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들어는 보았나,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딩 코미디는 없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맞는 표현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배꼽 빠지게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자.

프로필 by 박호준 2022.03.27
 
 
“다 온 것 같은데 여기가 맞아요? 공연장은 안 보이는데.” 나를 태운 택시 기사가 삼각지역 근처 어느 골목길에서 물었다. 초행길이긴 피차 마찬가지였기에 “그럴걸요?”라는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스타그램에서 미리 얼굴을 봐두었던 ‘닭대가리 코미디 클럽(이하 닭대가리)’ 운영자 ‘페르난도’가 서 있지 않았다면 분명 입구를 한참 찾아 헤맸을 것이다. 닭대가리가 열리는 펀타스틱 씨어터는 그만큼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지하 1층 공연장에 들어서자 열댓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대기실이 따로 없는 작은 소극장이라 관객과 코미디언이 섞여 앉아 있지만, 누가 코미디언이고 누가 관객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휴대폰이나 작은 수첩을 연신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으면 코미디언이다. 이날 무대에 서는 코미디언은 총 12명이었다. 구성은 간단하다. 1명당 5분씩 무대에 서서 자신이 준비한 농담을 자유롭게 늘어놓는다. 5분이 되기 전에 무대를 내려올 수 있지만, 시간을 초과하면 스태프가 무대 뒤에서 플래시를 깜빡거리는 것으로 코미디언에게 신호를 준다. 시계가 7시 40분을 가리키자 이내 조명이 어두워지고 페르난도가 환영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닭대가리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페르난도는 닭대가리 코미디 클럽의 호스트이자 오거나이저이고 코미디언이다.

페르난도는 닭대가리 코미디 클럽의 호스트이자 오거나이저이고 코미디언이다.

 
“저희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픈 마이크’를 열고 있습니다.” 페르난도가 이어 말했다. 커리어를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바로 ‘오픈 마이크’다. 신인들이 주로 서는 오픈 마이크는 스탠드업을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자 스탠드업이라는 코미디 형식의 뿌리다. 지금의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 신은 어쩌면 기회의 땅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신청만 하면 일단 모두에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물론 미국에선 어림도 없다. 뉴욕 최고의 코미디 클럽 ‘더 코미디 셀러’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 한번 서보려는 한 코미디언 지망생의 고군분투기가 드라마 시리즈(<크래싱>)로 HBO에서 제작됐을 정도다. 보통은 인기 없는 하급 클럽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시작해 점차 유명 코미디언들이 서는 무대로 자리를 옮긴다. 스탠드업으로 5만 명이 넘는 관중을 끌어모은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케빈 하트도 오픈 마이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넷플릭스에서 스페셜까지 찍은 콜린 퀸, 데이브 어텔 같은 코미디언이 오히려 정기적으로 코미디 클럽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서기도 한다. 무대는 한정적이고, 오르려는 사람이 많은 게 정상이다. “코로나 전엔 오픈 마이크에 참여하기 위해 매달 부산까지 갔었어요. 그만큼 설 자리가 부족했거든요. 혼자 연습할 땐 정말 웃겼는데 막상 무대에서 뱉으면 썰렁할 때가 부지기수예요. 그러니까 오픈 마이크는 운동선수로 치면 연습경기 같은 겁니다. 주기적으로 자주 참여해야 실력이 느는데 그럴 만한 공간이 없으니 그냥 제가 차렸습니다.” 공연 시작 전 닭대가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묻자 페르난도가 내놓은 답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스탠드업은 마이크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코미디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반만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축구도 공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할 수 있죠. 단출해 보이는 무대지만, 조명의 밝기와 음악, 실내 온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제야 소소한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코미디언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 전부 보일 정도로 밝은 무대와 달리 객석은 꽤 어둡다. 혹시 남들과는 다른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더라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덜 민망하다. 모든 오픈 마이크가 그런 건 아니지만, 닭대가리에선 코미디언이 입장할 때 코미디언이 직접 고른 노래를 짧게 틀어준다. 야한 농담을 할 계획이면 등장 음악부터 끈적이는 R&B를 트는 식이다. “스탠드업은 음절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코미디의 일부예요. 등장 음악은 기본이죠.”  
 
