕복 2차선 해안도로를 전세 낸 것처럼 질주했다. 하지만 드라이브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았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오르막길에 접어드는 순간 ‘덜컹’ 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계기판에 이상 신호가 뜬 것이다. 차를 세우고 살펴보니 타이어 한쪽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곧장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해는 점점 수평선을 향해 기우는 중이었다. 일단 차 트렁크에 실린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해보기로 했다. 매뉴얼을 더듬더듬 살피며 타이어 볼트를 풀기 시작했다. 엉거주춤 스페어 타이어를 끼우고 있을 때 한 트럭 운전사가 차를 멈춰 창문 너머로 괜찮냐고 물어오기도 했는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길이 없는, 잃어버린 해안이었으니까. 2시간 가까운 악전고투 끝에 스페어 타이어 교체는 성공했다. 해는 이미 태평양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고, 캘리포니아 특유의 핑크빛 선셋이 황홀하게 하늘을 채웠다. 사이즈 다른 스페어 타이어를 감안해 텅 빈 도로를 시속 50km로 털털거리며 로스트 코스트를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목적지는 유레카(Eureka)의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였다. 그곳에서 맥주 샘플러를 마시며 전날의 일을 복기했다. 만일 내가 ‘와일드’에 관한 어떤 로망도 없었더라면, <론리 플래닛> 영문판에서 로스트 코스트라는 이름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 외딴 도로에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는 소동극 혹은 무용담처럼 남은 기억이지만, 로스트 코스트는 여전히 내게 묻는다. 당신은 진정한 와일드를 경험했는지.
Caye Caulker, Belize
그 섬의 시간이 흐르는 방식에 대하여
정민아(여행작가), 오재철(사진가)

어쩔 수 없지, 부딪혀보는 수밖에. 긴장과 초조함을 안고 벨리즈 국경에 도착했다. 역시나 국경 사무소에서는 비자를 요구했고, 여권과 증명사진, 인당 50달러가 필요했다. 그리고 직원이 여유만만한 태도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를 제외한 승객이 모두 타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기사가 버스를 출발시키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다시피 사정을 해 버스를 세웠고, 비자는 그로부터 30여 분이 지나서야 겨우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 나는 순간이다. (원고를 쓰기 위해 검색해보니 2015년부터 한국인 90일 무비자 입국 가능으로 요건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간신히 버스에 탑승했지만 아직 숨 돌리기는 일렀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벨리즈시티에서 쾌속 보트를 타고 45분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한 키코커. 타원형으로 생긴 작은 섬이다. 좁은 폭으로 가로지르면 섬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긴 폭도 40분 정도면 가로지를 수 있을 정도다. 우리는 가이드북에도 없고 인터넷에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는 그곳에 들러 며칠만 쉬었다 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한 달가량 머물게 되었지만.
벨리즈는 <론리 플래닛>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 + 레저> 등 세계 유수의 여행 매체들이 꼽은 ‘2022년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국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고 해도 그리 창피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국내에는 특히나 덜 알려졌고, 우리가 벨리즈에 방문했던 것도 오직 ‘그레이트 블루 홀’ 때문이었다.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이 싱크홀은 지름이 300m가 넘고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 당시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여행지’ 같은 콘텐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리고 ‘세계 스쿠버다이빙 장소 베스트 10’이라는 기사에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생각해보니 나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없잖아. 그래서 결국 그레이트 블루 홀에서 다이빙을 하기 위해 키코커섬에서 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눈뜨면 장비를 챙겨서 거북이, 상어, 가오리가 선명히 보이는 맑은 바다로 뛰어드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동네 친구들과 해먹에 누워 수다를 떨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창문 너머 별을 보며 잠드는, 정말 별것 없는 나날이었다. 체류 기간이 늘었던 건 ‘일주일이면 충분하다’는 강사의 말을 믿고 어드밴스드 자격증까지 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주일과 나의 일주일은 세는 방식이 달랐던 것일까. 어느 날은 “충족 인원이 채워지지 않아서”, 또 어떤 날은 “바람이 좀 불어서”, 그 이튿날에는 “배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배를 띄우지 못하는 날은 점점 늘어만 갔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냐며 따지는 내 격앙된 목소리는 상대방의 너털웃음에 부딪혀 힘을 잃었다. 일상에서나 여행지에서나 늘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는 비상식적인 대응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우리의 태도가 비상식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바쁜 일 하나 없어 절대로 달리는 법이 없고, 어떤 일에든 ‘노 프라블럼’이라 답하는 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저절로 같이 웃게 될 수밖에.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응대하는 그들에게 나는 더 이상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열흘이 지나고, 나는 점점 내가 ‘키코커화’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섬 북쪽 끝의 비치 바 ‘게으른 도마뱀’에서 온종일 보내고도 무료해하지 않게 될 때, 간판을 볼 때마다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속으로 나른한 농담처럼 감탄을 하게 될 때. 낮이건 밤이건 한껏 늘어진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모래사장 위를 뒹구는 곳. 만약 당신이 복잡한 경로, 비싼 여행 경비, 부족한 정보를 모두 헤치고 언젠가 이 작은 섬에 발을 디딜 계획이라면 하나만 더 경고하고 싶다. ‘돌아올 날을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있을 사람만 떠날 것.’ 이 섬이 속에서 천불이 나는 지옥이 될지 모든 것이 나긋나긋해지는 천국이 될지는 오직 그것에 달려 있을 테니까.
