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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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5.08
 
 

나보코프 단편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문학동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생전 각 13편이 수록된 4권의 단편 선집을 손수 골라 발표했다. 그 첫 선집의 제목은 〈나보코프의 다스〉인데, 참고로 영어에서 베이커의 다스(dozen)는 13을 뜻한다. 아들 드미트리와 인생의 여인이자 아내인 베라는 나보코프 사후에 그가 ‘통의 밑바닥’이라 메모해둔 8편의 단편과 아카이브에서 찾은 5편의 소설을 엮어 마지막 한 다스를 채웠다. 1995년 총 65편으로 출간된 〈나보코프 단편전집〉에는 지금까지 총 3편의 이야기가 추가됐다. 1925년 〈러시아의 메아리〉 4월호에 실렸던 ‘부활절의 비’가 2002년, 스베틀라나 폴스키라는 학자의 손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생명을 찾아 실렸다. 1922년에 쓰인 단편 ‘단어’는 진위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고 당당하게 2006년부터 전집에 이름을 올렸다. 나보코프가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에 의탁해 1924년경부터 미발표 상태로 잠들어 있던 ‘나타샤’가 2008년부터 단편 전집에 수록됐다. 이제 당신은 다섯 나보코프 다스에 3편의 덤까지 얹어진 한국어판 〈나보코프 단편전집〉을 사야 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당장. 박세회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폴 오스터 / 열린책들
폴 오스터는 전업 작가다. 익히 알려졌듯 세계적 명성을 쌓은 소설가이자 동시에 에세이스트, 시인,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이며, 일흔다섯이 된 지금도 매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오래된 타자기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뺀 11시간 동안. 책 제목이 의미하는 것 역시 ‘글쓰기’라는 행위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평생 쓴 산문 중 45편을 골라 소개하는데, 어째 그 원고들 역시 대다수가 작가들, 글쓰기, 문학과 글과 책에 관련한다. 비평, 회고, 인터뷰, 책 서문, 기도문, 소개말, 소감문 등 온갖 형식을 망라해서. 후일의 작문을 위해 써둔 메모들까지 한 챕터로 공개했으니, 글을 쓴다는 행위와 작가라는 직업을 자꾸만 경건한 심상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민주사회를 위한 작가 집단’의 창립 멤버답게 정치적 견해를 밝힌 글이나 일상을 포착한 에세이도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번역본은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역사를 다룬 2020년작 ‘스타니슬라프의 늑대들’도 포함한다. 그들이 안기는 감명도 무언가의 곁다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성윤
 

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 모로
저자는 약 10년간 판사로 일하며 목격한 수많은 사연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10년 넘게 돌보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살해 후 자살(동반 자살)’을 택한 어느 어머니와 감옥에 가고 싶어 방화를 저질렀으나 생각보다 불이 너무 커지는 걸 보고 “불이야!”를 외치며 열심히 불을 끈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례를 통해 살인, 강간, 절도, 마약 같은 건조한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와 연민, 모순이 숨어 있는지 낱낱이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서평에 ‘안전하고 공평한 세상에 대한 간편한 믿음을 잃게 될 것 같아 두렵다’고 적은 것과 이어진다. 판사로서 누군가의 인생을 강제하는 막중한 일을 매일 반복하지만 양형(量刑)은 언제나 ‘뒷북’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글의 또 다른 축이다. 사회의 차갑고 어두운 모습들 사이사이 절묘하게 인용된 시, 소설, 영화 한 토막이 책의 백미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글을 렴형미의 ‘아이를 키우며’라는 시로 마무리하는 대목에선 깊은 심호흡이 필요할 것이다. 박호준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 흐름출판
쾌락과 고통은 으레 상상하듯 양극단에 놓여 서로 반목하는 관계가 아니다.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 애나 렘키는 둘의 복잡한 관계를 ‘저울’에 비유한다. 적당한 쾌락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지만 과도한 쾌락은 오히려 내성을 키우고, 저울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항상성의 결과로 같은 양의 고통을 생산한다. 인간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쾌락을 추구하게 되며, 이런 악순환의 양상이 중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애나 렘키는 현대인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독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있다고 지적한다. 대마,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 약물뿐만 아니라 SNS, 쇼핑, 게임, 채팅, 도박 등과 같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도파민 상품이 모두 덫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신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가타부타 꾸지람을 늘어놓는 느낌의 책을 상상하게 될 수도 있겠는데, 애나 렘키는 학자이면서도 공감하는 말하기를 택한다. 자신도 한때 우울증 환자이자 에로티시즘 소설 중독자였다는 것이다. 이 책의 존재가 강렬한 ‘경고’를 넘어 ‘격려’로까지 작동하는 건 그 덕분이다. 송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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