오픈 마이크에서 사회자의 임무는 막중하다. 5분마다 등장하는 코미디언을 일일이 소개할 뿐만 아니라 ‘아이스브레이커’로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이다. 실험적인 성격이 짙은 오픈 마이크 특성상 다소 자극적이거나 덜 다듬어진 농담이 자주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코미디언의 농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스탠드업에선 그런 사람을 ‘헤클러(heckler)’라고 한다. 처음엔 ‘이러다가 싸우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픈 마이크에선 흔한 풍경이다. 코미디언이 주제 제약 없이 마음껏 이야기하는 것처럼 관객도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 몇몇 노련한 코미디언은 헤클러를 이용한 임기응변으로 오히려 더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날 사회는 김병선이 맡았다. 그는 56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코미꼬’의 운영자이자 KBS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 사이에선 ‘슈퍼스타’로 통한다. 인기만 많은 건 결코 아니다. 글로벌 콘테스트 쇼 프로그램 <갓 탤런트 에스파냐>에 참여해 스페인어로 스탠드업을 선보여 본선 무대까지 올랐다. 외국에서 스탠드업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온 ‘역수입’ 케이스다. 인터미션 중(놀랍게도 두 번이나 있다) 잠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픈 마이크가 잘돼야 스탠드업 신이 발전합니다. 희극인들끼리 쓰는 말 중 ‘선수감’이라는 게 있어요. 어떻게 해야 방송에서 웃길 수 있는지 아는 걸 말하죠. 그런데 선수감에 치우치면 대중과 멀어져요. 그런 면에서 오픈 마이크는 관객과 호흡하며 자신의 감을 확인하고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예요. 저로선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여기 오는 친구들 모두 스탠드업이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취업 준비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요. 전업으로 하는 제 입장에선 버텨줘서 고맙죠.”    

 
대니초가 ‘헤드라이너(headliner)’로 나섰다. 그가 등장하면 배꼽이 빠질 준비를 해야 한다.

대니초가 ‘헤드라이너(headliner)’로 나섰다. 그가 등장하면 배꼽이 빠질 준비를 해야 한다.

 
오픈 마이크엔 어떤 차별이나 제한 없이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처음엔 쇼킹했죠. 뭐 이런 게 있나 싶었으니까요. 스탠드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거든요. 근데 보다 보니 다른 곳에선 느낄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신선함이 있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성시권 씨가 말했다. 음료수를 메뉴도 보지 않고 능숙하게 주문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 그는 지난 12월 닭대가리가 시작된 후 매주 목요일 저녁 이곳을 찾는 몇 없는 단골 중 한 명이다. 한기명이 일곱 번째 순서로 마이크를 잡았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그는 “저를 보고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 알아요.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하는 것 같고 웃자니 장애인 비하하는 것 같잖아요. 근데 그럴 거면 오늘만큼은 시원하게 비하로 갑시다!”라는 말로 관객들의 속마음을 찌른다. 객석에서 시원한 웃음이 터진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대신 긁어주는 건 ‘웃음 공식 1번’이다. 물꼬를 제대로 튼 덕분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오른쪽 팔을 소재로 한 농담 역시 폭소가 이어진다. “오픈 마이크는 정말 너무 즐거워요. 안 그랬으면 파주에서 용산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려서 지하철 타고 오진 않았겠죠. 물론 저는 공짜지만요.” 무대 아래에서도 그는 농담을 던진다. 마스크 속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장애인도 무대에 올라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저 말고 다른 장애인들도 스탠드업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오픈 마이크에선 장애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무기죠”라고 덧붙였다.
“제 이름 외우기 쉽죠? 이따 저한테 투표해주세요.” 슈밤이 무대를 이어받았다. 그는 8년 전 한국에 온 인도 사람이다. 스탠드업을 시작한 지는 2년 남짓이지만, 인도 문화를 이용한 그의 농담은 ‘웃음 타율’이 꽤 높다. 영어로 말하는 게 편할 텐데 굳이 한국어 오픈 마이크에 참여하는 이유가 뭘까? “그럼 외국인만 오잖아요. 제가 스탠드업을 하는 건 웃음을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무대 위에서 장난기 가득해 보였던 모습과 달리 사뭇 진지하다. 내친김에 인도의 스탠드업은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10년 전까진 한국이랑 비슷했어요. 아는 사람만 알았죠. 지금은 달라요. 거의 모든 도시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있고 방송에도 자주 나와요. 대학교 축제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항상 사회를 맡아요.” 그는 “SNS의 영향이라고 봐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웃긴 사람들이 SNS를 이용해 코미디를 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탠드업 신 전체를 키운 것 같아요”라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리 위엔 물음표가 하나 생긴다. 그럼 10년 후엔 한국 스탠드업의 인기도 높아지는 걸까?
같은 아시아이긴 하지만, 인도는 좀 멀다. 옆 나라 일본이라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적합한 인물이 있었다. ‘도쿄 최고의 한국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박희곤이다. 언젠가 그에게 무슨 근거로 최고라고 말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제가 도쿄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유일한 한국인이거든요. 1명 중에 1등”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를 만난 건 2020년 초, 아사쿠사의 어느 허름한 펍에서 열린 오픈 마이크였다.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수위가 높은 농담을 쏟아내는 모습이 인상 깊어 ‘인친’이 됐다. 새해 인사를 핑계로 대뜸 연락해 일본 스탠드업 현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는 비주류예요. 두 명이서 대화를 주고받는 ‘만자이(만담)’가 엄청난 인기인 것과 비교하면 말이죠. 현업 코미디언조차 일본 스탠드업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해요. 주제에 대해서도 보수적이죠. 제가 일본군을 독일 나치에 비유하는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험악해지더라고요.” 혹시 그가 활동하는 지역이 도쿄라서 그런 건 아닐까? 일본 코미디는 간사이, 그중에서도 오사카 중심이니 말이다. “오사카엔 유명 코미디 학원이 많죠. 근데 스탠드업 수업은 없다고 들었어요. 만자이를 하면서 오픈 마이크에 가끔 참여하는 사람은 있어도 스탠드업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차라리 외국인끼리 하는 오픈 마이크의 규모가 더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선생님을 그만두고 코미디언이 된 김동하가 사회를 맡았다.