Zefat, Israel
신을 찾는 사람들의 도시
윤웅희(<에스콰이어> 에디터)

예루살렘에서 3시간쯤 달려 제파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배낭여행자였던 나는 미리 체크해둔 저렴한 도미토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토라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면 이곳에서 묵을 수 없다’는 냉담한 거절이었다. 노트에 적어둔 세 곳의 숙소가 모두 그랬고, 호텔에 묵을 예산은 없었다. 가난한 비유대교 배낭여행자에게는 배타적인 마을. 제파트의 첫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 결국 한두 시간 동안 동네를 헤매다 쓰러져가는 싸구려 호스텔을 발견하고 짐을 풀었다.
제파트는 신비롭고 기이한 곳이었다. 도시 자체가 신앙을 위해 지어진 제단 같았다. 골목에선 토라를 강독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일곱 촛대 메노라와 다윗의 별, 물고기 같은 유대교의 상징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유대교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구역도 있었는데, 갤러리나 워크숍에 들어서면 화려한 색감과 패턴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속에서 키파를 쓰고 긴 구레나룻을 둥글게 만 검은 옷의 유대인들은 마치 성스러운 정신의 수호자처럼 보였다. ‘모든 것은 오직 신을 위해서.’ 제파트의 슬로건이 있다면 분명 그런 것일 터.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일까. 그곳에 머무는 내내 거부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히브리어라곤 ‘샬롬’밖에 모르고, 신앙도 없는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외부인과 자신의 세계를 철저히 분리시켰다.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에서 겪은 것과는 사뭇 다른 온도. 그것은 무례함이나 불친절과는 아예 다른 어떤 것이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현지인의 삶에 스며들 수 있을 거라 믿은 나의 오만한 태도나 싸구려 감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제파트에선 이것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그곳에 머무는 내내 섞이지 못하는 부유물처럼 떠돌았다.
제파트엔 카발라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인다. 호스텔 주인도 나를 제외한 모든 숙박객이 카발라를 배우는 구도자라고 했다. 둘째 날 밤, 숙소 테라스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뉴욕에서 왔다는 그녀는 이미 몇 개월째 이곳에서 카발라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무엇을 찾으려 이곳에 왔는지, 그래서 무엇을 찾았는지, 그것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런 아주 사적인 질문들. 꽤나 취했던 터라 그날의 대화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다. 다만 그녀는 ‘믿음’이나 ‘구원’ 같은 숭고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했다. 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듯한 표정으로. 그것이 꽤 부러웠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 같아서. 우리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새벽쯤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멀쩡히 걷던 그녀가 별안간 멈춰서 울음을 터뜨렸다. 사랑했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살아갈 용기가 없다고, 자신은 카메라도 없는 사진가라고, 세상으로부터 그저 숨고 싶다고, 고해성사를 하듯 짙고 독한 것들을 쏟아냈다. 혼란스러웠다. 신과 인간, 구원과 절망, 믿음과 자기기만 같은 상반된 단어들이 내 옆에 나란히 눕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을 찾아 멀리서 제파트를 찾은 이들도 결국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신을 찾는 이들의 도시에서 추방된 것일까? 그렇다면 왜? 믿음이 부족해서? 갑자기 신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우리는 다시 하이킹을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 아침 “급한 일이 생겨 떠나게 됐다”는 쪽지를 그녀의 방문 밑에 밀어 넣고 도망치듯 텔아비브행 버스를 탔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사실 당신이 제파트에 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다르기 힘든 오지도 아니고, 생명의 위험을 느낄 일은 더더욱 없으므로. 유대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한번쯤 방문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제파트를 찾았다간 당신도 나처럼 거부당할지 모른다. 신으로부터, 신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혹은 신을 믿지 않는 자신으로부터.
Credit
- EDITOR 오성윤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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