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가 알려주는 '벌 실종 사건'의 전말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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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가 알려주는 '벌 실종 사건'의 전말

오성윤 BY 오성윤 2022.04.05
 
 
나는 ‘도시 양봉가’다. 말 그대로 도시의 옥상이나 공원에서 벌을 키운다. 벌의 중요성과 위기를 알리기 위한 일로, 활동해온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3년째 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영하 10℃ 가까이 떨어질 만큼 추운 날이었는데, 우리가 관리하는 남산 자락의 도시 양봉장에 오른 순간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추운 겨울날, 꿀벌이 모두 밖에 나와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당혹감과 함께 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 올라왔다. 왜 죽었을까? 겨울답지 않은 온기 때문이었다. 건물의 시설관리자는 아마도 겨울철 찬 바람에 노출된 꿀벌이 안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꿀벌이 사는 공간에 움집을 만들어줬다. 그 움집은 따뜻했다. 아니, 더웠다. 그 더위에 꿀벌은 봄이 왔다고 착각했으리라. 결국 벌통 밖을 나온 꿀벌은 모두 얼어 죽은 것이다. 꿀벌은 변온동물이다. 단독으로 있을 때 외부 기온이 낮으면 더 이상 날지 못해 동사한다. 겨울에는 벌통 속에서 서로 똘똘 뭉쳐 계절을 난다. 지금 생각하면 초기 양봉가의 웃긴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이 올해도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저 해프닝처럼 넘길 수만은 없는 일들이.
“벌과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어!” A. A. 밀른이 1926년에 쓴 동화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푸념의 한 마디다. 아마도 요즘 양봉가의 마음이 딱 곰돌이 푸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벌에게 묻고 싶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그렇게 집을 두고 떠나느냐고. 벌은 대답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기에는 그 파급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나는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따뜻한 커피와 사과 한 알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이 아침 루틴은 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과와 커피는 벌 덕분에 열매를 맺으니까. 물론 그 둘뿐이 아니다. 블루베리, 아몬드, 딸기 등 우리가 먹는 다양한 과일과 곡물 중 약 3분의 1 정도는 벌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벌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서양종 꿀벌(Apis Melifera)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빈 벌통만 남겨둔 채 사라졌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2006년 전 세계 벌 중 30~40%가 사라졌던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을 연상케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남산 자락 도시 양봉장의 벌들처럼, 너무 따뜻한 겨울이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익히 알려졌듯, 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가장 주목받는 원인은 기후변화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꿀벌이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집단생활을 하는 꿀벌류는 다른 벌과 달리 무리 지어 겨울을 난다. 겨울철에는 약 5000에서 1만 마리의 꿀벌이 똘똘 뭉쳐 열을 낸다. 이를 봉구라 한다. 봉구 덕분에 외부 기온이 아무리 낮아도 벌통 내부 온도는 약 25℃에서 30℃를 유지한다. 꿀벌 무리는 남극의 펭귄처럼 자리를 바꿔가며 서로를 보호한다.
겨울이 겨울답게 춥다면 꿀벌 무리는 끄떡하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겨울이 너무 따뜻할 때 일어난다. 겨울철 기온이 높아지면 꿀벌은 계절을 착각해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 따뜻함의 유혹을 못 이기고 벌통 밖으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꿀벌 무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고 봄이 되어 벌통을 열어보면 마치 벌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목되는 원인 또한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화 시기의 변화. 기후변화로 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졌고, 아직 봄 준비를 할 만큼 개체수가 늘어나지 못한 채 봄을 맞은 꿀벌은 꽃이 만개했으나 꿀을 가져올 꿀벌이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 일이 2년간 이어졌다. 결국 꿀벌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꿀벌은 자가면역력이 없기에 먹이가 부족하면 각종 질병이 찾아온다. 꿀벌의 최대 적인 진드기(응애)도 박멸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사용되었던 화학약품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꿀벌이 사라진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국내만 봐도 2009년에 토종벌이라 부르는 동양종 꿀벌(Apis Cerana)이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질병에 의해 약 70~90% 가까이 사라졌다. 현재도 이전의 약 20~30%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2006년에는 앞서 언급한 전 세계의 서양종 꿀벌이 사라진 군집붕괴현상으로 약 30~40%의 꿀벌이 사라졌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로 이어지는 질병이 연이어 인류를 위협하듯 끊임없는 질병이 벌 세계도 괴롭히고 있다. 질병의 강도와 파급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벌의 중요성과 위기를 느낀 전 세계 사람들은 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시 양봉도 그 일환 중 하나다. 2017년에 UN은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벌 최초로 미국 하와이 토종꿀벌 7종은 세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해외의 환경단체나 NGO 등에서 진행하는 벌을 지키는 활동(Save the Bees)은 벌에 치명적인 농약을 줄여나가는 일부터 시작했다. 벌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벌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방해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농약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곳곳에서 펼쳐진 다양한 활동 덕분에 벌의 중요성과 위기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이 관심과 대처의 대부분이 꿀벌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벌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으레 꿀벌을 떠올린다. 꿀벌은 수만 종의 벌 종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개체수로 볼 때도 꿀벌은 많아야 10~20% 정도만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꿀벌은 무리생활을 하기에 압도적으로 보일 뿐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국내 양봉업계는 동양벌과 서양벌이 그럭저럭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문제들이 발생하자 양봉업자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꿀을 생산할 수 있는 종으로 이동하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개별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판단이지만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큰 문제가 된다. 특정 종이 지나치게 우세한 상황에서는 다른 종의 자생은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벌은 종류에 따라 주둥이 구조가 다르고, 관여하는 식물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꿀의 70%가 생산되는 아까시꽃은 서양종 꿀벌은 좋아하지만, 동양종 꿀벌은 주둥이가 짧아 선호하지 않는다. 알팔파·사과는 가위벌과 궁합이 맞고, 토마토· 레드클로버는 뒤영벌과 짝꿍인 꽃이다. 벌의 다양성을 지키지 못하면 작물의 다양성도 지키기 어려운 이유다.
수많은 종류의 야생벌은 단독생활을 한다. 그리고 인간의 도시화와 기후변화로 다른 동식물처럼 서식지를 잃었고, 잃어가고 있다. 과연 우린 이 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를 하루아침에 개선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벌을 지키는 일은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먹는 음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야생벌과 꿀벌들을 지킬 수 있다. 벌에게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한 농작물을 덜 먹는 것만으로도 벌을 지킬 수 있다.
조금 더 벌을 돕고 싶다면, 직접 서식지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비호텔(Bee Hotel)은 말 그대로 단독생활을 하는 야생벌을 위한 집이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길이 약 20cm, 직경 약 0.5~1.2cm 정도 되는 갈대나 종이 빨대를 생수 페트병에 꽂은 상태에서 베란다에 걸어두면 그 공간을 선호하는 야생벌이 찾아와 집을 짓는다. 이는 야생벌에게도, 관찰 교육이 필요한 집 안의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벌의 먹이가 되는 꽃 한 송이를 심는 것만으로도 벌들을 도울 수 있다. 기왕이면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토착종 식물을 심어주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어도 좋다. 얼마나 간단하고도 놀라운 일인가. 벌은 꽃의 수분 매개를 돕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열매를 먹은 사람이 다시 꽃을 심어 벌이 다시 잘 먹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공생의 생태계이다. 나는 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벌이 잘 사는 곳이 곧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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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WRITER 박진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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