선생님을 그만두고 코미디언이 된 김동하가 사회를 맡았다.

 
오픈 마이크가 연습경기라면, 우미관 극장에서 열리는 ‘서울 코미디 올스타스(이하 올스타스)’는 리그 경기다. 검증된 고수들만 무대에 선다. 참고로 우미관 극장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환과 구마적이 자웅을 겨루던 그 우미관이다. 예전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지었지만 위치는 같다. 종각역에서 탑골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우미관 터’라고 적힌 작은 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무대에 오르는 건 오직 다섯 명, 주어진 시간은 15분이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열리는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하기 어렵다. 코미디언도 입장료를 내고 무대에 서는 오픈 마이크와 달리 이곳에선 코미디언에게 보수를 지급한다. 무대에 서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 기준에 15분 정도를 짜임새 있게 꾸밀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국내에 많아야 10명 정도예요. 후하게 쳐줘도 15명이 넘지 않죠.” 올스타스 무대에 서는 코미디언이자 매주 라인업을 결정하는 대니초의 말이다. 선수이자 감독인 격이다. 공연 시작 전 우미관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만 20년 가까이 스탠드업 무대에 선 베테랑이다. 국내에서 ‘전업’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2020년에는 왓챠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 쇼 <리얼 스탠드업 인 코리아>를 선보이기도 했다. 큰물에서 놀아본 사람에게 한국 스탠드업은 어떤 느낌일까? “잘하는 사람이 없어요. 물론 거기엔 저도 포함돼요.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미국엔 저 같은 사람이 동네마다 있어요. 더 웃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신이 성장할 수가 없어요.” 시작부터 날카롭다. 그는 “초보 코미디언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코미디는 재능+노력입니다. 실력이 어느 정도 괜찮게 올라오려면 최소 5년은 걸려요. 매주 2~3회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선다고 가정했을 때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에도 수십 개의 오픈 마이크가 열리는 미국과 한국의 실정은 엄연히 다르다. 오픈 마이크에 참여하고 싶어도 무대가 없다. “그래서 제가 매번 말하는 게 ‘중량을 늘려라’입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보면 ‘고중량 저반복’과 ‘저중량 고반복’이 있잖아요. 한국에선 ‘고중량 저반복’의 심정으로 농담을 갈고닦아야 해요.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짜임새 있는 농담 하나가 어설픈 농담 10개보다 낫다는 이야기예요. 똑같은 농담이라도 모션이나 말하는 톤의 강약을 다르게 해보면서 끊임없이 개발해나가는 거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철저한 실력주의자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앞서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게 있다. 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여섯이다. 대니초는 공연 때마다 라인업에 루키 한 명을 끼워 넣고, 5분간 농담을 털어볼 기회를 준다. 10명 남짓한 오픈 마이크 무대만 경험해본 루키들에게 입장료를 2만원이나 내고 찾아온 관객 100명 앞에 세워준다.
 
우미관에선 술을 즐기며 스탠드업을 즐길 수 있다. 나초나 피자 같은 간단한 먹거리도 주문 가능하다. 회심의 농담을 했는데 관객 반응이 미지근하면 “아직 술이 덜 들어갔네. 좀 더 마셔봐요. 그럼 진짜 웃길걸요?”라며 능청을 떨 수 있다.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들 반응을 살피기 위해 구석에 앉자 관객을 안내하고 술과 안주를 내오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전날 닭대가리에서 오픈 마이크를 하던 코미디언들이 안주를 나르고 있었다.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신은 아직 작다. 활동이 뜸한 사람까지 전부 합쳐도 전국에 50여 명 수준이어서 어느 공연장엘 가든 아는 얼굴을 만난다. 이날 ‘서울 코미디 올스타스’의 무대에 첫 주자로 등장한 이제규 역시 닭대가리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마주쳤던 얼굴이다. 그는 함께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김영구, 김영희, 김병선, 이용주처럼 KBS나 SBS 공채 개그맨 출신이 아니다. 지금은 없어진 ‘공간 비틀즈’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시작해 어느덧 한국의 ‘더 코미디 셀러’ 격인 올스타스에 서게 됐다. “그냥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요. 친구들이 <개그콘서트> 볼 때 저는 스탠드업 보면서 자랐어요. 성인이 되고 나선 스탠드업 무대를 느끼고 싶어 뉴욕으로 여행을 간 적도 있고요.” 첫 순서를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온 이제규의 말이다. 무대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다른 코미디언들과 농담에 대해 의논한다. 특히 대니초에게 조언을 자주 듣는다. “대니 형이 맞다면 맞는 거예요. 현재로선 한국에 형보다 스탠드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닭대가리와 올스타스 무대에 서본 그에게 차이에 대해 물었다. “웃음의 강도가 달라요. 코미디언은 관객이 빵 터질 때 ‘웃음 뽕’을 느끼거든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데, 내가 준비한 농담으로 사람들이 웃는 걸 보면 온몸이 전율해요. 무대가 크면 그 웃음 뽕도 비례해 커지죠. 동시에 부담도 더 커져요. 오픈 마이크는 연습하는 마음으로 가지만, 여긴 그럴 수 없으니까요.” 스탠드업은 그의 인생도 바꿨다. “엄청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스탠드업을 하면서 변했죠. 주위에서도 요새 얼굴 좋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홍대 NVM에선 스탠드업도 스트리트 문화가 된다. 길거리에 앉아 듣는 것 같은 맛이 있다.

홍대 NVM에선 스탠드업도 스트리트 문화가 된다. 길거리에 앉아 듣는 것 같은 맛이 있다.

 
피식대학의 김민수도 올스타스 무대에 설 예정이었지만 공연 사흘 전 라인업이 바뀌었다. 코로나 확진 판정 때문이었다. 피식대학은 지난해 ‘한사랑 산악회’로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끈 이후로도 꾸준히 스탠드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바쁜 와중에 굳이 돈을 벌기 힘든 무대에 계속 오르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 세례가 쏟아졌다. “피식대학의 뿌리는 스탠드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바생 성대모사’와 ‘노량진 전한길 선생님 성대모사’도 전부 스탠드업 무대에서 하던 것들이에요.” 물리 교사 ‘광용쌤’ 정재형도 말을 보탰다. “스탠드업은 콩트랑 달라요. 오로지 스스로 무대를 풀어나가야 해요. 쓸 수 있는 시간도 짧고요. 본인이 어떤 캐릭터인지 이해하고 그걸 농담으로 극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어요.” 마무리는 이용주다. “저, 민수, 그리고 재형이는 원래 스탠드업을 하려고 모인 크루였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요. 돈보다 더 소중한 직업입니다.”
“돈… 중요하죠.” 올스타스의 홍보를 맡고 있는 윤송하 이사의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근데 지금은 돈을 벌기보단 저변을 확대할 시기입니다. 코로나 상황인데도 매주 우미관을 꽉꽉 채워주는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하지만, 이 정도로는 불안정해요. 더 성장해야 하죠.” 마케터로서 뾰족한 수라도 있는 걸까? “전국 투어를 구상 중입니다. 스탠드업은 현장밀착형 콘텐츠예요. 관객과 호흡하며 웃음을 만들어가죠. 그래서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재밌어요. 이런 재미를 서울이 아닌 타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네요.” 걸림돌은 돈이다. 19금 이미지가 강한 탓에 스폰서가 붙질 않는다. 그나마 술, 에너지 음료, 콘돔 회사 등과 접촉하고 있다. 어젠 닭대가리 오픈 마이크에서 사회를 보고 오늘은 올스타스 무대에 선 김병선도 전국 투어가 빨리 성사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곧 멕시코로 떠나 장기 체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저를 보러 우미관에 와주는 팬들이 많아요. 행복한 일이죠. 멕시코로 떠나기 전에 전국 투어를 통해 한명 한명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그는 공연이 끝난 후 꽃다발을 두 개나 받았다.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신에서 공연 후 꽃다발을 받는 건 흔치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도 제가 멕시코로 가는 건, 유튜브에서 얻은 인기를 이용해 객석을 채우는 게 장기적으론 스탠드업 문화 전반에 그다지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 스스로도 아직 스탠드업을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양손에 꽃다발을 든 남자가 말했다.
그럼 대체 돈은 어떻게 버는가? “작년 11월, 12월에는 적자였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고요. 거리두기 방침으로 입장할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이 있어서 그렇죠.” 홍대 NVM(네버마인드)의 운영자 박이삭 이사는 말했다. 그는 스트리트 문화를 표방하는 여러 공간들을 기획하거나 운영 중이고, 그중 하나가 NVM이다. NVM은 격주로 스탠드업 무대를 올린다. 그리고 이곳의 라인업을 짜는 것 역시 대니초다. “처음 대니초의 무대를 본 건 CGV에서였어요. 코미디는 재밌는데 공간이 아쉬웠죠. 그래서 NVM에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박이삭이 바라보는 스탠드업의 미래는 조금 다르다. “스트리트 문화의 협업을 지향해요. 브레이크댄싱 배틀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데, 스탠드업과 브레이크댄싱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거죠. 실제로 미국에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행사 사회를 보거나 바람잡이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예요.”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매주 무대에 오르는 송하빈도 예외는 아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매주 무대에 오르는 송하빈도 예외는 아니다.

 
“영하 10℃의 추운 겨울이었어요. 관객 3명을 모아오면 5분, 5명을 모아오면 7분 동안 스탠드업 무대에 설 수 있다길래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제 손을 밀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종이가 눈 위로 전부 흩어졌죠. 어찌나 서러운지 눈물이 나더라고요.” 스탠드업 코미디 신을 취재하다 보니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이 미국에서 스탠드업을 경험한 후 쓴 책 <스탠드업 나우>에 나오는 이 대목이 생각났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크래싱>에도 스탠드업 무대에 서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코미디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정 페이’는 귀엽다. 노페이에 오히려 추가 노무를 제공하고 무대에 선다. 참고로 앞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관객을 모으는 행위를 코미디 업계에선 ‘바킹(barking)’이라고 부른다. 자존심 강한 미국인들이 바킹까지 겪어가며 무대에 오르는 시간을 5분에서 15분으로 늘리기 위해, 15분에서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변두리 코미디 클럽의 오픈 마이크에서 이름을 날리고, 메인 스트림 코미디 클럽의 오픈 마이크 오디션에 통과해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고정 라인업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드디어 넷플릭스나 HBO에서 스페셜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이 정형화된 성공의 루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확률은 낮지만 당첨금이 꽤나 커 기댓값이 준수하다. 그 준수한 기댓값이 한겨울에도 손을 떨며 전단지를 나누어주게 만든 셈이다. 이에 비하면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 신은 가능성도 낮고, 당첨금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국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돈을 번 사람은 손에 꼽기 때문이다. 무대를 찾기도 힘들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한국어 스탠드업 무대라고는 앞서 살펴본 닭대가리와 올스타스, NVM이 전부다. 여기에 비정기적으로 무대를 올리는 여성 스탠드업 크루 ‘블러디퍼니’를 포함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처음 스탠드업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겠다고 했을 때 디렉터가 손사래를 치며 뜯어말렸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사실 만난 모든 인물에게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100년에 가까운 스탠드업 코미디 역사를 지닌 미국에서는 소아 성애, 동성애, 인종차별과 같은 민감한 소재가 무대에 올라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데이브 샤펠이 트랜스젠더 비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즉 내가 코미디언들에게 던진 질문을 좀 더 정확히 하면 “코미디언은 사람을 웃기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여성을, 동성애자를 비하해도 되는가?”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코미디언들은 내가 가진 이런 문제의식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스탠드업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정치·문화적 논란 탓이 아니라 자신들의 농담이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 신에도 거대한 논란이 생기길 바란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데이브 샤펠의 반대 시위대와 지지자들처럼 격렬하게 싸우기를 원한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한준희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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